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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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현민은 콤퓨터와 신발설비분야에서는 당할 사람이 없다고 하는 수재형의 일군이다. 나이도 이제야 40대 중엽이다. 시력이 나쁜것이 좀 흠이기는 하지만 그것때문에 일에 지장을 받는 일은 없다. 어느날 밤에 새 설비의 시운전을 하다가 자그마한 부속품을 잃어버려서 현장을 뒤지며 법석을 피운 일이 있었는데 시력이 나쁜 그가 그 작은 부속을 찾아냈다. 모두들 반갑고 신기해하는데 그가 하는 말이 걸작이였다.
《난 잘 보이지 않으니까 손으로 더듬어서 찾지요.》
더듬어서 찾는다! 어쩌면 그의 성격을 반영한 말이라고도 할수 있다.
지배인방에서 회의를 끝내고 나오는데 갑자기 청사복도에 정전이 되였다. 모두들 계단을 발더듬으로 내려가는데 갑자기 최현민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려가면서 11개를 세십시오. 우리 사무청사는 한층이 꼭 11개입니다.》
새삼스럽게 세면서 내려가보니 정말 11개였다. 하지만 그 계단을 오르내리는 많은 사람들중에 그것을 알고있는 사람은 없었다.
최현민은 이런 사람이였다. 하지만 이 순간 김윤화는 공장과 새 지배인에 대한 회의심을 나타내고있는 김세천의 존재가 자기에게는 더없이 귀중하고 필요한 존재라는것을 새삼스럽게 인식하지 않을수 없었다. 김윤화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였다. 림봉숙은 그러는 김윤화를 여겨보느라고 잠시 멎어서기까지 했다. 이윽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림봉숙은 조용히 말했다.
《행정일군의 힘은 리성이고 수자다. 난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이걸 무시하구 지배인이 욕망 하나만 가지고 일을 하려들면 너희네 공장과 같은
혼란과 침체가 일어난다구 난 생각한다. 난 네가 이 공장과 자기
그의 마지막말은 다소 상급답게 엄격하게 들렸다. 김윤화는 대답을 못했다. 그의 말을 반박할 힘이 없었던것이였다. 그들은 서로 말이 없이 묵묵히 공장구내길을 걸었다.
이윽고 정문에 세워놓은 림봉숙이 타고온 승용차앞에까지 와닿았다.
눈치빠른 운전사가 발동을 걸었다. 그러나 림봉숙은 타지 않고 무엇인가 더 할 말이 있는듯한 눈길로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김윤화를 이끌고 승용차에서 몇걸음 물러섰다. 말을 고르듯 잠시 머뭇거렸다.
김윤화는 은연중 긴장해서 림봉숙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고압적이라고 할만치 자기 견해표명에서 솔직하고 직선적인 림봉숙이 무엇인가 할 말을 즘자리고있다는것이 이상하고 불안했다.
두 녀인은 말없이 서로를 지켜보았다. 이윽고 림봉숙이 조용히 물었다.
《윤화, 너 경철이를 이 공장으로 보내달라고 했지?》
왜서인지 문득 27년전 아들 경철이를 안고 자기를 찾아왔던 림봉숙이 떠오른다. 그때 림봉숙은 볼편이 떨리는듯한 이상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속삭이듯이 말했었다.
《윤화동무, 난… 동무와 함께… 함께 일하려고 왔어요. 이 공장에서 함께… 그래도 되지요?》
지금도 림봉숙은 이상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김윤화를 바라보고있었다. 조용히 물었다.
《윤화, 왜 갑자기 경철이를 이 공장으로 데려올 생각을 했니?》
무엇인가 야릇하고도 예민한것이 마음의 금선을 쟁쟁 울리는듯했다.
마치 어떤 경보신호라도 들은듯한 느낌이였다. 김윤화는 림봉숙의 얼굴을 살피듯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봉숙이, 다르게 생각지 말아. 난 공장에 오자마자 김세천기사장동지한테서 경철이의 학위론문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너도 그 애를 현장에서 단련시켜야겠다고 했지. 단련시킬바에는 차라리 내가 옆에 끼고 일을 시키는게 낫지 않겠니? 내 말이 틀리니?》
림봉숙의 얼굴에 당황해하고 열적어하는 웃음이 흘러갔다.
《윤화야, 난 사실 미안하구 죄스러워서 그러는거다. 난 그저 그 애가 앓지 않고 공부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댔는데 그게 그 애를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책상물림으로 키운것같애. 외국류학을 갔다온탓일가? 아니, 눈때문에 인민군대에 보내지 못한 탓일거야.》
《당에서 그 앨 대학에 보내여 수재교육을 받게 하지 않았니.》
《하지만 난 자기 일만 일이라고 하면서 그 애를 너무 내버려두었어. 이제 와선 그게 뼈저리게 후회된다.》
《이제라도 그 애를 잘 키우자. 그게 바로 한윤걸동지앞에 지닌 우리의 의무야. 내 말이 맞지?》
《그래!》
그들은 한없는 신뢰와 애정을 안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림봉숙이 웃어보였다.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난 널 믿구 그 앨 이 공장에 보낼 결심을 했다. 하지만 한가지만은 다짐을 받아야겠어. 그 앤 이젠 27살이나 된 다 자란 총각이다. 이 공장엔 처녀들도 많은데 녀자문제에서 실수하지 않게 해줘.》
《실수한다는건 뭐니? 그 애가 뭐 어린애라구…》
《아니야, 아직은 어려! 그리구 안할 말루 네가 실수할수도 있지 않니. 넌 지독한 주관주의자니까.》
악의없는 힐책에 김윤화는 그만 웃고말았다. 림봉숙도 웃었다.
《그 애 대상자문제만은 꼭 내 견해를 따르겠다는걸 약속해라.》
《약속한다! 넌 그애의 어머니다!》
《윤화야!》
림봉숙은 김윤화의 손을 꼭 잡았다. 웃어보였다.
《결국 오늘 내가 이 공장에 나무를 잘 심었구나. 그 나무를 우리 경철이 이름으로 심은걸로 하자. 그러니 우리 경철이가 장가를 갈 때 나두 너한테 나무를 꿀수 있겠지?》
《있구말구! 내 제일 좋은 나무로 가구를 해줄게.》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소리내여 웃었다. 이윽고 림봉숙은 승용차에 올라 떠나갔다. 그러나 김윤화는 움직이지 못한채 굳어진듯 서있었다. 그 순간 그의 귀전에는 27년전의 아기의 울음소리가 생생하게 울리여오는듯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