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7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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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천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자꾸자꾸 걸었다. 머리속은 온통 방금전 당비서가 하던 말로 꽉 차있었다.

자기를 자책하며 정신없이 허덕허덕 걷던 천호는 눈앞에 보이는 메탄가스직장을 보고서야 그 자리에 멈춰섰다. 공장구내끝이라고 할수 있는 여기도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자욱이 깊이 새겨져있는 어제날의 종금호동자리였다. 공장의 사적자료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손목에 잡혀 다니던 어린시절부터 오늘까지 이곳에 깃든 가슴뜨거운 사적을 잘 알고있는 천호였다. 얼마전에 공장의 현대화정형을 알아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공장에 오시였던 그때를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고 한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비가 내리던 10월 어느날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른 아침부터 시외의 가금목장들을 현지지도하시는 더없이 바쁘신 때였지만 두연오리공장도 잊지 않으시고 장군님과 동행하시였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장군님께 해방직후 일군들에게 말한바도 있지만 산에서 싸울 때 나에게는 두가지 소원이 있었는데 하나는 일제를 몰아내고 빼앗긴 조국을 해방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인민들에게 고기를 풍족히 먹이는것이였다고, 중국동지들의 초청을 받아 그들에게 가면 오리고기가 상에 오르군 하였는데 그것을 보면서 조국이 해방되면 본때있게 오리를 쳐보리라 결심했는데 오늘은 여기에 오리생산기지가 일떠섰다고 하시며 이 두단도야말로 오리기르는 자리로서는 더할나위없는 명당자리라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정말 두단땅은 우리 수령님의 가슴속에 새겨진 정이 든 고장이여서 백두산에서 싸우시던 그 나날에도 고향 만경대와 함께 잊지 않고 그려보시던 고장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점심때가 지나도록 호동안의 오리들을 돌아보시고 공장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는듯 수령님께서는 이번엔 종금오리들을 보자고 하셨다. 장군님께서는 이 순간 지배인인 《두단령감》의 낯이 하얗게 질리는것을 알아보시고 왜 그러는가고 조용히 물으셨다.

《두단령감》은 울상이 된 얼굴로 사연을 설명해드렸다. 종금오리사로 가려면 가로지른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그 다리란 그저 돌아다니기 싫어서 그 누군가가 집기둥을 뽑아서 가로지른 다리 아닌 다리라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 절대로 못가신다고 거듭거듭 아뢰였다.

《외나무다리로 왜 못간다고 그러오? 우리는 백두산에서 싸울 때 그런 곳은 물론 사득판도 서슴지 않았댔소.》

어느새 수령님께서는 벌써 앞장에서 풀숲을 헤치셨다. 어쩔수 없었다. 그 누구도 수령님의 걸음을 막을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도 만류하실수 없었다. 수령님께서는 이미 혁명의 한길에 나서신 때부터 무슨 일에서든 주저하지 않으시였다. 비바람, 눈바람 다 맞으시고 험산도 가시덤불도 헤쳐나가시였다. 현지지도의 길에서도 길아닌 길로 가시였고 차가 못가면 차에서 내려 진탕속도 마다하지 않고 걸으신 수령님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앞장에서 풀숲을 헤치시였다. 그보다 먼저 《두단령감》이 허둥지둥 내달렸다. 정말 눈앞에 외나무다리가 보였다.

허궁을 건너지른 외나무다리를 《두단령감》이 겅중겅중 뛰여 건넜다.

부지중 그가 푹 주저앉아 외나무다리의 끝을 꽉 잡으며 울음을 터쳤다.

수령님, 안됩니다. 여기로는 안됩니다. 흐흑…》

《그러지 마오. 자, 이렇게 다리에 힘을 주고 빨리 가면 되오, 자.》

수령님께서는 정말 그렇게 외나무다리를 걸어가셨다. …

아, 수령님!

천호는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얼굴을 싸쥐였다.

평양시민들에게 고기와 알을 넉넉히 차례지게 하시려고 기울이신 수령님의 로고와 걸음속에 우리 공장은 오늘 어느 높이까지 올라섰는가. 천호는 눈물이 그렁해서 앞을 바라보았다. 이젠 그전날의 그 풀숲이며 외나무다리도 없었고 웅뎅이가 있은 흔적조차 찾아볼수 없지만 사적사진문헌으로 그 자리를 알고있는 천호의 가슴속엔 그 자리가 진하게 새겨져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인민들에게 고기와 알을 먹이시기 위해 나라의 곳곳에 닭공장이며 오리공장을 건설하시려고 걷고걸으신 길은 그 얼마인가. 그 사랑속에서 일떠선 오리공장이고 지금은 장군님의 사랑속에서 현대화를 다그치고있다. 그런데 내가 맡은 발효제가 아직 생산에서 은을 내지 못하고있다.

《두단령감》의 손자인 내가 그렇게 살고있다니.

그날 천호는 그 자리에서 자기를 심각히 총화하고 그길로 수려의 털단백시험자료를 다시 연구하기 시작했다.

오리털은 단백질로 되여있으나 자연상태에서는 잘 분해되지 않기때문에 먹이로 리용될수 없었다. 그래서 이 오리털분해가 중요한 요구로 나섰다.

천호는 수려가 진행한 설계서를 탐욕스레 뜯어보았다.

분해방법에는 석회수처리방법, 압출방법, 물분해법 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수려는 알카리분해방법을 도입했다.

이미전에 정평군에 있는 광포오리공장에서는 자기공장의 특성에 맞게 미생물에 의한 털단백시험을 성공시켰지만 두단에서는 이렇게 분해하는 방법이 공장의 특성에 맞는 성공의 지름길이였다.

그는 각이한 %수를 택하면서 수십, 수백번의 시험으로 드디여 희염산 3%라는 가장 공업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수치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던것이다. 그 3%라는 수자는 수려의 고심이고 열정이였고 땀방울이였다.

천호는 수려가 도출해낸 시험방법을 놓치지 않고 연구했다.

이제부터 오리먹이인 배합먹이에 콩깨묵대신 털단백먹이를 섞어먹일것을 타산한 천호는 당장 시험구오리와 대조구오리를 택할 생각을 했다. 이 시험에서 나타날 수치는 벌써 눈앞에 선했다. 이렇게만 되면 각이한 미생물발효제를 사용하는데도 제일 낮았던 성장률이 해결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비서의 추궁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이 자료에서의 핵을 찾아내지 못할수 있었다.

누군가의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수려였다. 그가 전에없이 무엇인가 말할듯한 자세로 입술을 감빨며 다가왔다.

그도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시험을 하려고 찾아온 모양이였다. 천호는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강계오리공장의 그 처녀연구사 말이예요, 그 동무의 사진은 찍지 못했는가요?》

《이번에 가니 그 동무에 대한 말은 많이 들었어도 그 동문 직접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일이 제기되여 자리를 떴더군요.》

말없이 무슨 생각인가 하던 수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도 그 녀동무처럼 될수 있을가요?》

묻는듯한 어조였지만 그의 맑은 눈에는 간절한 기대가 어려있었다. 천호의 한마디 말이면 다되기나 하는것처럼.

《수려동무!》 그의 두손을 잡고 힘껏 흔들어주고싶은 심정이였다.

《됐습니다. 그 결심이면 됩니다. 우리 당장 시험을 합시다. 그리고 탁구련습도. 우리 대상으로는 태인선생과 원걸이가 서겠다고 했소.》

수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호를 바라보았다. 기쁨어린 그의 눈가에 물기가 그득히 차올랐다.

그날 새로 꾸린 회관 아래층홀에서는 오랜 시간 똑딱거리는 탁구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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