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서 장

(2)

 

한윤걸은 결혼한지 여러해가 지났지만 지금껏 자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안해가 평양산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임신을 하게 되였다는것이였다.

《원체 인상이 좋은 사람인데 이즈음은 노상 싱글벙글해서 다니지. 전사들 사정, 마을사람들 사정을 그 사람만큼 속속들이 헤아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그런 사람한테 생긴 기쁜일이니 모두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좋아하지.》

김윤화는 한윤걸정치지도원의 안해는 어떤 녀자일가 하고 저혼자 생각해보았다. 이윽고 혜성이가 무엇을 하고있을가 하는 걱정이 들어 다시 가보았다. 꼬맹이는 종이장들을 방 한가득 널어놓고 엎드린채 그림을 그리고있었다. 김윤화는 마음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도 어디엔가 갔다오겠다면서 집을 나섰다. 김윤화는 제나름의 공상과 상념에 잠겨 혼자 앉아있었다. 저혼자의 생각에 소리없이 웃기도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혜성이가 구겨진 종이장들을 펴서 그림을 그리겠다며 전기다리미질을 하고있을줄은 꿈에도 알수 없었다.

그애는 다리미를 끄지 않은채 그대로 놓았고 그래서 거기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자 겁이 나서 물을 가져다가 다리미에 끼얹었다. 다리미에서 불꽃이 튀였고 지붕우의 전기선에서도 불꽃이 튀였다.

알길없는 연기냄새를 느끼며 김윤화가 마당에 나왔을 때 혜성이네 집지붕에서는 벌써 뻘건 불길이 널름거리고있었다. 김윤화는 한순간 믿어지지 않아 두눈을 흡뜬채 굳어졌다. 온몸이 얼어드는듯했다.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듯 웨쳤다.

《혜성아!》

김윤화는 어쩔바를 몰라 한자리를 뱅뱅 돌았다. 바로 그때 불길이 너울거리는 집안에서 목을 움켜쥐인듯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혜성이의 울음소리였다. 그 소리는 김윤화의 가슴속을 화끈 단 손으로 세차게 쥐여박는듯했다. 더 생각할 사이없이 김윤화는 불길이 솟구쳐오르는 집으로 달려갔다. 열쇠를 열려고 했다. 그러나 열쇠가 도무지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더더욱 자지러졌다. 엄마를 찾다가 선생님을 찾고 그다음은 윤화이모하고 자기를 찾는다.

《혜성아, 조금만… 조금만… 내 이제…》

김윤화는 경황없이 중얼거리며 열쇠를 열려고 모지름을 썼다. 말을 듣지 않는 열쇠를 마구 잡아당기고 흔들었다.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듯 소리를 지르며 마구 당기고 비틀었다. 드디여 열쇠가 열렸다. 문을 열었다. 그 순간 김윤화는 밖으로 확 하고 뿜어져나오는 불길에 밀치운것처럼 비칠거리며 물러섰다. 문을 여는 서슬에 더더욱 세차진 불길이 온 집을 감싸는것을 공포에 질려 바라보았다.

안에서 울리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뚝 끊어졌다. 무엇이라고 소리를 지르고싶었으나 연기를 마신탓인지 목이 콱 막혀들어와 아무 소리도 낼수 없었다.

김윤화는 두눈을 흡뜨고 악몽처럼 무서워지는 그 광경만을 넋없이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도움을 청하듯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그 순간 방안에서 다시금 울리는 혜성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손만 내뻗치면 그 애를 끌어내올듯싶은 다급하고도 무분별한 욕망이 가슴을 화끈 달게 했다.

김윤화는 몸부림치듯이 불길속으로 뛰여들었다. 그러나 단 두걸음도 못가서 윤화는 자기가 이 불길앞에 너무도 무기력하고 암둔하다는것을 공포속에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숨길을 콱 틀어막는듯한 짙은 연기와 온몸을 죄이는 열기에 어디가 어딘지도 가려보지 못하고 두팔을 마구 휘저으며 헛되이 맴돌이를 쳤다. 허둥거리다가 어떤 벽에 힘껏 부딪치고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벌써 자기의 머리우로 떨어져내리는 불덩이를 보며 다시금 비명을 질렀다. 밖으로 뛰여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허겁지겁 돌아서는 순간 뒤쪽에서 신음소리마냥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저도 모르게 몸을 떨며 타성처럼 다시 그쪽으로 돌아섰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 오로지 그 울음소리가 들려오는쪽만 바라고 몸부림치듯 걸어갔다. 드디여 방 한구석에 모포를 뒤집어쓰고 박혀든 희미한 형체를 보았다. 달려들듯 다가들어 모포를 벗겼다. 아이는 흰자위만 남은듯한 눈으로 목청껏 울음을 터치며 그의 품으로 와락 안겨들었다.

《이모!-》

대답조차 할새가 없었다. 화들화들 떠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돌아섰다. 그러나 그 순간 무섭게 타오르는 불길과 숨막히는 연기로 하여 정신이 핑 돌고 아무것도 볼수가 없었다. 무턱대고 문이 있다고 생각되는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길다랗게 보이는 불줄기가 그들을 향해 떨어져내렸다. 눈을 꽉 감으며 주저앉았다. 화끈한것이 머리어방을 스쳐지나가는것을 느꼈으며 그 순간 발밑에서 무엇이 튀여나가는듯한 요란한 소리를 들었다. 그다음은 숨이 꺽 막혀왔다. 무서운 손길이 목을 꽉 움켜잡은듯했다.

그 순간 김윤화는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것이 자기의 가슴팍에 안겨 울고있는 혜성이의 울음소리인지 아니면 자기 귀전에 울려오는 배안의 생명의 울음소리인지 알수가 없었다. 비몽사몽간의 그 울음소리가 이제 자기가 죽을것이라는 처절한 최후의식을 안겨주는것만 같았다.

안된다! 죽어서는 안된다! 여보, 도와줘요!

김윤화는 저도 모르게 남편을 향해 목이 터져라 구원을 울부짖었다.

그러나 목에서는 아무 소리도 새여나가지 않았다. 온통 벌건 화염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이때였다. 김윤화는 문득 한줄기의 바람같은것이 자기를 휩싸안는듯한 기운을 느끼며 소스라쳐 눈을 떴다. 거밋하고 후끈한 형체가 무슨 소리인가를 목청껏 웨치며 김윤화를 떠일으켜세우고있었다. 온몸을 확 태우는 구원의 예감. 덮어놓고 그 형체에 매여달리는 순간 그는 그것이 다름아닌 정치지도원 한윤걸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눈물이 콱 솟구칠것만 같았다. 그의 가슴팍에 아이를 안은채로 안겨들었다. 바로 그찰나 또다시 머리우에서 불이 쏟아져내렸다.

어깨쪽에 와닿는 무서운 타격과 숨길을 막는듯한 뜨거운 기운. 김윤화는 또다시 쓰러졌다. 무엇이라고 웨치는 소리를 들었으나 이제 자기가 더는 움직일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경황없이 그의 가슴속에 혜성이를 내밀었다. 문쪽으로 힘껏 떠밀었다.

《아이를, 아이를…》

그 순간 김윤화는 불길보다 더 황황 타고있는듯한 한윤걸의 두눈을 보았다. 두려우리만치 번뜩거리는 두눈이 김윤화의 가까이에서 이글거렸다. 그 두눈은 김윤화를 이끌고 불길속을 빠져나가려고 헛되이 애를 쓰다가 그만에야 저도 불을 들쓰고 넘어지고말았다. 그가 무엇이라고 목청껏 소리쳤으나 지붕에서 터져나가는 기와장소리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그다음 그가 몸을 날리듯 아이를 안고 사라지는것을 보았다. 안도감과 불시에 몸을 싸안는 서러움을 느끼며 김윤화는 불길이 덜한 구석쪽으로 몸을 옹송그렸다. 처절한 최후의 감각속에 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자기 배속의 생명에게 용서를 빌고 리별을 고했다. 모든것을 체념하듯 눈을 감았다.

다음순간 김윤화는 자기의 온몸이 허궁 뜨는것을 알았다. 화끈하면서도 거친 숨소리가 자기의 얼굴에 와닿는것을 똑똑히 느꼈다. 눈을 떴다. 그 순간 김윤화는 자기를 안고 불길속을 헤쳐나가고있는 무서우리만치 험해지고 람루해진 얼굴을 보았다. 한윤걸이였다. 아이를 구원하고 그는 또다시 자기를 위해 뛰여든것이였다. 온몸으로 불길을 떠밀고 나가는 억센 육체를 너무도 가까이에서 느꼈다. 안도감과 고마움속에 스며드는 한줄기 부끄러움마저 안고 어서어서 하고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바로 그 순간이였다. 김윤화는 불덩어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크고 무시무시한 불줄기가 자기들의 머리우로 곧추 떨어져내리는것을 똑똑히 보았다. 불에 휩싸인 보짱이 통채로 떨어져내리는것이였다. 비명을 지르며 눈을 꽉 감아버렸다. 다음순간 자기를 힘껏 덮싸안는 후덥고 막중한 무엇인가를 느꼈다. 그것은 한윤걸의 온몸이였다. 한윤걸이 김윤화를 덮싸안고 엎드린것이였다. 한덩어리로 이어진듯한 몸을 통해 빠르게 그리고 힘있게 뛰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은듯했고 무서운 타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그 처절한 모지름과 전률이 전해져오는듯했다. 김윤화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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