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4 장

사랑을 꽃에 비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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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꽃들이 피여나고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하는 이때야말로 누구에게나 일년중에서도 가장 즐거운 계절, 가슴부풀어오르는 기쁨의 계절이련만 쇠물을 끓이는 용해공들에게는 도리여 시름이 시작되는 계절인것이다. 일년 4계절을 줄곧 불앞에서 사는 사람들이여서 눈덮인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은 모두 여름으로 간주하는데 버릇된 이들이였다.

진호도 벌써부터 앞으로의 시련이 보통 아닐것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닥쳐올 더위도 더위지만 요즘에 와서는 주위의 분위기를 통하여 자기가 바랐던 정신적인 희열과 따뜻한 즐거움을 찾기는 어려우리라는 느낌이 드는것이였다. 왜서인지 자꾸만 불안하고 초조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연료의 직접취입을 결심했을 땐 연료에 배합할 첨가제의 성분만 확정해놓으면 되리라고 여겼던것이 그것을 준비해놓은 지금에 와서는 또 연료를 취입할 취입장치가 문제였다. 그 취입장치도 밤패워 설계는 끝냈으나 기술부의 검사를 거쳐 공무직장에서 완성까지 하자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일이 걸릴지 알수 없는 일이였다.

겹쌓이는 난관보다도 그가 더 불안스러운것은 이런 난관을 타개할 자신심이 희박해지는데 있었고 나아가서는 그처럼 가슴깊이 다졌던 애초의 그 결심을 혹시 성사시키지 못하지나 않을가 하는 걱정이였다.

확실히 자기의 생각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현실이였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의도를 알기만 하면 팔을 걷고나서리라 믿었고 그리하여 쉽사리 자기의 지향이 어떻다는것이 증명되리라고 여겼던것이 도와주기는커녕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것이 아닌가! 첨엔 자기의 출현에 일정한 충동을 받은것같던 사람들도 이젠 기대를 잃고 랭랭한 태도를 취하는것이였다.

《자― 이젠 두달이 지났소. 그동안 동무가 해놓은 일이 뭐요? 당장 일을 칠것처럼 덤비더니… 누군 뭐 동무만 못해서 고생하는줄 아오?》

모두가 이러며 손가락질하는것같았다. 그런데도 자기는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은채 어떤 대책 하나 똑바로 취하지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를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면서 안일무위한 생활에 빠져들어가고있는 이것이 더욱 부아를 돋구는것이였다.

새 연료안추진만이 아니였다. 며칠전부터는 또 하나의 골치거리가 생겼는데 그것은 여태껏 말없이 잘 쓰던 태수의 투사기를 로장이 용해장 한쪽구석에 밀어놓은 사실이였다. 리윤즉 로에 취입되는 가스압이 높아지자 투사기로 분사하는 보수재가 그 가스에 날려 후벽보수를 제대로 못한다는것이였다.

설사 그런 부족점이 있다 해도 태수가 그처럼 고생해 만들어놓은 기계를 부정해버리는 로장의 태도란 너무도 지나친것이 아닌가! 더우기 당장 심사를 눈앞에 두고 그런 배척을 당한다면 평가에 결정적인 영향이 미치리라는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그가 투사기에 대해 각별히 마음쓰지 않을수 없는데는 출장을 떠나면서 하던 태수의 부탁때문이였다.

《혹시 심사가 있을 때까지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대신 변론을 좀 맡아주게. 도면심사가 아니니까 내가 없어도 일없으리라고 보네. 사실 그 사람들한테야 내보다 동무가 훨씬 유력할테니까.》

《그러니 막후교섭을 하라는건가? 좋아, 걱정말게! 내 힘껏 해볼테니!》

대학때부터 그가 베푼 우애에 비해 너무도 무심했던 자기로서 이 부탁만은 꼭 성실히 수행하는것으로써 친구의 도리를 지키고싶었던것이다. 그리하여 온밤 구체적인 작전을 세운 그는 지금 로장을 찾아가는 길이였다.

창조과정에는 어떤 부족점도 있을수 있다는 일반적인 지역사격으로부터 투사기의 우월성을 론증하는 집중사격을 들이댈 심산이였으나 어딘가 찜찜하기도 했다.

마침 휴계실에서는 로장이 낮교대작업반장과 마주앉아 한담을 하고있었다. 무엇때문인지 매우 흐뭇한 표정을 짓고있던 그였으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진호를 보고는 곧 이마살을 찌프렸다.

《왜? 또 투사긴가?》

《그렇습니다. 전 아무리 생각해도 투사기를 쓰는게 옳다고 봅니다.》

《…》

진호는 마음을 다잡으며 로장을 지켜보았다.

《혹시 보수재반죽을 지금보다 더 굳게 하고 투사압을 높여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래봤네만 안돼.》

《그럼 가스를 낮춰도 안돼요?》

《가스를 낮춰? 그렇게 하면 될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할수야 없지 않나.》

마주 쳐다보는 로장의 서늘한 눈길에서 잠시도 열을 떨굴수 없다는 뜻을 알아챘으나 그렇다고 잠자코 있을순 없었다.

《그래야 단 몇분동안이 아닙니까?》

《몇분? 이 사람아, 그 몇분동안에 수백톤의 쇠물이 왔다갔다해! 우린 입김이라도 더 불어넣고싶은 심정인데 가스를 낮춰?》

《아바이!》

진호는 곧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결함이야 있겠지요. 그렇지만 심사를 앞둔 설비가 아닙니까. 그리고 기계란 흔히 쓰는 과정에 더욱 좋게 완성될수도 있구요.》

《나도 아네, 친구가 만들어놓은 설비니까 자네 맘이 더 간절하다는걸.》

《아니, 전 뭐 그래서가 아닙니다. 전 다만…》

서둘러 이렇게 부인한 진호였으나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 보게. 지금상태의 투사기로 로보수를 한다는건 사실 로벽을 허무는것이나 다를바 없네. 우린 설사 그 기계가 없어 살거죽이 익는다 해도 우리 손으로 후벽을 보강하겠네. 살점을 떼붙이는 한이 있어두 말일세!》

흔연한 표정으로 진호를 쳐다본 우택은 탁자우에 놓여있는 사탕봉지에서 알사탕 한알을 꺼내 입에 넣더니 우드득 하고 씹었다. 호두알도 깨물수 있는 단단한 이발을 가진 로장이라는것을 모르는 진호가 아니였지만 사정없이 박살내여 씹어대는 거기에 자기 의견에 대한 그의 대답이 있는듯싶었다.

아니나다를가 그는 곧 황소처럼 한쪽입귀를 실룩하며 웃어보였는데 그 웃음은 주로 어처구니없을 때만 사용하는것이였다. 이 웃음만 나오면 벌써 어쩔 도리가 없는것이였다.

집중사격이고 지역사격이고 통할리 만무였다.

(이 사실을 알면 태수가 얼마나 괴로와할텐가!)

자기를 쳐다보던 태수의 얼굴이 다시금 눈앞에 나타났다.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투사기는 쓰게 해야 한다. 로장은 단지 있을수 있는 불안전성에 겁을 먹고있을뿐이다! 그거야말로 기술에 대한 무관심이지.)

이렇게 마음을 다지며 휴계실을 나선 그는 사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공정기사들과 토론해볼 생각이였던것이다.

공장정문으로는 벌써 후야근교대성원들이 떼를 지어 들어서고있었다. 언제나처럼 정문앞에 서있는 방송차에서는 흥겨운 노래소리가 흘러나오고있었다.

 

높은 산 험한 령이 우리는 좋아

사나운 비바람이 우리는 좋아

 

(넨장! 그저 좋다는군! 하긴 높은 산이나 험한 령 정도라면 얼마나 좋아! 이건 발붙일 틈도 없는 절벽인데야.)

로장을 생각하며 그는 이렇게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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