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3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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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엔 정문으로 들어서는 낯익은 국가발명총국의 책임부원을 알아보고는 뒤걸음까지 쳤다. 그가 왜 오는지는 잘 몰라도 속이 켕긴 우덕진은 떳떳이 정문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사실 그가 오는것은 실용성있는 그 손소독기를 놓고 전시회에서의 반영뿐 아니라 공장반영도 함께 편집해서 출판물과 TV에 소개하려고 공장에 온다는것을 알리 없는 우덕진은 무턱대고 피할 생각만 했다. 우덕진이가 슬금슬금 뒤길로 피하는데 누군가 마침 만났다며 마주오는 녀인이 있었다. 조현숙이였다. 그러고보니 그의 집앞으로 난 골목길이였다.

《기사장동지가 부탁하던것 말이예요.》 조현숙이가 반색하며 다가왔다.

《내가 부탁하던것?》 우덕진은 어리벙벙해졌다.

《아이참, 처남문제. 처남을 보내래요.》

《오, 그 문제?》 우덕진은 그제야 언젠가 부탁했던 처남생각이 났지만 시답잖게 뇌였다. 지금은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왜 그래요? 너무 끌어서요? 당장 보내래요.》

조현숙이가 바짝바짝 다가들수록 우덕진은 입이 막혀들었다.

우덕진은 어떻게 조현숙이앞을 물러났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무슨 일에서나 열성인 조현숙이 의아해했을거라는 생각을 하니 이마에서 땀방울이 굴러났다.

그런 조현숙을 자기는 얼마나 언짢게 생각했던가. 지배인이 한 부탁이라면 벌써 해결해주었을거라고 비웃었지.

언뜻 당비서에게 지배인과 조현숙이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아는가고 귀뜀하던 일이 떠오르자 금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들사이에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는듯이 관계라는 말에 방점을 찍었던 일을 생각하니 더는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그는 강쪽으로 난 골목길에 들어섰다. 누가 볼세라 동뚝으로 헉헉 오르는데 이번에는 물이 줄줄 흐르는 그물을 든 차학선이가 빠른 걸음으로 오다가 뚝 멈춰섰다.

《어이구, 기사장이 이런 시간에 강으로 나와볼 시간이 다 있나?》

《예, 그저 좀…》

우덕진은 어물어물 변변히 말끝을 맺지 못하고 그앞을 황황히 지나쳤다.

어쩌면 조현숙이며 차학선이가 약속이나 한듯 차례로 나타나 골탕을 먹이는것같았다.

아니, 그건 응당한 보상이였다. 얼마나 하찮게 여겼던 차학선이였던가.

허청거리는 다리를 끌며 강뚝으로 올라서자 눈앞으로 새파란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고있었다. 예나제나 변함없이 푸른색을 간직하고있는 강물을 넋없이 바라보느라니 제일먼저 생각되는건 이제 곧장 당위원회를 찾아갈 국가발명총국 책임부원의 일이였다.

아연해질 당비서며 차학선이 그리고 련줄련줄 떠오르는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상상해보니 공장으로 들어갈 용기가 사라졌다. 버릇처럼 미소가 사라질줄 모르던 얼굴이였지만 이제는 마음을 먹어도 마비나 온듯 꽛꽛하기만 했다.

제일 뜨끔한건 지배인의 배치도를 자기의것으로 하고 태연히 가슴을 내밀었던 일이다.

아니, 그 일은 이미 알고도 그냥 지나치는지도 모른다. 당비서의 생각깊은 눈길은 그것을 말해주고도 남는다. 그날 배치도앞에 가서 유심히 들여다보며 역시 기사장은 수재라고 했던 차학선의 말이 떠올랐다.

그때 차로인은 그 모든것을 알아보고 야유했던것이 분명했다. 내가 왜 그때 채심하지 못했던가. 모든건 내탓이다. 내가 잘못한탓이다.

오만가지 생각에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눈앞으로는 여전히 푸르디 푸른 강물이 고요히 흐르고있었다. 이제껏 강물을 보며 자기를 정화해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우정 품을 들여 한번이라도 여기에 나왔더라면 내 머리가 이렇게 흐리터분할수 있었을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늘 기고만장해서 돌아쳤지. 그 덕에 목소리는 아주 변성되여버렸다.

《대틀》이라고 일러주는 별호가 자기에게 제일 잘 어울린다고 우쭐해서 돌아가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치였다.

《대틀》은 나를 올려준게 아니라 오히려 망치게 했다.

힘없이 고개를 들던 우덕진은 흠칫 몸을 떨며 눈길을 돌리지 못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흐르는 물살에 거품이며 검불들이 기슭으로 밀려나오고있었다.

연방 몰려드는 지저분한 검불들이 기슭이 아니라 자기 몸에 휘휘 감겨드는것같았다. 자기야말로 바퀴 뗀 달구지마냥 아무데도 쓸모가 없었다.

부정이나 하듯 머리를 돌리던 우덕진은 그만 굳어졌다. 푸르청청한 소나무숲이 들어찬 만경봉이 정면으로 마주보여서였다.

여기는 만경대 앞동네라고, 만경대 앞동네에 사는 자랑과 긍지를 안고 일을 잘하라고 다정히 깨우쳐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 이 우덕진을 굽어보시는것같았다.

아, 나는 이 동네에서 살 자격이 없는놈이다. 우덕진은 힘없이 돌아섰다. 자기를 안다는것은 세상에 다시 태여난것과 같은 큰힘을 가진다는것을 알리 없지만 이제 다시 큰소리로 떠들고 미소를 지을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인식한 우덕진은 겨우 발자국을 짚었다. 이제라도 나를 되찾자. 신형일당비서에게 모든것을 털어놓자. 그길로 우덕진은 동뚝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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