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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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가 완성되여가는 공장은 하루가 다르게 일신되여갔다.
공장으로 들어오는 동뚝우의 어수선하던 잡관목들이 일매지게 다듬어졌고 주변이 시원하게 정리되였다. 사무실들을 비롯한 완성된 건물들에 각기 제 특성에 맞게 색갈까지 입히고 얼룩얼룩하던 살림집까지 산뜻하게 채색을 하니 공장이나 사택마을이나 다같이 새옷을 차려입은것같아 기분이 건뜻해졌다. 공장울타리에 바싹 붙어 그늘을 던지던 나무들도 다 옮겨지고 뒤길도 번듯하게 넓어졌다. 이제 공장으로 들어오는 큰길만 포장하면 손색이 없을것같았다.
우덕진은 여느때없이 바빴다. 공장의 전반적기술상태를 장악해나가는중에서도 요즘은 기술혁신안까지 종합해야 했다.
당위원회의 포치대로 중간총화가 당장 눈앞에 있었던것이다.
제출한 기술혁신안들은 하나같이 특성이 있었다.
개개의 기술혁신안들이 다 우수했고 기발하게 착상한것들이였다.
제출자명단을 훑어보니 대학을 졸업한 기술자들은 다 참가했고 대학통신생들도 더러 보였다. 중간총화니만큼 아직 완성되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이 제출한 기술혁신안 제목은 하나하나가 놀라울 정도였다. 제목만 있고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것들은 아마 더 완성시켜 내놓을 잡도리인것같았다.
놀랍게도 《수직살창식경사건조로기술안》이라는 제목은 당비서가 제출했고 지배인은 《여러가지 조건에서 지렁이서식에 대한 시험》이라는 기술혁신안 외에 한가지가 더 있었다.
우덕진은 은근히 속이 떨렸다. 선포하는 때부터 당비서나 지배인이 례외가 아니라더니 그들부터 모범을 보였다. 그런데 기사장이라는 사람이 아직 내놓지 못하고있으니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것처럼 초조해났다.
그는 기술혁신안을 번지면서 한원걸을 찾아보았다. 그가 제출한 제목은 《효능높은 자외선살균손소독기》라고 되여있으나 아직 제출되지 않았다. 채 완성되지 못했다는 소리다.
우덕진은 당장에 이마에 피대줄이 곤두섰다.
(두건을 하라고 했는데 한건도 제출하지 못하다니? 암만봐도 키가 큰게 싱겁기만 하다니까.)
아무리 욕을 하고 두덜대도 가슴이 시원해지지 않았다. 예견성있게 원걸이에게 두건을 하라고 한건 만일의 경우 자기가 준비하지 못하면 용한 그를 구슬려 우선 자기도 제출했다는 체면이라도 세울 생각이였다. 그런데 두건은커녕 자기것도 하지 못한 정도였다. 자기의 손안에 든 원걸이라고 다 먹어놓은 떡처럼 생각했는데 이제는 바라볼 정도가 못되였다.
우덕진은 제출된 기술혁신안들을 우두커니 내려다보았다. 공장안의 기술자들이 다 참가한 기술혁신경기에 자기만 참가하지 않았다는것이 께름했다. 무엇보다 기술혁신경기에 심의성원으로 뽑힌 차학선이가 은근히 두려웠다. 그전날 기술협의회때 별스레 배치도를 눈여겨보는 바람에 진땀을 빼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선뜩해왔다. 기술적인 문제를 놓고는 그의 눈을 속이기 힘들었다. 그가 기술고문으로 임명될 때 어떻게든 훼방을 놀지 못한게 여간 후회되지 않았다. 아마 차학선은 중간총화자료를 종합하면 제일먼저 당비서에게 보고할것이였다. 이제라도 무슨 방도가 없을가.
눈앞에 있는 기술혁신안들이 춤추듯 요물거리며 눈을 자극했다. 가만, 이것들중에서 잘 종합하기만 하면 하나 작성할수 있지 않을가? 그전날의 지배인의 배치도를 리용하던 식이면 얼마든지 할수 있었다. 옳다. 우덕진의 머리는 재빠르게 돌아갔다. 어느 제목을 해야 제일 빠를가.
그중 마음에 있는건 《단백곤충서식에 발효먹이를 적용한 효과》였다. 그외에도 《단백풀과 고추냉이풀혼합시험에 대한 자료》 등 몇가지가 있었다. 단백풀시험은 공장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자료여서 좀 미타하지만 단백곤충자료는 그렇지 않았다. 그 제출자는 단백반의 기술부원이였다. 순박하기만한 그의 둥실한 얼굴이 떠오르자 금시 가슴이 허누룩해졌다. 그건 자기가 먼저 한것이라고 슬쩍 말만 해도 그는 헤벌쭉 웃기만 할 숙맥이라고 생각되였다. 그쯤 되고보니 욕심주머니가 대번에 늘어나 당장이라도 하나는 만들어낼것같아 제목들을 더듬어나가기 시작했다.
문득 요란한 전화종소리가 방안을 흔들었다. 제목들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송수화기를 들던 우덕진은 기급했다. 비상전화였다. 지금 호동에서 오리들이 무리로 죽어나가고있다는 소식이였다. 이런 변 봤나.
기술혁신안이고 뭐고 생각할새가 없이 책상에 그대로 펼쳐놓은채 호동으로 달려갔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이미 죽은 오리들이 쌓여있었고 줄똥을 싸며 엎디여있는 놈들도 수두룩했다.
혼겁이 나서 수의사를 불러내고 직장장들의 집에 전화를 하게 했다.
문제는 한개 호동뿐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엄지오리만 아직 나타난게 없을뿐인데 그것도 마음놓을 일이 못되였다.
지배인은 입원했고 당비서는 세멘트때문에 공장을 떠나 없는 때 이런 소동이 일어났으니 죽을놈은 자기 혼자였다. 이러나저러나간에 원인규명을 해야 했다.
우덕진은 바람이 일게 옷자락을 날리며 호동으로 달려갔다.
제일먼저 맞다들린 호동앞에 가니 관리공이 죽은 오리들을 모으고있었다. 쌓인 오리도 많지만 여기저기에 쓰러진 오리들이 너저분했다. 그리고 살아있는 오리들도 비틀거리거나 부들부들 떨면서 서서히 죽어가고있었다. 대번에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누구에게든지 성풀이를 하지 않으면 견딜수 없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소리를 질러댔다.
《아, 아직도 이러구있소? 빨리 원인을 찾아야지. 직장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소?》
《나왔습니다. 지금 원인을 찾느라구…》
죽은 오리를 들고있던 어린 관리공이 그만에야 더 말을 못하고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우덕진은 휭하니 오리더미앞으로 다가가서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불쑥 내뱉았다.
《이거 혹시 전염병이 아니요?》
《예?!》
죽은 오리를 들고있던 관리공이 깜짝 놀라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