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 회)

제 7 장

우리는 젊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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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온몸을 따뜻이 어루만져주는 훈향의 부드러운 촉감에 저절로 눈이 감겼다. 눈을 감긴 했으나 모든것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해빛에 반짝이는 강물이며 알뜰히 가꾸어진 나무들, 저쪽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주변을 핥는 물결의 철썩거림 그리고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이 모든것이 더없이 새삼스럽고 이상야릇했다. 하지만 이 모든것들이 오늘따라 어째선지 거대한 아름다움과 끝없는 행복을 의미하는것같았다. 희망으로 가득찬 그 행복의 노래는 물결소리와 함께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고있었다. 강변의 무성한 수풀들도 마음의 꿈을 대신하는듯 했고 멀리에서 파도에 흔들거리며 서로 부딪치는 뽀트들도 마음속에 떠도는 무수한 생각들을 나타내고있는것같았다.

《맴 맴―》

눈을 뜨고있을 때보다 한결 더 소란스레 들리는 매미의 울음소리였다.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날개에서 날가? 아무리 새겨들어도 그것이 날개를 비벼대는 소리가 아니라 더위에 바싹 갈린 목에서 터져나오는 울음같았다.

《호―》

그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였다.

언젠가부터 그는 자기 가슴에 우울한 빛이 서리는것을 그리고 마치 무엇에 질겁한 사람처럼 가끔 심장이 때없이 활랑거리는것을 느꼈던것이다. 어째선지 저로서도 알수 없었다.

(그도 오늘 여기 와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불시에 우울한 기색을 짓고있는 기철이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째서 그처럼 새것에 대한 열망이 남다른 그가 진호동무의 기술안만은 인정하지 못하는것일가? 진호동무에 대한 원한때문일가, 아니면 자기 기술안을 버린 나에 대한 원망때문일가? 자기의 과실을 인정할만한 용기가 부족해설가, 아니면 내심으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을따름일가? 어째서 출장을 떠날 때조차 한마디 말도 없이 가버렸을가?)

그의 처사가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쩐지 불안스럽기도 했다.

문득 대학때 일이 떠올랐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되살아나군 하는 추억이였다. 그날은 졸업반모두가 새로 짓게 되는 대학강당의 기초굴착작업에 동원되였는데 정아는 아침부터 기철이와 함께 목고를 멨었다.

《힘들지 않소?》

《일없습니다.》

그러나 기철은 매번 목고줄을 자기쪽으로 당겨놓았고 정아가 고집을 부리면 목고채를 정아쪽으로 내밀군 했다.

휴식시간에 오락회가 벌어졌는데 사회자가 대뜸 정아를 지목했다. 기철선생과 함께 2중창을 부르라는 요구였다.

《선생님이야 사정을 봐줘야잖아요.》

기철이를 편들어주는것으로써 정아는 자기도 난감한 처지에서 모면해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선생님도 오늘은 어쩔수 없습니다. 여긴 교실이 아니라 작업장이니까요. 글쎄 정아동무로서야 강의때마다 늘 각별한 사랑을 받으니까 사정을 봐줬으면 하겠지만 우린 교실에서 받은 박해를 여기서라도 봉창해야겠단 말입니다. 안그렇소, 동무들!》

《옳소.》

사소한 융화도 있을것같지 않았다.

기철이가 선선히 일어서는 바람에 정아도 따라일어설수밖에 없었다.

《〈폭풍이 앞을 막아도〉하는 노래 아오?》

《모릅니다.》

《〈공장대학생〉은?》

《그것도 잘 몰라요.》

《그럼 동무가 아는 노래가 뭐요?》

《〈오직 한마음〉밖에 없어요.》

《〈오직 한마음〉?》

《곡목 또한 멋있습니다. 둘이서 부를 노래는 〈오직 한마음〉.》

사회자의 소개가 끝나기 바쁘게 누군가 이렇게 시까슬러댔다.

《아니, 그건 흔히 결혼식때 부르는 노래가 안야.》

옆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였지만 분명 자기들이 들으라는 소리였다.

《혹시 미리 련습해두자는건지 알게 뭔가!》

정아는 대번에 모닥불을 뒤집어쓴것같았다. 그 노래를 택한 자신을 후회하며 기철이를 훔쳐보는데 그도 어지간히 당황해하는 기색이였다. 노래를 부르기는 했으나 정아는 정말 결혼식날 새색시처럼 한번도 얼굴을 들수가 없었던것이다.

《저걸 보게, 고개를 숙이고있는게 신통하다니까.》

여느땐 우습기도 하고 또 야릇한 즐거움에 휩싸이기도 하던 그 추억이 오늘따라 쓸쓸하게만 느껴지는것이였다.

(그가 돌아오면 이번엔 모든걸 털어놓을테야! 더는 참을수도 견딜수도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앉은 그는 수영복우에 웃옷을 걸쳤다.

그때 그는 자기쪽으로 다가오는 발자국소리를 들었다. 발자국소리가 가까와짐에 따라 왜서인지 긴장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왜 혼자 있소? 모두들 조수는 어데다 버리고 혼자만 먹어대느냐고 야단인데.》

상대가 누구라는것을 알자 불안이 배로 확대되였으나 그는 해빛에 눈이 부시기라도 한것처럼 손을 들어 이마를 가리웠다.

그는 요즘 어째선지 진호를 대하기가 두려웠다. 무엇때문인지 알수 없었지만 그를 마주하기만 하면 은연중 어떤 공포에 휩싸이게 되는것이였다. 그는 그것이 다른 사람들도 혹시 진희처럼 자기와 진호와의 관계를 곡해하면 어쩌나 하는 위구때문이라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오해받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그것이 더욱 그를 불안과 공포속에 몰아넣는것이였다.

《일광욕을 하느라구요.》

그러나 그는 곧 자기의 혀를 깨물지 않을수 없었다.

(그늘에 있으면서도 일광욕을 해? 바보같으니!)

옹색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얼른 생각나는대로 한마디 던졌다.

《이젠 일단락지은셈이지요? 시험에서 성공했으니 말이예요.》

《아니, 우리 일은 이제부터나 다름없소. 시험에서 성공했지만 도입하지 못하는것들이 얼마나 많소. 새 연료가 공정으로 취입될 때, 말하자면 공업화될 때래야 우리 일이 끝나는게 아니겠소. 취입장치란 어차피 전기요소가 많을것이 분명한데 그러고보면 이제부터야말로 동무가 더 수고해줘야…》

《수고라고요?》

정아는 곧 스스럼없는 태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무슨 수고를 한게 있다고요.》

《하긴 수고라는 말로는 부족하지. 뭐라고 할가, 사실 동문 생활이상의것을 나한테 주었으니까…》

《제발 그런 롱담은 그만두세요.》

어떻게든 그의 말을 롱으로 받아넘기려고 했으나 자기를 바라보는 진호의 진지한 눈빛이 그런 태도를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다잡았다. 그런 감정에 말려드는 자기를 용서할수 없었던것이다.

《전 결코 무슨 보답이 있기를 기대한건 아니예요. 그랬으면 애초부터 공감하지도 못했을거구요. 전 다만 동무의 기술안이 옳다는걸 깨달았을뿐이고 따라서 새것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무를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을뿐인걸요. 단지 그것뿐이예요.》

《물론 그렇다는건 나도 아오. 그렇지만 동무가 그처럼 단순하게 리해하는 그 진리를 어째서 다른 사람은 리해하지 못하는가 하는걸 난 요즘에야 깨닫게 됐단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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