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회)

제 5 장

할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

25

 

아침차로 제철소에 내려온 명식은 강철직장에서 벌어진 사태로 하여 한동안 어리둥절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심사해야 할 투사기가 파괴된것도 놀라왔지만 그것을 파괴한 사람이 다름아닌 진호라는 사실에 더 아연해지고말았다. 더우기 믿어지지 않는것은 그가 또다시 그 새 연료안을 시험하다가 사고를 냈다는 그것이였다.

(아니! 아직까지 새 연료안을 고집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였다. 도저히 리해할수가 없었다. 자기의 막다른 처지로부터 첨 얼마간은《새 연료연구》라는 연막을 칠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가소로운 변명에 불과하다는것을 그자신도 모르지 않을것이기때문에 곧 아무말없이 시키는 일에나 열중할줄로 여겼었는데 의연히 자기 기술안을 고집하고있는것이 아닌가!

(어쩌면 그 정도의 판단조차 아직도 가리지 못한단 말인가?)

고개를 기웃거리던 그는 곧 어떤 새로운 감촉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진호의 행동에 뭔가 심상찮은 의도가 깃들어있지 않을가 하는 의혹이 들었기때문이였다.

(혹시 모든것이 울분으로 변한 나머지 그 반감이 자기의 비렬함을 낱낱이 투시한, 그것으로 해서 사랑까지 결렬케 한 나에 대한 원한으로 타번지고있는것이 아닐가? 그래서 내가 올린 보고가 허위라는걸 증명해보겠다는 망상적인 고집에 매달리고있는것이 아닐가?)

이런 의심이 들자 어처구니없다기보다 가슴이 선뜩해지면서 온몸이 굳어지는것이였다. 설사 아무리 부질없는짓이라 해도 결코 묵과할순 없는 일이였다. 어떤 일이든 그 일에 대한 성격을 철저히 파악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그였지만 이런 일, 즉 자기의 정치적존엄에 해되는 일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그였다. 특히 모든 문제를 원칙적이고도 정확하게 본다는 자기에 대한 평가에 사소한 그늘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이런 문제는 제때에 처리해놔야 했다.

그런데 마침 기술부기사장이 이런 권고를 했다.

《이왕 내려왔던김에 래일 있는 협의회에 참가해주지 않겠소? 상반년도 기술과제수행정형총환데 다 실장동무와 관계되는것들이란 말이요.》

명식은 쾌히 응했다. 총화에서 필경 투사기문제가 언급되기마련일것이고 그러면 진호에 대해, 더우기 그런 사람이 종당에는 어떤 지경에 이르게 되는가 하는것을 명백히 해부해보일수 있기때문이였다.

그는 기철이를 통해 진호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료해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진호의 생활은 여기 와서도 첨부터 자기 궤도를 멀리 탈선하고있었다. 어떻게 되여 자기가 내려왔는가 하는건 감쪽같이 숨기고 공정기사라기보다 마치 국가과제를 수행하러 온 사람처럼 행세했는가 하면 주제넘게도 제멋대로 연료를 취입하다가 투사기를 파괴했고 로까지 보수하지 않으면 안되게 했다.

(도대체 그의 사고는 어떻게 돼먹은걸가? 어째서 합리적인 가능성은 한사코 배제하고 감정적으로만 나오는걸가?)

이것이 진호를 대할 때마다 품게 되는 의혹이고 불만이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번 역시 그는 그 의혹과 불만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해답을 찾기에 앞서 그것은 언제나 그에게 있어선 순시도 묵과할수 없는 투쟁대상이였고 당장 일소해버리지 않으면 안될 위험한 현상이기때문이였다.

《물론 그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건 동무가 몰랐다고 하세. 그러나 그의 기술안이 어떤것인가 하는것까지 몰랐을수야 없지 않나!》

옆에서 걷는 기철이를 돌아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장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자기가 좀더 일찌기 왔어도 투사기를 심사할수 있었으리라는것으로 하여 저으기 민망스럽기도 했던 그였으나 기철이와 함께 구내산식당으로 향하는 지금에 와선 진호에 대해 내렸던 자기의 판단이 얼마나 옳았는가 하는 생각을 새삼스레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마치 한발 늦게 도착한탓으로 환자에게 치명적인 후과를 낳게 한 의사가 알고보니 그 환자란 이미 자기가 불치의 병이라는것을 진단내렸던, 때문에 미상불 이런 결과밖에 차례질수 없다는것을 확진했던 사람이라는것을 알았을 때와 같은 심정이라고 할가?

(이런 진호한테 현옥이를 따라보냈으면 어쩔번했는가? 그것이야말로 현옥이 목에 폭탄을 매달아놓은것과 같은것이 아닐수 없지.)

현옥이가 제철소에 왔던 일은 모르는 그였지만 요즘에 와선 이전보다 더한 고민에 모대기고있다는것만은 깨닫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시간이 가면 저절로 해결되리라고 여겼던것이 오히려 점점 더 큰 상처로 확대되는것같아 은근히 불안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도 생각이 달라지겠지. 이번에 가선 단단히 정신을 차리게 해주어야지.)

《알만하네, 짐작이 가. 그의 기술안이 가망이 없다는걸 알면서도 동무가 왜 그만두게 하지 못했는가 하는게 말일세.》

그는 다시금 옆에 있는 기철이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 안이 바로 중유절약안과 대조되였기때문이겠지. 자기가 그걸 반대하면 책임기사가 자기의 기술안을 위해 남의것을 묵살한다는 비난을 들을가봐 겁낸거겠지. 안 그런가?》

《…》

기철은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실상 그런 걱정이 없었던것도 아니기때문이였다.

《그런 사소한 체면의 결과가 어떻게 됐나 보게. 언제나 원칙을 떠나면 이런 후과가 차례지기마련이야. 사람이 감정의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하면 완전한 사람이 못돼. 특히 우리 일군들인 경우엔 말일세!》

기철이가 알고있는 명식이란 리성이 풍부하며 엄격하고 공정한 사색과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서 정력을 결코 헛되이 랑비하지 않을뿐 아니라 모든 현상을 정확하게 보고 오로지 합리적인것만을 뜻있는것으로 인정하는 사람이였다.

《그 사람이 잘못 판단할수야 없지요. 그 사람이 잘못됐다는건 원칙이 잘못됐다는거니까!》

남들이 생각하는것처럼 그 역시 명식이를 이렇게 인정하고있었다.

명식이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기철이는 확실히 진호가 자기 기술안은 물론 생활에서까지 회의를 품고있으면서도 자신이 처한 처지와 그로 인한 궁여지책으로 하여 어떤 망상적인 완강성을 고집하고있는것같았다. 그러자 애초에 그에게서 느끼던 의혹, 어째서 그만한 학식과 능력을 소유한 그가 그처럼 막연한 기술안을 고집할가 하는 의문이 풀리면서 바로 그런 처지에 있었기때문에 그토록 무모한 행동을 할수밖에 없었으리라는 리해가 일종의 련민과 함께 솟구쳐오르는것이였다.

(그러면서도 중유절약안을 일축하다니?)

은연중 진호에 대한 고까운 생각이 일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현실이 용납하지 않는 법이지. 아무리 교묘하게 위장을 한다 해도 우리의 생활은 그런 사람에겐 공정한 판결을 내리고만단 말일세. 어제가 그랬고 바로 오늘의 현실이 그걸 증명하지 않나. 그건 그렇고 중유절약안은 어째서 다른 사람한테 넘겼나?》

분명 말머리를 돌리고싶었던지 이렇게 말하며 기철을 바라보던 명식은 손을 들어 해빛을 가리웠다.

《어쩌겠습니까? 기술과에서는 당장 산소의 강욕취입안부터 선행하라는데 그걸 그냥 묵여둘수야 없지 않습니까. 더우기 혼자서 두 기술안을 다 안고있을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여간 동문 그게 탈이야! 또 체면이 작용한건가? 아니면 그 알량한 인간성의 탓인가? 늘 봐야 동문 그런 사사로운 감정으로 해서 사업의 리익을 지키지 못하는게 흠이거던. 진호와는 너무도 반대라니까. …》

기철은 그가 몇해전 고속도분석기에 대한 공동론문을 제기했을 때의 일을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라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때 한 연구소에 있는 늙은 연구사가 오래동안 연구한 끝에 제기한 분석기가 자기네것보다 더 우월하다는것을 느낀 기철은 이제라도 론문을 포기하자고 했었다. 그러나 명식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아! 그런 동정은 필요없어! 기술이란 어디까지나 현실이라는 무대에서 벌어지는 치렬한 경쟁이란 말이네. 우린 벌써 현장시험을 거쳤지만 그건 아직 도면에 불과하지 않나! 어느게 더 국가에 리익을 주는가 하는건 두고봐야 한단 말일세.》

그런데 아니나다를가 연구사의 분석기는 종내 도면으로 그치고말았던것이다.

《내가 말하는건 완성단계에 있는 기술안을 다른 사람한테 넘겨준것이 아까와서가 아니네. 그게 그만치 기술발전을 위해서는 손해기때문이야. 동문 량심에 못이겨 그런 선심을 썼지만 그게 결국 어떻게 되겠나? 그 기술안을 인계받은 사람은 어차피 첨부터 새로 시작해야겠지? 동무가 이룩해놓은 높이까지 리해해야 앞으로의 연구를 계속할수 있을테니까. 그럼 그게 몇달이 걸릴텐가? 얼마만한 기일을 손해보는가 말일세. 어떤 문제도 결코 자기의 감정으로가 아니라 국가적견지에서 사고할 의무밖에 없다는걸 어째서 명심하지 못하나!》

기철은 명식의 행동과 사색의 지침이 랭철한 리성에 기초한 판단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품게 되면서 바로 이 명확한 생활관이 그를 그처럼 빨리 발탁케 한 요인이라는것을 새삼스레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구내산에 들어서는데 벌써 영양제식당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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