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회)

제 5 장

할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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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의실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였다.

공장내 기사들은 말할것도 없고 공장시험소와 흑색금속설계연구소의 연구사들까지 와있어 거의 빈자리가 없었다.

기술부기사장을 따라들어선 명식이가 집행석을 차지하자 곧 회의는 시작됐다.

자리에서 일어난 부기사장이 먼저 모임의 취지에 대해 말하면서 오늘은 부의 실장도 참가했으니만치 심사와 관련하여 제기할 문제들이 있으면 서슴지 말라고 발을 달았다.

야금일반에 대해서 특히 강철주조학에서는 일정한 권위가 있을뿐 아니라 외국에 기술고문으로까지 파견된적이 있는 그는 오늘도 모임을 주관할 때마다 짓군 하는 그런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떤 모임도 정도이상으로 엄숙하게 이끌어가군 했는데 그때면 목소리도 일반용이 아니라 공식용 즉 매우 뜨직뜨직하면서도 저력이 있는 목소리를 내는것이였다.

아무때나 자기만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닐뿐더러 때에 따라서는 남다른 리해력과 아량까지 가지고있는 그였으나 일단 이렇게 여러 사람들앞에 나설 때면 이상하게도 본래의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돼버리는것이였다. 그의 이런 버릇을 형식주의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보다는 순박성으로 여기면서 선망이 어린 눈길로 지켜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기사들이 한사람씩 일어나 자기가 맡은 과제에 대해 총화짓기 시작했다. 대개가 마감단계에 들어섰거나 계획보다 선행되고있다는 보고였다. 개중에는 설계심사를 당겨달라고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좋소! 아주 좋습니다!》

고개방아를 찧긴 했으나 부기사장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조금도 만족해하는 빛이 나타나있지 않았다.

《강철! 왜 강철설비를 맡은데서는 총화가 없소? 석동무!》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얼굴이 가무잡잡한데다가 머리가 가운데만 홀랑 벗어진 체소한 늙은이였다.

《두바닥로야 이달중으로 심의에 내놓게 돼있지 않소?》

《그렇긴 합니다만 사정이 좀 어렵게 됐습니다.》

목소리도 별나게 가늘고 쉬여빠진 목소리였다.

《어째?》

《그렇지 않아도 제기하려고 했지요. 저의 두바닥로개조안은 어디까지나 중유취입을 전제로 하고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다싶이 지금 강철직장에서는 중유가 아니라 새 연료를 취입하려고 하고있지요. 만약 그렇게 되면 로바닥구조는 물론 분출구의 위치와 각도도 다 달라져야 하는데 그것때문에…》

《가만! 그 새 연료라는건 무슨 소리요?》

부기사장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데 또 한사람이 일어나 자기 역시 그 문제가 명백해지지 않고는 상승도설계를 계속할수 없다고 했다.

《이거 문제로구만, 공장에서 승인한 일도 없는 기술안을 놓고 과제들을 흥정하다니? 공장에선 그 기술안에 대해 어떤 결심인지 아오?

담당자가 퇴원하기만 하면 사고심의부터 하자는거요. 단단히 문제를 세우고 당장 그만두게 하자는거란 말이요. 대체 그런 본때가 어디 있소. 아무 준비도 없는걸 망탕 시험하는가 하면 로까지 마사놓고… 작년에 그만큼 고생했는데도 성과가 없었다는걸 동무들도 다 알지 않소! 무시하시오. 그 기술안은 무시하란 말이요.》

《아니, 무시하다니요?》

회의실 중간에서 한사람이 불쑥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태수였다.

《그걸 어떻게 무시한단 말입니까?》

너무도 급작스런 그의 태도에 사람들은 놀랐다.

《물론 그 새 연료안이 어떤건지는 전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은것을 바쳐왔는가 하는것만은 잘 압니다. 대학초기부터 그는 오직 그 하나를 위해 모든걸 바쳐왔습니다. 아니, 그걸 위해 대학을 다녔다고도 할수 있지요. 휴식날이 따로 있은줄 압니까? 방학때도 그 하나를 위해 줄창 공장에만 나가살았습니다. 그 과정에 그는 눈까지 못쓰게 됐습니다. 육안으로 쇠물을 주시한것으로 하여 한쪽눈의 시력이 점점 잃어지고있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걸 무시해야 합니까? 그런데도 이미의 경험만 따지면서 안된다고 단정해야 하는가 말입니다.》

태수는 벌써 끓어오르는 격정을 주체하지 못하는상싶었다.

《태수동무!》

부기사장은 목소리를 낮추며 조용히 말했다.

《주관적인 욕망이나 소원으로 이루어질수 있다면 도대체 우리가 해결 못할 문제가 뭐겠소? 기술이란 욕망으로는 해결할수 없다는 진리를 알고나서야 비로소 제1보에 접하는게 아니요.》

《옳습니다. 저 역시 그가 지나친 욕망을 앞세우지 않나 해서 만류한적이 있지요. 론쟁도 하구요. 강좌의 선생들도 첨엔 다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주장을 기어이 고집했고 그 과정에 많은것을 이룩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걸 실현시켜보겠다고 여기까지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가 과연 아무런 담보도 없이, 확신도 없이 그런 용단을 내렸겠습니까?》

벗어놓았던 안경을 다시 낀 부기사장은 저으기 난처한 기색을 지으며 명식이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명식은 웃고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새 연료안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여 마침이라고 생각했는데 태수가 진호를 옹호해나서는 바람에 그는 더욱 만족스러운 기분에 젖어있었다.

《이것 보오.》

명식의 입가에는 다시금 엷은 미소가 스쳤는데 이 미소는 흔히 그가 어리석은 상대방을 설복해야 할 경우에 나타내는것이였다.

《물론 그가 새 연료안을 위해 노력은 했소. 그러나 아직은 초보의 초보에 지나지 않소. 동문 그가 아무런 담보도 없이 여기까지 내려왔겠는가고 하지만 실지로 아직은 아무런 과학적인 담보도 없소.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겠기에 말하오만 그가 여기에 오게 된건 자기의 희망이나 어떤 기술적인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의 실패를 책임지지 않을수 없었기때문이요.》

《?!》

사람들은 이게 무슨 소리냐는듯 대번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실패라니요? 아닙니다! 그래서가 아닙니다.》

태수는 황황히 부르짖었다.

《물론 그가 사고를 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리로 온건 그래서가 아닙니다. 그래 실장동문…》

《동무!》

명식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으나 저항할수 없는 힘을 풍기였다.

《그래 동무가 그게 어떤 사곤지 알기나 하오? 그 사고심의에서 어떤 문제가 론의됐는가 하는걸 아는가 말이요. 그런데도 그때에도 그는 큰 사고가 아니기때문에 용서받았노라고, 제철소에 가는건 자기가 탄원했기때문이라고 했소. 사람들을 기만했단 말이요. 긴말 할 필요없이 그건 본인에게 물어보오. 그자신이 사람들을 속였다는걸 이미 실토했으니까.》

《?》

태수는 입을 딱 벌리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명식은 그런건 더 론의할 여지가 없다는듯이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는 장내가 조용해지자 다시 눈을 떴다.

《문제는 거기에 있는게 아니라 그가 왜 그 무모한 기술안을 계속 고집하는가 하는 여기에 있소. 그의 기술안이 현실성이 없다는건 자명한 일이요. 그자신이 이걸 몰라서겠소? 아니요! 그것이 자기 힘에 아름찬것이라는걸 몰라서겠소? 그것도 아니요. 더우기 그는 이미 새 연료에 대한 실태를 당에 보고올렸다는 사실도 알고있소. 그런데도 여전히 그걸 고집하고있소. 무엇때문이겠소?

그의 목적은 그 기술안을 계속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의 행동, 남들의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 된 자기의 처지를 다소나마 타당화해보자는데 있을뿐이요. 말하자면 악에 받친 사람의 무분별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요.》

《…》

회의장은 긴장한 분위기에 휩싸여들었다.

《그러다나니 지금 그는 자기의 보잘것없는 체면을 위해 집단을 우롱하고있고 동무들은 그에게 희롱당하고있단 말이요, 알겠소? 그래 이게 얼마나 심각하오?》

부기사장의 말을 들을 때에는 누구나 순전히 기술적인 범위에서만 사색하던 사람들이 명식이의 말을 듣고는 원칙에 대해, 집단의 리익에 대해 생각했으며 더우기는 진호와 같은 사람은 함부로 사귀지 말아야겠다는 경각성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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