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4 장

사랑을 꽃에 비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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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는 자기가 따뜻한 눈송이에 포근히 싸여있는것만 같았다. 영원히 그속에 묻혀있고만싶었다.

노래를 듣고나서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날수가 없었다.

가슴속에서는 여전히 노래소리가 울려퍼지고있었다.

(내 어떤 일이 있어도 기어이 새 연료를 만들어 우리 수령님께 꼭 기쁨을 올리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갑자기 딴 사람이 되기라도 한것처럼 힘찬 걸음을 성큼성큼 내디디였다.

퇴근했을줄 알았던 공정기사들이 오늘따라 무엇때문인지 하나같이 다 자리에 앉아있었다. 심각한 표정들로 보아 무슨 심상찮은 일이 있는게 분명했다.

《그러게 내 뭐라던가? 그만큼 천정연화만이라도 갖다놓으라구 얼마나 말했어! 그런데 뭐 보수가 보름은 걸릴거라구? 자, 보란 말일세. 이들이 일을 얼마나 열광적으로 해제꼈나!》

생산을 담당하고있는 성일이가 이렇게 웨치자 식물성기름만 먹고 자란듯이 연약해보이는 리현이가 대뜸 코웃음을 쳤다.

《흠, 열광? 하긴 그런 방법이 기적을 낳을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건 열광이 아니라 오히려 력량과 설비의 무모한 랑비에 불과하다는걸 알아야 하네. 그들은 계획과 로동조직을 무시하고있거던. 그런 열광이야말로 소나기와 같은거지. 그 소나기로 하여 어지러워진 진창이 이제 생산에 어떤 지장을 주게 되는지 두고보게.》

론점은 4호로의 중보수문제였다. 생산담당인 성일이는 계획보다 일찍 시작한 보수가 벌써 끝나간다는것을 긍정하면서 그에 따르는 자재와 설비, 특히 천정연화를 제때에 대주지 않는데 대한 불만이였고 설비담당인 리현이는 반대로 계획보다 먼저 시작한 보수로 하여 자기 분야에 가해진 피해에 대해 격분해하고있었다.

《도대체 보수를 앞당겨한것이 어째서 력량과 설비의 랑비라는건가? 그게 어째서 생산에 지장을 주구?》

《이걸 보게. 계획에 의하면 4호는 이달 중순에 수리하게 돼있네. 그런데 열흘이나 먼저 시작했지. 그럼 과연 더 가동할수 없는 실탠가? 아니네! 노력하면 얼마든지 견딜수 있었지. 그런데도 로를 깠거던. 그래 이것으로 해서 원료와 연료계획은 물론 수백톤에 달하는 자재가 랑비된다는건 생각지 않나? 공급체계가 마비된건 둘째치고 전반의 생산에 얼마나 지장을 주는가 말일세.》

《지장은 무슨 놈의 지장! 그만큼 수리를 일찍 끝냈으니 절대가동시간은 많을게고 생산도 많아질게 아닌가?》

《이렇게 답답하다구야!》

리현이는 가느다란 목을 설레설레 저었다.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네. 새 로가 축조됐으니 지령실에서는 자연히 원료를 4호에 집중시킬게거던, 직장적으로 보면 그렇게 하는것이 생산성이 높으니까. 그럼 다른 로들이 한물 뽑는 사이 4호에선 두물을 뽑지. 일은 쉽고 생산은 배로 오르구. 바로 이걸 노린단 말일세.

다른 로들이 맥을 못 출 때 제꺽 수리해서 자기네만 강행조업을 한다! 이거야말로 중량급선수가 경량급선수를 때려눕히고 1등 하는것과 뭐가 다른가! 그래 생산을 많이 한다고 이런걸 긍정할수 있어? 그런데 문제는 뭔가? 직장에서도 이런 현상을 비판할 대신 생산을 잘한다고 도리여 춰주는데 있지. 난 생산을 턱에 걸고 이런 교묘한 수단을 쓰는 4호로를 평가할것이 아니라 도리여 문제를 세워야 한다고 보네.》

담당기사란 자기 부문의 대변자요, 옹호자기때문에 자주 이런 마찰이 있기마련이지만 이번처럼 심각하게 대립되기는 처음이였다.

책임기사는 언제나처럼 책상우에 펴놓은 종이장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그리고만 있었다. 그의 이런 태도는 론쟁에 열중하고있을뿐 아니라 여느때없이 심사숙고하고있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였다.

새로운 산소강욕취입안의 부분설계가 완성되지 못한것으로 하여 그는 아직 출장을 떠나지 못하고있었다. 그 설계가 완성돼야 기술과의 협조성원들과 함께 현지로 떠날수 있었다.

《옳소! 그들은 틀림없이 그런 방법으로 기적을 낳으려고 했소. 이달 생산평가에서 4호를 제외하는것은 물론 설비와 자재의 소요량을 따져보고 그만큼 변상케 합시다.》

그의 말은 조용했지만 움직일수 없는 힘을 지니고있었다.

《다른 의견들은 없소?》

모두들 잠잠했다.

《다른 문제긴 하지만 하나 제기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사람은 기계담당인 장환이였다.

《다름이 아니라 투사기문제지요. 가스압이 증가된것과 관련해서 투사기에 일련의 부족점이 나타난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고열로동을 막기 위해 도입된 새 기계가 아닙니까. 그런데도 무턱대고 일축해버리니 이거야 어디…》

마침이라고 생각한 진호는 대뜸 일어서며 다급히 말했다.

《옳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린 로장을 납득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우리가 그의 태도를 묵인한다면 앞으로는 어떤 기술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엄중한 후과입니까? 그리고 이건 응당 대담하게 극복해야 할 사소한 결함에 지나지 않지요. 난 이 문제에 한해서는 조직적으로라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기술혁명은 기계혁명이기 전에 사상혁명이니까요.》

진호는 마치 자기 말에 그 어떤 의견도 있을수 없다는듯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언제나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있던 그가 오늘따라 웬일이냐는듯이 모두 놀란 표정이였으나 진호는 이렇게라도 말해놓고나니 태수의 부탁은 물론 방금 노래를 선물해준 은심이한테도 어느 정도의 면목은 선듯싶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였다.

《투사기에 대한 의견에는 나도 동감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투사기는 쓰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철이도 호응해나섰다.

《전 다른 의견이예요.》

맨 끝자리에 앉아있던 정아가 야무진 눈길로 이쪽을 돌아보는것이였다.

《?》

진호는 은연중 이마살을 찌프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건 옳지 않다고 봐요. 우선 우리의 립장, 기술자의 립장에서 옳지 않아요. 사상혁명은 뭐 로장한테만 해당되고 우리한텐 적용되지 않는건가요. 오히려 우리한테 더 필요한게 아니겠어요. 그리고 기계의 선택은 전적으로 로동자들에게 한하는게 아니예요? 우린 그들의 선택에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을뿐이지요. 그런데 어째서 달가와하지 않는것을 억지로 쓰게 해야 합니까. 그런 강압적인 방법은 자기의 임무에 대한 너무도 피동적인 자세라고 봐요.》

(피동적인 자세?)

그 말이 언젠가 자기가 중유절약안을 두고 한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는것이라고 생각하자 진호는 울컥 화가 치밀었다.

(보복을 하는건가?)

(그래요, 보복이예요.)

마주 쏘아보는 정아의 눈길은 드러내놓고 이렇게 말하는것같았다.

그때 론쟁이 있은 후로는 마주서지 않았지만 서로가 싸움은 일시 가라앉았을뿐 완전히 끝난것이 아니라는것을 느끼고있었던것이다.

《우린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한 립장보다 로동자들을 위한 립장, 공장과 국가를 위한 립장에 서야 한다고 봐요.》

《국가를 위한 립장? 아니, 그럼 우리가 뭐 개인기업을 한다는거요? 자신을 위한 일이자 곧 국가를 위한 일이 아니겠소.》

《그래도 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요.》

《뭐가 그렇지 않다는거요?》

성일이와 리현이의 론쟁이 어느새 진호와 정아의 론쟁으로 번져갔다.

《전 투사기에 대한 진호동무의 주장이 용해공들의 립장에서가 아니라 창안자 즉 태수동무의 립장에서만 생각한것이라고 봐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는 당장 심사를 앞두고있기때문이겠지요. 가까운 동무를 도우려면 더 진실하게 도와야잖아요?》

《뭐요?》

진호는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동문 내가 무원칙하게 싸고돈다는거요?》

《그래요.》

정아는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됐소. 조용히 토론합시다.》

분위기를 늦춰보려는듯 어줍은 미소를 띠우는 기철이였으나 그 미소가 진호에게는 어쩐지 불쾌했다. 그것은 마치 정아가 아픈 곳을 건드린다고 해서 뭐 겁낼 필요가 없다는것을 암시하는것같았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한편으로는 어떤 온당치 못한것을 교묘하게 숨겨온 자기가 그것을 적발당함으로 해서 격분하고있지 않나 하는 일종의 수치감 비슷한것이 온몸을 휩싸는것이였다.

(아니! 난 응당한것을 위해 옳게 행동하고있을뿐이다.)

이렇게 거듭 확신하면서도 그는 왜서인지 얼굴이 달아올랐고 그리하여 정아를 마주볼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더 화만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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