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서 장
(1)
《어느날 하늘의 옥황상제가 신하를 불러 인간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것 세가지를 골라오라고 분부했다누나. 그래서 신하는 인간세상에 내려와 제일 아름다운것 세가지를 골랐는데 하나는 예쁜 꽃이였고 다른 하나는 웃음짓는 어린애의 얼굴이였고 다른 하나는 자식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얼굴이였다누나. 신하는 인간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이 세가지를 가지고 하늘로 올라갔지. 그런데 신하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사이에 꽃은 시들어서 볼꼴이 없게 되고 어린애의 웃음도 겁을 먹고 이그러져서 아름다운 기운을 다 잃어버리고말았지. 그런데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한결같이 변치 않고 아름다운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얼굴이였다누나. 옥황상제는 인간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였다는구나.》
이른 아침 김윤화는 시내의 유축에 자리잡은 친정집마당가의 활짝 핀 정향꽃나무앞에 서서 언젠가 어머니가 들려준 이런 이야기를 생각하고있었다. 만발한 꽃을 보며 미구하여 태여날 아기와 어머니가 될 자기를 생각하다나니 자연히 그런 이야기가 떠오른것같았다. 그는 해산을 앞둔 부만한 몸매였다.
멀지 않은 등성이너머 인민군초소에서 군인들이 부르는 씩씩한 군가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녀인은 활기찬 군가소리가 벌들의 붕붕거리는 날개짓소리와 어우러지는 정향꽃나무를 바라보며 그린듯이 서있었다.
불현듯 젊은 녀인의 체내에서 아기가, 사소하고도 예민한 움직임으로 어머니에게 자기의 존재를 알리는 그 아기가 세차게 발길질을 했다. 애정과 행복, 공포가 뒤섞인 짜릿한 전률이 온몸으로 달려지나갔다. 아직은 습관되지 않은 행복감과 당혹감에 얼굴을 붉히며 젊은 녀인은 저혼자 조용히 속살거렸다.
《너 이제야 깨여났니? 그런데 깨나자마자 발길질부터 해?》
문득 대문가에 이웃집녀인의 모습이 불쑥 나타났다.
《윤화야, 너 거기서 뭘하니?》
김윤화는 깜짝 놀라 얼굴을 붉혔다. 이웃집녀인은 재미있다는듯, 알만하다는듯 웃어보였다.
《아이와 말을 하댔니?》
《아이참!》
《그래, 그럴 땐 다 그렇단다. 이달이 해산달이라지? 래일모레 동동이로구나. 첫아이는 앞산의 소나무가 새노랗게 보여야 낳는단다.》
부엌에서 김윤화의 어머니가 내다보았다.
《무슨 웃음소리가 이리 높나 했더니 혜성이 어머니가 왔구만.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나?》
《예. 아침일찍 어디 좀 갔다와야겠는데 우리 늦잠꾸러기가 어디 일어나야지요.》
《오, 그래서.》
《열쇠를 걸구 가는데 좀 봐줘요. 좀체 혼자 두고가자면 맘이 놓이질 않아요. 어제는 글쎄 이웃집 오리를 우리 집 창고에 가두어놓지 않았겠나요. 뭐, 오리가 알을 낳는걸 관찰한다나요.》
그들은 여섯살잡이의 장난꾸러기를 그려보며 소리내여 웃었다.
《요즘은 축구선수가 된다구 온통 발길질에 뿔질이지요 뭐. 회칠한 바람벽에 고무공자리를 내지 않나 장독을 뒤엎어놓지 않나. 그녀석 뒤를 한겻만 쫓아다니면 오금이 다 쑤시구 머리가 핑핑 돌아요. 오늘은 일요일이니 아예 문을 걸어놓고 가지요뭐.》
《알겠네. 어서 가보라구.》
이웃집녀인은 열쇠를 마당에 선 김윤화의 손에 쥐여주고는 돌아섰다.
김윤화는 열쇠를 쥔채 자기가 이웃집에 가보았다. 머지않아 어머니가 된다는 자각과 기쁨때문인지 그는 이즈음 어린아이들에게 못내 다심해지고 각근해졌다.
이웃집의 장난꾸러기는 정신없이 자고있었다. 김윤화는 마음을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잠시후 김윤화는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혜성이의 챙챙한 부름소리에 그만 눈이 둥그래졌다.
《아저씨, 아저씨!》
방문을 열고 바라보니 어느새 깨여난 혜성이가 다람쥐마냥 창문에 붙어서서 길쪽에다 대고 냅다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그 애가 소리지르는쪽 길가에서 급하게 걸어가던 인민군군관이 혜성이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김윤화는 그가 등성이너머에 자리잡은 인민군부대의 중대정치지도원 한윤걸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친정집에 와있는 동안 김윤화는 마을사람들과 친근하게 지내는 중대정치지도원 한윤걸을 알게 되였다. 한윤걸은 매일 아침 이 길을 지나 부대로 간다. 그런데 혜성이는 걸음이 바쁜듯한 한윤걸을 그냥 찾는다.
한윤걸이 어쩔수 없다는듯 혜성이를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김윤화는 저 애가 왜 저러나싶어 문을 열고 나갔다. 혜성이가 서있는 창문앞으로 다가서던 한윤걸이 김윤화를 알아보고 반색을 했다.
《아, 윤화동무군요!》
《안녕하십니까?》
《아저씨!》
창문가에서 혜성이가 불만인듯, 조급한듯 다시금 소리쳤다. 한윤걸이 어쩔수 없다는듯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혜성이에게 다가갔다.
《왜 그러니?》
《아저씨, 이거 좀 봐요.》
혜성이가 손에 쥐였던것을 한윤걸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어른손바닥만한 크기의 사기인형이였는데 체육모를 뒤로 제껴쓴 사내애가 옆구리에 축구공을 끼고 한발은 축구공우에 올려놓고 서있는것이였다. 호기있고 앙증스러운 기운이 풍겨오는 인형이였다. 한윤걸이 인형을 받아들었다. 그러다가 소리쳤다.
《아니, 이게 뭐냐? 너 이거 깨뜨렸구나!》
혜성이는 풀이 죽어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보니 정말 축구공을 안고있는 인형의 팔뒤쪽이 깨여져있었다. 볼썽없는 구멍이 뻥하니 뚫려져있었다. 혜성이가 주머니에서 깨여진 쪼각들을 꺼내더니 떨리는듯한 손으로 그것을 맞추었다. 묘하게 깨여진 그 쪼박들은 뚫린 구멍에 꼭 들어맞았다. 웃음을 거두고 아주 대단한 문제에 맞다들리기라도 한듯 그것을 들여다보던 한윤걸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안되겠구나! 내 새걸 하나 사주지.》
그러나 꼬맹이는 시무룩해서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럼 이 축구선수는 내내 이렇게 부상당한채로 있어야 하지 않나요?》
《아!》
한윤걸은 알만한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보매 꼬맹이에게는 인형이 사기로 만든 보통인형이 아니라 숨도 쉬고 말도 하며 뛰기도 하는 존재인 모양이다. 환상이 풍부한 꼬맹이인것이다. 한윤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하긴 축구선수가 부상을 당할수도 있지. 용감하게 몰고들어가서 슛을 해야 하니까. 그런데 부상당한채로 그냥 놔두면 축구를 더는 못하겠지? 어쩐다?! 그럼 우리 부대 군의소에 가서 치료를 해볼가?》
《정말이나요?》
《그래!》
《고쳐주지요?》
꼬맹이는 눈을 빛내이며 다짐을 두었다.
《그래! 내 오늘 저녁에 고쳐다주지.》
혜성이는 환성을 올렸다. 온갖 시름을 다 잊은듯한 그 기꺼운 고함소리에 김윤화와 한윤걸은 그만 소리내여 웃고말았다. 김윤화가 혜성이한테 눈을 흘겼다.
《정치지도원동지가 바쁘시겠는데 너 이게 뭐니? 이제 어머니한테 욕 먹지 않나 봐라.》
혜성이는 당장에 시무룩해졌다. 겁을 내듯, 도움을 청하듯 한윤걸을 바라보았다. 한윤걸이 웃어보였다.
《어머니한테 말하지 않으면 되지. 그렇지?》
김윤화는 웃고말았다.
《정치지도원동진 그저 아이들 편역이군요.》
《허리를 굽히고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사실은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김윤화는 새삼스럽게 한윤걸을 바라보았다.
《정치지도원동진 집에 아이들이 몇입니까?》
한윤걸은 부만한 몸매의 김윤화를 일별하며 쑥스러운듯 웃었다.
《난 아직 아버지후보인걸요.》
《아버지후보요?》
《이제 두달을 더 있어야 아버지가 될수 있으니 아버지후보지요.》
김윤화는 소리내여 웃었다.
《정치지도원동진 자기 자식이 태여나면 무척 고와하겠군요.》
한윤걸은 소리없이 웃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난 앞으로도 제 아이, 남의 아이 가려서 고와할것같지 못합니다. 난 내가 군복을 입었다는 긍지를 내가 저 아이들의
웃음과 꿈을 지켜주고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느끼군 하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자기
한윤걸은 자기를 바라보는 김윤화와 혜성이의 시선앞에 빙긋 웃어보였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혜성아, 저녁에 만나자.》
한윤걸은 씨엉씨엉 걸어갔다. 등성이너머로 사라져가는 한윤걸을 바래우고난 김윤화는 창문가의 꼬마에게로 돌아섰다. 한윤걸과는 다르게 자기 편역을 들어주지 않은 자기를 다소 경계심과 불만에 차서 바라보는 꼬마의 시선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말았다.
《요, 장난꾸러기! 얌전하게 있지 않으면 혼내주겠어. 열쇠를 열어주겠으니 어서 나와. 우리 집에 가자.》
《안가겠어요!》
뜻밖에도 꼬마는 당돌하고도 완강하게 거절했다.
《안가겠어?》
《그래요!》
《너 또 무슨 장난을 치구싶어서 그러니?》
《장난이 아니예요. 그림을 그려야 해요. 축구선수를 그려야 하거던요.》
《그래! 그거 참 좋은 그림이로구나. 그럼 그림을 다 그린 다음 나한테 보여주겠니? 오늘은 내가 네 유치원선생님이 된셈치자꾸나.》
《쳇, 유치원선생님이 뭐 지주놈처럼 배가 나왔나 뭐.》
김윤화는 그만 입을 가리고 소리내여 웃고말았다. 자기에 대한 완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있는 꼬마를 집밖으로 끌어내기를 단념하고말았다. 그래서 열쇠를 열어주지 않은채 장난질을 치지 말고 그림을 잘 그리라고 이르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와 한윤걸을 만났던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가 한윤걸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