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 회)

제 6 장

정 련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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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해장에서는 긴장된 분위기속에서 두번째 취입시험이 진행되고있었다.

어제 한 1차시험의 온도는 1 796°였다. 해당 온도준위에 이르자면 아직도 많은 열이 필요했으나 이미보다 16도나 더 올랐다는것에 사람들은 놀랐고 또 기뻐했다.

진호는 자신을 얻었다. 아니, 이젠 신심에 넘쳐있었다. 시험결과를 종합해보는 과정에 그는 하나의 명백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자기가 생각해온것이 옳다는 륙감이였고 이전에는 원리로만 알던것이 현실적으로 확증됐다는 믿음이였으며 또한 모르긴 해도 자기가 의도하는것이 틀림없으리라는 확신이였다. 비결은 연료와 가스 그리고 산소의 호상 배합비에 있었다.

그의 머리속에는 선과 점으로, 음향과 률동으로 충만된 하나의 화면이 생생하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그토록 거대하고 신비스럽던것이 지금은 바로 눈앞에서 생동하게 감촉할수 있는 화면으로 펼쳐지는것이였다. 아직 적지 않은 의문점들이 있었으나 그것도 이전처럼 막연하거나 두렵진 않았다.

(틀림없어! 용해말기에 최대의 열부하를 걸면서 슬라크조성만 잘해준다면 20°의 온도쯤은 넉근히 올릴수 있어!)

이런 느낌, 앞에 놓인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전처럼 불안이 아니라 오히려 신심을 느끼게 되는것이 무엇때문인가를 그도 이젠 비슷이 짐작할수 있었다. 그것은 자기를 둘러싸고있는 사람들, 비서며 로장이며 용해공들이 진정으로 자기를 지지해주고 고무해준다는 믿음이였고 그 믿음으로 하여 이젠 자기가 바글바글 끓는것이 아니라 훌륭한 로벽에 둘러싸여있는 용금처럼 내부로부터 서서히 끓어오르고있으며 또 이전보다 한결 맑게 정련되였기때문이라는 의식이였다. 요즘에 와서야 그는 자기에게도 남다른 힘이 있다는것을, 그 힘이 얼마나 위력한가 하는것을 어렴풋이나마 감득할수 있었다.

《언제나 집단의 지지를 받는 습관을 키워야 하오. 그들의 지지속에 있을 때라야 자신의 힘이 얼마나 정당하며 강한가를 알게 된단 말이요.》

이렇게 말하던 비서와 《자기는 집단이라는 수레바퀴의 자그마한 치차이발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만이 사회를 위해 보다 유익한 일을 할수 있는 사람이야.》 하고 훈시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자주 떠오르군 했다.

(모두가 나를 위해주고 나도 그들의 믿음에 성실하고 이래서 사람들은 더 굳세여지는것이 아닌가! 또 이래서 모두가 친형제처럼 화목해지는것이 아닌가! 과연 이런 사람들속에 있는 나야말로 얼마나 행복한가!)

그는 요즘 자기에 대한 이런 새삼스런 희열이 기뻤고 그 기쁨을 음미할수 있게 된 자신의 존재가 행복했다.

그러나 그는 벌써 두번씩이나 의식을 잃었었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부터 옹근 사흘을 한순간도 눈을 붙이지 못한채 긴장해있은것으로 해서였다. 지금도 온몸이 솜처럼 나른했다. 입술은 험상궂게 부르터있었고 우묵히 패워들어간 안확속에서는 무엇에 놀란듯한 눈동자가 안정을 잃고 허둥거렸다. 걸음을 옮기기도, 누구와 말을 하기조차 싫었다. 다만 당장이라도 서늘한 깔판우에 네활개를 뻗고 드러눕고만싶었다. 더우기 정아라도 옆에 있으면 복잡한 자료며 분석들을 안받침해주련만 그마저 없고보니 이러저러한 근심들이 한시도 머리에서 사라지질 않는것이였다.

(참자! 이번까지만 참자!)

눈앞이 흐려질 때마다 그는 이발을 사려물고 이렇게 되뇌였다.

로상태는 어느새 용해가 끝나간다는것을 알리고있었다.

이제부터는 정련기―최대의 열부하를 걸어야 했다. 새 기술안의 운명이 전적으로 자기들에게 달려있다는것을 자각한 용해공들은 사소한 실수도 없도록 하기 위하여 최대의 신중성을 기하고있었다. 모두의 구리빛얼굴들에는 하나같이 엄숙한 흥분이 어려있었다.

로장의 신호에 따라 가스와 산소의 발브를 열고 거기에 해당한 량의 연료를 취입시킨 진호는 로앞으로 다가가서 화염온도를 측정했다.

(이번에야…)

순간 그는 굳어지지 않을수 없었다.

1 790°! 광온계의 눈금이 1차시험때보다도 6°나 더 낮은 온도를 가리키고있었기때문이였다.

(아―니?)

혹시 계기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여 눈금판을 보았으나 동침같이 긴바늘은 틀림없이 움직이고있었다. 다시 온도를 재보았지만 역시 그대로였다. 로장도 벌써 심상찮은 조짐을 간파했는지 머리부에 있는 가스발브를 조절하기도 하고 분출구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아무리 따져봐야 미흡한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공기량도 정상이고 가스도 량호했다. 산소도 4기압이나 걸리고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온도가 오르지 않는다는건 두말할 여지없이 연료가 1 800°이상의 열을 담보하지 못한다는것일수밖에 없는것이다.

(설마?)

활랑거리는 심장이 당장 멎을것만 같았다.

엄연한 사실은 자신이 수년동안 고심해서 이룩해놓은 모든 성과들을 일시에 무시하는것이였으나 그는 누구에게 어찌된 일인가고 물을수가 없었다. 어떤 절망적인 대답이라도 할가싶어 무서워서였다. 그는 한가닥의 희망을 열전대에 걸고 그것을 용금속에 찔러보았다.

그라프에 표기되는 쇠물온도의 눈금을 여겨보던 그는 그만 더한 공포에 휩싸이고말았다. 1 786°! 쇠물온도가 더 떨어지고있는것이 아닌가!

불시에 쇠몽둥이에 얻어맞은 사람처럼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머리가 휙 내둘리였다. 용해장 깔판이 빙그르르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도모르게 옆에 있는 장입기동체에 기대기는 했으나 몸을 제대로 가눌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요?》

가까스로 고개를 든 진호는 한참만에야 자기앞에 서있는 사람이 누구라는것을 알아보았다. 비서였다.

《글쎄 도무지 알수가…》

목이 잠겨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자기에게 큰 힘을 주던 그였던가! 취입시험을 시작할 때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새 연료안에 아직 부족점이 있는건 사실입니다. 그 시험으로 하여 생산에 일정한 지장을 준다는것도 사실이고, 특히 많은 동무들이 말하듯이 오늘 도달할수 있는 성과를 시험때문에 래일로 미루게 된다면 그만치 생산량이 적어지는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건 새 연료취입을 미루는것, 이것은 그보다 더 큰 죄가 아닐수 없다는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당장 수행해야 할, 또 무엇보다도 먼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 취입시험을 기어이 성과적으로 보장합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나타날줄이야.

《어째서 1차시험때보다도 온도가 낮아졌는가 말이요?》

《저도 알수 없습니다. 이상한 일이 아닐수 없단 말입니다. 가스도 좋고 산소도 제 량대로 취입되는데 어째서… 자, 이걸 보십시오. 이건…》

작업복웃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며 비서에게 다가서던 진호는 갑자기 몸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손을 뻗쳐 장입기동체에 기대는가 싶었는데 웬걸 허공을 그러안고 그냥 모재비로 꽝하고 쓰러지는것이였다.

《아―니?》

비서가 얼른 그를 부축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나친 무리에서 오는 허탈입니다. 시험 첫날부터 꼬박 사흘동안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했으니까요.》

옆에 있던 형묵이가 근심스런 어조로 말했다.

《빨리 병원에 알리오. 우선 계기실에 눕혀놓기라도 해야겠소.》

여러 사람들이 진호를 일으키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석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놔두우!》

우택로장이였다. 무슨 일을 하다가 오는지 온통 흙투성이가 된 손을 털면서 로앞으로 다가선 그는 진호를 내려다보며 맞갖잖게 중얼거렸다.

《그렇게두 맥을 못추다니!》

모두들 의아한 표정이였으나 그는 여전히 덤덤한 눈길이였다.

《이상하다 해서 내려가보니 글쎄 변경변칸막이가 무너지지 않았겠소. 워낙 로가 낡다보니 젠장!》

우택은 언제나와 같이 조용하게 그러나 확고부동한 확신이 느껴지는 간명한투로 말했다. 그의 말은 너무도 요약되여있어서 만일 우택이라는 사람을 잘 모른다면 그의 의사가 무엇인지 리해하기 힘들것이였으나 평소에도 말없이 실천을 앞세우며 가장 어려운 대목에는 언제나 요진통을 막아나선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비서는 인차 그가 무엇을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라는것을 알아챘다.

《그럼 열이 오르지 않은게 그때문이란 말이요?》

《칸막이가 무너졌으니 가스가 분산될수밖에, 허파에 구멍이 난 격이란 말이웨다. 비서동무! 우리 로는 수리에 넘긴다 해도 시험은 계속하게 해주우. 이젠 자신이 있수다.》

그제야 모두들 환성을 질렀다.

《아무래도 이건… 이건 내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손에 쥔 수첩을 더듬거리며 이렇게 중얼거리는 진호의 모습에 모두들 못볼것을 본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일어나게!》

누군가 얼음물이 든 주전자를 들고와 진호에게 따라주려고 하자 그것을 앗아든 로장은 그 물을 그의 머리우에 쏟아부었다.

그제야 다소 정신이 든듯 머리를 휘젓고난 진호는 초점이 없는 뿌연 눈길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런 진호의 얼굴에 로장이 이번엔 주전자물을 통채로 꺼꾸로 쏟아부었다.

《이래두 아직 일어나지 못하겠나?》

로장의 이런 익살에도 누구 하나 웃지 못했다.

이때 상범이앞으로 다가선 영기가 무슨 비밀이라도 말하듯이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방금 정아동무가 돌아왔습니다.》

《정아가?》

《그런데 웬 처녀하고 같이 왔어요.》

《처녀라니?》

《뭐 누이동생이라나요?》

《누이동생?》

상범은 의외라는듯 우택을 돌아보았으나 얼굴에는 곧 미소가 어리였다. 오래간만에 웃는 비서의 얼굴을 본 우택이의 입가에도 실룩하고 웃음이 어리는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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