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 4 장

사랑을 꽃에 비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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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변경주기가 지내 빠른데 이상한 생각이 들어 계기실을 돌아보니 웬걸 어느새 왔는지 변경변조작스위치를 틀어잡고있는 교대부직장장이 형묵이에게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도대체 정신이 있소? 이게 뭐 동무네 집 밥가만가 하오? 엉?》

푸접이 좋기로 소문난 형묵이였으나 너무나도 험악한 부직장장의 기상에 기가 질렸는지 아무 대꾸도 못하고 입만 쩝쩝 다셨다. 보매 승인을 얻으러 갔던 형묵이와 지령실에서부터 옥신각신한 모양인데 로에서 취입하고있는것을 보고는 화가 동해 달려온 부직장장인것같았다.

《로설비만은 공장의 승인없이 발브 하나 다치지 못한다는걸 모르오? 모르는가 말이요?》

소리칠 때마다 그의 입안은 온통 현란한 금빛으로 번쩍거렸다.

진호는 얼른 그에게로 다가갔다.

《부직장장동무! 시험은 제가 하자고 해서 한것이지 형묵반장한테는 잘못이 없습니다.》

《동무가 뭐요? 직장장이요, 지배인이요?》

도끼눈을 한 부직장장은 진호를 당장 찍어넘길듯이 꼬나보았다. 언제나 정도이상으로 격하군 해서 아무 말이나 조심스럽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부직장장이라는것을 알고있는 진호는 더없이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사실 이건 시험이라기보다 실험에 불과하지요.》

《실험? 실험이면 실험실에서 할노릇이지 왜 여기서 야단이요, 야단은!》

《이걸 보십시오. 이미 실험을 통해 많은걸 알아냈단 말입니다. 말하자면 새로운 성냥가치를 만들었는데 그걸 시험해보는것과 같지요. 여태까지는 만들어놓고도 그걸 켜볼 성냥판이 없었기때문에 시험을 못했지만 이젠 그 성냥이 얼마만 한 열을 내는가 하는것도 알아봐야 되잖겠습니까. 방금 취입해보니 생각보다…》

《글쎄 안된다지 않소! 안된단 말이요.》

두부모 자르듯이 손을 홱 내리그은 그는 무엇때문인지 진호에게 손바닥을 내밀어보였다. 무슨 뜻인지 몰라 진호가 마주 쳐다보자 그는 이제까지 성내던 사람같지도 않는 어조로 말했다.

《한대 없소?》

마치 누구든 자기를 화나게 한 사람은 응당 담배를 권해야 한다는듯한 태도였으나 진호는 그의 행동에 어떤 여지가 있을수도 있다는것을 느끼고 얼른 주머니에서 《제비》담배를 꺼내 갑채로 맡기였다.

《그저 한두주기만 시험하게 해주십시오. 1시간이면 됩니다. 생산에 지장을 주거나 설비를 혹사하는 일이 없을테니 안심하십시오.》

부직장장은 아무 대꾸도 없이 담배만 빨아댔다.

《부직장장동무!》

진호는 한걸음 더 그에게로 다가섰다.

《첨엔 열이 떨어지더니 연료취입을 조절하니까 뚝 멎더란 말입니다. 이건 보충연료와의 배합비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지요. 확실히 새로 만든 성냥은…》

《제발 그 성냥이요, 성냥곽이요 하는건 주머니에 넣어두우.》

그는 마치 이렇게 하라는듯이 쥐고있던 《제비》담배곽을 통채로 자기 웃주머니에 훌쩍 집어넣고는 지령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 담배는 왜 가지고가!》

옆에 있던 형묵이가 어처구니없다는듯이 중얼거렸다.

(과연 이다지도 힘이 든단 말인가!)

걸음마다 앞을 막아서는 암초에 진호는 화가 동해올랐다. 침체와 보수는 배겨낼래야 낼수 없으리라고 믿었던 현실에 대한 자기의 짐작이 한갖 유치한 공상에 지나지 않음을 다시금 통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다면 도대체 혁신은 어떻게 이루어질것인가! 새 연료안을 앞당기기는 고사하고 도리여 이런 구태의연한 분위기에 묻혀 영영 매장되고말것이 아닌가!)

순간 그는 몸을 떨었다.

(아니다! 이걸 극복해야 한다. 바로 이 질식을 뚫고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어떤 일이 있어도 취입시험을 해야 한다! 오직 그 길만이 새 연료안을 완성하는 길이고 혁신을 이룩하는 길이다.)

불현듯 어떤 저돌적인 흥분이 그를 세차게 사로잡는것이였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진호에게는 마침내 기다리던 기회가 차례졌다. 고집이 소발통같은 교대부직장장이 대휴를 받은데다가 작업공정도 취입시험을 하기에 좋은 가열기에 맞다들렸다.

사실 공장의 승인도 승인이지만 그보다 로장의 허가를 어떻게 받을가 하는 생각에 더 암담해있던 진호는 아무래도 로장이 지키지 않는 후야근교대때 시험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고 짬짬이 취입준비를 갖추어놓았던것이다.

《자, 빨리!》

형묵은 취입구에 투사기를 설치하고있는 작업반원들을 다몰아댔다.

어떤 일에 부딪쳐도 행동을 먼저 한 다음에야 말로 설명하는데 버릇된 형묵은 진호와 어딘가 일맥상통한데가 있었다. 그를 만나는 첫 순간부터 진호는 그가 무엇인가 일단 마음먹기만 하면 그 희망을 달성하기까지는 억척스레 매여달리며 그것이 뜻대로 안되는 경우에는 매일처럼 아니, 매 시간마다 달려와서 종당에는 한소동 일으키고야말 그런 형의 청년이라는것을 알아차렸다.

사람들은 그의 너무나도 엉뚱한 행동에 자주 놀라군 했는데 그 결과가 어떻든 그는 《할수 없지요 뭐》, 《욕을 먹지요 뭐》하고 은연히 대꾸하군 했다. 그래서 용해공들은 그를 《태평반장》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공장대학 3학년생인 그는 대학에서도 많은 일화를 남기고있었다. 강사의 물음에 제일먼저 일어서는것은 그였지만 언제나 대답은 틀린다는것이였다.

언젠가 사회과목시간에 선생이 공산주의에 대해서 질문하자 그는 대뜸 일어서서 《사회주의 쁠류수 전기홥니다.》하고 자신있게 대답했다는것이다.

《그럼 사회주의는 뭐요?》

다시 이렇게 묻자 그는 주저하는 빛도 없이 《거야 공산주의 미누스 전기화지요 뭐.》하고 대꾸해서 선생과 학생들이 배를 그러쥐게 만들었다는것이다. 그만치 엉뚱하고도 배포가 유한 친구였지만 언제나 직장간부들과는 엇서기가 일쑤여서 자주 비판무대에 나서군 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그렇다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회의때마다 그를 두들겨패는 일군들조차 급한 정황이 생기거나 중요한 일이 생길 때면 그를 먼저 찾는것이였다.

이윽고 조립된 투사기로 연료를 취입하기 시작했다.

진호는 처음부터 연료의 취입량을 조절하면서 화염온도를 주시했다. 우선 가스와 산소의 취입량을 고정시켜놓은채 연료량을 증가시켜보았다. 그러나 이렇다할 변화가 없었다. 이번엔 반대로 취입량을 점점 적게 해보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때 로앞에 바투 서있던 형묵이가 갑자기 환성을 지르다싶이 했다.

《아니, 저걸 보오, 저 화염색갈을!》

진호는 얼른 광온계를 눈에 갖다댔다. 까딱하지 않던 바늘이 1 770도에서 미미하게 상승하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렇지! 이건 바로 연료의 취입량과 온도가 서로 비례하지 않는다는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문제는 보충연료와의 적합한 배합비를 찾는데 있다. 그 배합비도 보충연료들이 중유취입때보다 적어야 하며 그러면서도 필요한 온도를 얻을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그는 자기의 생각을 되새겨보는 순간 다시말해서 자기의 구상을 확증해보는 순간 모르긴 해도 자기가 확신하고있는것이 옳으리라는것을 본능으로 느꼈다. 하지만 이런 확신은 찰나에 불과했다.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았는데 로내 온도가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기때문이였다.

진호는 곧 발브의 조절이 없이도 취입이 계속되는 경우에는 연료량이 점차 많아질수 있다는것을 짐작하고 얼른 연료를 적재해둔 장입실에 올라섰다. 아니나다를가 엄청나게 많은 연료가 취입되고있었다.

(혹시 지나친 취입이 도리여?)

이런 의혹은 그를 곧 새로운 흥분으로 휘몰아갔다.

(취입량이 많아도 열이 떨어질수 있지! 있고말고! 그래! 다음주기엔 이걸 확인하자!)

변경신호가 날 때에야 그는 자기 몸이 흠뻑 젖어있다는것을 알았다.

《후―》

장입실턱에 허리를 얹은 그는 취입에서 나타난 현상들을 다시 되새겨보며 련관된 고리를 하나로 이어보았다. 그러나 아직은 많은것이 집중되지 않고 분산돼있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미지근한 땀방울이 가슴이며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시금 《후―》하고 긴숨을 내쉬며 목에 건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씻으려던 바로 그 순간이였다.

갑자기 귀를 멍멍하게 하는 요란한 폭음에 이어 자기 몸이 공중까마득히 솟구쳐오르는것을 그는 똑똑히 알았다.

《꽝!》

무엇을 가릴 사이도 없이 또 한번의 폭음과 함께 자기 몸에 특히 한쪽어깨에 무자비한 타격이 가해지는것을 이번에는 꿈속에서처럼 어렴풋이 느꼈던것이다. 그다음부턴 아무 생각도 감각도 없었다. 다만 주위의 모든것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고 적막할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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