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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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화는 한윤걸의 묘가 있다고 생각되는쪽에 눈길을 준채 그린듯이 서있었다. 시내의 유축인 이 공장에서 한윤걸이 묻혀있는 산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이제는 이곳이 옛모습을 거의나 찾아볼수 없는 현대적인 거리로 되였지만 여기서는 아직도 불붙는 집에 뛰여들던 한윤걸의 체취가 느껴지고 전우들이 굳이 부대가 바라보이는 산등성이에 묻어준 그의 존재가 느껴지는것이다.

김윤화는 바로 이 잊지 못할 추억이 깃든 땅에 왔다. 바로 그래서 그의 아들 한경철을 굳이 이 공장으로 데려올 생각을 한것인지도 모른다. 하많은 추억과 상념에 잠긴 녀인은 움직일념을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문득 등뒤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그를 현실로 이끌어냈다.

《지배인동지!》

김윤화는 돌아보았다. 부지배인 송명식이 서있었다. 언제보나 인상이 좋아보이는 실무가형의 인간이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대할 때면 매양 알길없는 거북함과 불안을 느끼군 한다.

지배인이 된다고 했던 사람과 지배인이 된 사람과의 서름서름한 감정때문만이 아니였다. 그들사이에는 무시할래야 무시할수가 없는 고철삼이라는 존재가 끼여있는것이였다. 오늘도 가슴에 몰려드는 야릇한 중압감을 느끼며 김윤화는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예요?》

송명식은 인차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주저하는듯하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배인동지, 종업원아빠트문제는 어떻게 하잡니까?》

김윤화는 대답을 하지 못한채 서있었다. 그가 말하는 공장종업원아빠트는 전 지배인과 송명식이 종업원들의 살림집문제를 해결한다고 터를 잡아놓고 기초를 파놓은 아빠트이다. 하지만 그이상은 더 손을 대지 못해 파놓은 기초구뎅이에는 어느덧 물이 차서 개구리들이 첨벙거렸으며 아이들이 모여들어 물장난을 하는 곳이 되고말았다.

《오늘두 아이들이 빠질가봐 걱정이라구 주변인민반에서 신소가 들어왔습니다.》

김윤화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였다. 공장으로서는 너무나도 힘에 부친 건설이다. 자재와 자금, 로력 모든것이 부족하다. 더우기는 건설이나 자재구입에서 소문난 실력자라는 송명식이 두손 털고 나앉은것이 문제인것이다. 김윤화는 무거워지는 마음을 느끼며 조용히 물었다.

《부지배인동무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송명식은 잠시 김윤화의 기분상태를 살피듯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없이 서있었다. 그러다가 말했다.

《공장이 아직은 살림집건설에까지 손을 댈만한 힘이 없는데… 그럴바엔 기초를 당분간 사고가 안날 정도로까지 도로 메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해토가 되면서 눈석이물이 흘러들기 시작하면 이만저만한 깊이가 되지 않겠는데… 앞으로 장마철도 있고… 그러다가 사고라두 나면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기초를 도로 메운다는 소리가 왜서인지 알길없는 선뜩함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송명식의 말처럼 살림집건설을 할만한 힘이 없는것은 사실이고 또 사고가 날 위험성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아마 송명식도 많은 생각끝에 그런 결심을 내렸을것이다. 김윤화는 조용히 한숨을 쉬고 나서 대답했다.

《그럼 부지배인동무 결심대로 하자요. 기초구뎅이를 메울수 있는 작업조직을 부지배인동무가 해요.》

송명식은 알았노라고 하고는 돌아섰다. 김윤화는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못하고 서있었다. 문득 전 지배인이 있을 때에는 살림집건설을 발기하고 기초까지 파놓았던 송명식이 이제 와서 두손 털고 나앉는것이 혹시 자기의 처지나 새 지배인에 대한 불만때문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아직은 네 힘이 공장의 현실을 이길만큼 되지 못한다고 하던 림봉숙의 말은 바로 저런 능력있는 일군들을 공감시키고 움직이지 못하는 나의 실력이나 인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가?

고철삼의 얼굴이 눈앞에 얼른거린다.

보성신발공장시절에 있은 일이다. 작업반장으로 일하던 김윤화가 재봉 3직장 직장장으로 임명되여 가보니 직장의 실태가 한심했다. 재봉공들의 기술기능수준이 어리고 내부가 복잡한것으로 하여 늘 생산계획을 미달하고있었다.

어느날 현장을 돌아보던 김윤화는 뜻밖의 광경을 띠여보게 되였다.

재봉공들의 옆에 하나같이 비닐구럭지들이나 종이곽들이 놓여있는것이였다. 알아보니 재봉공들이 자기들의 옷들을 거기다 건사한다는것이였다. 공장에는 세개의 재봉직장이 함께 리용하는 종합탈의실이 있었는데 거기에 가기가 싫고 또 미덥지 않은 감정도 있어서 작업복을 갈아입으며 벗은 옷들을 지함이나 구럭지들에 건사하는것이였다. 유독 그 직장에만 있는 풍경이였다. 하지만 김윤화는 처녀들을 탓하지 않았다.

자기의 첫 사업을 직장안에 직장전용의 탈의실을 번듯하게 꾸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원체 바구니만한데다가 넣던 옷들이니 옷을 넣는 장들도 바구니만하게 만들자는 의견이였으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왕 우리 손으로 할바에는 한사람이 한개 장씩 쓸수 있게 양복장 반칸만하게 크게 만들자요. 우리 힘으로 모든 직장들의 본보기가 될수 있게 멋들어지게 만들어보자요.》

김윤화는 집에서 요긴하게 쓰려고 건사했던 자재와 자금을 아낌없이 들고나왔다. 직장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여가시간에 온 직장이 달라붙어 탈의실을 꾸리고 옷장을 짰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고 시끄러워하기까지 하던 사람들이 한사람, 두사람 나서기 시작하더니 차츰 사기가 나서 탈의실을 꾸리는데 달라붙었다. 그렇게 절반쯤 꾸렸는데 거기로 공장을 담당한 관리국의 처장이라는 고철삼이 왔다. 잡도리를 크게 한 탈의실을 보더니 눈이 둥그래졌다. 미심쩍어하는듯한 눈길로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못마땅한 어조로 말했다.

《동무네가 이렇게 꾸려놓으면 다른 직장들도 다 이 본을 따겠다고 하겠는데 이거야 랑비가 아니요? 종합탈의실이 있는데 직장마다 이렇게 자기 탈의실을 꾸려놓을 필요가 뭐요?》

김윤화는 웃으며 말했다.

《처장동지, 처녀들의 심정을 리해해주십시오. 탈의실을 생산현장가까이에 두는건 편리상으로나 미감상으로 나쁠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린 탈의실을 단지 옷이나 벗어 건사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생활의 거점으로 훌륭하게 꾸려서 처녀들이 집보다 직장을 더 좋아하게 만들자는겁니다.》

고철삼은 얼굴을 찌프렸다.

《그런데 이 많은 자재를 어디서 보장하오? 보나마나 신발을 가지고 롱간을 하겠지?》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고철삼은 코웃음을 쳤다.

《설사 동무넨 그런 일이 없다고치기요. 하지만 다른 직장들에서 동무네 본을 따서 이렇게 꾸리려면 비법을 하는 현상도 있을수 있단 말이요. 좋은 일이 아니요! 내 동무네 지배인에게 말하겠는데 당장 중지하오.》

《처장동지!》

김윤화는 아연하여 부르짖었다. 그러나 고철삼은 휙 돌아서서 가버렸다. 김윤화는 망연하여 서있었다. 직장사람들의 얼굴에 흐르는 실망과 허무감의 무맥한 기운을 알아보았다. 김윤화는 소스라치며 굳어졌다. 말없이 서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동무들! 작업을 계속하자요.》

김윤화는 탈의실꾸리기를 그냥 내밀었다. 고철삼이 몇번이나 다시 와서 야단을 했으나 물러서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고철삼이 눈빛을 무섭게 번뜩거리며 김윤화를 여겨보다가 휙 돌아서서 가버렸다. 탈의실은 눈이 부시리만큼 훌륭하게 꾸려졌다. 김윤화는 탈의실에 놓을 TV와 록화기, 증폭기들도 집에서 들고나왔다. 탈의실은 직장사람들의 로동과 생활의 보금자리로 되였다. 힘과 보람을 느낀 직장사람들은 일에 성수를 내였고 화목한 집단으로 단합되여갔다. 하지만 고철삼은 김윤화에게 로골적으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고철삼은 그가 탈의실을 꾸리는 과정에 신발을 가지고 비법을 했으리라고 제식으로 짐작하고 법기관에 김윤화의 문제를 상정시켰다. 그때 김윤화의 딸 정혜가 병원에서 심하게 앓고있었다. 남편의 전화를 받고 딸애가 좋아하는 과일을 들고 정신없이 달려가는데 승용차를 타고 정문으로 들어서던 고철삼이 차를 멈춰세웠다.

《어딜 가오?》

《저… 아이가…》

고철삼은 김윤화의 모습을 일별하더니 쓰겁게 웃었다.

《내 말 듣소! 동문 견해가 당당한 직장장이요. 하지만 오늘은 아낙네가 되겠다는거구만. 이보오, 직장장동무! 오늘은 자기가 아낙네라는 생각을 버리는게 좋겠소. 이제 법기관사람들이 공장에 나오겠다고 했으니 어디 가지 말고 대기하고있소!》

승용차의 차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겼다. 김윤화의 손에서 과일구럭이 떨어져내렸다. 과일들이 땅바닥으로 굴러갔다. 승용차는 바퀴아래 굴러들어간 몇알의 과일을 짓이기며 가버렸다.

김윤화는 입술을 깨물고 서있었다. 그는 딸 정혜가 위급한 고비를 넘기던 그 순간에조차 병원에 갈수 없었다. 그때의 기가 막히던 심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후 고철삼은 독단과 전횡으로 하여 엄중한 결함을 범하고 해임되게 되였으며 류성신발공장 로동자로 오게 되였다. 그런데 바로 그 공장에 김윤화가 지배인으로 온것이였다. 아무리 무시하려고 애써도 고철삼은 물론 그의 매부인 부지배인 송명식조차도 례사롭게 대하게 되지 않는 김윤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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