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1 장

3

(2)

 

용서와 아량은 어떤 상처에도 잘 듣는 명약이지만 녀인들의 경우에는 자기의 깊은 상처에 놀라버려 약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것이다.

김윤화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였다. 나는 고철삼을 잊을수 없다고 해도 부지배인 송명식은 나와 고철삼의 관계를 잊어버릴수 없단 말인가?

문득 손전화기의 호출음이 울렸다. 기사장 김세천의 전화였다. 김윤화는 왜서인지 조마조마해오는 마음을 느끼며 전화를 받았다.

《기사장동지, 접니다.》

김세천은 무엇때문인지 인차 말을 하지 못했다. 싸늘한 불안이 가슴속으로 기여드는듯했다. 사업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정식 하려는것이 아닐가?

전화기에서 실무적이고 딱딱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지배인동무, 염화비닐탄성체문제를 어떻게 하잡니까?》

김윤화는 손전화기를 든채 당황해져버린 심정을 다잡느라고 애썼다.

우리 나라의 비날론공업과 화학공업의 활성으로 하여 국산화가 실현된 염화비닐은 내한성이 약한 결함을 가지고있다. 그래서 겨울이 되거나 온도가 낮은 곳에서는 탄성을 잃고 꽛꽛해지는것이였다. 그것으로하여 신발의 수명이 짧아지고 얼음판같은데서는 바닥이 미끄러지는 현상도 나타나는것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개발된것이 바로 염화비닐탄성체이다. 염화비닐탄성체는 온도가 낮은 곳에서도 수지운동신 바닥을 고무바닥처럼 유연하고 탄성이 있게 한다. 하지만 공정상 복잡하고 원가와 시간이 많이 들기때문에 겨울이 다 지나간것이나 다름없는 지금에는 그냥 보통염화비닐로 만들자는 의견이 제기되고있는것이였다. 소품종다량화생산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하는 의견처럼 그 의견도 시간과 공정을 단축하여 생산실적부터 내고보자는 모지름인것이다.

이 순간 김윤화는 김세천이 자기에게 다품종화생산을 그대로 밀고나가겠는가 아니면 이전으로 후퇴해가겠는가를 묻고있는것처럼 생각되였다. 림봉숙의 얼굴이 눈앞을 흘러갔다. 그가 하던 말도 귀전에 그냥 울려오는것 같았다. 오랜 망설임끝에 김윤화는 조용히 말했다.

《기사장동지, 이젠 겨울이 다 지나갔다고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기사장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이윽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무미건조해보이는 그 대답이 왜서인지 알지 못할 불안과 당황함을 안겨준다. 김윤화는 땀이 배여나온 이마를 느끼며 손전화기를 든채 오래도록 서있었다. 마치 산같은 짐을 지고선듯한 느낌이다.

아, 지배인사업이란 이렇게도 힘든것이란 말인가?

김윤화는 복잡한 생각에 잠겨 천천히 걸었다. 문득 등뒤에서 《지배인동지!》하고 소리쳐 찾는 목소리가 울려왔다. 돌아보니 공무직장 수리공인 강철민이 급하게 걸어오고있었다.

강철민은 색이 날고 군데군데 뼁끼가 묻은 낡은 잠바를 입고있었는데 역시 낡은 수지운동신을 뒤축을 밟아 신고 걸어오고있었다. 우정 꾸민듯한 거칠고 불안스러운 차림새였으나 웬일인지 그의 온몸에서는 알지 못할 싱싱함과 멋스러움이 풍겨왔다. 그는 다가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지배인동지!》

그의 새로 해넣은 앞이가 유표하게 반짝거린다. 김윤화는 소리없이 빙그레 웃었다. 산골시내물마냥 분주하고도 깨끗한 느낌을 주는 청년이다. 사람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데가 있기는 하지만 솔직하고도 재간있는 청년이다. 강철민은 김윤화앞에 서더니 작업복앞주머니와 옆주머니를 뒤지며 무엇인가를 분주히 찾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철민동무.》

강철민은 손을 멈추고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지배인동지, 지배인동지가 콤퓨터를 보장해주라고 지시했지만 기사장동지가 잘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종이 낮은걸 주겠다고 합니다.》

김윤화는 사연을 알아차렸다. 며칠전에 강철민은 김윤화를 찾아와 설비들의 고장을 소리를 듣고 알아내는 진동진단체계를 개발하겠다고 제기했었다. 미덥지는 않았지만 의욕을 꺾고싶지는 않아 그가 제기하는 콤퓨터와 부속들을 해결해주자고 기사장에게 말했었다. 하지만 기사장 김세천은 강철민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얼마전에 강철민이 공장의 전력계통을 새롭게 구성해서 전기선을 안전하게 늘이고 많은 전기선을 절약할 방도를 제기했는데 직장의 오랜 기술자들과 일군들이 잘 움직이려 하지 않자 어느날 밤에 배짱이 맞는 젊은 수리공들을 휘동해서 후닥닥 해치우고말았다. 전기작업을 하려면 시송배전부와 련계를 하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돌이킬수 없는 사고가 날수 있는것이다. 그런데 강철민이네는 밤새 공장의 부분적인 전기개페기를 내렸다올렸다 하면서 해냈던것이였다. 모두가 등골이 서늘해지게 놀랐고 끝내는 그것이 시송배전부에까지 제기되여 말썽이 생겼다. 지배인과 기사장이 여기저기 불리워다니며 비판을 받아야 했다. 전기선을 안전하게 늘이고 절약한 그의 방식의 우월성은 증명되였지만 그는 칭찬과 꾸중을 다같이 들어야 했다. 기사장 김세천은 성이 나서 펄펄 뛰였다.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모험을 하는 버릇을 어디서 배웠나? 에잇 할게 따로 있지! 동무가 도대체 지각이 있는 사람이야? 철부지두 그런 철부지가 어디 있어?》

김세천은 자기 사업을 책임적으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는 용서가 없는 사람이였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잘못 본 사람은 조만해서는 다시 좋게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강철민의 제의를 미더워할리 만무한것이다.

강철민은 시뜩하고도 고민스러운 얼굴을 짓고 그냥 주머니를 뒤지며 말했다.

《뭐, 오락이나 하겠다구 기종이 높은걸 요구하는게 아닌데 기사장동진 아예 내 말을 믿으려고두 하지 않으니… 그래서 저에게 필요한 콤퓨터와 진동진단체계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부속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오, 여기 있구나!》

강철민은 웃주머니에서 차곡차곡 접은 종이장을 꺼내들더니 펼치듯마듯하며 내밀었다.

《뭐 자질그레하게 가지수는 많지만 콤퓨터를 내놓고는 해결하기 힘든것두 없습니다. 해결해주십시오!》

김윤화는 웃음을 지으며 강철민이 내미는 종이장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한순간 얼떠름해졌다. 종이장에는 콤퓨터나 부속들의 명세가 아니라 노래가 적혀있었던것이였다.

 

조국에 포연이 휘몰아칠 때

처녀는 전선에 탄원해왔네

어머니 내 조국 기어이 지키리

처녀는 전선에 탄원해왔네

그 이름 예쁜이 간호원 예쁜이

처녀는 전선에 처녀는 전선에 탄원해왔네

 

《예쁜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김윤화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보매 종이를 헛갈린것같았다. 늘 이렇게 덤비는 강철민인것이다. 종이장을 도로 돌려주려다가 생각을 고쳐했다. 덤비기 잘하는 이 청년을 다시금 기사장앞에 내세워 뜨끔하게 혼을 내주고싶었다. 충고보다는 난처한 처지가 인간을 더 잘 배워주는 경우도 있는것이다. 이 순간 김윤화는 강철민의 존재와 더불어 즐거워지고싶었다. 그리고 지금 자기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가볍지 않을 기사장도 이 종이장을 보며 웃었으면싶었다. 김윤화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기사장동지에게 말해서 이걸 해결해달라 그 소리겠지?》

《그건 지배인동지에게 제기하는겁니다.》

《그래도 실지 콤퓨터나 설비들을 가지고있는건 기사장동진데… 혹시 기사장동지두 이걸 보면 나처럼 기분이 좋아서 해결해줄수 있지 않을가?》

《예?!》

《난 철민동무가 이렇게 사람을 정서적으로 감흥시키는 재간이 있는줄은 몰랐구만.》

김윤화는 웃음을 참느라고 모지름을 썼다.

《아무래도 철민동문 일군들앞에 나서는 법을 좀 배워야겠어. 자기를 침착하게 정돈하는 법을 배우고 일군들을 납득시키는 법도 배우고… 노래로 해서 안되면 춤으로 하고 한번 해서 안되면 열번 하고…》

김윤화는 자꾸만 새여나오는 웃음을 끝내 참지 못해 소리를 죽여가며 웃고말았다. 강철민은 얼떠름해서 김윤화를 마주보았다. 김윤화는 가까스로 웃음을 거두고 강철민이 준 종이장을 다시 차곡차곡 접어 돌려주었다.

《이렇게 하자요. 이걸 그대로 기사장동지에게 가져다주세요. 지배인에게 이걸 보여주었는데 몹시 좋아하더라고 하세요. 기사장동지도 이걸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동무를 도와주기 바란다고 부탁하더라고 하세요. 꼭 그렇게 말해요.》

김윤화는 다시금 소리내여 웃었다. 강철민은 다소 어리둥절하고 미덥지 않아하는듯한 눈길로 지배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웃고있는 지배인의 얼굴을 보고는 어쩔수 없다는듯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알았습니다.》

강철민은 종이를 받아쥐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는 사무청사쪽으로 걸어갔다. 김윤화는 끝내 돌아서서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내여 웃고말았다. 남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혼자 웃었다. 이윽고 주변을 둘러보고나서 자기를 다잡았다. 자기가 너무 경솔하고 체신머리없는 아낙네처럼 처신한게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생활과 웃음을 즐기는 보통 녀인일뿐이다. 하지만 이 공장에서 그는 보통녀인이기 전에 지배인인것이다. 사업과 생활은 한순간도 그가 보통녀인으로 돌아가는것을 허용하지 않고있다. 김윤화는 깊은 한숨을 쉬고나서 천천히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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