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회)

제 7 장

우리는 젊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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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결은 금빛으로 반짝이고있었다.

머리우에 펼쳐진 하늘은 그이상 파란색이 없을상싶었다.

멀리 꽃처럼 부풀어오른 구름장들은 저쪽 어디론가 쏜살같이 헤염쳐가고있었다.

세번째 시험을 성과적으로 치른 진호네와 로를 수리에 넘긴 2호로의 용해공들은 쏟아지는 8월의 폭양아래에서 하루의 휴식을 맘껏 즐기고있었다. 그동안 새 연료의 취입에 골몰하느라고 변변히 쉬지 못한 이들의 응축된 젊음이 오늘에야 한껏 폭발한듯싶었다.

세번째 시험에서는 1 810°까지 올랐고 그리하여 중탄소강까지 무리없이 뽑아냈다.

어느 정도의 전망을 내다보게 되자 공장에서는 3호로에서 시험을 계속 확대하면서 새 연료의 취입공정에 대한 설계를 선행할 과제를 주었던것이다. 말하자면 중유가 취입되던 공정을 새 연료의 취입공정으로 바꾸어야 하는 내장대이식수술을 위한 설계도가 요구되였던것이다. 그러고보면 아직은 첫 시험에 성공했달뿐 본격적인 일은 이제부터나 다름없었다. 더우기 연도나 축열실에 미치는 연재의 작용에 대해서는 이미의 시험으로는 측정할수 없는것이여서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었다.

이런 아름찬 과업을 앞에 놓고 조직된 오늘의 야유회였다.

남자들은 벌써 옷을 벗어던지고 뽀트에 올라 강 한복판에 솟아있는 조약대를 향해 힘껏 노를 젓고있었다. 억센 근육들이 해빛을 받아 보기 좋게 번들거렸다.

여름한철 제철소로동자들의 유쾌한 휴식터로 리용되군 하는 이 로천휴양지는 강을 낀 솔밭의 아름다운 풍치도 풍치지만 하루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그쯘한 설비들로 하여 더 인기를 끌었다.

뽀트며 탁구대를 비롯한 갖가지 체육기구들이 갖추어져있는가 하면 그물과 낚시, 지어는 어죽을 끓이는데 필요한 일체 화식기재까지 준비돼있어 아무때 와도 누구나 불편없이 하루를 즐길수 있게 되여있었다. 일요일도 아닌터여서 오늘은 온 휴식터가 이들의 독점으로 되였다.

조약대우에 올라 물우로 화살처럼 내리꽂히는 남자들에 비해 녀자들, 정아와 은심이 그리고 진희는 로장의 지휘밑에 어죽을 끓일 준비들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릇들을 부신다, 남새를 씻는다, 솥자리를 마련한다 하기에 땀까지 뻘뻘 흘렸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날마저 녀자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휴식이라기보다 색다른 고역을 치르러 나온것같기도 했다.

그래도 제일 열성은 진희였다. 열성이라기보다 일감을 찾지 못해 아무 일에나 비친다고 해야 할것이다. 정아를 내놓고는 모두 처음 대하는 사람들이였지만 쑥스러워하거나 면구스러워하기는커녕 도리여 아무일이나 제가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 돌은 어데다 놓을가요? 아부님!》

《그냥 놔둬라.》

《왜요?》

《그걸 네가 어떻게 든다구 그러니.》

《아―니 요걸 못들어요?》

대뜸 돌을 들것처럼 제법 아래입술까지 깨문 그였으나 곧 까르르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요까짓건 자신있지만 관두겠어요. 괜히 그러다 로장아부님이 절 용해공으로 잡아두면 어떻게 해요, 호호.》

그는 말끝마다 웃어댔는데 그것은 말이 우스워서보다도 자기 기분이 명랑한 나머지 모든것이 웃음으로 변해가지고 튀여나오는것을 억제할수 없었기때문이였다.

진희의 출현으로 하여 오늘 야유회는 새로운 이채를 띠였다. 얼마나 발랄한 생기를 더해주는지 정아와 은심이는 이 처녀가 없었다면 어쩔번 했을가 하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을 정도였다.

《솔직히 말해 전 여기에 이런 생활이 있는줄은 몰랐어요. 그저 로앞에서 밤낮 땀만 흘리는줄 알았거던요.》

생글생글 웃으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던 그는 조약대쪽을 바라보고는 금시 입술을 삐죽했다.

《에이참! 나도 남자랬으면 얼마나 좋을가! 녀자들이란 정말 불쌍해! 이것도 가정의 무거운 부담이 아닐수 없지요? 그렇지요?》

《왜, 싫어?》

그릇들을 씻던 은심이가 웃음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싫지 않구요. 언닌 뭐 좋아요?》

《난 이런 부담이라면 조금도 덜고픈 생각이 없어!》

《왜요?》

《이런 일은 즐거우니까.》

《피!― 뭐가 즐겁다는거예요. 아무래도 녀잔 가정을 꾸리기만 하면 저절로 락후해지는 모양인지…》

이번에는 남새를 다듬는 정아를 돌아보았다.

《우리도 이제 수영을 하면 되지 않니.》

《언닌 헤염칠줄 알아요?》

《잘은 못해도 조금은 해.》

《아이 어쩔가. 난 돌멩인걸. 아무리 팔다리를 놀려도 영 솟구질 못해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시늉을 하며 다시금 깔깔거리는 그의 모습에 정아도 따라웃지 않을수 없었다.

평양에서 만나는 첫 순간부터 자기를 놀래우던 진희였다. 깔끔한 눈길로 한참 바라보던 그가 발쪽 웃으며 하는 첫마디에 정아는 어리둥절해지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알만해요, 언니가 누군지.》

그다음부터 그가 던지는 한마디한마디는 마치 자기는 이미부터 오빠와 어떤 사이라는것을 다 알고있으며 그렇기때문에 자기앞에선 구태여 숨길 필요가 없다는것을 로골적으로 암시하는것이였다.

《우리 오빠 지내 뚝하지 않아요?》 이러는가 하면 《우리 오빠 약점이 뭔지 모르지요? 이제 대줄게요. 근데 이건 절대비밀이예요.》 하고 속삭이는것이였다.

(어째서 날 곡해하는걸가? 어째서 그의 기술안에 대한 방조를 그에 대한 다른 감정으로 혼돈할가?)

그러나 그는 진희가 오해한 원인이 바로 자기가 쓰고있는 수첩과 만년필에 기인된다는것은 전혀 모르고있었다. 진호한테서 받은 수첩과 만년필이 진희가 각별한 의미를 담아 오빠에게 선물한것이라는걸 알길 없는 정아였다.

《오빠한테 주긴 하지만 이건 오빠의것이 아니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색갈도 이런것으로 골랐구요. 왜 주는지 알만하지요?》

동생의 이런 당부였으나 진호는 첫날부터 그걸 작업복웃주머니에 넣고다니면서 시험수치를 기록했고 정아가 분석에 몰두하면서부터는 그에게 넘겨주었던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사연이였지만 이런 내막을 모르는 정아로서는 고민거리가 아닐수 없었다. 그저 롱으로 치부할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자― 이젠 됐어! 너희들도 가서 수영이나 하렴.》

무쇠가마를 들어 솥자리에 앉힌 우택은 손을 털며 일어섰다.

《아이 좋아! 가요, 언니!》

그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진희는 정아의 손목을 끌었다.

《이걸 마저 씻어놓고.》

정아와 진희가 남새가 담긴 바께쯔를 들고 샘물이 있는 곳으로 사라지자 우택은 무엇때문인지 쌀을 일고있는 은심이를 흘끔흘끔 곁눈질해보기 시작했다.

《거 몹시 더운걸?》

그러면서 그는 소나무가 서있는쪽을 스르시 건너다보았는데 그 눈길은 마치 시험때 부정행위를 하려는 학생같았다.

소나무아래에는 오늘 야유회를 위해 준비해온 영양제식당의 갖가지 음식들과 함께 그가 각별히 좋아하는 술이 가방안에 들어있었던것이다. 아까부터 일손을 놀리면서도 어떻게 해야 몰래 꺼내 한모금 꺾어붙일것인가 하는 생각에만 옴해있던 우택이였다.

워낙 술을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오늘같은 날 흐뭇한 마음으로 혼자 기울이는 기분이란 자못 각별할것같았다. 더우기 자기에 대한 비서의 경고가 그런 유혹을 키질했던것이다. 이미부터 자기의 버릇을 잘 아는 비서가 영기와 함께 그물을 메고 떠나면서 은심이를 불러 이렇게 말했었다.

《다른건 몰라도 술만은 잘 건사하오. 가만 보니 벌써부터 령감 눈치가 심상찮단 말이요.》

《심상찮다니요?》

《목젖이 잔뜩 올라가붙은게 무슨 일을 칠 잡도리요.》

《걱정마셔요. 제가 단단히 보초를 서지요.》

(흠, 보초를 서? 어림도 없다. 내가 전쟁때 정찰소대에 있었다는걸 모르는 모양이군!)

사방을 휘 둘러본 그는 드디여 활동을 개시했다.

일부러 은심이앞을 오락가락하며 나무들을 줏는척하던 그는 은심이가 쌀을 이는 사이 얼른 소나무아래로 다가가 미리 갖다놓은 낚시망태안에 술병과 순대 한토막을 날쌔게 집어넣었다. 어디에 그런 민첩성이 숨어있었는지 놀라울 지경이였다.

로획물이 든 그물망태를 어깨에 멘 그는 천연스레 은심이앞으로 다가섰다.

《그럼 나도 이젠 낚시를 드리워볼가?》

《어서 그러세요. 그렇지만 꼭 큰걸 잡으셔야 해요.》

《아무렴, 그럼 내가 비서네처럼 송사리떼나 건지겠나?》

낚시대를 어깨우에 얹은 그는 커다란 바위들이 절벽을 이루고있는 강웃쪽으로 올라갔다. 저절로 입에서는 그 《갈매기 쌍쌍》하는 노래가 아니, 노래라기보다 념불같은 소리가 웅얼웅얼 새나왔다.

조약대에서 떠들어대는 패들은 물론 아래쪽에서 투망질하는 비서나 영기의 눈에도 뜨이지 않는 음침한 곳에 자리잡은 그는 낚시대를 드리워놓기 바쁘게 돌아앉아 병마개부터 뽑았다.

주머니에서 사기잔을 꺼내 입에 대고 훅― 하고 분 다음 조심스레 병을 기울였다.

잔이 넘치게 술이 차오르자 그의 입가에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르면서 혀바닥이 입술을 핥았다.

《어찌겠소. 개별적인 사정이라는것도 있는게 아니겠소.》

앞에 비서가 있기라도 한것처럼 이렇게 소리내 말한 그는 잔을 천천히 입에 갖다댔다. 남실거리는 술이 입술에 닿자 스르르 눈을 감은 그는 쪼―옥 소리가 나게 들이켰다.

《크―》

목구멍으로 흘러드는 짜릿한 향기에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제야 낚시에 미끼를 꿰지 않았다는것이 생각난 그는 낚시코에 그중 큼직한 미끼를 물리였다.

(오늘은 대짜를 낚아 솜씨를 한번 보여줘야지!)

다른건 몰라도 낚시에 대해서만은 누구앞에서라도 드러내놓고 자기 솜씨를 자랑하는 그였다. 대낙이며 떰벵이, 삼발이 등 각양각색의 낚시가 다 갖추어있는가 하면 어떤 물에서는 무슨 낚시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묘술까지 휑하니 도통하고있었다. 이런 리론과 빈틈없는 준비에 비해서는 늘 수확이 적은게 탈이였지만 그에 대해서도 제나름의 리유가 있었던것이다.

《낚시란건 고기를 먹는 재미가 아니라 낚는 재미로 하는걸세.》

낚시질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는 말이였으나 그는 마치 자기가 비로소 이 진리를 발견해낸듯이 말했다.

《그래도 잡은 고기가 없는데 무슨 재미가 있었겠어요?》

누가 빈 구럭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할 때면 그는 껄껄 웃었다.

《꼭 건져야만 맛이겠나? 그저 낚아보면 되는거야. 보게, 그래서 내 낚시엔 이렇게 코가 없단 말일세. 고기가 얼마간 요동을 치면 저절로 빠지게 돼있거던.》

사실이 그래선지, 아니면 고기를 못잡는 구실을 만들어놓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정말 그에게는 코가 없는 밋밋한 낚시가 여러개 있었다. 어떤 땐 옆사람이 잡아낸 고기를 들여다보며 《흠, 이놈은 주둥이를 보니 내가 아까 잡았다가 놔준게로군.》하고 말하여 고기잡은 사람을 아연케 만들기도 했다.

《허―이것 참!》

어느새 자기 손에 다시 쥐여져있는 술잔을 내려다보며 그는 허구프게 웃었다, 마치 자기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방정맞게도 손이 그만 말을 듣지 않았다는듯이.

《든 잔이야 부어야지 어찌겠소. 내 한잔만 더 하리다.》

두잔을 마시고나니까 밸이 뜨뜻해지는게 알렸다.

소금에 찍은 순대를 와작와작 씹으면서 이제부턴 오직 낚시에만 열중하리라 마음다지며 물우에 떠있는 종대에 시선을 모았다. 그러나 종대는 까닥도 하지 않았다.

(이상한걸?)

그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벌써부터 고기가 물릴리 만무였으나 그는 별스레 안정을 못하면서 초조해했다.

(아무래도 이놈이 말썽이야!)

고기가 물리지 않는 원인이 남아있는 술때문이기라도 한것처럼 그는 애꿎은 술병을 노려보다가 그것마저 말강스레 비워치웠다.

《에―이제야 종대가 바로뵈는군!》

종대를 지켜보는 그의 두눈이 그제야 정말 반짝반짝하고 생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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