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서 장
(3)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가 의식을 차렸을 때 주변은 아무일도 없은듯 고요했다. 유난히도 따뜻한 해빛이 그의 얼굴을 어루쓸고있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어머니며 사람들이며 그리고 의사의 모습이 부옇게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생의 느낌이였고 모습이였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기쁨보다 먼저 공포와 위구가 가슴을 휩쓸어갔다. 자기의 귀전에 울리던 한윤걸의 숨소리며 목소리가 똑똑히 상기되였다.
김윤화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속삭이듯이 물었다.
《정치지도원동진?…》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귀안이 막혀든것이라고 생각될만큼 그렇게 조용하고 고요했다. 가슴을 아프게 깨무는 무서운 예감에 김윤화는 몸을 떨었다. 얼없이 자기를 에워싼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몸부림치듯 몸을 일으켰다. 연기만 피워올리고있는 집을 보았고 그다음은 한쪽켠에 쪼그리고앉아 울고있는 혜성이를 보았다. 불에 그슬리고 재티에 람루해진 모습으로 울고있는 모습이였으나 기쁨과 안도감에 가슴이 쩌릿해오는듯했다. 한윤걸의 모습도 어디엔가 있을것같았다.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다음순간 혜성이와 좀 떨어져 사람들이 누군가를 둘러싸고 울고있는것을 알아보았다. 섬찍한 예감이 온몸을 얼구는듯했다. 만류하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다가 숨을 들이키며 멎어서고말았다.
누워있는 사람은 한윤걸이였다. 한윤걸은 마치 잠든것처럼 누워있었다. 참혹하리만치 상하고 람루해진 모습으로 마치 힘들어서 쉬고있는듯이 누워있었다. 사람들과 군인들이 그를 둘러싸고 억이 막혀 몸부림을 치고있었다.
《정치지도원동지! 눈을 뜨십시오! 눈을 뜨십시오!》
그 애통한 곡성이 모든것을 깨닫게 했다. 김윤화는 비명을 질렀다.
비칠비칠 다가가 정신없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믿고싶지 않은 그 무서운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눈앞이 아찔해와 발을 꼬며 비칠거렸다. 한없는 공포에 잠겨 얼없이 중얼거렸다.
《정치지도원동지, 정치지도원동지!》
그 순간이였다. 문득 사람들의 절통한 울음소리가 멎어버렸다.
주변은 한순간 귀안이 웅 하고 우는듯한 정적속에 잠겨버렸다. 김윤화는 놀라 얼굴을 들었다. 그 순간 흠칫 몸을 떨었다. 승용차에서 내려서는 어떤 녀인을 보았던것이였다. 그 녀인은 임신부였다.
김윤화는 숨을 삼킨채 굳어져버렸다. 그가 한윤걸의 안해라는것을 알아차렸다. 한순간 그 녀인이 몹시도 낯이 익다는것을 느꼈으나 창황중이라 어디서 만났었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한없는 아픔과 절망, 련민과 죄의식으로 하여 주변은 순식간에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녀인은 너무나도 고요해진 주변을 겁이 난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떨면서 묻듯이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고있었다. 한 군관이 다가가 목쉰소리로 무엇이라고 말하는듯했다. 녀인은 넋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믿을수 없는듯, 모든것을 거부하듯 고개를 가로저어보였다. 애절하고 황겁하게 사람들을 더듬는 그 녀인의 눈길이 김윤화의 얼굴도 스쳐지나갔다.
한순간 김윤화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순간에야 바로 그 녀인이 왜 그렇게도 낯이 익은가를 깨달았던것이였다. 그는 김윤화가 중학시절부터 너무도 잘 알고있는 녀인이였다.
이 순간 김윤화는 어딘가 그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숨어버리고싶었다. 한없는 아픔과 죄의식으로 목놓아울며 어디론가 도망쳐가고싶었다. 한윤걸을 둘러싼 군인들과 사람들은 너무도 절통하여 땅을 치며 울었다.
《정치지도원동지! 아주머니가 왔습니다. 한번만… 한번만 눈을 뜨십시오!》
《이렇게 가면 우린 어쩝니까? 이제 아들이 태여날거라구 그렇게두 기뻐하더니… 아주머니가 왔는데 왜 이러고있습니까? 정치지도원동지!-》
눈을 흡뜨고 굳어졌던 녀인이 정신없이 남편앞으로 달려왔다. 무엇인가 목갈린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오다가 발을 헛짚는듯하더니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땅바닥에 온몸을 세차게 부딪치며 손쓸새없이 쓰러져버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아, 가슴아픈 순간이여!
녀인은 병원으로 실려갔다. 망연하여 굳어진 사람들의 귀전에 혜성이의 목갈린 소리가 들려왔다.
《정치지도원아저씨 정말 죽었나요?》
혜성이의 부모들이 목놓아울었다. 김윤화의 어머니가 한윤걸의 온몸을 흔들며 몸부림을 쳤다.
《정치지도원! 눈을 뜨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소?》
혜성이가 무릎걸음으로 한윤걸에게 다가갔다. 한윤걸의 얼굴을 정신없이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소리쳤다.
《아저씨 눈섭이 움직였어요! 아저씨가 살아나요!》
주위는 한순간 고요해졌다. 숨을 멈추어 버린 사람들의 눈길이 한윤걸에게로 쏠렸다. 하지만 심장을 움켜쥐는듯한 정적속에 바람결에 설레이는 백양나무의 그림자가 그 얼굴에 얼른거릴뿐이였다. 눈부신 정오의 해빛이 나무가지사이로 흘러들어 한윤걸의 얼굴을 환하게 감싸안고있었다. 다시금 울음소리가 터졌다. 혜성이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듯 더 바투 다가앉으며 자기의 두손으로 험해진 한윤걸의 얼굴을 살며시 닦아주었다. 정성을 담아서, 놀랄가봐 저어하듯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나두… 죽을번하다가 살아났는데…》
울음소리가 주변을 흘렀다. 애오라지 한가닥 기대를 안고 온몸으로 한윤걸을 지켜보던 혜성이도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저씨, 죽지 말라요!》
그 애는 한윤걸의 온몸을 흔들었다. 모두를 휘둘러보며 구원을 청하듯 애절하게 부르짖었다.
《정치지도원아저씨… 살려달라요!》
모두의 가슴을 찢어발기는듯한 애통한 울음소리가 울려갔다.
《아저씨이!-》
…
한윤걸의 품속에서 어느 순간에 깨끗이 고쳐놓은 사기인형이 나졌다. 한 군관이 눈물속에 그 인형을 내밀었을 때 혜성이는 받아들념을 못하고 비실비실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널 위해서 정치지도원동지가 고친거다. 어서 받아라! 네가 받아야… 정치지도원동지두 좋아한다!》
사기인형을 든 군관의 콱 갈린 목소리였다. 혜성이는 구원을 청하듯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김윤화는 목이 콱 메여 그저 고개만 끄덕여보였다. 혜성이가 사기인형을 받아들었다. 그 인형을 들여다보며 비죽비죽 하다가 왕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축구선수두 살아나는데 아저씬 왜 죽었나요? 인민군대두 죽나요?》
《얘야!-》
김윤화는 혜성이를 끌어안고 소리내여 울었다. 바로 그 순간 김윤화는 아래배에 가해지는 무서운 동통에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지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
그날 두 녀인이 실려갔던 구역인민병원 산부인과의 한 의사는 두 녀인의 병력서중에 한 녀인의 병력서에만 갓난아기의 몸무게와 성별을 적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