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회)
제 5 장
할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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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실 명식은 지금 자기가 그 어느 문제보다도 깊이 이 복잡한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있을뿐더러 이 사건을 완전히 해명함으로써 자기의 실력이 또 한번 과시될것이며 따라서 집단을 위해 거대한 리익을 가져오게 되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고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저마끔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지만 오직 한사람, 정아만은 아까부터 꼿꼿한 눈길로 명식이를 치떠보고있었다.
그는 지금 어떤 의혹과 불만으로 하여 질정할수 없는 마음이였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명백했는데 그것은 실장이 진호를 몰아세우면 세울수록 반감은 어쩐지 진호에게가 아니라 실장에게 쏠리는 그것이였다.
(어째서 실장은 진호동무를 그렇게만 볼가? 진호동무가 그런 사람이라니? 사고를 내긴 했지만 어떻게 그가 집단을 우롱하고있단 말인가! 오히려 그야말로 누구보다 당의 뜻을 진심으로 받들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어떤 기술안을 대할 때에도 반드시 사소한 감정이나 주관을 경계하고 철저히 원칙적인 립장, 당적인 립장만을 견지해야 하오. 그러자면 우선…》
한마디한마디에 힘을 주어가며 강조하는 명식이의 말에 정아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더는 잠자코 앉아있을수 없었던것이다.
《저의 의견을 말해도 좋습니까?》
그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시에 자기한테로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에 다소 당황했으나 그런 당황에 비하면 내심에 이는 충동이 너무도 격렬했다.
《전 얼마전까지만 해도 새 연료안을 반대해온 사람입니다. 기술적인 타당성이 없는것으로, 주관적인 욕망에 불과한것으로만 말입니다. 그러나 진호동무의 기술안을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과정에 실로 많은걸 새로 깨닫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조용하던 회의장이 다시 술렁거렸다.
《그래 새로 느꼈다는게 뭐요?》
부기사장이 물었다.
총화모임이 새 연료안 하나에만 국한되는게 언짢아 어떻게든 회의를 제곬으로 끌어가려고 노력하던 그였으나 이젠 아무리 자기가 노력한다 해도 회의분위기를 돌려세우기는 글렀다고 여기고는 그럴바엔 아예 새 연료안 하나라도 똑바로 결론을 내려야겠다고 맘먹은것이였다.
《제가 알기에는 그가 연구하는 첨가제가 온도를 보충해줄뿐 아니라 연료의 이러저러한 부족점을 방지해주는 환원제로 또 촉매제로 되고있다는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는 벌써 적지 않은 성과를 이룩하고있습니다. 례를 들면 그 첨가제로 지금 로내 온도를 1 780°까지 보장했는데 이것은 이전에 그가 시험했을 때보다 20°나 더 올랐다는것을 말해줍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회분이 많은 연료를 연소시킴에 있어서 작업공간에 재가 쌓이는것을 막기 위해 보충적으로 화실을 따로 설치하고 거기서 연소시키게 되여있다는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수백도나 되는 연도속에 직접 들어가 얻어낸 귀중한 자료입니다.》
정아의 두눈은 어느덧 열기를 띠고 반짝였다. 꽃술처럼 발딱 들린 속눈섭은 그린듯이 움직일줄 몰랐고 볼록 솟은 단단한 가슴은 흥분으로 하여 세차게 오르내렸다.
《이런 기술적인 타산도 타산이지만 제가 보다 새롭게 느낀건 그 기술안을 완성하기 위해 무엇도 가리지 않는 그의 고상한 정신적인 힘입니다.》
두손으로 커다란 주먹을 만든채 까딱 움직이지 않던 명식은 부기사장에게 처녀가 누군가고 물어보고는 눈을 스르시 감았는데 그 품은 마치 그런 말은 새삼스런것이 아니며 나아가서는 웃음거리로밖에는 되지 않는다는것을 보여주려는것같았다.
아닌게아니라 명식은 심정이요, 정신이요 하는 정아의 말이 가소롭기짝이 없었다. 생각같아서는 《여기가 뭐 시를 합평하는덴줄 아오? 우린 시인들이 아니라 기술자들이란 말이요. 그런 뜬소리들은 걷어치우시오.》하고 소리치고싶은것을 어쩔수 없었다.
《전 기술을 알기 전에 인간을 알아야 한다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고결한 정신적인 안받침이 없는 기술은 한갖 거품과 같이 무게가 없다고 한 리치가 무슨 뜻인가 하는걸 그 새 연료안을 따져보는 과정에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그 리치는 대학때 기철이한테서 배운것이지만 그에 따르는 진정한 가치는 오늘 진호한테서 깨달은것이였다.
《그러니 동문 우리의 과제들중에도 그런 정신적인 힘이 안받침되지 않은 기술안도 있다는거요? 우리의 기술안들은 우선 목적부터 다 국가를 위하고 근로자들을 위한데 있는게 아니겠소.》
《아니, 그렇지만 않다고 봅니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그런것도 있습니다.》
《있다?!》
부기사장은 눈을 크게 떠보이며 놀랍다는 시늉을 했다.
정아는 망설였다. 그러나 곧 마음을 정하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건 진호동무의 새 연료안에 비해 책임기사동무의 중유절약안이 그렇다고 봅니다. 저도 중유절약안이 실현될 가능성이 많다는건 압니다. 하지만 그건 새 연료안에 비해볼 때 확실히 현실에 피동적인것이 아닐수 없습니다.》
자리에 앉기는 했으나 정아는 자기가 무엇을 말했으며 그 말에 어떤 의미가 숨어있는가를 깨닫고는 소스라쳤다. 자기의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이 미칠 그런 말을 했다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자기가 한 말은 결국 진호의 새 연료안을 긍정하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사랑해마지않는 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는것이 아닐수 없기때문이였다. 앞줄에 앉아있는 책임기사의 너부죽한 잔등에 시선이 닿는 순간 그는 이것을 더욱 절감했다.
그러자 갑자기 비통한 마음으로 하여 가슴이 미여지는것같았다. 수치와 모멸로 하여 풀이 죽은 그가 저주를 담은 구슬픈 눈길로 자기를 쳐다보는 모습이 떠오르자 당장 울음이 북받쳐올랐다.
(아니야! 그래도 나는 옳게 행동했어! 그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또 집단을 위해서도! 지금은 몰라도 어느땐가는 그도 리해할거야. 꼭 리해하고말고.)
그는 나약한 감정으로 우유부단해지려는
(누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자비할수 없다고 했는가? 사랑하기때문에 더욱 무자비해야 하는거야!)
가슴은 널뛰듯 했지만 그 어떤 구속의 그늘도 비끼지 않는 마음이여서 행복했다. 감동과 격려에 찬 시선으로 자기를 돌아보는 태수를 대하자
그는 새삼스레 자기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처신했는가를 돌이켜볼수 있었고 그처럼
(고맙소! 정아동무! 장하오!)
태수의 눈길은 뚜렷이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오로지 그는 지금 책임기사가 자기의 목소리를 통하여 얼마나 자기가 힘들게 또 진정으로 얘기했는가를 조금이라도 짐작해주었으면 하는 그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그러나 기철이는 정아가 바라는 리해는 고사하고 도리여 분노와 수치로 하여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분하다 못해 숨이 막혔고 온몸이 덜덜 떨리기까지 했다. 흔히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모욕을 받았을 때 터뜨리군 하는 그런 성급하고도 격렬한 분노가 가슴속에 소용돌이치는것이였다.
처음엔 정아의 태도에 어안이 벙벙했댔으나 두 기술안을 대조하면서 중유절약안의 취약성을 까밝힐 땐 어떤 수치, 정신적인 라태에서 오는 모멸감으로 하여 미칠것만 같았다.
《이것 보오, 처녀동무!》
명식은 한동안 미간을 좁힌채 정아를 유심히 지켜본 다음에야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였는데 그 모습은 마치 이제야 그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파악했다는듯했다.
《물론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연료로 쇠물을 끓여야 하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한사람도 없을거요. 하지만 기술발전의 합법칙적과정을
무시할수야 없지 않소. 나도 동무가 말하는 그 첨가제가 어떤것인지 모르지 않소. 그러나 20도의 온도가 증가된것을 첨가제의 역할로 본다면
오산이요. 왜냐하면 여기에는 가스와 산소를 비롯한 보충연료들이 배합돼있기때문이요. 4천립방의 가스와 5기압의 산소―이것은 중유소비량의 절반을
담당할수 있는 열량이란 말이요. 설사 그 첨가제가 온도를 담보한다고 합시다. 새 연료에 의해 생기기 마련인 생성물처리는 어떻게 하겠소? 화실을
꾸려? 어디다 어떻게? 안되오, 절대로! 만약 지금단계에서 새 연료를 취입한다면 필경 로수명이 절반도 되기 전에 연도가 메여버릴것은 당연한
리치요. 이 난관은 엄연한 사실이며 현조건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아닐수 없소. 그렇기때문에
그는 이제부터 하는 말이야말로 자기 말의 가장 핵심이라는것을 강조하려는듯이 한동안 사람들을 주시했다.
《
《…》
장내는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나는 기술안에 대한 심의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새 연료안과 관련된 이런 현상을 그대로 묵과할수 없다는걸, 때문에 부당위원회에는 물론 상급당에도 그 실태를 보고하여 해당한 대책을 취하지 않을수 없다는것을 밝혀두는바요.》
명식의 나직한 목소리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의 결심을 관철하고야말겠다는 의지가 력연히 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