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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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잇, 번거로운 잡념을 다 없애고 배우는데나 열중하자.

하지만 이렇게 밤을 패우며 배우자니 못견디게 졸리고 속이 달아오른다. 내가 이렇게 힘들진대 배워주노라고 밤을 새는 한경철은 오죽하겠는가? 그는 간식조차도 준비하지 못한 자기가 민망해났다. 철민은 자리를 차고일어섰다.

《에잇, 가서 합숙김치라도 퍼와야지!》

그는 자고있는 호실의 동무를 흔들어 깨웠다. 한경철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 새벽에 식모어머니를 깨운단 말이야?》

《깨우긴요. 그냥 퍼오고 말지요 뭐, 말하는건 아침에 말하구.》

《그러면 안돼!》

한경철은 얼굴을 찌프리며 잘라 말했다. 그러나 강철민은 싱긋 웃었다.

《그저 가만히 있다가 김치맛을 보기나 하라요. 우리 공장합숙에 김치박사가 있단 말이예요.》

철민은 자고있는 합숙청년을 두들겨깨워가지고 바께쯔를 들고나갔다. 그런데 김치움에서 김치 한바께쯔를 퍼들고 나오다가 맞바로 합숙식모녀인에게 들키고말았다. 한눈은 밝고 한눈은 어둡다는 그 《김치박사》녀인은 대뜸 강철민을 알아보았다.

《아니, 너 철민이로구나! 네가 합숙 김치도적질을 해?》

《아니 원, 도적질이라니요? 장모님, 무슨 말씀을!》

하도 급한김에 강철민은 얼토당토않게 주어섬겼다. 그 녀인에게 딸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말에 녀인의 얼굴에는 웃음이 흘러갔다.

《잘은 섬긴다. 누가 네 장모냐?》

《아, 사위가 고와서 매끼 찰떡만 쳐준다는 찰떡장모는 못돼두 김치 한바께쯔 거저 주는 김치장모야 못되겠어요? 난 그저 김치 잘 담그는 집에 사위로 들고싶더라.》

자꾸만 해넣은 이발에 혀를 가져다대는 속에서도 말이 슬슬 흘러나왔다.

《원, 능청스럽구 수다스럽구! 하지만 넌 우리 딸하구는 아무래두 짝이 기울어. 어제두 피복공장에서 일을 잘해서 옷을 타왔더라. 아이구, 그 옷을 입구 나온다는걸.》

정말 녀인은 자기 침실안으로 들어갔다 나올 차비인듯 돌아서기까지 했다. 강철민은 다급해서 손을 내저었다.

《밝은 담에 보자요, 밝은 담에! 지금은 공부하다가 속이 보이라처럼 달아서 김치물이라도 끼얹지 않으면 터지겠어요. 아이구! 이러다간 병나구말겠어요. 어머니, 미안해요! 고마워요!》

제잡담 꾸벅 인사를 하고 김치바께쯔를 들고 달아나고말았다. 그런데 1층에 있는 호실문앞에 이르니 문이 안으로 잠가져있었다. 의아해서 밀고 당기고 했으나 아무 기척이 없었다. 은밀하게 찾았다.

그래도 반응이 없다. 좀더 크게 두드리고 찾고 했다. 새벽단잠에 든 고요한 합숙인지라 맘놓고 크게 찾을수도 없었다. 그래도 문은 열릴념을 안했다. 강철민은 무슨 사달이 생겼다는것을 알았다. 아까 말을 하지 않고 김치를 가져온다는 소리에 얼굴색이 좋지 않던 한경철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한경철이 자기를 혼내우려고 문을 걸어버린것이였다. 강철민은 당황해졌다.

《아, 이거 왜 이래요? 말루 하자요, 말루! 아니, 아니, 들어가서 말하자요, 들어가서. 예?!》

그래도 방안에서는 죽어버린듯 기척이 없다.

《정 이러겠어요? 에잇! 아예 문을 뜯구 들어가겠어요.》

그는 문을 덜컥덜컥 소리나게 밀었다. 하지만 김치도적질이나 해온 주제에 온 합숙이 떠나가게 문을 뜯고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그는 다시금 빌붙기 시작했다.

《야, 이거 제발 이러지 말라요! 내가 잘못했어요! 아니, 날 샐 때까지 이러고있으라요? 빨리 열라요.》

그래도 안에서는 응답이 없다. 바로 그때 합숙복도 저쪽 끝에 누군가가 불쑥 나타났다. 그쪽을 바라보던 철민은 아예 숨을 흑 들이그으며 굳어지고말았다. 지배인이 나타난것이다. 합숙을 돌아보며 천천히 다가온다. 옆에 서있던 청년이 두눈이 이마에 올라가 붙는것같더니 찍소리도 없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뺑소니를 쳐버렸다. 김치바께쯔를 안은 강철민은 어쩔바를 모르고 한자리를 뱅뱅 돌았다.

요즈음 공장에는 전국경공업대회에 갔다온 지배인이 좀 이상해졌다는 소문이 돌고있었다. 웬일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공장의 곳곳을 자꾸만 돌아본다는것이였다. 밤이고 낮이고 돌아본다고 했다. 공장사람들은 지배인이 사람들을 깜짝 놀래울 어떤 일을 구상하고있는것이라고 제나름으로 짐작하며 은연중 긴장해서 지배인을 지켜보고있었다.

사실 지배인이 내밀던 다품종화생산은 이즈음에 와서 그 한계가 모호해졌다. 종전의 한두개 품종으로부터 서너개 품종으로 늘어나기는 했으나 한달에 열개이상의 품종을 하던데 비해서는 다품종화라고 하기 어려운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버린것이였다. 그 공장을 지배인은 말없이 자꾸만 돌아보는것이였다. 바로 그 연장인지 이 새벽에도 합숙을 돌아보고있는것이다.

지배인은 이상하고도 두려운 기운을 풍기며 점점 다가왔다. 강철민은 급해맞아 울음소리같은 소리를 냈다.

《제발, 제발! 저기 지배인이… 내 다신 지배인을 아니, 아니, 김치를… 아이구!》

더 말할새도 없이 급해맞아 철민은 김치바께쯔를 안고 옆에 있는 세면장으로 뛰여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바닥에 떨구어놓은 비누가 발에 밟혔다. 어쩔새 없이 그는 김치바께쯔를 안고 공중걸이로 나가넘어졌다.

《아이쿠!-》

김치바께쯔가 고요한 합숙을 들었다놓는듯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딩굴었다. 순식간에 온 합숙이 통채로 깨여 일어나는듯했다.

《한경철이, 어디 두구보자! -》

강철민은 넘어진채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마지막부르짖음은 례의 그 이발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퍽 우습고도 맥빠지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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