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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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득 이 수재형의 오빠가 시를 쓰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날 유명한 시인들의 시들을 옮겨베꼈던 자기의 학습장을 들고 강철민에게 갔다.
《철민오빠, 이 책의 시들을 몽땅 다 암송해봐요. 그럼 오빠도 시를 사랑하며 읊게 될거구 마지막엔 시를 쓰게 될거예요. 정말이예요!》
철민은 코웃음을 치며 웃었으나 성의를 무시하고싶지는 않은듯 시들해서 학습장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닷새도 못되여 그 학습장을 돌려보내며 그 뒤장에 이런 글을 써보냈다.
《시를 많이 암송했다고 해서 시인이 되는것은 아니야. 난 여기에 있는 시를 다 암송했지만 내가 시인이 될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 그럼 너는 시인이 될수 있니?》
강철민은 거기에 커다란 물음표를 세개나 그려놓았다. 그리고는 계속 썼다.
《모르겠어. 어디 내앞에서 자기를 증명해봐.》
다분히 깔보는듯한 글앞에서는 모욕감을 느꼈으나 그 많은 시를 닷새도 못되여 암송해버린 기억력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그 강철민이 고등중학교(당시)졸업을 앞두고 벼랑에서 굴러나 대퇴경부가 골절되는 사고를 저질렀다. 어머니의 병치료에 좋은 산과실을 따러 간다고 동무들을 이끌고 산에 갔다가 그렇게 된것이였다. 오랜 치료끝에 다리는 절지 않게 되였으나 그는 자기가 소원하던 조선인민군대에 입대하지 못하고말았다. 아버지는 대학에 가라고 설복했지만 그는 옥림의 아버지가 있는 류성신발공장에 들어가고말았다.
《또 그놈의 에잇때문이다. 다리때문에 아무래도 남들만큼은 못할거라고 했더니 로동속에서 자기를 보여주고 로동속에서 성공한다는거지. 그 애가 너 절반만큼이라도 착실하게 생각했으면!》
기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옥림은 강철민을 찾아 공장으로 갔다.
대학으로 가야 한다고 설복했다. 오빠의 재능이 빛이 나자면 꼭 공부를 해야 한다고 열을 내여 말했다.
철민은 옥림을 마치 처음이라도 보는듯 유심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해에 강철민은 정말로 대학입학시험을 쳤다. 그가 첫 시험을 치던 날 옥림은 시험장밖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가 시험을 잘 치고 나오기를 바랐으며 믿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옥림은 그를 거들떠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중학교를 졸업하며 옥림도 류성신발공장에 들어오게 되였다. 현실체험을 하며 시를 쓰고싶었던것이였다. 로동속에서 시인으로서의 키를 자래우고 대학으로 가고싶었다. 그 결심속에는 강철민에게 자기를 증명해보이고싶은 알지 못할 반발심도 깃들어있었다.
공장에서 그를 만날 때마다 강철민은 마치 재미있는 동화책이라도 읽는듯한 얼굴이였고 어떤 때는 공연히 시뜩한 자세로 목대가 뻣뻣해서 지나가군 했다. 하면서도 대학통신에는 다니는것같았다. 얼마전부터는 오토바이를 타고다니기 시작했다.
《동무네 형이 타다가 마사먹은걸 끌어내서 고쳤다지 않니. 뭐 누구도 못고친다는걸 고쳐서 새것처럼 만들어놓았다나. 오토바이를 마사먹으면서 죽을번한 동무네 형이 아예 네가 타라구 주었다는구나. 에잇, 에잇하기 잘하는 녀석이 오토바이까지 타고다니니 난 자다가두 심장이 얼어드는것같다. 제발 그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아버지는 아침마다 아들에게 속도를 놓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고 했다. 하지만 끝내 어디선가 사고를 일으켜서 앞이발 두대가 부러졌다. 그가 입을 벌릴 때면 새로 해넣은 금이발이 유표하게 반짝거리군 했다. 바로 그런 강철민이 자기에게 무엇인지 알수 없는 물건을 보내온것이였다.
도대체 무엇을 보내왔을가? 어떻게 해야 할가?
송옥림은 자기를 새새 쳐다보는 동창생처녀앞에서 분주하게 생각을 굴려보았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까짓, 받아두지 뭐. 어쨌든 나쁜 일은 아닐거야. 하지만 제가 안달아나서 무엇을 보냈는지 토설할 때까지 절대로 열어보지 않을테야.)
옥림은 강철민이 눈앞에 있기라도 한것처럼 입을 삐죽 내밀고 얼굴을 찌프린채 아무말도 없이 종이곽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저쯤 앞에서 웃고떠들며 가고있는 직장처녀들에게로 막 달려갔다.
그렇게 찧고까불며 공장정문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함께 가던 처녀들이 일제히 옥림을 바라보며 《옥림아, 너희 아버지!》라고 소근거렸다. 정말 정문앞에 서있는 화물자동차옆에 공장부지배인인 옥림의 아버지가 서있는것이 보였다. 아버지의 옆에는 공장기사장인 김세천과 제화직장 직장장인 조인섭이 함께 서있었다.
문득 처녀들이 간지럼이라도 타는듯한 목소리로 《3쓩.》, 《3걸.》하고 소곤거렸다. 옥림은 그만 소리없이 웃고말았다.
처녀들과 녀인들이 대부분인 그의 공장은 언제적부터인지는 잘 알수 없으나 민속오락인 윷놀이를 자기의 전통적인 대중체육종목으로 진행해오고있었다. 공장의 마당 한가운데는 대리석들과 사기들을 박아서 커다란 윷판을 만들었는데 명절날이나 휴식일에는 직장별 대전으로 하여 그 윷판이 떠들썩해지는것이 상례였다. 《모야.》, 《모야.》하고 소리치다가 정말로 모가 나오면 울리는 환성이 축구경기장의 함성만 못지 않았다. 《모》나 《쓩》 같은 높은 점수를 잘 내는 사람과 결정적인 계기에 통탄할만한 점수를 내는 사람들이 공인되였는데 그것으로 해서 《3걸》이요, 《3쓩》이요 하는 사람들마저 생겨났다.
처녀들은 그 사람이 그중 잘 내는 윷가락점수나 공장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인기정도를 합해서 《3쓩》이요 《3걸》이요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냈는데 그 기준은 시기마다 조금씩 달라지군 했다. 이즈음 처녀들이 만들어낸 공장의 《3쓩》은 기사장인 김세천과 송옥림의 아버지 송명식 그리고 옥림의 재봉직장 한반장녀인이였다. 공장에서 그중 존경할만한 대상인 《3모》가 되지 못하기는 하지만 그다음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능력과 인격을 가지고있는 사람들에 대한 처녀들나름의 평가이기도 한것이였다. 그 《3쓩》중의 두사람인 기사장과 아버지에 비해서 제화직장장 조인섭은 윷가락던지는 수준이 높은축도 아니고 낮은 축도 아니며 재간과 인격면에서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 대상인 《3걸》 에 속하는 사람이였다. 그러니 지금 정문에는 공장의 《두쓩》과 《한 걸》이 서있는것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강철민도 《3걸》에 속했다. 엄벙덤벙 덤비기나 잘하는 강철민이 어쨌든 처녀들에게 그리 밉지 않게 꼽히는 《3걸》에 들어간다는것이 옥림에게는 놀랍고 리해되지 않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처녀들은 송옥림에게 소근소근하는 귀속말로 《옥림아, 이제 너희 아버지가 공장의 <3모>중의 한사람이 되겠구나.》라고 말하군 했다. 공장처녀들은 지배인과 당비서 그리고 공장적으로 제일 손꼽히는 혁신자를 《3모》라고 꼽았다. 그런데 전 지배인은 나이가 많아지면서 노상 병원신세를 졌다. 그 지배인을 대신하여 부지배인인 옥림의 아버지가 지배인사업을 대리했고 그래서 공장에는 옥림의 아버지가 지배인이 된다고 소문났었다. 하지만 지배인으로는 시내에 있는 다른 신발공장인 보성신발공장에서 직장장으로 사업하던 김윤화라는 녀인이 임명되여왔다. 아버지를 몹시 따르고 존경하고있는 송옥림은 아버지가 《3모》가 되지 못한것이 못내 의아했고 서운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아버진 왜 지배인이 되지 못했을가요?》
문득 어머니의 얼굴은 입학시험에서 미끄러진 수험생같은 얼굴이 되여버렸다. 어머니는 말없이 앉아있다가 쓸쓸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힘이 없어서 그러지.》
송옥림은 말뜻보다는 어머니가 지금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질시를 표시하고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눈이 동그래졌다. 힘이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고 묻고싶었으나 어머니의 얼굴이 하도 서글퍼보이고 심각해보여 묻지 못하고말았다. 하지만 가슴속에는 그 말이 그냥 감돌았다.
힘이 없다는 소리는 무슨 소릴가? 시인민위원회에서 부장으로 사업하고있는 어머니에게는 혹시 어떤 인과관계나 금전관계를 《힘》으로 여기는 옳지 못한 견해가 자리잡고있는것은 아닐가? 하지만 만약 그것을 《힘》으로 본다면 아버지만큼 우아래로 아는 사람들이 많고 수단이 좋으며 사업에서나 생활에서나 막히는것이 없고 부러운것이 없는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된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어떤 힘겨운 자재를 구입해야 할 일이 생기면 아버지를 찾아와 부탁하군 했고 아버지는 언제 한번도 그 사람들을 실망하게 한적이 없었다. 생활에서도 기름기가 흐르는 그들의 가정생활을 두고 사람들은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몰랐다. 만약 그런 아버지가 《힘》이 없는 존재라면 새로 지배인이 된 김윤화라는 녀인은 도대체 얼마만한 《힘》을 가진 존재이란 말인가?
송옥림은 놀라움과 반신반의 그리고 알지 못할 호기심속에 새 지배인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가 보건대 새 지배인 김윤화는 분명 평범해보이는 녀인이였다.
송옥림은 어머니가 아버지가 지배인이 되기를 바랐고 믿었으며 그것이 허무하게 되여버린데 대해 불만스러워하고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한것이였다. 그런 생각으로 여겨보니 아버지가 지배인이 되지 못한 다음부터 어머니는 확실히 아버지를 어성버성하게 대하고있었다.
송옥림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어머니에 대한 불만과 의문을 느꼈다.
인간에게 직무란 책임감과 의무의 표시일뿐이지 결코 인격이나 능력의 표시는 아닌것이다.
바로 그런 복잡하고도 야릇한 심정으로 송옥림은 아버지를 지켜보고있는것이였다. 아버지는 화물자동차옆에 선채 기사장 김세천, 제화직장장 조인섭과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