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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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일은 국제부녀절이다. 퇴근준비를 서두르는 류성신발공장 처녀들은 벌써부터 명절기분에 휩싸여있었다. 어머니들의 명절이자 자기들의 래일이기도 한 명절을 처녀들은 미쁘고도 야릇한 심정으로 일찌감치 즐거워하고있는것이였다. 달아오른 볶음판에서 기름이 끓듯이 기쁨과 즐거움에 화끈 달아오른 처녀들은 사방에서 웃고떠들었다.

《얘얘, 좀 빨리 하렴.》

《얘들아, 얘들아, 내 목도리 못봤니?》

《서둘러! 꽃매대들에 벌써 좋은 꽃은 하나도 안남았을거야.》

《오늘같은 날 제일 좋은 꽃은 남자들이 다 사간대.》

《호호…》

《나두 빨리 꽃을 받아봤으면!》

《그럼 너도 어서 시집가렴!》

처녀들은 모여서서 허리가 아프도록 웃고 까불었다.

해마다 맞이하는 국제부녀절이지만 이해의 국제부녀절은 류다른 느낌과 충동으로 사람들에게 와닿았다.

우리의 자주권에 속하는 인공지구위성발사를 두고 당치않은 제재를 고안해낸 미제와 그 추종세력으로 하여 공화국은 제3차 지하핵시험을 단행하게 되였고 정세는 일촉즉발의 첨예한 국면에 들어섰다. 우리의 초병들은 이미 모든 무기들의 방수포를 벗겼다.

하지만 정세가 아무리 엄혹해도 우리 생활의 빛과 향기는 사라지지도 덜어지지도 않았다. 사람들의 기억속에는 한해전 국제부녀절을 맞으며 혁신자들과 공로자부부들을 공연에 초대하시고 축하해주시던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남아있었다.

재봉직장 재봉공인 송옥림도 역시 즐거움에 겨워 웃고 떠들며 동무들과 함께 공장구내길을 걸어가고있었다. 문득 등뒤에서 찾는 소리가 들렸다.

《옥림아!》

돌아보니 공무직장에 있는 중학동창생처녀가 다가오고있었다. 동창생처녀는 재미있다는듯한 얼굴로 등뒤에 무엇인가를 감추고 오다가 옥림의 눈앞에 쑥 내밀었다.

《받아! 우리 직장의 강철민동지가 주더구나. 그런데 꼭 래일 아침에 열어보래.》

동창생처녀는 사치한 끈으로 포장한 하얀 종이곽에 묘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살짝 바른채 내밀고 서있었다. 송옥림은 저도 모르게 눈을 흡뜨고 그것이 마치 폭탄꾸레미이기라도 한것처럼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이건 뭐니?》

《글쎄 나도 모르겠어.》

《모르면서도 막 받아서 나한테 가져오니?》

《글쎄 나도 뭔가 미타해서 국제부녀절날 처녀에게 이런걸 주는게 아니라고 했더니 시침을 뻑 따고 하는 말이 래일은 어머니들만이 아니라 어머니가 될수 있는 처녀들도 존경받고 우대받는 날이라나.》

《세상에!》

송옥림은 꼿꼿하게 굳어져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옛 무사의 투구같은 요란스러운 안전모를 쓴채 오토바이에 올라앉은 강철민이 어디선가 자기를 지켜보고있는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강철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왜서인지 공장의 구석구석에 그의 지꿎은 눈길이 숨어있는듯이 느껴졌다. 송옥림은 약이 오르는듯한 심정이였다.

강철민은 옥림이 중학교시절부터 잘 알고있는 청년이다. 어릴적부터 책읽기를 즐겨한 옥림은 놀라리만큼 많은 책을 가지고있는 평양신문사 기자인 강근엽의 집에 자주 갔다. 그 강근엽기자의 외아들이 바로 강철민이였다. 유명한 기자는 착실하게 책을 읽는 옥림에 대한 칭찬의 뒤끝에는 꼭 자기 아들에 대한 실망과 불안을 드러내군 했다.

《실은 이 책들도 그녀석을 위해서 태여난 해부터 차곡차곡 마련한 책들인데…》

《철민오빠가 책을 안읽나요?》

《읽기는 하는데 도무지 불안하거던. 보는지 먹는지…》

옥림은 잘 리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 내가 없으면 이 책들도 모두 흐지부지 없어지고말거다.》

옥림은 선천적이라고 할만치 약한것, 뒤떨어진것을 동정하며 도와주고싶어한다. 축구경기를 볼 때도 그는 버릇처럼 한점을 먼저 실점당한 팀을 응원한다. 그러다가 먼저 실점을 당한 그 팀이 이기면 누구보다 기뻐하는것이며 그대로 지면 눈물이 날만치 가슴아파하는것이다. 그가 보건대 강철민은 한점을 먼저 실점당한 팀이였다.

《내가 꼭 철민오빠가 책을 잘 읽도록 도와주겠어요.》

강근엽은 씁쓸한 얼굴빛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만둬라! 뭐 말이 모자라구 통제가 모자랐겠니. 마음먹기를 잘 먹어야지. 이건 그저 염소새끼처럼 에잇, 에잇 하구 뿔질을 해가지구있으니.》

《에잇이라니요?》

《에잇, 재미가 없다! 에잇, 그만두고만다! 이러는거 말이다. 사실 그건 일종의 태만이구 자포자기지.》

옥림은 남보다 키가 커서 걸어다니는것조차도 건들건들 하는듯이 느껴지는 그 모습을 참을길없는 동정심속에 그려보았다.

《들어봐라. 글쎄 그 녀석이 자기 동무네 집에 갔다가 외국산 전자제품을 에잇 하구 달려들어서 분해했다지 않니. 고장이 나서 유능한 수리공을 기다리구있는중이였는데 말이다. 그 집에선 이젠 그 전자제품을 아예 잡았다구 울상이 되였다더구나. 동무라는 녀석은 뭐 겁이 나서 달아났댔다던지… 그런데 그 녀석이 에잇, 우리가 못고칠게 뭐야 하구 달라붙어서 고쳐치웠다지 않니. 소경 문고리잡은 격이지만 다행은 다행이지. 하긴 그녀석이 TV나 라지오는 퍽 잘 고친다.》

옥림의 뇌리속에 강철민은 우습고 덜퉁스러운 존재로 새겨졌다. 하지만 어느날 그가 옥림이가 쓴 시를 보고는 그 시와 류사한 한편의 시를 보지도 않고 줄줄 외워버리는 바람에 그만 깜짝 놀랐었다.

《너 이 시를 보고 모방했지?》

《모방은 창조의 첫걸음이라고 했어요.》

옥림은 얼굴이 빨개서 변명했다. 강철민은 어른스러운 얼굴을 하고 옥림의 앞을 뚜벅뚜벅 걸었다.

《옥림아, 대낮에 자꾸만 해를 노래하면 누가 듣겠니? 별두 없는 깊은밤에 저 멀리에서 반짝이는 불빛 같은걸 노래해야지. 안그래? 그런데 너한텐 지금 온통 해만 가득차있거던.》

옥림은 눈이 둥그래서 강철민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과 표정속에 비껴있는 예민한 감수성과 자신만만함을 보았던것이였다. 강철민은 몇개의 시를 더 외웠다.

《이만한 시를 네가 쓸수 있니? 물론 노력하면 되겠지! 하지만 난 네가 정말 시인으로서 성공할수 있는가 하는거야. 중학시절에 시간과 정력을 랑비하면 인생은 내내 손해야. 시간과 정력은 재능에 바쳐져야 더 빛이 나는거야.》

멋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그 말에 옥림은 삽시에 주눅이 들어버렸다. 풀이 죽어 물었다.

《그럼 철민오빠 재능은 뭐나?》

강철민은 우월감이 배여든 시틋해보이는 얼굴을 천정을 향해 쳐들었다. 올려다보는 옥림의 눈에는 강철민의 코끝만이 보이는듯했다.

《내 재능은 우리 아버지나 네가 리해할수 없는거야!》

강철민은 짐짓 고민스러운 얼굴을 지어보이기까지 했다.

《사람은 일생 두가지 교육을 받는데 하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로부터 받는 교육이야. 자기 지향, 자기 감정 그리고 자기 재능으로부터도 많은걸 알게 되거던.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이걸 영 리해하려고 하지 않는단 말이야.》

옥림은 눈이 휘둥그래져 침을 꼴깍 삼키며 강철민을 바라보았다. 아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던 그의 아버지의 걱정은 사실 공연한것이였다. 강철민은 자기의 마음에 드는것은 통채로 삼켜버리는 천부적인 기억력을 가지고있었던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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