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1장 운명의 회오리

2

 

묘청의 거사에서 제일 적극적인 지지자, 동반자는 정지상이였다.

정지상(?-1135년)은 고려시기의 정치활동가이며 재능있는 시인이였다. 그는 서경출신의 량반으로서 처음 이름은 지원이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세살에 벌써 시를 잘 지어 사람들을 놀래웠다. 그는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벼슬이 기거주에 이르렀다.

정지상은 리자겸의 반란을 진압한 후 한때 권력을 잡았던 탁준경을 제거하는데서 큰 역할을 하여 인종왕의 신임을 받았다.

그후 정지상은 김안과 함께 고려의 수도를 개경으로부터 서경으로 옮길것을 여러차례 왕에게 상소하였다.

그는 서경에 수도를 옮긴 다음 고려의 국력을 강화하여 강대한 나라로 만들어 대외관계에서 다른 나라에 대하여 강경책을 씀으로써 고려의 위세를 떨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정지상은 뛰여난 시적재능으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있는 인물이였다. 이런 그가 서경천도를 적극 지지하는것은 묘청에게 있어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였다.

묘청은 서경을 사랑하기전에 동방의 강국 고구려를 그지없이 동경하였다. 큰뜻을 실현한 고주몽과 같은 인물이 되고싶었다.

이것이 한걸음 더 나가 권력욕으로까지 번져갔다.

묘청은 우선 자기와 뜻을 같이할수 있는 대신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 첫 대상이 백수한이였다.

풍수가였던 백수한은 검교소감으로서 서경분사를 책임지고있으면서 중 묘청을 스승으로 섬기고있었다.

그 역시 서경천도를 지지하는 사람이였다.

묘청과 백수한은 음양비술을 제창하여 사람들의 인기를 모으고있었고 서경출신인 정지상도 이들의 설교를 깊이 믿고있었다.

묘청과 백수한은 서경천도의 지지자, 동정자들을 서경출신 관리들로 주위에 적지 않게 묶어세웠다. 이들은 수도 개경은 이미 왕기가 다 쇠진해졌다, 허나 서경에는 왕기가 있다, 서경천도를 거행해야 왕업이 부흥할수 있다고 설교하였다.

이들의 천도설은 고려를 고구려와 같은 강대국으로 발전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으나 거기에는 그들자신이 권력을 장악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욕망도 깔려있었다.

서경천도주장에 대하여 근신들인 홍이서, 리중부도 호응했고 여러 대신들도 지지하였다.

개경의 적지 않은 대신들이 서경천도설에 귀가 솔깃해졌다.

날이 감에 따라 서경천도의 바람이 시시각각으로 더욱 진하게 풍기고있음을 리중부는 륙감으로 느끼고있었다.

어느날 그는 조정의 일로 서경에 올라가는 행에 아들 리상로를 데리고 떠났다. 그의 이번 걸음에는 뜻하는바가 있었다.

이제 서경천도가 이루어지게 되면 모든것이 생소한 리상로에게 서경을 잘 알도록 깨우쳐주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리중부와 리상로는 드디여 서경에 도착하였다.

리상로의 마음은 마냥 부풀어올랐다.

꼭 한번 와보고싶었던 서경이였다. 어린시절부터 틈틈이 들려준 서경에 대한 아버지의 이야기는 비록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고장이였지만 리상로에게 이상야릇한 동경심을 불러일으켜주었다.

그 이야기란 바로 고구려의 강대성과 그 수도였던 서경땅에 대한 숭배심이 짙게 깔린 내용들이였다.

이들은 약 한식경은 실히 걸려서야 부벽루가 자리잡고있는 영명산(모란봉)에 이를수 있었다.

영명산에는 고구려시기의 유적들인 내성, 외성을 비롯하여 을밀대, 최승대, 칠성문, 청류정, 부벽루, 전금문, 현무문, 동암문 등이 있다.

부벽루는 고구려시기 영명사의 부속건물로 지었다고 하는데 원래 영명루라고 하였다.

대동강우에 둥실 떠있는듯한 아름다운 루정이란 뜻에서 고려시기부터 부벽루라고 고쳐부르게 되였다고 한다.

영명산에는 고구려시기 외래침략자들을 용감하게 쳐물리치고 아름다운 조국강토를 지켜낸 우리 선조들의 애국적투쟁을 길이 전하는 《을밀장군》에 대한 전설과 《행복의 문》 칠성문에 대한 전설 그리고 옛날 선녀들이 경치좋은 이곳에 내려와 놀았다고 하는 《을밀선녀》에 대한 전설 등 수많은 전설들이 있다.

특히 사방으로 탁 트인 을밀대의 봄경치나 밝은 달이 둥실 떠오를 무렵에 펼쳐지는 부벽루의 풍경은 영명산의 경치가운데서도 뛰여난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을밀대의 봄맞이나 부벽루의 달맞이는 평양8경의 하나로 일러오고있다.

리중부는 우선 리상로에게 서경의 자연경치를 부감하게 하였다.

《야!-》

개경과 또 다른 경치를 안겨주는 절경이였다.

봉우리들사이에는 경상골, 흥부골 등 깊지 않은 골짜기들이 있었으며 북쪽에는 낮은 구릉들이 펼쳐져있었고 동쪽비탈면에는 깎아지르는듯한 절벽인 청류벽이 길게 놓여있었다.

그밑으로는 대동강의 맑은 물이 굽이쳐흐르고있었다.

기묘하고 조화로운 땅생김, 짙은 록음, 아름답게 피여나는 갖가지 꽃들, 이 모든것들은 그 어떤 유명한 화공이 그린 화폭보다 더 아름다왔다. …

리상로는 문득 세살때 대동강에 날아예는 갈매기를 보고 지었다는 정지상의 시구절이 떠올랐다.

 

훨훨 날아예는 흰갈매기

머리는 하늘 우러러 노래부르네

하얀 털 물우에 띄워놓고

붉은 발로 맑은 물을 밟는구나

 

리상로는 다음날 또다시 부벽루를 찾았다. 이번에는 혼자서 왔다.

거울같이 맑고 푸르른 강물이 감도는 청류벽우에 두둥실 떠있어 부벽루라 부른다는 이곳을 찾으면 어쩐지 마음이 평온하고 즐거웠다.

루정아래에 이르러 그곳에 눈길을 주던 리상로의 눈은 둥그래졌다.

소년 하나가 화판을 앞에 놓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있었던것이다.

소년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너머로 기웃이 넘겨보던 리상로는 깜짝 놀랐다. 화판이 아니라 모래판이였다.

소년은 모래판우에 뾰족한 막대기로 부벽루의 정경을 거침없이 쭉- 쭉 그려내고있었다.

푸른 물우에 둥실 떠있는듯한 경쾌한 루정이 소년의 유연한 손끝에서 능란한 필치(그림을 그리는 솜씨)로 거침없이 흘러나오고있었다.

《야!-》

인기척을 느낀 소년이 뒤를 돌아보다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의아한 눈길로 처음 보는 리상로를 바라보았다.

리상로도 마주 바라보았다. 자기 나이또래의 소년이였다.

둥글사하면서도 유순한 기색이 어려있는 큰 눈이 리상로를 바라보고있었다.

《너 그림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나.》

소년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대신 리상로의 우아래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제서야 리상로는 게면쩍은 생각이 들었다.

마주선 두사람의 복색은 헨둥한 차이를 가지고있었다.

리상로는 비단바지저고리, 소년은 평인복…

소년은 무릎을 꺾고 모래가 그득히 담긴 《화판》을 훌쩍 흔들었다.

그러자 리상로의 눈길을 뺐던 부벽루루정의 우아한 자태가 순식간에 모래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소년은 아무말도 없이 그 《화판》을 들고 리상로의 곁을 지나 총총히 산아래로 내려갔다. 아쉬운 감을 금할수 없었다.

신분적장벽이 소년으로 하여금 리상로를 경계하게 하였을것이다.

리상로는 자기보다도 천한 신분의 소년이 그런 뛰여난 그림솜씨를 가지고있다는것이 자못 놀라왔다. 어떻게 하나 도와주고싶었다.

자기가 묵고있는 집에는 지필(종이와 붓)이 얼마든지 있었다.

다음날 그는 지필을 꿍져가지고 또다시 부벽루에 올랐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날이 되여서야 리상로는 부벽루의 앞에 수굿이 앉아있는 소년의 뒤모습을 볼수 있었다.

반가왔다. 허나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조용히 그의 뒤에 다가섰다.

또다시 어깨너머로 넘겨다보았다. 확실히 소년에게는 그림에 대한 선천적기질이 있었다. 활달하고 유연하며 힘있는 필치가 거침없이 모래판우에 펼쳐졌다.

리상로는 소년에게 방해될가봐 찬탄의 소리도 터치지 못했다.

그림그리기를 다 마친 소년이 주섬주섬 일어서다 등뒤에 서있는 리상로를 발견하고 엉거주춤했다.

리상로는 처음으로 대면하는 이 소년이 어쩐지 구면지기처럼 생각되였다.

《난 리상로라고 해. 자, 이 지필을 받아.》

소년은 빤히 쳐다보면서도 손을 내밀념을 하지 않았다.

《어서.》

《이거 날 주는거니?》

《그럼.》

《왜?》

《나도 그림을 몹시 좋아하니까.》

소년은 군침을 꿀꺽 삼켰다.

소년에게 있어서 제일 그립고 욕심나는것은 바로 리상로의 손에 들려있는 지필이였다.

《한번 여기에다 그려봐.》

《그래도 일없니?》

《일없지 않구, 어서.》

리상로는 재촉했다. 소년의 유순한 얼굴에 웃음이 확 피여올랐다.

그는 덥석 지필을 잡아당겼다. 다급히 주저앉은 소년이 활달하고 능숙한 필치를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필에 숙련되지 못하여 주저하던 손이 점차 유연하고 박력있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명하고 뚜렷하며 운치있는 부벽루의 정경이 하얀 참지우에 우렷이 솟구쳐올랐다. 이윽고 참지에서 붓을 뗀 소년이 주춤주춤 일어서 그림을 리상로에게 넘겨주었다.

리상로는 참으로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참지속의 화폭이 그지없이 소중해보였다.

리상로가 물었다.

《이걸 나에게 주니?》

《네 참지가 아니니?》

《내가 너에게 주었으니 주인이야 너지.》

《그럼 우리가 만난 인연으로 가져.》

리상로는 소년이 몹시 대견스러워보였다. 이들은 나란히 앉았다.

리상로가 물었다.

《네 이름은 뭐니?》

《천동이야.》

《천동?》

이들은 스스럼없이 통성을 시작하였다. 알고보니 자기보다 한살 아래였다. 이들은 잠시잠간새에 친구가 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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