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2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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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장에 나가려던 우덕진은 당비서가 찾는다는 교환수의 전화를 받자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웬일인지 가슴이 불안했다.

요즘은 지배인이 없는 때라 부단히 당비서방에서 사업토의를 해야 하건만 우덕진은 자기를 찾지 않으면 당비서방에 가지 않았다. 그앞에 나서기가 힘들었다. 구구한 서론이 없이 본론에로 직방 들어가는 당비서이니 사사로운 일로 그앞에 나서기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그의 말없는 눈길을 마주할 때면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언젠가 생각했던것처럼 당비서야말로 겉만 보고 냉큼 들이마시면 입안이 델수 있는 김 안나는 숭늉이였다. 그런 생각을 하니 그를 대하는것이 더 조심스러워졌다.

우덕진은 사업수첩을 펼쳤다. 총화할 일이 무엇이 있는가 하고 더듬는데 글줄이 잘 안겨오지 않았다. 마음이 번거로운것이다. 무슨 토의를 하려고 찾을가. 공장에 온 각 대학들의 종합시험정형? 그 일은 매일매일 일보로 들어간다. 그럼 기술혁신경기의 중간총화로?

그게 맞는것같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자기였지만 그렇다고 가지 않을수도 없어 그는 사업수첩을 끼고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에는 당비서말고도 차학선이가 있었다. 당비서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엇인가 한장한장 번지고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기술혁신경기 중간총화자료였다. 아마 차학선이가 제출한 모양이였다. 공장에서 일어난 비상사고후 어리벙벙해서 손도 미처 대지 못하는 동안에 중간총화자료는 심사성원들에 의해 다 묶여져 이렇게 당비서책상에까지 온것이다.

당비서가 머리를 들었다. 한동안 아무말도 않고 이윽토록 우덕진을 바라보기만 했다. 측은해서 바라보는것같았고 무슨 추궁을 해야 할가 궁리하는것같기도 했다. 우덕진은 당비서의 눈길에서 동정에 가까운 눈빛을 알아보았다. 그 순간 하나의 구멍수가 열린듯한감이 들었다. 그것은 한줄기 빛이 들어오는것같은 작은 구멍이였다. 꽉 막힌듯하던 굴속에서 한줄기 빛이 새여들어온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마침내 당비서가 입을 열었다.

《기사장동무, 지금 발효제로 시험한 오리증체률이 얼마요?》

《오늘 현재 30일령에 2. 5kg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좋은 일이요. 그러나 아직 정상화되지 못했고 목표했던 수자와는 거리가 머오. 우리 공장의 현장시험도 합쳐서 어떻게든 올려야겠소.》

《알았습니다.》

《한가지 물읍시다.》

우덕진은 당비서의 다음 물음을 예견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다시한번 다졌다. 이미 비쳐들어오는 한줄기 빛을 쪼인 그의 가슴은 다소간 숨이 열린 상태였다.

《어떻게 되여 기사장동무의 기술혁신안이 포함되지 못했소? 아직 하지 못했소? 아니면 루락됐소?》

《아직 못했습니다.》

예견했던지라 대답이 태연하게 나갔다.

《그건 무엇때문이요?》

그 순간 우덕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무엇때문인가구? 내가 공장에서 일어난 비상사고때문에 얼마나 뛰여다녔던가. 그때 공장에 누가 있었는가. 지배인은 오늘도 없고 당비서도 없을 때가 아닌가. 그래도 이 기사장이 있어 그만큼이라도 수습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못했는가구? 내가 그런걸 할 짬이나 낼수 있었는가.

솟구쳐오르는 불만을 참으려니 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물론 기사장동무는 언제 그럴 시간이 있는가 하고 생각할겝니다. 그러나 이것부터 했어야 했습니다. 사실 이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기사장동무를 비롯한 우리 공장의 모든 기술자들을 계발하기 위해서였고 중간총화 역시 기사장동무를 비롯한 기술자들을 추동하기 위해서입니다.》

온화하게 시작된 당비서의 목소리는 웬일인지 우덕진의 곤두선 가슴을 쓸어주며 여지없이 자극했다. 오히려 목청을 돋구며 추궁하는것과는 완전한 반대작용을 일으키는 바람에 소용돌이치던 불만이 가슴속에 그대로 잦혀졌다.

《이건 어디까지나 중간총화요. 결속할 때까지는 시간이 있소. 우리는 현대화의 총화와 함께 이것도 놓치지 않고 단단히 총화지으려고 합니다. 기사장자신이 총화해야 하겠는데 자기는 하지 않고 남을 총화할수야 없지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기술혁신경기만이 아니라 현대화를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하기 위해서와 기술자들의 수준을 한계단 도약시키기 위하여 포치된 중요한 사업입니다. 그리고 강조할건 손소독기문제입니다. 공장에서는 손소독기의 제작에 큰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있습니다. 그 동무들이 지금 완성단계에 있소. 여기에 기사장동무가 관심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해 문건이 제출되여있으니 제기되는게 있으면 알아보기도 하고 우리것이 우수한 평가를 받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우덕진은 항변 한마디 못하고 후줄근해서 당비서방을 나왔다.

아직도 공장의 비상사고때 받은 비판으로 얼얼한데 또다시 보기좋게 얻어맞았다. 말소리도 조용했지만 큰소리로 욕하고 때리는것보다 더 참기 힘들었다. 그저 꼼짝 못하고 해야 할 기술혁신안이였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할 가망은 없었다. 당비서방에 제출되기 전에 어느 시험자료든 골라내여 그럴듯하게 버무려놓으려던것도 그만 기회를 놓쳤다. 이젠 어떻게 할것인가.

깊은 고민에 빠진 우덕진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허청허청 걸었다.

반반한 구내길을 걷는데도 꼭 수렁창에서 허우적거리는것같았다.

그는 어떻게 자기 사무실까지 왔는지 알수 없었다.

왜 못했느냐고 따지는 당비서앞에서 무슨 말을 했던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아무 대답을 못했었다. 왜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고 구실을 대지 못했던가. 아니, 시간이 없었다고 말할수 없었다. 오히려 모든 일에서 면제해주고 오직 기술자들과의 사업만 하기로 하지 않았는가고 또 따지였을게다. 그렇다고 가만있을텐가. 순 기술사업만 보라고 했지만 기술전반사업을 돌아보는 일만 하자고 해도 정 시간을 낼수 없었다고 구변을 늘어놓았어야 했다.

우덕진은 당비서앞에서 한마디 말도 못한게 알찌근했지만 한동안 바라보던 당비서의 눈길을 생각해보니 잔등으로 땀이 흘러내렸다. 당비서가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가. 혹시 안되겠다고 생각한것이 아닐가? 이 순간 우덕진은 주정뱅이가 자기 버릇을 못고치는것처럼 그 모든 탓은 한미순이와 원걸이때문에 생긴것이라고 몰아붙였다.

아무리 집안에서 딱한 일이 생겼다고 해도 미순은 지령서 떨구는 자기의 본업만은 미루지 말아야 할게 아닌가. 어분에 염분성분이 높은게 들어왔다는것을 자기에게 전화라도 해주었더라면 공장에 그런 엄중한 비상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다.

그런 기술적인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막으라고 미순이를 추천했던거고 원걸이도 이렇게저렇게 내세워주려고 왼심을 쓰는게 아닌가.

원걸이 하면 곁따라서 은희가 생각났다. 괘씸한 생각으로 하면 원걸이를 당장 내쫓고싶은데 조카사위가 될 차비로 붙어돌아가니 기가 막히는 일이였다. 그래서 기어코 은희와 떼여놓으려고 갖은 말을 다해 얼리기도 하고 욕도 했지만 오히려 망신스럽게 되였다.

이때 전화종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다.

《기사장동지, 접니다. 지금 차를 좀 보내줄수 없습니까?》

인사말도 없이 직방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천호였다.

《차? 어디로 말이요?》

천호의 말을 듣고서야 우덕진은 그가 손소독기제작을 위해 김책공업종합대학 실습공장에 나가있다는걸 알았다.

손소독기제작이 다 끝났는데 기사장의 립회하에 한번 시운전을 해보고 공장에 실어가려고 한다는것이였다.

천호며 원걸이, 거기에 태인이까지 있다고 했다. 하긴 태인이가 주동이 됐으리라는건 뻔했다.

방금전에 한 당비서의 말이 생각났다. 만약 이런 제의를 받고도 발동되지 않으면 그 통보가 고스란히 당비서앞으로 들어갈걸 생각하니 움직이지 않을수가 없었다.

할수없이 자재운반용소형차를 타고 대학의 실습공장으로 가니 원걸은 물론 천호며 태인이도 있었다. 얼핏 은희도 있은것같았으나 어디로 사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우덕진은 내색하지 않고 버릇처럼 웃는 얼굴로 설명서를 읽어보고는 눈길을 돌려 제작해놓은 손소독기를 내려다보았다.

높이가 1m, 너비가 60cm정도인 손소독기안에는 아래우에 각각 1개씩의 자외선살균등이 있는것으로 간단해보였지만 우점이 많은것으로 실용적이라는게 대뜸 알렸다.

야외에서 손소독을 해야 하는 공장실정에서 약물소독때와 달리 화학적작용과 계절적영향을 받지 않으면서도 소독을 균일하게 할수 있으며 특히 겨울철에 사용하기 편리하며 또한 아래에 배풍장치가 있어 손소독과 함께 신발의 기계적청소와 소독도 동시에 할수 있고 소독약도 절약할수 있게 되니 그저 그만이였다.

《좋구만. 어서 시운전을 하오.》

그리고는 슬밋슬밋 밖으로 나왔다. 그는 문곁에 서있던 은희가 후닥닥 놀라 물러나는것도 모른척 하고 그냥 지나쳤다. 얼굴에서 미소는 떠돌고있지만 그는 지금 은희보고 이렇다저렇다 시비할 경황이 없었다.

손소독기는 실용적가치가 높다는것이 불보듯 뻔했다. 그러나 왜서인지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그건 무슨 심리인가.

오래 생각할것도 없었다. 그것은 원걸이가 만들었기때문에 마음에 싸지 않았다. 원걸이가 두건을 했더라면 내가 그렇게 망신했을텐가. 이젠 원걸이라는 이름만 불러도 넌덜머리가 났다. 더우기 가시같은 천호가 끼여있어 골살이 풀려지지 않았다. 아니, 그는 이미 보이지 않는 가시가 아니였다. 이번 비상사고로 천호는 완전히 자기의 머리우로 부상한 존재로 드러났다. 근간에 와서 천호는 많은 경우 침묵으로 대하군 했고 일체 물어보는 일이 없어졌다. 이것은 기사장인 자기를 로골적으로 무시하는 일이였으나 그렇다고 그를 시비할수도 없었다. 그저 모르는척, 못본척 하는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돌아설수가 없어 시운전이 다 끝날때 까지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기사장동지, 이런 수준이면 국가발명품전시회에 당당히 나갈수 있겠지요? 그동안 원걸동무가 애를 많이 썼습니다.》

태인이가 춤이라도 출듯 가볍게 손소독기를 한바퀴 빙 돌아보고서 다가왔다.

《아니 아니, 태인선생이 도왔으니 완성됐습니다.》

원걸이가 황황히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옆에 섰던 천호가 《태인선생이 도운건 사실이지만 창안자야 엄연히 원걸동무지. 출품날자가 지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며 국가발명총국에 알아봐줄것을 기사장에게 은근히 시사했다.

《알겠소. 국가발명총국엔 인차 알아보기요.》

우덕진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점잖게 한마디 하고는 그 자리를 물러났다.

그러나 가슴속에서는 편안치 않은 속심이 꿈틀거리였다.

원걸의것이 평가되면 그것은 자기의 면상을 후려갈기는것으로 되였다. 그들남매는 기회만 있으면 생각해주려고 했는데 보답은커녕 자기를 골탕먹이는것으로 대답했다.

화가 난김에 앞에 보이는 오리알만한 돌을 걷어찼다. 발끝이 얼얼 했다. 솟구치는 밸을 누르기 힘들었다. 바위 차면 발부리 아픈걸 몰랐더냐.

이럴 때 귀아프게 전화종소리가 났다. 번호를 보니 난처하게도 국가발명총국의 안면있는 책임부원의 전화번호였다. 피하는줄도 모르고 아마 손소독기를 독촉하는 전화일지도 모른다. 받지 않았다. 그랬더니 련속 또 울렸다.

우정 찾아야겠는데 찾아오는 그에게 말이야 못하랴.

전화를 받으니 아닐세라 손소독기에 대한 독촉이였다.

우덕진은 천연스럽게 잘되지 않은듯 뒤손을 쳤다.

아직 미완성이라는둥, 공장에서 환영하지 않는다면서 한참동안 부족점들을 렬거했다. 일단 입을 터치고 또 이것이 출품되면 안된다고 생각하니 자기 입에서 무슨 말이 나가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이쯤하면 포기하겠지.

그러나 일반생활은 자기의 예상대로 되지 않는것이 상례이다.

끝내 손소독기는 출품되였고 대단한 호평속에서 당당하게 발명권을 받았다. 한원걸은 손소독기의 창안자로 전시회에 참가하게 되였다. 더우기 손소독기는 공장실정에 맞는것으로 호평이 좋았다.

공장에서는 직장별로 전시회장을 참관했다. 누구나의 입에서 손소독기 말이 나오면서부터 우덕진의 얼굴에서는 늘 어려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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