(제 3 회)
제1장 운명의 회오리
3
리중부는 이번 서경걸음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묘청에게 아들을 꼭 한번 보이는것이였다.
그의 세례를 받고 한마디의 조언만 들어도 아들의 미래에 커다란 도움이 될것만 같았다. 그는 품을 놓고 리상로와 함께 영명사에로 향하였다. 리상로에게 있어서 묘청을 만나는것은 자못 가슴들먹이는 일이였다. 아버지는 묘청을 정지상나리만큼 극구 찬양했다.
드디여 이들은 영명사절간에 이르렀다.
절간의 입구에서는 이 절간의 특색인 돌사자가 이들을 맞아주었다.
리상로는 저도모르게 그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완벽한 조형미를 갖춘 영명사의 돌사자는 리상로의 넋을 완전히 앗아갔다. 그는 돌사자앞에서 발걸음을 뗄줄 몰랐다.
앞으로도 보고 옆으로도 보고 각이한 시야에서 부감해보았다.
서슬푸른 광채를 내뿜는듯한 뚝 부릅뜬 두눈과 아가리를 쩍 벌린채 턱을 힘있게 추켜든 대가리, 불쑥 내민 가슴과 억센 다리…
그 위엄에 걸음을 떼지 못하는 리상로를 보며 리중부가 한마디 하였다.
《이것이 바로 고구려때 지은 유명한 절간 영명사이다.》
리중부는 고구려라는 말에 특별히 억양을 강조하였다.
그는 고구려라는 말을 입에 담을 때 제일 열에 뜨군 하였다.
묘청은 여느때와 같이 리중부를 반갑게 그리고 스님의 자세로 정중히 맞아주었다. 그의 방에는 타곳의 중이 와있었다.
《법사, 내 아들 리상로요.》
《아- 그렇소이까?》
리상로는 두 스님들에게 꾸벅 절을 하였다.
너붓너붓한 장삼을 걸치고 오골또골한 념주알을 손에 든 묘청이 리상로를 훑어보았다.
열살쯤 된 소년은 키가 훤칠하고 기골이 름름하며 잘 생긴 얼굴에 붉은 입술, 영채도는 눈은 묘청의 마음에 들었다.
《참 훤칠하고 령리하게 생겼소이다. 상을 보니 앞으로 큰 사람이 될것이오이다.》
옆에 있던 중도 리상로를 세세히 눈여겨보았다.
《댁의 도련님이 무척 영특해보이오이다.》
《그렇소?》
스님들의 후한 칭찬을 리중부는 흐뭇하게 받아들였다.
리상로는 묘청을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모든 스님들이 다 그러하듯 번들거리는 중머리와 둥그스름한 얼굴, 어글어글한 두눈에서 발산하는 광채는 범상치 않은 기색을 자아냈다.
리상로는 저도모르게 긴장되여 묘청을 쳐다보았다.
《음- 지금 속세에는 악이 란무하고있노라. 죄악을 많이 저지르는자 지옥의 불가마에 떨어질지어다. -
제 나라를 천시하고 큰 나라에 설설기는것 역시 속세에서 범람하고있는 가장 큰 죄악이노라. 사람은 자기를 지키고 제 나라를 지킬줄 알아야 하노라.》
이윽고 두눈을 번쩍 뜬 묘청이 두툼한 입술을 열었다.
《그대가 아직은 어려서 나의 말을 잘 리해하지는 못해도 자기가 사내대장부라는것을 명심하는것이요.
내인은 집안에 붙박혀 가사일이나 잘 돌보고 남편과 자식뒤바라지나 잘해주면 그만이지만 사낸 뜻이 있어야 하노라.
내가 왜 기거주나리의 시 〈등고산에서〉를 숭배하는지 한번 들어보시오.
…
사나이 이 세상에
큰뜻 품고 살리로다
이 산골에 초라하게
숨어살진 못하겠네
이 얼마나 장엄하고 가슴이 들먹이오.》
묘청의 둥그런 얼굴은 열기를 띠면서 점차 불그스레하게 달아올랐다.
묘청의 이 훈칙의 말에 모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그러나 리상로가 듣기에는 묘청의 말은 너무도 어마어마하고 벅찼다.
기거주나리의 말이 잔잔하고 사리정연한 시내물이라면 묘청의 말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세차게 노호하는 격랑과도 같은것이였다.
이것을 받아안기에는 너무도 베찼다. 또 잘 리해되지도 않았다.
묘청의 말은 너무도 요란하여 귀가 다 벙벙하였다.
묘청의 엄엄한 훈시가 끝나자 리상로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이때 옆에서 리상로를 찬찬히 눈여겨보던 중이 한마디 하였다.
《흑 도련님이 눈에 자주 피발이 서지 않소이까?》
《그렇소. 스님이 의술에 밝은것같은데 우리 애의 병을 한번 좀 봐주겠소?》
리상로는 눈에 종종 피가 지군 했으며 눈이 밝지 못했다.
이것으로 하여 글공부에 적지 않게 지장을 받군 했다. 앞으로 과거급제에서 눈은 날개와도 같은것이였다.
리상로를 진찰하고난 중은 간단한 치료방법을 대주었다.
《나리, 우리가 늘 쓰군 하는 소금이 하찮아보여도 그게 눈병치료에 아주 좋은 치료효험을 나타내오이다.
소금을 물에 풀어 끓여서 더울 때 눈을 씻으면 눈이 잘 보이지 않는것과 눈에 피진것이 잘 낫소이다.
그것은 소금이 피가 몰린것을 잘 헤치기때문이오이다.
옛 의서에는 〈소금은 안개같은 막이 눈알을 가리운것을 치료하는데 눈처럼 흰 소금을 아주 보드랍게 갈아 골풀에 묻혀 예막(고려의학에서 눈병의 하나로서 각막이 흐려지고 결막에 흰 막 또는 붉은 막이 생기는 병)에 살짝 넣어준다. 여러번 써보았는데 효과가 좋다.〉라고 씌여있소이다.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소금끓인 물로 양치하거나 눈을 씻으면 눈을 밝게 하고 이발을 든든하게 하는데 아주 좋소이다.
민간에서 흔히 쓰는 황경피나무껍질도 좋소이다.
달여서 눈을 씻으면 눈에 열이 있어 피지고 아프며 눈물이 많이 나오는것을 치료하는데 간열을 없애고 눈을 밝게 하오이다.》
마치 념불을 외우듯 어렵지 않게 흘러나오는 치료방법에 리중부는 입을 하- 벌리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 고맙소.》
묘청에게 아들을 보인 리중부는 흡족하여 아들에게 일렀다.
《어서 스님들께 인사를 올려라.》
리상로는 공손히 절을 하였다.
며칠후 리중부는 아들과 함께 개경으로 내려갔다.
리상로는 떠나기 전날에 천동이와 만났다.
그들은 헤여지기 아쉬움을 나누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였고 천동은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리상로에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