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 회)
제 4 장
꽃은 꽃밭에서만 피는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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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무실에 돌아와 가방안에 필요한걸 넣으며 떠날 준비를 하는데 별안간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며 차학선이가 급하게 들어섰다.
《당비서동지, 내가 찾은게 하나 있습니다. 자.》
차학선이가 무슨 두루마리를 들고 들어오며 하는 소리다. 그는 요즘 새로 맡은 기술혁신경기의 심사원역할을 착실히 집행하고있었다. 지배인의 방에서 일을 하게 했더니 내놓지 않은 지배인의 연구실적을 연방 찾아냈다.
차학선이가 처음으로 펼치는것은 단백반의 배치도였다.
《이 배치도가 낯익지 않습니까? 전번에 기술협의회때…》
그것을 보는 순간 신형일은 생각되는게 있어 급히 콤퓨터화면을 켰다. 그리고 자기가 보관했던 자료들을 부지런히 찾았다. 우덕진이가 내놓은 배치도가 희한하고 탐구흔적이 력력해서 자기가 입력시켰던것이 생각났던것이다.
드디여 입력했던 배치도가 나타났다. 차학선이가 가져온것을 대조해보던 신형일은 너무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제목도 근사하고 내용 역시 너무나도 비슷한 배치도였기때문이였다.
《내가 언젠가 지배인동지가 이걸 그리고있는걸 보았댔단 말입니다. 그걸 보며 지배인은 정말 누구도 따르지 못할 기술적실력이 있구나 하고 감탄했는데 눈앞에 척 나타난게 신통히 내가 봤던 그 배치도란 말이우다. 보고 또 보아도 내 눈으로 보았던것이여서 이상하다 했지요.》
《?!…》 입이 열려지지 않았다. 기술협의회때 이상하게도 직관도앞에까지 가서 들여다보던 차학선의 행동이 생각히웠다.
그렇다면 우덕진의 그 배치도는 지배인의것이였단 말인가. 신형일은 그만 의자에 주저앉고말았다. 신형일은 차학선이가 언제 나갔는지도 느끼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물론 지배인이 자기의것을 참고하라고 주었을수 있지만 기사장은 뻐젓하게 자기가 한것처럼 해서는 안될 일이였다. 이런 사람을 공장의 기둥으로 믿고있다니.
오늘 종금호동에서 있은 일도 우연이 아니였다. 원인없는 우연이란 있을수 없는것이다. 자기를 수양하지 않고 현대과학으로 무장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지 않은 결과이다.
이제야 한미순의 남편의 말이 깨도가 되였다. 미덥지 않아 하며 따지고드는 나같은 당비서를 두고 그가 얼마나 실망했을가. 신형일은 오래동안 일어날념을 않고 자기를 심각히 반성했다.
그동안에 기사장이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제기된게 없는가고 두번이나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에게 내색하지 않고 태연하게 자기 일을 보라고 말하자니 온몸의 힘을 짜내는듯이 뻐근했다. 이 문제는 지배인을 만나면 더 정확하게 알수 있는 일이였다. 지배인은 자강도에 갔다온 후에 면회를 가서 만날 생각이였다.
지배인은 그동안 성과적으로 수술을 끝내고 안정치료를 하고있었다.
아직 면회를 가지 못했지만 처가 지배인에게 자주 면회가도록 당부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지금은 빨리 자강도로 떠날 차비를 해야 했다.
문이 열리며 석태인이와 천호가 들어왔다.
방금전까지 호동에서 돌아가던 천호는 어느새 옷도 갈아입고 어깨 한쪽엔 배가 불룩한 려행가방을 메고있었다. 직장장들은 차옆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먼저 나가오, 내 인차 나가지.》
얼마후에 신형일이네가 탄 소형뻐스는 공장을 빠져나갔다.
신형일은 가던 도중에 집에 들렸다. 오래동안 집에 들어오지 못했던 그는 곧장 아버지방으로 건너갔다.
해빛이 따사롭게 비쳐드는 방안은 온화했다. 아버지는 방금 식사를 끝낸참인듯 침상에 기대여있었다.
신형일은 얼른 죽그릇이 놓인 차탁을 바라보았다. 골숨하게 남긴 죽 공기에 숟가락이 얹혀있었다.
아버지한테 죄스러움을 느낀 신형일은 그앞에 꿇어앉으며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런 시간에 집엘 다 오느냐?》
의아해하면서도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며 신형일은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전장을 헤쳐온 로병같지 않게 나른했다.
《아버지,
《그래? 너희가 하는 일은 어떻게 되느냐, 그 발효제 말이다.》
《아직 신통치 않습니다.》
아버지의 시선이 조용히 창가로 향해졌다. 방안에는 똑딱거리는 시계소리만 들려올뿐 조용했다. 스러져가는것같던 아버지의 눈가에 생기가 돌았다. 이윽토록 무슨 생각엔가 잠겨있던가싶던 아버지가 마른 입술을 추기며 입을 열었다.
《네 열성이 부족한것같구나.
신형일은 마른침을 삼키며 아버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속에 놓치지 말아야 할 그 무엇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강시연이가 제일 힘든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지?》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난듯 화제를 돌렸다.
신형일은 강시연의 제기를 듣고 제일먼저 아버지에게 알렸던것이다.
《예, 딴 사람이 됐습니다. 얼마나 성실한지 공장에서 모두 말합니다.》
《그는 워낙 총명하고 성실하다. 자기를 수양하지 않다보니 생활에서 탈선했댔지. 이제 다 제대로 될게다.》
신형일은 아버지의 눈가에 피여난 미소를 알아보았다. 아버지는 지금 시름을 놓는것이다.
《그럼 지체말고 어서 떠나거라, 내 걱정 말고.》 하면서도 아버지는 아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눈길엔 손에 쥔 자기의 귀중한 보물을 놓치지 않을듯한 간절하고 불타는듯한 그 무엇이 간직되여있는듯했다.
그는 아버지를 부축하여 자리에 눕혔다. 갓난애기처럼 공손히 말을 듣는 아버지를 보니 눈물이 나올것같았다. 별로 아버지의 눈빛은 맑았다. 맑디맑은 눈동자에 하많은 말을 안고 간절하게 올려다보기만 하는 그 눈길을 보니 쉬이 발길을 돌리기 힘들었다. 한동안 아버지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바재이기만 하자 아버지가 신형일의 팔목을 꼭 잡았다. 어린아기의 손같이 가냘프게 느껴지던 손이 아니라 뼈마디에 힘이 가는 손이였다. 온 육신의 힘을 다하는듯 강단이 느껴지는 바람에 신형일은 놀랍게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아버지의 눈가에 가는 부채살같은 주름이 잡히였다. 그것은 미소로 하여 생기는 주름살이였다. 아버지의 건강때문에 주저하는 이 아들에게 아버지는 손을 잡아주고 미소를 보내는것이다. 신형일은 아버지의 그 마음을 알아듣고 마주 손을 잡았다.
어서 떠나거라. 나는 너를 믿는다. 어서 그 공장처럼 너희도 현대화를 완성해서 꼭 기쁨을 드려라. 아버지는 그것을 믿는다.
신형일이도 아버지의 타는듯한 눈길에서 말없는 부탁을 받아안았다.
이윽고 신형일은 일어섰다. 조심히 눈치를 살피면서도 무엇인가를 기대하는것같은 안해를 보며 신형일은 한마디 했다.
《미안하오. 지금은 바빠서 그냥 가겠소.》 그리고는 그의 손을 잡았다. 안해의 눈가에 금시 물기가 그렁해졌다.
순간 신형일의 가슴이 찌르르해났다. 별치않은 말에, 한번 잡아주는 손길을 두고 안해는 감심해한다. 무엇인가 더 말하고싶었지만 입이 열려지지 않았다. 그는 더 서있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러나 돌아와서는 안해와 많은 말을 할 생각이였다. 아버지의 몸상태를 보니 새삼스레 안해의 수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였다.
따라나오는 안해의 시선을 느끼며 신형일은 말없이 층계를 내렸다.
소형뻐스안에 앉아있던 석태인이와 천호가 밖으로 나와 안해에게 인사를 했다.
안해가 그들에게 무엇인가 들려주고있었다.
《아니, 이건 뭡니까?》
펄쩍 뛰는 태인의 놀람을 누르며 《고맙습니다.》하는 묵직한 천호의 목소리가 들리였다. 앉아있던 직장장들이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인사를 했다. 아마 안해가 도중식사를 준비한 모양이였다.
신형일은 차에 오를 생각은 않고 공장접수에 전화를 걸어 수려가 공장에 돌아왔는가를 물었다. 아직 안왔다는 대답을 듣자 운전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황동무, 저기 다리밑으로 천천히 돌면서 떠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