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 회)

제 7 장

우리는 젊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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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제 와서 설계를 의뢰하자는건가? 어째서 포기하자는건가 말이야!》

책상을 두드리는 태수의 두눈은 노기를 띠다못해 벌겋게 상혈돼있었으나 그를 마주 바라보는 진호의 표정은 사뭇 침착했다.

《포기라니? 누가 뭐 포기하자는건가?》

《설계를 집어던지는데도 포기가 아니야? 해야 할 일을 도중에서 그만두는데도 포기가 아닌가 말야!》

태수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기만 했다. 이때까지 하나의 기술안을 위해 일심동체가 되여 일해오기는 고사하고 도리여 원한을 품어온 두사람이 마침내 어떤 계기로 서로 열을 올리면서 상대를 몰아대는것같았다.

이들의 론쟁은 취입공정설계때문이였다. 그 설계를 맡고있는 태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들이 마지막까지 설계를 완성해야 한다는것이고 진호는 반대로 당장 설계실이나 연구소에 의뢰하자는것이였다. 두사람의 상반되는 견해에 비해 정아는 어느쪽에도 편승하지 않고 책상우에 펴놓은 태수의 미완성도면만 내려다보고있었다.

《문제는 새 연료를 하루라도 빨리 취입해야 한다는데 있는게 아니겠나. 만약 우리가 이 설계에 파묻혀있어보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텐가! 동무도 말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점들이 얼마나 많나!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게! 난 동무가 설계를 맡은것이 미타해서 하는 말이 아니네. 다만 다른데 의뢰하면 더 좋은 안이 제기될수도 있고 빨리 완성될수도 있기때문이네.》

《그렇다고 해서 다 익혀온 열매를 이제 와서 남에게 줘야겠나? 땀흘려 가꾼 열매를 이제 와서 남들이 따먹게 해야 하나 말일세. 난 그럴수 없네! 절대로 찬성할수 없단 말이네!》

태수가 내려치는 주먹에 책상우에 놓여있던 양철재털이가 빙글빙글 춤을 추며 돌아갔다.

《그래도 새 연료야 우리가 만들어놓지 않았나.》

《새 연료? 원, 이렇게도 답답하다구야. 그까짓게 뭐 큰건줄 아나? 문제는 그걸 만든데 있는것이 아니라 공정으로 도입하는데 있단 말일세. 기술안의 의의란 어디까지나 공업화에 있지 않나, 공업화에!》

태수는 옆에 있는 정아가 긍정해주기를 바라는 눈길로 바라보았으나 정아는 여전히 잠자코 앉아있기만 했다. 그는 아직도 진호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가늠이 가지 않는 모양이였다.

《설사 그렇다 해도 난 의뢰해야겠네.》

《나참! 보다보다 이런 바보는 처음이군! 이젠 아예 머리가 돌아버린게 아니야?》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선 태수는 더는 대상하지 않겠다는듯이 문쪽으로 걸어갔으나 이내 다시 돌아서는것이였다.

그의 험악한 기상을 지켜보던 정아는 얼른 책상우에 있는 재털이를 집어 원탁우에 옮겨놓았다. 이번 타격에는 틀림없이 그것이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낼것이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의자를 당겨놓으며 앉는 태수의 목소리는 의외에도 조용했다.

《어디 말해보게! 그래 동문 분하지도 않아? 억울하지도 않는가 말이야! 설계를 다른데 맡겨 이제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되는건 둘째로 치세. 그까짓건 뒤로 미루잔 말이야. 내가 참을수 없는건 이 기술안때문에 동무가 받은 수모야. 얼마나 억울한 의심과 조소를 받았나. 진심을 유린당했지, 처녀의 사랑을 잃었지, 거기다가 집단을 희롱한다는 소리까지 듣지 않았나 말야. 그래 이게 분하지도 않아? 억울하지도 않느냐 말이야! 그래도 언젠 뭐 량심을 증명해보이겠다구? 누구한테 진리가 있는가 하는걸 똑똑히 보여주겠노라구? 이제야말로 봐라 하고 소리치며 그 량심과 진리를 보여줄 때란 말일세. 그런데 이제 와선 뭐? 이거야 어디 속에 천불이 나서 제길!》

태수의 목소리는 분노와 안타까움에 떨고있었다.

《…》

잠자코 있던 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랬네, 사실 그게 내 심정이였고 결심이였지.》

그는 회오에 젖은 어조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건 사실이네. 어떻게 하든지 새 연료안을 완성하는것으로써 자기를 증명하려고 했고 또 나를 의심한 모든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하려고 했지. 그렇지만 이제 와선 그런 생각이 어쩐지 하찮은것이라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네.

물론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없진 않네. 그러나 그때마다 그런 옹졸한 생각을 이겨내야 한다고 맘먹군 하네. 이전에는 오직 자기라는 하나의 충동에 사로잡혀있었지만 지금에 와선 그렇게 생각한 자신이 가소롭고 혐오스럽단 말일세. 난 어떤 계기로 이것을 느끼게 됐는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 특히 동무나 정아동무의 덕분이라고 여기고있네. 뒤늦게나마 이걸 깨달은걸 난 다행으로 생각하네.》

《…》

정아도 그제야 고개를 들고 진호를 바라보았다.

사실 자기를 증명해보일수 있는 순간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진호였다. 바로 그 순간이 자기의 희망과 량심은 물론 여태까지 가슴속에 고여있던 온갖 설음과 원한을 보상하리라고 여겨오던 그였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이루어지게 된 이 마당에 와서는 애초의 결심이 흔들리는것이였고 나아가서는 그 결심자체에 의혹을 품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등산길에 오른 사람이 도중에 있는 정각에 이르면 다리를 뻗치고 푹 쉬리라 마음먹었다가 정작 거기에 다달으자 바로 눈앞에 쳐다보이는 산봉우리의 황홀한 경치에 매혹되여 쉬기는커녕 더 씩씩한 기분으로 치닫게 되는것과 같다고 할가. 아니, 그보다 산봉우리에 올라서서 일만정경을 굽어보게 된 사람이 방금 지나온 정각을 내려다보며 어쩌면 자기가 저렇게도 낮고 답답한데서 맥을 놓고 쉬려고 했던가를 허구프게 돌이켜보는 때와 같다고 해야 할것이다.

(내가 과연 그것을 위해 일해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의 포부와 열정이란 너무나도 보잘것 없는것이 아닌가! 여태까진 그런 맘으로 일해왔다 해도 이제부턴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해! 그런 자신을 초월해야 해. 그래야 보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인간으로 갱생할수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이 점점 그의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던것이다. 특히 신념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숭고한 목적을 위해 간직해야 하며 그것을 투쟁으로 고수해야 한다는 비서의 말은 온갖 유혹에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억센 암석처럼 가슴을 굳건히 해주었다. 그는 자기가 태수의 권고를 받아들인다면 거기에 아무리 자기를 만족시켜주는 달콤한것이 있다 해도 그것은 한갖 유치하고 저속하며 나아가서는 배은망덕한 일이라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뭐 어떤 푼수없는 도량을 시위한다고는 생각지 말게. 다만 이제라도 이전보다는 조금이나마 낫게 살아야겠다는 희망에서일따름이네. 자기자신이 아니라 생활을 위해, 고상한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희망 말일세.》

《그래도 우린 누구나 자기가 일한것만큼 평가를 받을 권리가 있는게 아니겠어요.》

침묵을 지키고있던 정아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남의 성과를 자기의것으로 해서도 안되지만 자기의 성과를 남의것으로 할 필요도 없지 않아요.》

진호가 바라는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어떤 고상한 감정에 휩싸인 정아였으나 그의 견해가 지나치게 자기희생적이라는데는 의견이 없지 않았다.

《물론 개인들끼리라면 그럴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지 않소. 생각해보오, 우리가 설계를 붙들고 씨름하는 사이 얼마나 많은 중유가 소비되겠소. 우리의 사소한 리익때문에 직장에서는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게 되겠는가 말이요. 중유는 둘째치고 우리가 바라는 그 영예의 대가로 지체되는것이 뭐요?》

《…》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신의 방에 다른 도표는 없어도 강철생산도표만은 있다고 하시였소. 그 도표를 바라보시며 나날이 부강해지는 조국을 그려보신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말이요. 난 요즘 그 도표를 바라보시며 이젠 우리의 연료로 쇠물을 끓이고있는것으로 하여 한시름 놓으실 수령님의 영상이 떠올라 견딜수 없소. 그 간절한 소망이 우리의 욕심으로 하여 한순간이라도 늦어진다면 우리야말로 어떻게 량심을 가진 인간이라고 할수 있겠소.》

《…》

그제야 정아는 고개를 숙이였다.

다시 태수에게로 시선을 옮긴 진호는 진정에 넘친 목소리로 말했다.

《태수, 난 요즘에야 사람의 량심이 어떤것인가 하는걸 안것같네. 오늘에야 비로소 어떤 경우에도 최대한 우리 수령님께서 의도하시는대로 사색할줄 알뿐 아니라 행동까지 할줄 아는 사람이 가장 참된 량심을 가진 인간이라는걸 깨달았단 말이네.》

《…》

어느덧 방안에는 숭엄한 침묵이 깃들었다.

 

이들이 취입공정에 대한 설계를 놓고 심각한 론쟁을 하고있을 때 저녁차로 출장지에서 돌아온 기철이도 자기 집에서 골똘한 생각에 잠겨있었다.

동생 인철이는 오늘도 어딜 돌아다니는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언제한번 제시간에 돌아온적이 없는 동생이였다.

담배를 피워물고 창가로 다가선 그는 캄캄한 어둠속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그사이 일에 몰린 피곤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방금 목욕을 한 사람과 같이 상기된 표정이였고 한가지 일에만 사색을 집중하고있는 흥분한 기색이였다.

실상 그도 지금 바로 진호네가 론의하고있는 그 취입안에 대해 생각하고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평양에서 명식이로부터 새 연료가 취입되고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충격을 금할수 없었다. 충격이라기보다 전률이였고 저절로 터져나오는 경탄이였으며 또 진호에 대한 새삼스런 놀라움이기도 했다. 그처럼 막연하다고 여겼던 새 연료안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의외의 일로나 불가사의한것으로 느껴지지 않고 도리여 《그 친구가 종내…》 하는 어떤 기대해온 일, 특히 그럴수밖에 없는 결과를 접했을 때와 같은 일종의 감탄까지 품게 되는데는 저로서도 이상한 일이였다.

사실 그는 언젠가부터 자기의 중유절약안과 진호의 새 연료안을 대비해보았고 대비해볼수록 진호가 자기보다 앞섰다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보통때 같으면 당장 그보다 더 훌륭한 안을 착상하기 위해 이발을 사려물고 달라붙을 그였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무리 자기가 힘을 들인다 해도 벌써 결승선을 가까이하고있는 진호를 따라잡을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럴수록 그런 처지에 떨어진 자신이 저주롭기만 했었다.

《놀라긴 이르네. 이 자료들을 보면 알겠지만 열량도 문제거니와 공정으로 도입하기는 불가능하거던. 공업화할수 없는 기술안, 그게 무슨 필요가 있겠나?》

명식은 취입시험에서 나타나고있는 부족점들, 즉 열의 파동이며 연도에 미치는 후과에 대해서 하나하나 지적해나갔으나 기철은 그의 말을 납득할수가 없었다. 명식의 말이라면 늘 철칙으로 받아들이던 그였지만 진호의 새 연료안에 대한 평가에는 의견을 달리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건 실장이 아직 진호를 잘 모르기때문이야.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모르는데 있지. 확실히 진호는 여느 사람들과 달라! 남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그런 점이 있거던, 그게 어떤건지는 알수 없지만. 바로 그것이 시험을 성공케 했고 앞으로도 기어이 완성케 할 비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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