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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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자식들은 부모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내다보게 되는 법이다. 부모의 기쁨과 긍지, 애정과 희망 그리고 실패와 곡절로 비쳐지고 열려지는 그 창문은 자식들이 내다보는 온 세계인것이다. 하지만 철이 들어갈수록 그 창문은 점점 크게 혹은 작게 느껴지기 시작하며 눈부시게 밝거나 반대로 컴컴하게 흐려진 창문으로도 인식되여오기 시작하는것이다. 사실 자식들은 이때부터 자기의 독자적인 창문을 가지게 되는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저물녘 송옥림은 재봉직장 창가에 그린듯이 서서 이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어제오늘사이에 느끼게 된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불미스러운 감정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한것인지 모른다.

사실 가정의 화목과 정서에 좋은 계기가 될것이라고 생각했던 국제부녀절은 뜻밖에도 집안의 썰렁한 분위기를 새롭게 느끼는 즐겁지 못한 계기가 되고말았다. 그러한 놀랍고도 불안스러운 인식은 국제부녀절 전날 저녁으로부터 시작되였다.

아버지가 품들여 마련한 기념품들을 받아든 어머니의 얼굴은 밝았고 저녁식사도 대체로는 밝은 기분에 끝났다. 그런데 아버지가 꺼내든 뜻밖의 제기가 집안에 이상스러운 기운을 몰아왔다.

《옥림아, 래일 아침밥 하는걸 좀 도와주겠니?》

옥림은 놀라고 얼떠름해졌다. 아버지는 밥을 할줄 모른다. 쌀을 일줄 모르고 불조절을 할줄 모르는것이다. 아버지가 밥을 한다는것은 타버린 냄새가 나는것은 그런대로 참을수 있다고 해도 돌멩이가 씹히는것은 도무지 참아낼수가 없는 그런 밥을 먹는다는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남자들이 밥을 하는것이 축하의 정서처럼 되여있는 국제부녀절에조차 아버지는 밥을 하지 못했다. 늦도록 잠을 자군 했고 대신 옥림이가 밥을 하군 했다. 그런데 의외에도 아버지가 이해의 국제부녀절에는 밥을 하겠다고 나서는것이였다.

옥림은 놀랍고 의아해졌고 어머니도 새삼스러운듯 아버지의 얼굴을 여겨보았다. 아버지는 면구한듯 웃으며 말했다.

《지배인이 래일은 공장의 부직간부들중에 남자들은 무조건 밥을 해야 한다구 하더구나.》

옥림은 소리내여 웃었지만 어머니의 얼굴에는 쓸쓸하고도 야릇한 빛이 흘러갔다. 아버지가 《쌀을 일어놓는것만 오늘 저녁에 해주렴. 그러면 내가 래일 아침에 밥을 해보겠다.》라고 했을 때 어머니는 다소 랭랭한 목소리로 《됐어요! 그런 밥이 뭘 맛이 있겠어요? 본래대로 하자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와 어머니사이에 불현듯 무겁고도 거북한 침묵이 흘렀다. 서로의 가슴을 흥뜨게 할만한 희열도 애정도 방도도 없는 덤덤한 분위기가 집안을 흘러갔다.

옥림은 깜짝 놀란 심정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간 다음에도 옥림은 놀랍고도 당황해지는 심정으로 우두커니 전실에 서있었다.

확실히 아버지가 지배인이 되지 못한 다음부터 어머니의 태도는 이상해졌다. 아버지가 힘이 없어 지배인이 되지 못했다고 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오는것같았다.

어머니는 분명 잘못 생각하고있고 잘못 처신하고있다. 아버지가 래일 밥을 하겠다고 하는것은 분명 지배인임명문제로 하여 어머니한테 느끼는 미안함과 모멸감을 가시려는 나름의 성의일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것을 랭혹하게 거절해버린것이다.

태여나서 처음 느껴보는 어머니에 대한 실망때문에 옥림은 우울해졌고 불안해졌다. 저도 모르게 창문가로 다가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은 크고작은 별들로 빛나고있었다. 멀리서 비치는 새 전지같이 밝은 별들도 있고 방전이 다된 전지처럼 빛이 시진해가는 별들도 있다. 하지만 밤하늘이 저렇듯 아름답고 다양한것은 모든 별들이 크든 작든, 밝든 어둡든 자기의 모습과 위치를 잃지 않고있기때문일것이다. 눈에 겨우 보이는 희미한 《6등성》으로부터 밝은빛의 《1등성》에 이르기까지 밤하늘의 별들은 스스럼없이 자기의 섭리에 충실하고있는것이다. 하지만 인간생활에는 능력이나 평가에는 관계없이 덮어놓고 《1등성》이 되고싶어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는것이다. 바로 그것때문에 인간생활에는 때로 아름답지 못한 일들도 생겨나군 하는것이다.

옥림은 가슴속에 몰려드는 불안과 위구를 이겨내려고 모지름썼다. 이제 래일 아침이면 아버지가 정말로 밥을 할것이며 바로 그런 계기를 통해 어머니의 실망과 불만도 차차 가셔질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서는데 문득 원탁우에 올려놓은 강철민의 종이곽이 눈에 띄웠다.

어머니에게 드릴 기념품을 사다가 그 지함이 눈에 띄우자 아버지는 그게 뭐냐고 물었었다. 옥림은 소리내여 웃으며 강철민이 보낸 지함이라고 했다.

《보나마나 래일 국제부녀절과 관련해서 무엇을 보냈을거예요. 뭐 국제부녀절이 어머니들만이 아니라 어머니가 될수 있는 처녀들도 우대받고 존경받는 날이라고 했다나요.》

아버지도 소리내여 웃었다. 그러다가 옥림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여겨보았다.

《그러니까 너 강철민이와 련애를 하는구나.》

옥림은 사레가 들릴만큼 웃었다. 이런것도 련애라고 할수 있을가? 아버지도 함께 웃다가 말했다.

《그래, 련애는 실컷 해라. 그러나 결혼은 강철민이와 같은 남자와 해선 안된다. 알겠니?》

옥림은 어리둥절해져 웃음을 거두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련애와 결혼을 서로 다른 의미로 보는 아버지의 그 말이 의아했고 리해되지 않았다. 그 시선앞에 아버지는 웃어보였다.

《이제 나이를 먹으면 너도 알게 될거다. 다시말하지만 어떤 남자와 련애를 해도 난 상관 안하겠지만 결혼만은 꼭 아버지가 택해주는 남자로 하거라.》

《어마나?! 아버지의 그 리론은 틀렸어요!》

《됐다. 어서 어머니의 기념품이나 사자.》

아버지의 그 말을 상기시켜주어서인지 강철민의 종이곽이 추근추근하고도 끈적끈적한 느낌으로 안겨오는것만 같았다.

이런것을 받는것도 련애일가? 련애와 결혼을 다른것으로 취급하는 아버지의 그 리론을 어떻게 리해해야 할가?

점점 복잡해지고 싱숭생숭해지는 생각을 물리치듯 처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어. 이제야 생활의 제1장 제1절을 읽는 나로서는 아무것도 알수가 없어. 하지만 분명한것은 이제 시간이 흘러가면 모든것이 다 잘될거라는거야. 래일 아침 아버지는 밥을 할것이고 나는 저 지함을 강철민이 무엇인지를 먼저 토설할 때까지 열어보지 않을거야.

다음날 옥림은 어뜩새벽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방에 귀를 기울이며 긴장해있었다. 아버지가 밥을 하러 나올것이며 자기를 찾을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창문이 푸름푸름해지도록 아버지는 일어나지 않았고 자기를 찾지 않았다. 옥림은 다급하고 불안해나 자리에서 일어나 살금살금 아버지, 어머니 방에 가서 귀를 기울여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방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당황해지고 난처해진 옥림은 자기가 부엌에 들어서서 밥을 하기 시작했다. 온통 뭐가뭔지 갈피를 잡을수 없게 혼탁이 되여버린듯한 느낌이였다.

오늘 아침에 밥을 하겠다고 한 아버지의 말은 진심이 아니였을가? 아니면 너무도 피곤하여 그만 일어나지 못한것일가?

옥림은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침시간에 여느때와 다를바없는 얼굴로 앉아있는 아버지를 보니 애초에 밥을 할 생각이 없었다는 생각이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거기다가 강철민의 지함을 보니 련애는 실컷 해도 결혼만은 하지 말라고 하던 그 말이 이상스럽고도 불안스러운 기운을 흘리며 다시금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그 리론대로 한다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합도 사랑이 아닌 어떤 다른것에 의한 결합이란 말인가?

옥림은 아버지에게도 어떤 모순점이 있는듯한 느낌을 받아안았다.

그런 혼탁이 되여버린 감정때문인지 뜯어보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던 강철민의 지함을 뜯어보게 되였다.

지함에는 뜻밖에도 정성스럽게 만든 자그마한 고무꽃이 들어있었다.

공장처녀들은 수입해들어오는 생고무를 퍼그나 귀한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쓰다남은 자투리생고무들로 자그마하고 깜찍한 여러가지 장식품들을 만들어서 기대를 장식하거나 서로 주고받는것을 멋으로 여기기도 하는것이였다. 약재로 이긴 생고무는 손이 닿는대로 모양이 변한다. 그런데 데퉁스럽다고 할수 있는 강철민이 고무꽃을 보내온것이였다. 수닭이 알을 낳았다는것만큼이나 놀랍고 이채로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지함안에는 고무꽃과 함께 편지가 들어있었다.

《옥림, 내가 만든 이 꽃을 우리 어머니 대신 동무 어머니에게 드려줘.》

첫 순간 가슴이 찌르르해왔다. 몇해전 강철민의 어머니는 병으로 사망하였던것이다. 건들거리고 우쭐거리기나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강철민에게 이렇게 다감하고 섬세한 구석이 있다는것이 놀라왔다. 하지만 그 꽃을 여겨보고있느라니 점점 불안해지는 심정을 어쩔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이것을 분명 련애로 볼것이며 그 심상치 않고 불쾌해지는 리론을 또다시 꺼내들지 모른다. 그것으로 하여 어머니는 더더욱 아버지에 대해 못마땅해할지 모른다. 모순과 불신으로 가득찬듯 한집안의 화기롭지 못한 분위기를 생각하니 그 고무꽃이 전혀 격에 맞지 않는듯이 여겨졌다.

옥림은 들여다보던 고무꽃을 뜨겁기라도 한듯 얼른 지함안에 다시 넣고말았다. 오래동안 생각하다가 래일 이 꽃을 다시 돌려보내리라 결심했다. 그리하여 옥림은 강철민의 고무꽃을 공장으로 가지고왔고 이렇게 창가에 서서 돌려줄 방도를 생각하고있는것이였다. 아무래도 동창생처녀를 만나 돌려줄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왜서인지 불안해지고 울적해졌다.

흑시 내가 아버지, 어머니때문에 너무 신경이 날카로와져서 화해와 진정의 손길을 내밀고있는 강철민의 성의를 몰상식하게 뿌리쳐버리는것은 아닐가?

갈피를 잡을수 없게 혼탁되여버린 심정을 안고 어린 처녀는 종이곽을 손에 들고 그린듯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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