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0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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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오늘은 차학선의 생일이다.

공장에서는 차학선의 생일상을 차려주기로 토의했다. 마침 공장은 현대화의 마지막공정인 정문앞 도로포장까지 말끔히 끝낸 뒤였다.

부엌일도 공장식당의 책임자가 주관하기로 해서 차학선의 로친도 새색시차림으로 웃방에서 자기 옷차림을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머지 심부름도 동네녀인들이 다 맡아나섰다. 조현숙은 아래웃방, 부엌으로 오르내리며 주관하여 생일집에 와서도 직장장이런듯했다.

차학선은 손님들이 들썩거리는 집안에 앉아있으려니 꿈만 같았다.

지금은 이 두단도에서 《젓갈집》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차학선은 그전날의 자기 집안에 대하여, 또 자기자신에 대하여 생생히 기억하고있었다.

본의아닌 실수로 토성자리에까지 왜놈들을 끌고갔던 일은 눈을 감기 전에는 잊을수 없는 일이였다. 아무리 소년시절이라고 하지만 그때의 일은 한생 그를 괴롭혔다. 그래서 그 죄를 씻자고 공장의 기사장이라는 큰 직무를 안고 팔을 걷고 부지런히 뛰여다녔다. 그런데 또 일을 저질렀다. 이번엔 영원히 밀려났다. 이젠 고목이여서 누구의 관심밖에 있다 해도 할 말이 없는 처지였는데 다시 살아났다. 그야말로 고목에 꽃이 폈다. 아! 파란곡절도 많았던 내 인생이 이렇게 피여나다니.

혼자서 생각에 잠겨있던 학선은 법석 끓어대는 사람들속에 떠받들려 아래방으로 내려갔다. 눈이 휘딱 뒤집혀지게 차려진 상앞에서 그는 하마트면 주저앉을번했다. 자식들이 차례로 술을 권했다.

맏딸내외가 먼저 나섰다. 제일 이채로운것은 군복을 입은 몸좋은 녀인이 나섰을 때였다.

아버님!》

《아니?!》

차학선은 그를 알아보았다. 천호의 어머니였다. 그는 눈물이 글썽해서 녀인의 두손을 마주잡았다. 사실 그는 이 녀인이 온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천호의 혼사문제가 제기될 때면 그 녀인을 생각했을뿐인데 이렇게 자기 생일에 땅속에서 솟아나듯 나타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저도 생각하지 못한걸 비서동지가 련락을 띄웠답니다. 그래서 제가 역전에 나갔댔습니다.》

옆에 있던 천호가 하는 말이였다. 학선은 분주히 눈길을 돌리였다.

문곁에서 조용히 웃고있는 당비서가 눈에 띄였다. 저 사람, 은혜로운 태양의 해발이 모두의 사람들에게 더 잘 가닿게 하느라 애쓰고있는 당비서동지.

당비서야말로 알게 모르게 당의 사랑이 골고루 미치도록 하는 사람이지. 멋들어진 룡마마냥 현대화를 끝낸 공장의 매 초소에서 모든 종업원들이 룡마의 고삐를 잡고 내달릴수 있게 한사람, 한사람 내세워주고있다.

《어서 제 잔을 받으십시오. 저는 우리 천호를 보고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동안 그 애의 친아버지가 되여준 고마움을 이 잔에 담았으니 어서…》

녀인이 진정을 담아 올리는 그 말을 들으며 사람들은 소리없는 눈물을 삼키였다. 그다음은 천호가 술잔을 올리였다.

그뒤로 천호의 동무들이 줄레줄레 뒤따랐는데 석태인이네 연구사들도 찾아왔었다. 원걸은 누이네 부부와 나란히 서서 술을 권했다. 오늘따라 멀끔해보이는 원걸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다같이 은희와 함께 우덕진을 생각했다. 은희는 부엌에서 돌아가지만 우덕진만은 여기에 없다는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흔연히 웃었다. 이 자리에 비록 없다 해도 우덕진을 자기네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현대화는 정보과학시대의 인간들이 지녀야 할 품성과 인격을 가르쳐주었을뿐 아니라 그 시대에 살 자격을 가르는 엄격한 기준이라고 말할수 있다. 자신을 부단히 갱신하며 과학기술적으로뿐 아니라 사상정신적으로 수양하지 않으면, 그 길에 따라서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인간이 갈길은 시대의 변두리밖에 없다는것을 알아야 했다. 앞으로 우덕진은 반드시 개준되리라고 믿고싶었다. 달리는 될수 없는 우덕진이였다.

그렇게 두단땅은 마음 또한 풍성하고 너그러운 고장이였다.

경사엔 조상도 온다더니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술을 권했다. 차례차례 권하는 술잔을 받는데 누군가 급하게 들어왔다.

강시연이였다. 그가 학선이앞으로 나서며 《차동지!》하고 목이 메여 불렀다. 그의 눈이 벌거우리 달아있었다. 하많은 사연이 담겨있는 그 눈을 차학선은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공장에 온 후 많이 달라진 강시연이였다. 마치 새로 태여난 사람처럼 차림새도 걸음걸이도 달라졌다. 이젠 그를 보고 코구멍으로 비물이 들어간다고 시비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차학선동지, 건강하십시오.》

강시연이가 찰랑거리는 술잔을 권했다.

차학선은 권하는 술을 다 받아마셨다. 부엌일을 돕던 황춘영이가 앞치마를 벗으며 나서는데 공교롭게도 자기 차례라고 생각하면서 나서는 양어기사와 부딪칠번했다. 황춘영이를 부추기면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양어기사를 밀어준 사람이 조현숙이라는것이 뻔했지만 사람들은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다. 오늘은 별치않은 일에도 턱없이 큰소리로 웃게 되였다.

차학선은 일생에 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술을 마셨다. 정말이지 한이 없는 날이였다.

모두 차로인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했다.

시대가 변천되고 현대화가 끝나니 복은 쌍으로 안온다는 옛말도 두단땅에선 맞지 않았다.

차로인의 경사에 이어 공장의 종합시험은 성과적으로 결속을 보았다.

아담하게 꾸려진 액체발효장과 고체발효장에서는 질적으로 담보된 발효제가 생산되였다. 시험적으로만 생산되던것이 이젠 공업적인 생산으로 확고히 담보되였다. 줄줄이 쏟아지는 고체배양기질을 둥글둥글 돌아가는 이적기가 손쉽게 저어주는 모습은 공장에서는 보통일로 되고있었다.

그날 오리들에게 먹인 효과검사표가 천호에게로 전달되여왔다.

30일령별무게가 2kg 800g이라는 소리였다. 열흘짜리는 0. 93이였다. 분석공들이 연방 시험을 실시한 각 호동자료를 날라왔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큰 차이가 없었다.

천호는 고개를 들고 수려를 찾았다. 수려 역시 검사표를 보는 천호를 주시하고있었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천호가 검사표를 높이 들어올려보이자 수려는 입술을 깨물며 돌아섰다. 아마 격정을 참기 힘들어서 그러리라.

이때였다. 태인이가 작업장에 뛰여들어왔다. 동작이 빠른 그가 뛰기까지 하니 마치 날아들어오는것같았다. 그가 두리번거리더니 먼저 앞에 있는 수려에게 무엇인가 소곤거렸다. 수려가 자기의 두손을 맞잡으며 눈을 흡떴다. 입술을 벌린 그가 한순간 굳어졌다. 그러더니 와락 태인의 팔을 잡고 흔들더니 바람처럼 밖으로 빠져나갔다.

천호는 벙벙해졌다. 무슨 일인가, 좋은 일인가, 아니면…

예측과 추리가 분주하게 극에서 극으로 오갔다.

그는 더 참지 못하고 태인에게 다가갔다. 태인이가 더 빠르게 천호에게 다가오며 소리쳤다.

《강시연동지에게 기쁜 소식이 왔소.》

기쁜 소식? 그렇다면 다시 소환된다는 소식인가? 이렇게 생산에서 확고한 성공이 담보되는 날이 그에게도 더없이 기쁜 날로 되였구나.

그 시각 수려는 아버지가 있다는 당위원회로 달려갔다.

사무실층계를 오르는데 당비서와 함께 아버지가 복도로 나오고있었다.

《허, 오누만.》

수려는 웃음짓는 당비서에게 가볍게 머리를 숙여보이며 얼른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문채 아무 말이 없었다. 다치면 그 자리에 굳어질것같기도 하고 아니면 푹 주저앉아 오열을 터칠것만같아 수려는 조심히 층계에 올라 아버지를 부축했다.

《마침이요, 좋은 소식은 새처럼 빨리 날아가는 법이지. 아버지와 함께 가보오.》

《비서동지, 오늘 오리들의 일령별무게를 확인했습니다. 드디여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그렇소? 수고했소. 내 현장에 가겠으니 어서 가보오.》 당비서의 그 말에 《일없다. 어서 네 일이나 하렴.》하고 아버지가 처음으로 입을 열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지 마십시오. 내가 승인했습니다. 강동지의 제기는 참고하겠습니다. 래일 아침 저와 같이 시당에 갑시다.》

수려는 아버지가 무엇을 제기했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렇다고 오가는 사람들이 있는 구내에서 함부로 물을수도 없었다.

오는 길에 어느새 소식을 들은 작업반장이며 식당녀인들이 아버지를 둘러싸고 축하를 하며 웃고떠드는 바람에 수려는 제 혼자 먼저 집으로 들어섰다.

수려는 이윽토록 마당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아버지가 이 집에 자리를 잡은지 오래지 않았지만 그사이 정이 든 집이다. 지금 마당구석에서는 오리들이 자라고 강아지가 뽀르르 달려와 매달렸다. 터밭에서는 꽃잎같은 홍당무우잎이 싱싱했고 덕대를 올린 오이덩굴엔 매친하면서도 새파란 오이들이 언뜻언뜻 보였다.

여기 공장마을에 와서 정을 붙인 살림살이에선 이렇게 탐스런 열매들이 주렁지고있었다.

언제 한번 화분관리도 해본적이 없는 아버지가 새벽마다 김을 매준 정성이 저렇게 열매로 맺혔다. 생활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가꿔야 하는가를 여기 공장에서, 사택마을에서 알게 되고 재미를 붙인 아버지다.

수려는 자기의 집을 처음 보기나 한것처럼 하나하나 새겨보았다. 보면 볼수록 새록새록 정이 들었다. 지금 아버지의 심정이 어떨가. 떠나고싶을가? 아니면? 참, 아버진 비서동지에게 무슨 제기를 했을가?

얼마후 아버지가 대문으로 들어섰다. 뒤이어 어머니가 허둥거리며 뒤따랐다.

《참말이시우? 난 그 소리를 듣고 뛰여오다가 하마트면…》

수려는 숨이 차서 헐헐하는 어머니를 부축했다.

《당신은 왜 이렇게 어수선해서 그러오? 당장 이사라도 갈것처럼.》

《아니, 그럼?》

어머니가 의아해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수려도 아버지의 심정을 알수 없어 말끄러미 올려다보기만 했다.

《내 이제 다 늙은것이 무슨 미련이 더 있겠소. 내가 상급기관에 소환된다고 해서 무턱대고 좋아할 나이가 아니지. 사실 난 여기를 떠나고싶지 않소.》

《여보…》

어머니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리였다. 수려는 그저 마른침만 꼴깍 삼키며 아버지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난 여기에 정이 들었소. 난 여기에 필요한 사람이란 말이요. 내 이 심정을 당비서 그 사람에게 정식 제기했소. 사람은 죽을 때까지 철이 든다고 하더니 여기 공장에 와서 내가 다시 태여난것같구나.》

《아버지!》

수려는 그만 더 지탱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머리칼을 쓸어주는 아버지의 그 손길이 얼마나 따뜻하고 부드러운지 그만 눈물이 쑥 나왔다.

《그래서 이 아버지가 당비서한테 한가지 부탁을 했다.》

그래서였구나. 수려는 여전히 아버지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내가 이제 얼마나 일을 하겠니. 그저 당의 신임과 믿음에 목이 메일뿐이다.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맞다. 난 정말 여기에 정이 들었다.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이 집 말이다. 이 집에서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했지.》

《아버지.》

《원, 령감두.》 그제야 어머니도 눈굽을 훔쳤다.

《아무때든 오라고 하더라. 당비서 그 사람이 꼭 부대장동지를 닮았지. 난 여기에서 일한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우리 온 집안이 앞으로 여기 두단땅에 뿌리를 내리자꾸나.》

《아버지!》

수려가 눈물이 글썽해서 아버지의 가슴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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