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제 5 장

할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

22

 

《어떻소? 이젠 좀 낫소?》

진호를 찾아온 초급당비서 상범은 병원앞마당 느티나무아래에 있는 의자에 그를 끌어다앉히며 물었다.

《이젠 좀…》

자리에 앉기는 했으나 진호는 고개도 들지 못한채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꾸했다.

《어쨌든 그만하니 다행이요.》

《면목이 없습니다.》

《정말 큰일날번했단 말이요.》

물끄러미 진호를 바라보던 상범은 갑자기 생각난듯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며 약간 엄한 어조로 말했다.

《한데 어째서 그런 일을 아무 토론도 없이 했소? 어째서 갑자기 그런 용단을 내렸는가 말이요.》

《…》

어떤 자학의 감정에 치받쳐오른 진호는 자신에 대해 뭔가 혹독한 말을 하고싶었지만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래, 시험에선 뭐 새로운것이라도 알아냈소?》

사실 연료와 가스와 공기의 배합비에 따라 온도가 예상외로 달라진다는 새로운 발견은 진호에게 있어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것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유독 자기만이 그것도 륙감으로 알아차린데 불과하기때문에 그런 설명이 사고를 무마시키려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으리라는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여서 잠자코 있기만 했다.

《알아두오만 직장에선 모든 사람들이 이젠 동무의 기술안에 머리를 젓고있소. 기사들은 말할것도 없고 로동자들까지도 말이요. 공장에서는 또 뭐라는지 아오? 사태의 엄중성으로 하여 공장적인 사고심의를 따로 조직하겠다는거요. 사고에 대한 처리며 동무에 대한 결론을 거기서 확정할 모양이요. 그렇지만 결론은 벌써 명백하오. 새 연료안연구는 그만두어야 하며 동문 모든 피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오.》

진호는 자기 머리우에 떠돌던 검은구름이 이젠 뚜렷한 형체로 나타났다는것을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 어떻게 하겠소?》

《할수 없지 않습니까, 결정되는대로 하는수밖에.》

마음은 쓰렸으나 그런 일은 이미부터 각오하고있었다는듯이 그는 흔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결정되는대로 하겠다. …》

상범은 자리를 고쳐앉으며 깊숙이 빨아들인 연기를 후― 하고 내뿜었다.

진호는 지금 비서의 추궁을 전적으로 타산도 없는 기술안을 시험한 결과 엄중한 후과를 빚어낸데 대한 비판으로만 받아들였지 반대로 그 자신이 자기에 대한 그 어떤 자책과 후회로 하여 가슴아파하고있는줄은 전혀 짐작도 못하고있었다.

자식의 행동을 놓고 꾸지람하는 부모는 자식의 소행이 위험했던것일수록 더 호되게 꾸짖게 되는데 그것은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길 바라서인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 소행이 위험하긴 했지만 참된것이라는걸 알았을 땐 오히려 자식을 제때에 도와주지 못한것으로 하여 더 가혹해지는 부모도 있는데 이런 준절함은 어느 부모에게나 다 해당되는것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을 아는 참된 부모에게만 한하는것이다.

사실 상범은 진호가 사고를 낸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가 그에 대해 너무도 무관심했다는것을 깨달았던것이다.

누구에 대해서건 그 사람을 잘 알자면 후에 가서 고치고 바로잡기 힘든 오해나 편견에 떨어지지 않도록 두고두고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는것을 철칙으로 삼고있는 그였으나 진호에 대해서만은 선입견이 작용했다는것을 시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따져보면 그것은 그가 목적하는 일에 비해 그자신의 힘이 너무도 미약하다는데서 오는 편견과 우려의 결과였다.

진호에 대해 특히 그의 기술안에 대해 관심을 돌리는 과정에 그는 곧 하나의 사실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어떤 각오와 충동과 열정을 가지고 새 연료안연구에 달라붙고있는가 하는 그것이였다.

확실히 그는 여느 사람들과 달랐다.

용해공들과의 담화를 통해 더우기 진호가 자기 기술안을 위해 적어온 시험일지를 보면서 그는 이것을 더욱 통감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의 시험일지 첫장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그 동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시오. 지금 원유가 두만강까지 와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느 부문에 원유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해당 일군들에게 하신 말씀이였다. 수령님의 이 말씀이 얼마나 가슴에 맺혔으면 첫장에 또박또박 새겨넣은것일가? 안타까와하시는 수령님의 심정을 헤아리며 한자한자를 눈물로 써넣었으리라!

바로 어버이수령님의 이 심뇌가 그의 모든 행동과 사색의 원동력이라는것을 보풀이 인 4년간의 시험일지가 뚜렷이 증명하고있었다.

때문에 남들이 중유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은정을 사랑으로만 받아안을 때에도 그는 도리여 수령님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슴뜯었고 그처럼 남들이 대단한 혁신안으로 여기는 중유절약안조차 그에게는 대수롭지 않은것으로만 보인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누구나 말로는 다 자기는 당의 뜻을 받들어 일한다고 하지만 정작 따져보면 그 각오와 감정에는 차이가 많은것이고 바로 그 차이로 하여 서로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것이다. 흔히 그런 사람들은 수령님의 교시를 법적인 과제로, 지상의 의무로 받아들이긴 하지만 거기에 머무르기만 할뿐 그것을 수행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최대의 욕망, 간절한 충동으로까지 승화시키지는 못하는것이다. 그러나 진호는 바로 거기에 자기의 모든것, 기쁨과 행복, 환희와 사랑은 물론 분노와 울분까지도 담고있는것이였다.

진호에 대한 이런 새삼스런 느낌은 자기에 대한 뼈아픈 자책, 사람을 책임진 당일군으로서 진실한 한 인간을 너무나도 소격하게 대했다는 괴로운 자책과 함께 사람을 똑바로 볼줄 알고 옳바르게 지도한다는것이야말로 얼마나 힘든 일이며 또 얼마나 섬세한 과학인가 하는 진리를 통절히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 그는 보다 놀라운 한가지 사실에 부딪치지 않을수 없었다. 그야말로 깜깜한 어둠속에서 펑끗 하는 섬광을 본것처럼 정신이 펄쩍 드는 그런 엄연한 사실이였다.

그것은 자기가 여태껏 고민하면서도 종내 해결책을 찾지 못해 모대기던 문제 즉 요즘 직장전반을 지배하고있는 비정상적인 사태를 수습할 방도가 바로 그의 새 연료안과 관련되여있지 않을가 하는 느낌이였다. 의존심으로 만성화된 사람들의 관점과 새 연료를 도입하려는 진호의 자각, 이것은 중유로부터 파생된 문제이긴 하면서도 서로가 극단을 이루고있는것이였다. 만약 그의 기술안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 수행에로 사람들을 동원하여 그들의 그릇된 관점을 바로잡아나갈수 있지 않겠는가, 바로 이것이 우리 직장이 걸린 문제를 푸는 열쇠, 내가 틀어쥐고나가야 할 중심고리가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이 그를 불길처럼 사로잡기 시작했던것이다.

집단이란 잘라놓아도 하나와 같이 훌륭한 단면을 가진 강괴와 같아야 한다. 그렇지만 훌륭하게 보이는 단면도 산으로 표면을 침식시키면 드문드문 반점들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강철내에 함유된 불순물인것이다. 그 불순물이 지금 직장에서는 중유에 대한 사람들의 만성적인 관념이다. 이 불순물을 없애자면 오직 중유가 아닌 우리의 연료로 강철을 졸여내는 과정을 통해서만 사람들도 참답게 단련시킬수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할수록 그 이상 더 정당하고 적합한 대책이 없을상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주관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는 의도에 있는것이 아니라 기술안의 현실적인 가능성여부에 있기때문이였다.

결코 그는 의도가 옳고 방법이 섰다고 해서 무턱대고 내밀거나 특히 기술은 무시하면서 대중들을 부추겨대는 우둔한 일군이 아니였다.

반대로 기술에 대한 파악이 있고야 방법이 있으며 그런 파악에 기초한 방법이래야 어떤 의도도 옳바로 실현된다는것을 원칙으로 여기는것이였다.

그는 공업시험소며 연료연구소로 다니며 여러 사람들과 새 연료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토론해보았다. 언제나 그런것처럼 이번에도 진호의 기술안을 부정하는 립장에서 상대방과 론쟁을 벌려나갔던것이다.

누구든 자기를 반박하고 납득시키는 사람이 있기만을 고대했으나 그런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하나도 없고 도리여 자기의 보잘것없는 공격에도 이내 수그러들고마는것이였다.

자기의 희망이 한갖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느끼게 될수록 그는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아무래도 진호를 직접 만나봐야겠어. 다른 사람은 그렇다 해도 그만은 덤벼들테지!)

그래서 병원으로 온것이였으나 진호가 덤벼들기는커녕 어떤 비관에 젖어있는것이 아닌가! 그런 모습을 보자 정말로 격분하지 않을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는 오늘 진호한테서 하나의 새로운 측면을 찾아보게 되였는데 그것은 그가 심장이 가리키면 어떤 일이라도 하고야마는 사람이지만 어떻게 해야 그것을 가장 빨리 더 효과적으로 할수 있는가 하는것은 모르고있다는것이였다. 오직 자기의 힘을 경기에 나선 선수의 역할로만 생각할뿐 집단이라는 유기체와 결부시켜 따져보지 못했다. 확실히 그에게는 자기가 옳다는것을 대중을 통해 확인하려는 습성이 적었고 그들한테 인정받는 습관이 없었다. 일이 어렵고 힘들수록 그들에게 의지해야 하며 그때라야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는것을 알지 못하거나 안다 해도 무시하고있는것이였다.

《그러니 비서동지도 저의 기술안을 가망이 없는걸로 보십니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에 따라 자기의 운명이 결정되기라도 하는것처럼 비서를 마주보는 진호의 두눈은 사뭇 긴장돼있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요. 나야말로 언제나 대중들의 의사를 좇아야 할 사람이 아니요.》

상범은 진호를 흘끔 훔쳐보고나서 말을 이었다.

《동문 혹시 지금 내가 동물 지지해나서면 되지 않을가 하고 생각하는게 아니요? 천만에! 아무리 사상이 좋고 의도가 좋다 해도 과학과 기술이 안받침되지 않는 한 절대 안되오. 기술안은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문제니까. 설사 내가 그 기술안에 사람들을 동원시킨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그들이 호응해나설것같소? 그 일에 대한 정당성을 느끼고 진심으로 궐기해나설것같은가 말이요.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을거요. 무슨 근거로? 무슨 과학적인 담보가 있어서?》

《그럼 제가 설명하지요. 이걸 보십시오.》

얼른 땅바닥에 내려앉은 진호가 막대기를 쥐고 땅에 금을 긋기 시작하자 상범은 손을 저어보였다.

《아니, 그만두오! 자기 기술안에 대한 희망을 잃은 사람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겠소. 나온대야 구차한 설분에 지나지 않을걸. 또 그런 사람이 기술적인 신념이 있다면 얼마나 있겠소.》

그러면서도 그는 진호가 금을 긋는 땅바닥만 유심히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