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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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학자들이 고증한데 의하면 아득한 원시사회때부터 선조들은 자기의 두발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무껍질로 발바닥을 동여매는 식의 가장 간단하고 원시적인 《신발》을 만들줄 알았다고 한다. 네발로부터 두발로 일어선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 몸을 유지하고 생존해가는데 필요한 모든 힘이 가해지는 두발을 보호하는것은 생사를 판가리하는 사활적인 문제였다. 《신발이 인간의 머리를 쳐들리우게 하였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발밑에 대한 공포를 잊음으로 하여 다른 짐승들과 구별되게 머리를 쳐든 인간의 발전사를 보여주는 말이기도 한것이다.
계급사회가 출현함에 따라 신발은 계층을 가르는 표시로도 되기 시작했다. 고대로마군대에서는 장교들의 관등급을 신발뒤축의 높이에 따라 구분하였는데 신발뒤축이 높을수록 지위가 낮았다. 노예들은 절대로 신발을 신을수 없었다. 유럽의 력사를 보면 강대한 제후들은 종종 자기의 사절들을 파견하여 약한 제후들에게 자기의 낡은 신발을 《선물》하군 하였다. 약한 제후들은 이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신고다녀야 강대한 제후들은 투항을 인정하였다.
신발은 인류문화의 발전시기에 따라 그 모양새가 각이하게 변하기도 했다. 중세유럽을 휩쓴 고지크건축형식은 각양각색의 뾰족탑들과 교회당들을
낳았는데 이것으로 하여 앞끝이 뾰족한 신발이 급속히 류행되였다. 신발의 앞코가 긴가 짧은가에 따라 사람들의 귀천이 구분되였다. 일반백성들은 앞코가 15cm까지 허용되였는데 도시의 서민층은 30cm, 귀족들은 60cm 지어는
류성신발공장은 바로 이 문명과 발전을 위한 힘겹고도 보람찬 돌격전에 들어선것이였다.
퇴근시간이 지났지만 한경철은 그냥 공장구내를 서성거렸다.
김윤화지배인이 고무바닥운동화생산공정을 수지운동신생산공정으로 바꾸자고 호소한 때로부터 여러날이 흘렀다. 공장은 열띤 흥분을 안고 뒤설레이고있었다. 단 두명이 마주서기만 해도 사람들은 온통 그 이야기뿐이였다. 공장에는 새로운 낱말처럼 《지배인의 손전화번호는 191…이라네.》라는 말이 떠돌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낮에도 밤에도 지배인을 찾아간다고 했다.
이즈음 한경철의 생각은 몹시도 복잡했다. 그는 불시에 공장에 온 목적과 의의를 잃어버렸던것이였다. 어떻게 하나 증부가마를 개조하여 학위론문을 완성하고 편지를 보낸 처녀도 기어이 찾고싶었던 그였다. 공장에 와서 보니 편지를 보낸 처녀가 이 공장에 있다는 확신이 더더욱 굳어졌다. 편지의 주인공은 공장의 증부가마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있었고 방도도 분명 공장의 증부가마실태에 기초하여 제기한것이였다. 그럴수록 처녀가 고마와 그 처녀를 기어이 찾고싶어졌다. 그래서 이모저모로 왼심을 썼다. 그것때문에 본의아닌 실수를 하기도 했다.
어느날 공무동력과에 들어갔다가 설계원처녀가 설계를 하는것을 보고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여겨보았다. 처녀의 설계솜씨나 글씨가 어딘가 편지의것과 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경철은 긴장되여 즘자리면서 처녀에게 이것저것 말을 시켜보았다. 처녀는 눈이 동그래지고 얼굴이 빨개진채 대답을 안하고 서있었다.
한경철은 의아하면서도 부끄러운 심정으로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그것이 처녀에게 색다른 느낌을 준것같았다. 그 처녀를 책임지고 일하는 설비부원 최현민이 그를 찾아왔다. 다소 재미있다는듯한 얼굴을 하고 한경철의 나이며 대학생활이며를 묻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봐, 경철동무, 아무 미끼나 톡톡 건드려보는 물고기는 인차 낚시에 걸리는 법이라는 말이 있지? 처녀를 대상하려면 먼저 처녀에 대하여 잘 알아야지. 그렇지 않다간 괜히 망신해! 동무가 오늘 말을 건 그 처년 이제 얼마 안있으면 약혼식을 할 처녀야. 그 처녀가 동무에게 이걸 꼭 말해달라고 해서 내가 왔어.》
한경철은 삽시에 얼굴이 빨개졌다.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숨이 다 가쁜것같았다. 그는 끙끙 말을 갑자르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도망치듯 최현민의 앞을 물러나고 말았었다. 최현민의 웃음소리가 등뒤에서 울려왔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함부로 처녀들에게 말을 시켜볼수도 없었다. 하지만 처녀를 찾는것을 포기하고싶지 않았다. 그런데 김윤화지배인은 이제와서 그 모든것을 아무런 의의도 없는 불필요하고도 무의미한것으로 만들어 버리고만것이였다.
한경철은 학위론문에 대한 미련보다도 공장의 어디선가 자기를 지켜보고있을 처녀앞에 무맥하고도 구슬픈 존재로 비쳐지는것이 참을수 없이 부끄러웠고 괴로왔다. 한경철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정말 우리 공장의 힘으로 그걸 해낼수 있을가요?》
어머니는 말없이 앉아있었다.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게 다 내가 제구실을 못한탓이다. 어떻게 하든 생고무를 원만히 대야겠는데… 경철아, 며칠후에 내가 국경도시로 떠나니 지배인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라.》
한경철은 어머니의 그 말이 김윤화지배인의 결심에 대한 어머니의 불안이고 거부감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도 공장자체의 힘으로 수지운동신생산공정을 완성한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의 얼굴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경철아, 넌 지금 그 공장 로동자라는걸 명심해라. 상급의 결심과 지시를 존중해버릇해야 한다. 지배인이 바라는대로 너도 고무바닥운동화를 수지운동신으로 바꾸기 위한 방도를 생각해내서 제출해야 한다. 꼭 그래야 한다. 알겠니?》
《알겠어요, 어머니!》
한경철은 공장의 수지운동신생산공정의 완성이 아직은 래일의 일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김윤화지배인을 도와 수지운동신설비보장의 방도를 찾으면서 자기의 학위론문도 계속 완성하리라 결심했다. 래일의 꿀 한사발을 위해서 오늘의 엿 한가락을 외면할수는 없는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현장에서 밤을 패우며 수지운동신을 연구하고 설비들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하여 고무바닥운동화설비들을 개조하여 수지운동신설비들로 쓸수 있다는 결론을 찾아냈다. 특히 흐름선문제가 그랬다.
고무바닥운동화나 수지운동신이나 다같이 콘베아식흐름선을 쓴다. 그러나 수지운동신흐름선은 고무바닥운동화흐름선과는 달리 신발의 기술적지표를 맞추기 위한 여러 구간의 건조구간과 온도를 0°C 아래로 떨구는 급랭구간 그리고 그 모든것을 자동조종하는 종합조종반과 신발을 완성하는 앞골기와 사방압착기 같은 현대적설비들이 붙어있는것이였다. 흐름선이 얼마나 길고 기술적으로 완비되였는가에 따라 수지운동신의 질문제가 결정된다. 흐름선은 수지운동신생산의 선결조건이면서도 막대한 자금이 드는 설비였다.
바로 이 흐름선을 고무바닥운동화흐름선을 개조하여 리용하자는 생각을 한경철은 해낸것이였다. 하지만 자기가 생각해낸 방도가 자기에게도 그리 미덥지 않은 한경철이였다. 그래서 매양 즘자리면서도 지배인을 찾아가지 못하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