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회)

제 7 장

우리는 젊은 세대

33

 

제철소에서 새 연료를 취입하고있다는 소식은 명식이에게 있어서 마치 마른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는것과 같이 놀랍고도 괴이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설마 하는 의혹도 가질 사이없이 수시로 올라오는 보고는 아직 한번도 자기의 판단을 의심해본적이 없을뿐 아니라 그 판단에 대한 확고한 신심으로 충만돼있는 그를 아연케 하지 않을수 없었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로 기철이를 찾았으나 그는 출장을 떠나고 없었다. 부기사장도 강습에 갔다는것이였다.

(아니, 절대로 그럴수 없어! 아무리 시험이라고 하지만 진호가, 그 진호가 어떻게 그런 성과를 이룩한단 말인가!)

워낙 만사에 대한 확고한 자신심으로 하여 자신에게 움직일수 없는 숭고한 의의를 부여하고있는 그는 자기의 판단과 견해에 부합되지 않는 이런 기적을 믿지도 않았거니와 믿을수도 없었다. 언제나 그는 자기 내부에서 이런 기적을 믿지 않는 힘과 능력을 발견해내는데 습관돼있었다. 만약 기적이 자기앞에 부정할수 없는 사실로 나타난다 해도 그는 그 사실을 허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믿지 않으려 했다. 가령 한걸음 양보해서 그 사실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다만 지금까지 자기 눈에 비친적이 없는 이상한 현상,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일따름이였다.

(그래! 틀림없어! 이건 분명 어떤 지나친 기대가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을 과장한게 틀림없어!)

사람들의 관심사에 있는 기술안일수록 왕왕 터무니없는 소문이 퍼진다는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있는 그는 제철소에서 올라오는 자료들을 다시 구체적으로 검토해보기 시작했다. 아니나다를가 그 과정에 그는 간과할수 없는 한가지 사실, 열의 불균형적파동 즉 새 연료의 취입량에 따르는 온도에 일관성이 없다는것을 발견했던것이다. 해당 온도 가까이에 이르는가 하면 어떤 땐 턱없이 열이 떨어져서 불합격강종을 내기도 했다. 말하자면 취입량에 따르는 온도의 일반적인 합법칙성이 무시돼있었다. 이것은 나타난 사실이 과학적인 담보가 없는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닐수 없었다.

더우기 새 연료 취입에서 가장 난문제의 하나인 연재가 로구조에 미치는 작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도 돼있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겠지! 틀림없이 이건 어떤 비정상적인 사태가 빚어낸 돌발적인 현상에 불과해!

흔히 진호와 같이 무모한 사람은 그런 우연에도 닿게 되는 법이니까. 우연! 우연이고말고! 아니, 발악적인 모험이 가져온 우연일수밖에 없지!)

그의 머리속에는 언젠가 과학계를 뒤흔들던 한가지 일이 떠올랐다. 그것은 한 평범한 농장원이 몇십년이 걸려도 해결하기 어려운 그런 다수확의 콩종자를 얻어낸것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그 종자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느 품종의 변화로 일어났는지를 모르는데 있었다. 무작정 이것저것들을 교잡해보는 과정에 우연히 얻어진것에 불과했던것이다. 결국 과학적인 담보가 결여된것으로 하여 그 종자는 한해, 그것도 몇포기로써 종말을 고하고말았었다.

명식은 진호의 새 연료안도 그것과 조금도 다를바 없다고 확신해마지 않았다.

사실 따져보면 그가 이렇게 인정하는데는 아니, 기어이 이렇게 인정하려는데는 맘 한구석으로나마 진호의 기술안이 혹시 성공이라도 하면 어쩔가 하는 두려움이 없지 않기때문이기도 했으나 그는 이 사실을 상상조차 할수 없는것으로 치부해버렸다.

일단 환자의 병이 암이라는것을 진단내렸던 의사는 환자의 상태에서 간혹 그 병과는 다른 점이 나타났다 해도 어떻게든 그 현상을 암으로부터 오는 일종의 후과로 보려고 애쓰듯이 그도 진호의 일시적인 성과를 결코 그대로 받아들일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난처한 일은 부의 일부 사람들은 물론 부장까지 새 연료안의 시험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그것이였다.

명식은 부장에게 진호에 대해서와 그가 진행한 시험자료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보이면서 말했다.

《보다싶이 이건 아직 아무런 과학적기초도 없다는걸 증명하고있습니다. 마치 자연식물이 돌연변이를 일으킨것과 같은 우연한 현상에 지나지 않지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일반화할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공업화할수 있겠나 말입니다.》

아무말없이 명식의 말만 듣고있던 부장은 한참만에야 고개를 들었다.

《물론 아직 결함들이 있는건 사실이요. 그러나 그렇게만 속단할순 없지 않겠소. 우선 가능한 방조를 다 해야겠소. 심사실에서도 그렇게 사업을 조직하시오.》

《?》

언제나 자기가 능력이 있을뿐 아니라 특히 대바르고 원칙이 있는 일군이라는것을 자연스럽게 여겨온 사람이 자기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 상대를 발견했을 때 그런것처럼 명식이도 부장의 처사가 못내 불만스러웠다.

(어째서 부장은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걸가? 내가 아직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모양이지? 하긴 그럴수밖에, 부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제 보여줄 기회가 있겠지.)

그러나 당장은 부장의 지시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아무리 불가능한것이라 해도 부장이 직접 지시하는 일이니까 외면할수는 없었다. 당분간 그는 실의 력량을 새 연료안에 집중할 계획을 세웠다. 취입실태자료를 놓고 기술협의회도 조직하고 거기에서 토론된대로 사업도 분담할 작정이였다.

하지만 자기들이 그 어떤 방조를 한다고 해도 새 연료안이 가당치 않다는것을, 그것은 마치 소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것만치 무리한 일이라는것을 그는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더 스스럼없이 새 연료안을 도와나서는것이였다.

그는 출장지에 있는 기철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가는 길에 자기한테 꼭 들릴것을 당부했다. 그러고나서도 취입만을 도울 여지가 없겠는가를 따져보던 그는 불현듯 현옥이에 대한 생각에 미쳤다. 언젠가 현옥의 책상우에 펼쳐져있는 축열실개조도안을 본적이 있었던것이다.

(현옥이한테도 권고해봐?)

특히 부장의 지시에 성실했다는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도면 몇장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날 저녁.

현옥이를 마주하는 순간에야, 고개를 돌리고앉아 《할말이 있으면 해요. 전 그저 듣기만 할테니까.》하고 무슨 말을 해도 진정으로 대해주지 않을듯한 현옥이의 랭담한 태도를 보는 순간에야 명식은 자기가 뭔가 모순된 생각을 하고있다는것을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진호를 타기해마지 않던 자기가 오늘은 부득불 그때와 다른 립장을 취하게 되였다는것이며 그것으로 하여 사물을 단순한 리치로만 따지는 현옥이가 혹시 자기를 어떤 리해관계로부터 무엇을 바란다고 여기지나 않을가 하는 우려였다.

《그래 요즘 어떻게 지내니?》

《…》

현옥이는 오빠가 자기 일에 별반 관심이 없다는것도, 따라서 지금 자기에게 그걸 물은것은 그저 잠자코 있기가 무엇해서 체면상 한마디 물어본데 불과하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오빠가 제철소에 다녀온 다음부터는 서로의 간격이 더욱 뚜렷해졌다는것을 현옥이도 절감했다. 이젠 오빠가 무슨 말을 해도 대꾸하기 싫었고 지어는 마주하기조차 싫었던것이다. 다만 가슴속에 고여있는 울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수 없는것으로 하여 더더욱 충만돼있는 울분을 어느때건 오빠한테만은 토해놓으리라는 그 하나의 충동밖에 없었다.

《축열실도안은 끝냈니?》

《…》

고개를 돌린 현옥은 의혹이 어린 눈길로 오빠를 쳐다보았다.

(축열실도안이라니? 내가 그걸 추진한다는걸 어떻게 알가?)

《너도 알겠지만 지금 제철소에서는 새 연료 취입시험을 하고있다. 그런데 자료들을 보면 도저히 일관한 테타를 잡을수가 없거던. 그래서…》

《그래서 뭐예요?》

현옥은 금시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그 기술안 전망이 어떻든 누구나 조직적의사에 따를 의무밖에 없지 않니. 지금 부에서도 관심을 돌리는데…》

《그래서 저더러 어떻게 하라는거예요?》

벌써 어떤 공포에 젖어있는 현옥이의 목소리였다.

지금 명식은 현옥이에 대한 자기의 태도가 얼마나 분별없는 일이며 그것이 동생에게 어떤 고통을 주고있는가 하는것은 전혀 깨닫지 못하였고 또 깨달을수도 없었다. 그저 자기의 태도가 현옥이로 하여금 진호에 대한 련민을 느끼게 했고 바로 그것이 노여움을 사게 한것이라고만 여길뿐이였다.

《난 부의 지시대로 얼마간 실의 력량을 거기에 동원할 생각이다. 어쨌든 집단의 방조란 문제를 가장 신속할뿐 아니라 또 가장 훌륭하게 해결해주니까. 그래서 난 너도 여기에 망라됐으면 하는거야.》

《?》

현옥은 질겁한 눈길로 오빠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길은 순식간에 혐오와 분노로 타번졌다.

《도와준다고요? 망라되라구요? 도대체 그런 말 하기가 부끄럽지도 않아요? 창피하지도 않느냐 말이예요.》

현옥이는 당장 울음이라도 터뜨릴것같았다.

《비렬해요, 너무도 비렬해요. 언제는 그의 진심을 짓밟으며 제 앞길을 막아서더니 오늘은 또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아― 어쩌면…》

쌓이고쌓였던 오빠에 대한 원한이 일시에 폭발하는것이였다.

《차라리 진호동물 그냥 미워한대도 낫겠어요. 그래도 제 마음이 이렇게 아프진 않을거예요. 그래 제가 아직도 오빠가 어떤 사람이라는걸 모르는줄 알아요? 아직도 청맹과닌줄 아는가 말이예요.》

《? …》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악에 차서 부르짖는 현옥을 명식은 아연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알아요, 이제 와서 오빠가 왜 그런 권고를 하는지 알고말고요. 진호동무의 기술안이 성공하게 될테니까 이젠 날 미끼로 해서 자기한테 쏟아지는 비난을 막아보자는거지요? 오빤 이미 새 연료가 안된다는것을 당에 보고한 사람이니까 그 후과를 이제라도 모면해보자는거지요? 우리의 사랑을 파탄시켜놓고 이제 와선 그 파편이라도 자기 목적에 리용하려는거지요? 그래 이게 아니예요?》

그의 두눈에는 여느때 곧잘 고이군 하던 눈물대신 퍼런 섬광이 번쩍거리고있었다.

《바보같은게!》

명식은 경멸에 찬 싸늘한 눈길로 현옥이를 노려보았다.

《그래 내가 이런 권고를 하는게 그 기술안에 대한 견해가 달라졌기때문인줄 아니? 내 체면이나 리해관계때문인줄 알아? 흠, 오해하지 말아라! 그건 절대로 도입될수 없어! 그런 모험으로 얻어진 성과는 기적이 아닐뿐 아니라 기적으로 될수도 없고 또 되여서도 안되는거야.》

명식이를 쏘아보는 현옥이의 표정은 표독스럽기보다 어떤 랭소가 어려있었다.

《혹시 여기가 강당이라면, 오빠의 말을 첨 듣는 사람이라면 속을수 있겠지요. 그러나 전 속지 않아요, 더는 속지 않아요. 오빠야말로 언제나 자기만이 정당하다는 사람이지요. 〈집단〉이니 〈의무〉니 하는 말로 자기의 약점을 교묘하게 감추고는 안전한 한계내에서만 활동하는 교활한 사람이지요. 그래 오빠같은 사람이 어떻게 진호동물 리해할수 있어요? 천만에요! 어림도 없어요. 오빤 뭔지 알아요? 기계예요, 기계! 그것도 정당한 사람을 파멸시키는 독살스런 기계.》

《뭐라구?》

명식은 자리를 차고 벌떡 일어났다. 여태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런 발작적인 분노가 솟구쳐오르는것이였다.

그는 자기를 마주보는 현옥이의 눈길에서 현옥이가 자기의 약점을, 이제까지 인정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절대 인정할수 없는 그런 약점을 발견하려고 한다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는데 이것이 더 부아를 돋구는것이였다.

그러나 현옥이는 여전히 집요한 눈길로 오빠를 쏘아보았다. 오빠의 기색은 당장 뺨이라도 칠 험악한 기세였으나 그는 이상하게도 마음의 안정을 느꼈다. 오빠의 란폭한 모습을 보면 볼수록 더 안정이 되는 그런 랭담하면서도 별난 안정이 스며드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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