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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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덕진때문에 눈에 띄게 나타나는건 박은희였다. 방실거리던 웃음은 이미 그의 얼굴에서 사라졌다. 어느날엔가는 밤교대를 하면서 차가 뜸해진 깊은 밤에 혼자서 실컷 울기도 했었다. 교대가 끝나기 바쁘게 집에 들어갔고 삼촌이 눈에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던 땐 이미 아득히 사라졌다. 사고가 일어난 후부터 기사장에 대한 통보는 고스란히 그의 귀에 들어오군 했다. 물론 삼촌이 해임된것이 아니지만 아예 해임되여 다른곳으로 가버린것만 못했다. 그렇게도 도고하고 기가 펄펄하던 삼촌의 맥빠진 모습은 차마 봐줄수 없었다. 이제 어떻게 사람들앞에 나설수 있을가 하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는 요즘 밤교대를 내처 했다. 그와 교대를 하게 되는 애기엄마는 통신공부가 밀려서 그런다는 은희의 말을 곧이듣고 몸을 돌보면서 공부하라는 말을 하고는 들어갔다. 10시가 지난 다음부터는 오는 차도 없었다. 집중오리먹이수송기간이 아니고서는 대체로 조용한것이 여기 계량실이다.

그전에는 누구도 보아주지 않는 계량실이 외따로 떨어져있는것이 다 원망스럽던 은희였지만 지금은 누구의 눈에 띄우는것이 제일 싫었다.

제일 난처한 일은 공장예술공연때 독창을 했으면 하고 조현숙에게 말한것이였다. 그날 조현숙이가 말한대로 아직 당비서에게 말하지 않은것이 그래도 다행이라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었다.

그런데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틀전이였다. 공장 청년동맹위원장이 계량실에 찾아왔다. 같이 일하는 애기엄마가 그의 안해여서 청년동맹위원장은 웬만해서는 여기 계량실에 오지 않았다. 그가 찾아온것은 정말 뜻밖이였다.

그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청년동맹원들이 공장의 현대화에서 마지막공정으로 남아있는 공장정문앞 포장작업을 맡아하는데 은희도 참가해야겠다는것이다. 그리고 뒤끝에 하는 오락회에서 한명도 빠짐없이 독창을 하게 되니 동무도 한마디 할 준비를 하라는것이였다.

어디에도 얼굴을 내밀고싶지 않는 속에서 노래는 할 생각이 안나지만 청년들이 맡아하는 작업에 빠질수는 없었다.

정문앞포장작업은 새벽부터 시작되였다. 청년들만 한다는건 말뿐이였다. 당비서를 선두로 당위원회가 총동원되고 직장의 세포비서들이 다 참가한데다 자원한 사람이 많아 작업장은 사람들로 와글와글했다.

청년들이 왁작 떠들며 일을 하려니 가슴속에서 눈물이 차오르는것처럼 울적하던 날이 언제더냐싶게 기분이 휘딱 뒤집어졌다. 그러나 작업이 끝난후 한사람씩 지명당해서 독창을 할 때에는 선뜻 일어날수가 없었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 했다. 은희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앞으로만 쏠린 때 자기가 뒤로 빠지면 누구도 모를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언제 눈치챘는지 청년동맹위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무들! 이번에는 박은희동무의 독창을 듣겠습니다. 그 동무가 지명당하기 전에 이렇게 일어나고있습니다.》

《어마나!》 이런 망신이라구야. 은희는 고개를 떨구었다.

청년동맹위원장이 다가왔다.

《은희동무, 자 어서.》

《아이, 난 몰라요.》 은희는 몸을 비틀며 눈을 흘겼다.

《그러지 마시오. 오늘 동무가 여기에 나오게 된것도 또 오락회를 하게 된건 다 비서동지의 지시가 있어서 하는거요. 자 어서, 동무의 노래를 듣자고 모두 기다리고있소. 동무가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른다면서?》

《예?!》 눈앞이 뽀얗게 흐려왔다. 눈물이 쏟아질가봐 강잉히 입술을 깨물었다.

한구석에 박힌채 고민하고있을가봐 힘을 주고 생기를 주려는 그 마음, 그런것도 모르고 외롭다고 생각했었지. 참 난 맹꽁이야.

저쪽에 있는 당비서가 격려나 하듯 바라보고있었다.

어느새 마음을 진정한 은희는 가운데로 나갔다. 이번엔 사람들속에 끼인 조현숙의 얼굴이 보였다.

그제야 가늠이 되였다. 그가 자기 마음을 든장질하면서도 잊지 않고 비서동지에게 여쭈었다는것, 그래서 이런 자리가 마련되였음을 은희는 그제야 깨달았다.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가. 가슴이 찌르르 달아올랐다.

은희는 자기의 입에서 언제 노래가 흘러나왔는지 느끼지 못했다.

 

굽이굽이 머나먼 길 홀로 걸을 때

바람부는 험한 령길 나 홀로 넘을 때

남몰래 살펴준 그 사랑 내 미처 몰랐네

아 내 운명 지켜준 어머니당이여

 

아무도 가려볼수 없었다.

언제나 내 가슴속에 오늘을 잊지 않고 간직할테다. 은희는 또 불렀다. 이번에는 모두 따라불렀다.

 

말 못하는 괴로움도 남먼저 알고

그 사랑 그다지 깊은줄 내 미처 몰랐네

아 내 운명 지켜준 어머니당이여

 

그날 계량실로 돌아오는 구내길을 은희는 원걸이와 나란히 걸었다.

《정말 잘 불렀어.》

《…》

은희는 고개를 숙인채 입을 열지 않았다. 입을 열면 한껏 달아오른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그래서 가슴을 싸안듯 두손을 포개안았다.

머리우에서 따사로운 해빛이 비치였고 곁에는 이렇게 속을 터놓을수 있는 원걸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방그레 미소가 피여났다.

《은희, 기뻐하라구. 글쎄 손소독기를 하자고 태인선생이 찾아오지 않았겠어.》

은희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껏 태인선생이 손소독기문제를 꺼내기만 하면 화제를 돌린다는 말을 들었던 은희였다. 그가 왔다는건 무슨 생각이 있어서 일가?

《내 말 좀 들어보라구. 오늘 태인선생은 대학당위원회에서 찾는다면서 아침에 떠나지 않았댔나.》

참 그랬다. 그가 대학에서 찾는다면서 바로 계량실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은희는 호기심이 나서 원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태인선생이 무슨 일인가 해서 대학당위원회에 가니 대학당비서가 공장에 파견된 특사가 왔다고 반기더래. <석동무가 공장에 나가 일을 잘한다니 참 기쁘오. 많은 문제들을 풀었다더구만. 공장동무들보다 더 열성이 높대.> 하면서.

태인선생은 떨떨해져서 아무말도 못하고 서있기만 했다나.

<그곳 공장의 당비서가 왔댔소, 동무에 대해 평가해달라구.> 하면서 대학에서 연구사들이 전국 각지에 파견되였지만 이렇게 당비서가 직접 찾아온적은 없었다고 하면서 이번에 연구사업에서 성과가 많은 젊은 연구사들을 당대렬에 받아들이는 사업이 있다고 알려주었다누만.》

《어마나, 얼마나 좋을가.》 은희는 자기 일처럼 기뻐서 속삭였다.

《태인선생은 그저 목이 꽉 메여올라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며 방금전에 내 손을 붙잡고 이러지 않겠어.

자기가 이적기며 무인화호동을 완성하는 사업에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미해결을 안고있다. 그리고 발효공정의 공업화문제도 어디 나 혼자 한 일인가, 천호동무랑 원걸이 동무랑 다같이 한게 아닌가, 사실 자강도에 갔을 때 천호동무가 손소독기문제를 꺼냈지만 자긴 그 생각은 하지두 않았다고 비판하지 않겠어, 자기의 생각이 짧았다면서. 그 손소독기를 빨리 완성하자구 하면서 당장 자기네 대학실습공장에 가자고 하더구만.》

《정말이예요? 그 선생이 우리당비서동지의 그 마음에 감동됐구만요.》

원걸이가 그렇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리고 또 기쁜 소식은 이제 우리 공장에서도 원격교육대학의 강의를 받을수 있게 된다누만.》

《원격교육대학?》 은희는 눈이 동그래졌다.

《공장에 김책공업종합대학이 생기는셈이지. 대학과 망으로 련결되여서 우린 공장에서 대학공부를 하게 돼.》

《어마나! 그렇게 바라던 소원이 앉은자리에서 풀리네.》 은희는 한꺼번에 쏟아지는 복을 어떻게 받아안을지 모를 심정이였다.

《그래서 빨리 손소독기를 완성하려고 그래. 지금 대학실습공장에 가려던 참이야. 태인선생이랑 천호동지랑…》

《같이 가요. 내 얼른 준비해가지고 나올게.》

은희는 계량실로 뛰여가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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