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제 2 장

2

(1)

 

이해의 봄은 류달랐다. 엄혹한 정세가 하늘과 땅, 바다를 얼구는듯하더니 미제의 전쟁책동에 단호히 대처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진문헌과 함께 《미국은 벌써 패배하였다.》는 보도계의 열파가 온 행성을 화끈 달구었다. 아직도 겨울의 언저리를 어정거리는듯하던 봄의 표정이 불현듯 기꺼워졌다. 따스한 해빛이 련일 쏟아져내렸다. 하지만 눈덩이우상과도 같은 미국의 단말마적으르렁거림인양 늦추위가 달려들었다. 꽃샘을 하는 사나운 바람이 모든것을 다시 얼구는듯하고 먼산의 정수리에는 늙은이의 수염발같은 허연 성에발이 불리웠다. 김윤화는 새로 심어놓은 어린 나무들이 죽을가봐 몹시도 근심이 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한낮의 대기는 명주고름처럼 산뜻하고 가벼워졌으며 물기를 머금은 자연의 모든것은 련인의 손맛처럼 부드러워졌다.

오늘 공장에는 리혜성이 찾아왔다. 리혜성. 27년전 그날 고쳐진 사기인형을 들고 인민군대도 죽을수 있는가고 울던 그 꼬맹이이다. 그는 한윤걸이 목숨을 바치며 지켜준 그 시절의 꿈대로 축구선수가 되였다. 그는 국가종합팀에 망라된 명수급의 선수였다. 그는 지금도 김윤화를 이모라고 불렀다.

《이모, 신발을 좀 사려고 왔어요.》

《신발?!》

《예. 이번에 우리 선수단이 여기 현지훈련장에 와서 훈련을 해요.》

공장에서 얼마간 떨어진 주변구역의 산속에는 체육선수들을 위한 현지훈련장이 있다. 대체로 육체훈련을 할 때에 리용하는 훈련장이다.

리혜성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수지운동신들을 훈련용신발로 사가지고갔다. 그런데 이틀후 혜성이가 구역병원에 입원했다는 련락이 왔다.

김윤화는 놀라서 병원으로 갔다. 리혜성은 한쪽다리에 두툼하게 붕대를 감은채 침대에 앉아있었다. 김윤화는 선뜩한감을 느끼며 침대머리에 주저앉아 그의 다리를 어루쓸어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니? 축구선수에게 날개와 같은 다리가 왜 이렇게 됐어?》

리혜성은 말을 못하고 즘자리다가 마지막에는 허거프게 웃으며 말했다.

《이모네 공장 신발때문에 이렇게 됐지 뭐예요!》

《뭐?!》

리혜성이 가져간 류성신발공장 수지운동신들은 인차 축구선수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육체훈련을 하느라고 이른아침 아직 눈이 남아있는 높은 산지로 달리기를 할 때면 신발들이 불시에 꽛꽛해지면서 위태롭게 미끄러졌던것이였다. 그래도 이모의 공장에서 가져온 신발인지라 리혜성은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그냥 신었다. 하지만 이른 아침 제일 앞장에서 산을 달려내려오던 리혜성은 그만 미끄러지면서 나딩굴어 다리를 상했다. 훈련감독은 류성신발공장 수지운동신들을 절대로 신지 말것을 지시했다.

김윤화는 달아오른 얼굴을 숙였다. 공정과 시간을 단축할 생각으로 염화비닐탄성체에서 보통염화비닐로 후퇴해갔던 문제가 이런 일을 빚어냈다는것을 깨달았다. 다시금 어제날의 소품종다량화로 돌아간 공장의 현실이 두렵게 깨달아졌다. 리혜성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모, 이모가 지배인으로 있는 공장의 신발이 왜 그런 수준밖에 못되나요?》

김윤화는 대답을 하지 못한채 앉아있었다. 이윽고 고개를 숙인채 조용히 말했다.

《혜성아, 미안하다! 날 욕해다오!》

김윤화와 리혜성은 오래도록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날 저녁이였다. 류성신발공장회관에는 공장의 모든 종업원들이 다 모였다. 주석단 책상에 앉은 김윤화는 자기가 직접 선수단숙소에 가서 가져온 신발마대를 올려놓았다.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우리 공장의 이 신발때문에 국가종합팀의 축구선수가 다리를 상했습니다. 축구선수들은 이 신발들을 마대에 넣어 복도구석에 처박아두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회관은 숨소리 하나없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그 신발들에 눈을 빼앗긴채 굳어져버렸다. 한없는 아픔에 떨리는듯한 김윤화의 목소리가 회관의 끝까지 똑똑하게 울려갔다.

《세계의 하늘가에 공화국기를 휘날려야 할 체육선수들과 감독들이 이 신발을 보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겠나요? 자기것에 대한 긍지를 안겨주지 못하는 우리가 과연 그들에게 경기장마다에서 공화국기발을 휘날려달라고 부탁할 자격이 있을가요?》

회관안이 어찌나 고요해졌는지 가빠진듯한 김윤화의 숨소리마저 똑똑히 들렸다. 김윤화는 조용해진 회관안을 둘러보다가 제화직장장 조인섭을 불렀다.

《제화직장장동지!》

조인섭이 고개를 숙이고 꾸물거리며 무겁게 일어섰다.

《직장장동지, 여기 올라와서 며칠전에 나에게 신랑신부의 신발을 잘 만들어달라면서 했던 이야기를 다시한번 들려주세요.》

조인섭은 난처해서 지배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김윤화는 부탁하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조인섭은 면구하고 딱한듯 사람들을 둘러보며 어흠어흠 헛기침을 했다. 김윤화가 다시한번 고개를 끄덕이며 연탁을 가리켜보여서야 천천히 무대로 올라왔다. 연탁에 서서 다시한번 헛기침을 하더니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밝은 얼굴을 지으려고 무등 애쓰며 입을 열었다.

《동무들, 하나 좀 물어봅시다. 동무들 보기에는 우리 나라에서 양복지와 첫날옷감을 제일 잘 만드는 공장이 어디인것같습니까?》

사람들은 놀라고 아연해져서 조인섭을 바라보았다. 조인섭은 면구한듯 사람들을 둘러보며 웃었다.

《다른게아니고 이제 며칠 있으면 우리 막내아들녀석이 장가를 갑니다.》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놀란듯도 하고 즐거워진듯도 하며 탓하는듯도 한 여러가지 색갈의 술렁거림이였다. 그러나 조인섭은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하자 오히려 침착성과 활기를 되찾은듯했다. 그는 손세를 써가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은 군사복무를 거 뭐랄가… 특수에서 했지요. 그래서 그 녀석이 장가를 가게 되자 우리 로친이 이왕이면 결혼식도 특수로 해주자고 했지요. 결혼식에 쓰이는 모든걸 절대로 수입산물건들은 말구 우리 나라에서 생산하는 최고급으로 차려주자 이겁니다. 그런데 그걸 아들녀석이구 며느리감이구 사둔집이구 모두 좋다구 환성을 올리는겁니다. 차, 이래놓으니 이거 야단이 아닙니까? 첫날옷감으로부터 시작해서 속내의, 지어는 큰상에 놓는 과일과 술에 이르기까지 모두 국내에서 생산되는 최고급으로 장만해야 한다 이겁니다.》

사람들은 떠들썩 설레이고 웅성거렸다.

《결혼식이라는게 뭘 그렇게 쓰이는 물건들이 많구 그걸 최상급으로 만드는 공장들을 다 안다는게 얼마나 힘든건지 난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그저 맞다드는 사람마다 물어보지요. 양복지랑 첫날옷감을 제일 잘 만드는 공장이 어딘가?》

사람들이 어느덧 그의 말에 끌려들기 시작했다.

《양복지야 김정숙평양방직공장이 제일 잘 만들지 않나요?》

《함흥모방직공장이 양복지에서야 국내 최고지요.》

《첫날옷감이야 녕변에서 제일 잘 만들지요 뭐. 노래에도 있지 않나요, 녕변의 비단처녀라구.》

조인섭은 흐뭇해진 얼굴빛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또 물었다.

《그럼 큰상에 놓을 술은 어디것이 최상급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람들의 목소리가 떠들썩하게 울렸다.

《강계 인풍술.》

《백두산들쭉술.》

《대평술.》

《거 술이야 덕천술이 유명하지.》

《아, 평양소주가 나라에 이름이 난 명주인데 더 물어보나마나지.》

《과일은 대동강과수종합농장에서 생산하는게 제일 좋아요.》

《두말하면 숨차지. 누가 그걸 몰라?》

조인섭은 떠들썩한 목소리들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또 물었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