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6 장
정 련 기
27
(1)
병원에서 퇴원해나온 진호는 첫눈에 직장분위기가 달라졌다는것을 직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불과 보름남짓한 기간이였지만 몇달만에 돌아온것같은가 하면 마치도 생소한 곳에 처음 온것처럼 서먹서먹하기도 했다. 새삼스럽게 자기의 존재가 고독하고 서글펐다.
공장에서는 취입시험을 중단시켰을뿐 아니라 기술부기사장을 책임자로 하는 심사조가 구성되여 새 연료안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를 실시하고있었다. 기술안에 대한 기술적인 검정과 함께 창안자의 진의도가 무엇이며 혹시 막다른 처지에서 오는 반발적인 소행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없지 않다는것을 느낀 순간 그는 가슴이 미여지는것만 같았다.
(내가 이젠 그런 의심까지 받게 됐단 말인가!)
너무도 절망적인 사실이여서 불만을 터뜨릴수조차 없었다.
병원에 있을 때부터 어떤 타격이 있으리라는것을 공포속에 예감하고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가혹할줄은 몰랐었다.
전에 의심을 받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때는 진정에 대한 의심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의심이 확증된데 대한 무자비한 보복이였다. 그때는 불만과 분노를 앞날에 대한 희망에라도 걸수 있었지만 지금은 희망은커녕 사소한 기대조차 가질수 없었다. 오직 절망과 불안, 어둑침침한 고뇌만이 자기앞에 도사리고있을뿐이였다.
어떤 일도 시련이 있어야 재미가 있고 시련을 통해서 얻어낸 보람이라야 진정한 보람이라고 여겨온 자기였으나 이제 와선 그 시련이 지긋지긋하기만 했고 어떻게 그렇게 유치한 생각을 했댔는지 가소롭기짝이 없었다.
그것만이 아니였다.
그에겐 다른 또 하나의 고통이 있었는데 그것은 파악도 없는 기술안을 제때에 다잡지 못해 사고를 내게 함으로써 생산에 지장을 주었을뿐 아니라 대중을 옳게 이끌지 못했다는것으로 하여 제철소당위원회로부터 초급당비서가 추궁을 받고있다는 사실이였다. 책벌이 적용되리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 일을 어떡하면 좋은가?》
태수를 붙들고 호소해보았지만 그 역시 아무 대꾸를 못했다. 웬만한 일쯤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그였으나 요즘은 어째선지 그전처럼 활기에만 차있지 않았다. 줄곧 무슨 생각에 골똘하기도 했고 갑자기 속빈 탄식을 터뜨리며 허구프게 웃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멀리했지만 그래도 태수와 정아만은 그렇지 않았다. 스스로의 의사이긴 했으나 그들 역시 사람들로부터 고립되다나니 자연히 자기와 같은 처지에 놓일수밖에 없기도 했다.
태수는 그새 자기한테 배당된 투사기자재로 취입기를 만들어놓았을뿐 아니라 파괴된 투사기까지 연료를 취입할수 있게 수리해놓음으로써 이젠 한쪽만이 아니라 로의 동서 량쪽에서 새 연료를 취입할수 있게 해놓았던것이다. 그런 그가 더없이 고마왔지만 진호는 되려 이렇게 말했었다.
《이제야 무슨 필욘가? 관두게!》
그때마다 태수는 왕청같은 말만 했다.
《모르겠다니! 난 아무리 따져봐도 리유를 모르겠단 말일세. 그의 말이 하나도 납득되진 않지만 그렇다고 반박을 할수가 없더란 말야. 글쎄 이게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의 말을 부정하면 마치 어떤 원칙을 반대하는것처럼 돼버리니 말야!》
그는 요즘 노상 명식이에 대한 생각밖에 없는듯싶었다. 언젠가 자기가 체험했던 그 불가사의한 감정을 오늘은 태수가 느끼는것이라고 생각하며 진호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거기에 그의 남다른 힘이 있지. 자기의 견해, 그것이 어떤것이라 해도 그것을 정당화하는 위력이 그에겐 있단 말이네.》
《그렇다고 그가 옳은거야 아니지 않나.》
《옳지 않다니? 그래 그걸 뭘로 증명하겠나. 그가 잘못한게 뭔가 말일세. 왜 사람의 진정을 리해해주지 않는가고? 어째서 마음속에 품은 간절한 마음은 알려 하지 않는가고? 흠! 그땐 그가 뭐라고 하는지 아나? 〈혁명하는 사람은 나타난 사실을 놓고 변명하지 않소. 결과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것보다 더 정확한 기준이 뭐요.〉 이런단 말이야. 뭐라겠어? 한마디로 말해 그는 철갑으로 완전무장했지만 우린 벌거숭이 알몸이거던. 그런 사람과 맞서기 위해서는 감정따위나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걸 알아야 해. 그런것은 그와 맞서기 위해 필요한것가운데 겨우 20분의 1에 지나지 않지.》
태수와의 이야기는 언제나 이런 결론으로 하여 다시 침묵으로 잦아들었으나 정아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마치 새 연료안이 지금 어떤 사태에 처해있는지, 그것으로 하여 사람들이 자기들을 어떻게 보고있는지 전혀 느끼지 못하는것같았다. 더우기 놀라운것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새 연료안을 정면에서 공격해나서던 자기가 이렇게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것이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로 되지 않을가 하는 위구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것이였다.
《이걸 봐요. 방금 유도로에서 시험한건데 탄소성분이 세개나 높아졌어요. 배합이 잘못일가요? 아니면 분석이 잘못됐을가요?》
이런 식이였다.
정아가 자기의 기술안을 지지해나섰다는 말을 첨 들었을 때 진호는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 졸지에 그가 돌변했단 말인가? 아무리 따져봐도 그의 의사를 가늠할 길이 없었던것이다.
(알다가도 모를게 처녀의 마음이라더니… 과연!)
무엇이 그를 돌변케 했는지 몰라도 필경 내막에 있어서는 변하기 잘하는 처녀들의 속성 즉 그처럼 자기와 지향을 같이할것같던 현옥이가 하루사이에 돌아앉은것과 같은 그런 변화가 정아에게도 일었다고 여겼댔으나 퇴원하여 그를 만나는 순간 진호는 자기의 짐작이 잘못이라는것을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절 욕했지요? 용서해주세요. 대신 이제부턴 조수로 일할게요.》
이 한마디 말에 그는 이 처녀가 무엇 하나 마음속에 숨기지 못하는 아주 솔직하고 대담한 처녀라는것을 직감했고 특히 그가 어떤 일시적인 충동으로 취하는 행동이 아님을 알수 있었다.
다음날부터 그는 정말 성실한 조수로 일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해야 할바를 다 알고있다는듯 그의 행동은 자못
그의 이런 행동에는 인위적인 진실을 나타내기 위한 과장된 표현이 조금도 없었을뿐더러 다만 하던 일을 계속하는듯한, 그것도 무척 흥미를 가지고 하는듯한 인상뿐이였다. 당돌하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한 그의 행동이 놀랍기도 했으나 한편으로 더없이 고맙기도 했다.
이제야 무슨 소용이냐고, 괜한 고생은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싶었지만 막상 그 말을 하려니 그것을 표현할 말마디보다 사람들한테서 멸시를 받고있는 자기의 비참한 처지가 되새겨지면서 울분이 솟구쳐올라 차마 입을 열수가 없었다.
이 두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멀찌감치 물러나 싸늘한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다.
하지만 어느쪽이라고 찍기 어려운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책임기사 기철이였다.
진호는 누구보다 그가 자기에게 랭담한 태도로 나오리라고 여겼다.
그런데는 워낙 새 연료안에 대해 품고있는 의견도 의견이지만 중유절약안을 배반하고 자기의 새 연료안에 합세해나선 정아의 괘씸한 처사가 그를 더욱 그런 감정에 북받치게 하리라는것은 당연한 리치였기때문이였다. 한데 그는 침묵으로 아니, 도리여 호의적으로 자길 대하는것이였다.
언제나처럼 긴장한 표정으로 그가 마주볼 때면 마치 자기가 온당치 못한 계책을 꾸며 그에게 타격을 가하게 한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 역시 이것을 속으로는 느끼고있지만 지나친 격분으로 하여 터놓지 못하고있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으로 당황하게까지 되였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을가. 진실로 뭔가 깨달아설가? 아니면 가슴속에 맺힌 원한때문일가?)
도저히 종잡을수 없었다. 보매 그는 어떤 사소한 실수로 하여 더 큰 오해나 받지 않을가 하여 조바심하는듯한 눈치였는데 이것이 진호에게는 더 난처한 노릇이였다.
확실히 자기와 책임기사사이에는 표면상으로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사업을 토론하면서도 속심으로는 상대방을 경원하고있어 진지한 태도로 바라보지 못하는것은 물론 지어는 싸울래야 싸울수도 없는 그런 관계에 처해있었다.
《오늘은 나하고 같이 가지 않겠나?》
휴계실을 나서던 진호는 방금 목욕을 하고와서 옷을 갈아입던 로장이 이런 말을 하는 바람에 뒤돌아보았다.
《어델 말입니까?》
《글쎄 따라만 오게. 혹시 한잔 있을지 알게 뭔가! …》
땀방울이 맺혀있는 그의 얼굴에 얼핏 한줄기 미소가 스쳤다. 입원해있은 자기를 생각해서 어떤 별식을 마련해놓고 집으로 가잔다는것을 짐작 못한 진호가 아니였으나 이 기회에 내심에 이는 고충을 털어놓고싶었던 그는 로장을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사실 로장을 마주할 때마다 진호는 은연중 집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속심을 털어놓고싶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외모와 체취는 전혀 달랐지만 가까이하면 할수록 점점 아버지와 류사한 점을 찾아보게 되였고 그리하여 저도 모르는새에 아버지처럼 대하게 되는것이였다.
일전에 투사기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던
아버지도 잘못을 뉘우치는 자기앞에서는 그것이 아무리 엄중한것이라 해도 언제나 이렇게 너그러웠으며 또 이처럼 행동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