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3 장
불길처럼 타오르라
12
(1)
용금은 로벽을 두드리며 세차게 끓어오르고있었다.
정련기, 쇠물이 최고의 온도에서 비등되면서 용금속에 포함된 불순물과 갈라지는 가장 맹렬한 반응이 촉진되는 때다. 불순물이란 언제나 제일 높은 온도에서만 분리되는 법이다.
우택로장은 두툼한 벙어리장갑을 낀 두손을 얼굴부위에 올리고 로안을 유심히 살피고있었다. 손을 들고있는것은 뜨겁게 미치는 복사열을 막기 위해선데 이쪽저쪽을 들여다볼 때마다 손위치도 이리저리 달라지는것이여서 마치 격술선수가 천천히 시범동작을 하고있는것같았다.
지금도 그는 최대의 온도에서 정련작업을 다그치고있었다.
자기가 로를 조작하는 한에 있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의 의지에 로가 복종할것이며 또 사소한 사고도 생기지 않으리라는것을 확신하는 그였다.
자기에 대한 신심, 자기 힘에 대한 신심은 그에게 각별한 기쁨, 아무리 제강하기 어려운 강종이라도 훌륭히 졸여낸다는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창조의 기쁨을 산생시켰고 불패의 힘을 주는것이였다. 언제나 그는 로를 자기 몸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는것이여서 로의 요구를 짐작하는것이 아니라 체감하는것이였다.
용해공들은 주위에서 쇠물을 뜨기도 하고 시편을 깨보기도 하면서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로장의 지시를 기다리고있었다.
출강을 앞둔 이런 때면 용해공들은 로장의 어떤 지시라도 제때에 응할수 있는 만단의 태세를 갖추고있어야 했다. 만약 한순간이라도 그의 요구를 지체시켜 혼란을 가져오기라도 하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것을 너무나 잘 아는 이들이였다.
누구를 큰소리로 나무라거나 꾸짖을줄 모르는 우택은 맞갖잖은 일이 있을 땐 그저 상대를 묵묵히 마주보기만 했는데 그때 그의 눈길은 앞에 있는것이 사람이 아니라 쓸모없이 굴러다니는 쇠꼬챙이나 나무토막을 볼 때와 같은 그런 무심한 눈길이였다. 그러나 이 눈길에 한번 쏘이기만 하면 아무리 성격이 드센 사람도 그 자리에서 초절임이 돼버렸다. 초절임만 시켜놓으면 몰라라 다음날부터는 그에게 일체 작업분담을 하지 않기때문에 정말 그는 나무토막이나 꾸어온 보리자루신세를 면치 못하는것이였다.
억대우같은 용해공들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로장앞에 있을 때면 언제나 자기는 기운이 왕성한 사람이지 절대로 나무토막이나 쇠꼬챙이가 아니라는것을 시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를 봐가며 해야지 잘못하다간 《쫄랑거리지 말어! 쇠물은 눈치가 아니라 맘으로 끓이는거야.》 하는 말을 듣기가 일쑤였다.
이처럼 엄한 그였으나 기분이 좋을 때는 가끔씩 《갈매기 쌍쌍》을 목청껏 뽑아 부르기도 했는데 그것은 노래라기보다 글을 읽는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직장사람들은 물론 온 공장사람들이 한결같이 그를 아끼고 존경했다. 그런데는 해방전부터 용해공이였다는, 또 최고기능공으로서 수많은 용해공을 길러냈다는 무시할수 없는 관록때문이기도 했으나 보다는 그의 이마에 새겨진 깊숙한 상처자리로 해서였다.
피맺힌 과거가 새겨진 그의 이 상처에는 각별한 사연이 깃들어있기도 했다.
왜놈들은 현장에서 로동재해로 잘못된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어린 아들을 용해장에 끌어냈다. 안전시설도 없는데서 일하다가 잘못됐는데도 턱없는 빚까지 연약한 그의 어깨우에 짊어지워놓았던것이다.
그가 열여덟살때였다.
쇠물을 뜨려고 쇠물뜨개를 로안에 들이밀던 우택은 갑자기 불길이 확-하고 내부는 바람에 일시 주춤했는데 그바람에 쇠물뜨개는 벌써 엿가락처럼 휘여들고말았다.
문짝도 없는 로앞에서 어떻게 쇠물을 단번에 떠낼수 있으랴만 감독놈은 불길을 낮춰주기는커녕 단 한번의 실수조차 용서하지 않았다.
《무엇이나 따가운가! 무엇이나! 무엇이나!》
슬라크를 걷어내기 위해 들고있던 칼날같은 철판이 순식간에 그의 이마로 날아들었다. 대번에 그의 이마에서는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뿜어올랐다.
그러나 아프다는 말 한마디없이 팔굽으로 이마를 쑥 문대고난 그는 곧 다른 쇠물뜨개를 들고와 다시 로안에 밀어넣었다. 누가 봐도 그의 행동은 자기 잘못에 대한 공손한 보상처럼 여겨졌다. 실상 출강직전의 쇠물이란 초를 다투며 성분을 달리하기때문에 잠시도 우물거릴수가 없었던것이다.
쇠물을 떠내기 바쁘게 슬라크를 걷어낸 감독놈은 쏟아놓은 용금에서 피여오르는 불꽃을 보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 이놈이 쇠물뜨개에 남아있던 반바가지의 쇠물이 자기 잔등에 쏟아지리라는걸 상상인들 할수 있었으랴. 불꽃만 지켜보기에 여념이 없던 감독놈은 갑자기 《으악.》 하는 비명을 지르며 공중으로 길길이 뛰여올랐다.
《아찌찌.》
《흠! 따가운줄은 아나보군!》
자벌레처럼 발딱거리는 감독놈을 노려보며 우택은 이렇게 말했다는것이다.
이 일로 하여 놈들에게 잡혀갔던 그는 해방이 되여서야 다시 돌아왔고 돌아와서는 놈들이 마사놓고 달아난 로를 맨 선참으로 복구했다. 그런데
첫 출강의 날에 오매에도 그리던
출강작업을 끝낸 우택의 땀에 젖은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며 짧은 기일안에 로를 복구해서 쇠물을 뽑은 동무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하시던
우택이 상처에 대한 사연을 말씀올리자
우택은 그날 난생처음 눈물이 쩝절하다는것을 알았다.
이런 사실로 하여 사람들은 그를 더욱 존대했고 이마에 난 상처를 무슨 금별메달이라도 되는것처럼 선망이 어린 눈길로 쳐다보는것이였다.
《자요, 아바이!》
작업반의 막내동이 영기가 얼음을 띄운 탄산수고뿌를 그에게 내밀었다.
용해공이 된지 두달밖에 되지 않는 그여서 작업분담은 늘 공구관리에 불과했지만 자기도 이젠 어엿한 용해공이라는것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아하는 귀염둥이였다.
작업복도 몸에 꼭 맞게 고쳐입었고 모자에 다는 코발트안경까지도 어디서 제일 멋진걸로 구해달고 다녔다. 하지만 지내 새것일 경우에는 누가 봐도 첫눈에 햇내기라는것이 알린다는것을 고려하여 불편하지 않게 한쪽 귀때기에 약간 금이 가게 한것은 물론 작업복도 팔굽이나 무릎을 더러 눋게 했는데 얼핏 보면 정말 몇년은 용해장에서 잘 굴러먹은듯한감이 드는것이였다.
《열이 과하지 않아요?》
《어째?》
《천정이 저렇게 새하얀데요!》
열이요 천정이요 하는게 벌써 그의 푼수치고는 지내 오지랖 넓은것이지만 우택은 천정을 올려다보는척 했다. 영기에게만은 정도이상으로 다심한 우택이였다.
영기가 이러는데는 누구나 로장앞에서는 함부로 말도 걸지 못하지만 자기는 그렇지 않다는것을 시위해보임으로써 자기를 허술히 대하는 반원들에게 일종의 시기심을 촉발하려는데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매번 사전에 탄로나버리군 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은척 하면서도 남들은 인정하지 않고 남들을 인정하는척 하면서도 자기를 나타내지 못해 애쓰는 년령기엔 누구나 그런것처럼 그
역시 지금 자기도 용해공이라는것을, 선전화에도 언제나 제일 앞에 서있는 로동계급중에서도 진짜배기 로동계급이라는것을 만사람에게 시위해보이지
못하는것이 여간만 안타깝지 않았다. 그럴수만 있다면 멋있는 작업바지에 파란 보안경이 달린 모자를 이마우에 쑥 올려붙인채 시내의 한복판을 아니,
수도의 대도로를 맘껏 활보하며 《자- 보시오, 내가 용해공이요. 내가 우리
그러면 자기를 필경 교과서의 그림에서나 보았을 꼬마들이 《야-용해공아저씨다.》하고 달려와 조롱조롱 매달릴것이고 어른들은 《음- 저 사람이 바로 쇠물을 끓이는 사람이군!》 하며 선망어린 눈길로 쳐다볼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흐뭇한 미소를, 사나이다운 미소를 보내주고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씩 일군 했다.
특히 후야근작업때 로문의 동그란 시공으로 내뻗치는 화광을 한몸에 받으며 용해장에 서있느라면 마치 오색령롱한 조명이 비치는 화려한 무대에 서있는듯한 착각이 일어 그 유혹은 더욱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것이였다. 그가 생각하는 무대라는것은 온 세상이였고 뜨겁게 내려비치는 조명은 만사람의 경탄어린 시선이였다.
《이런거야 제때에 치워놔야지. 뭐야! 자- 영기!》
이런 소리와 함께 비자루 하나가 휭하니 날아와 발앞에 떨어지는 바람에 그는 대뜸 눈을 까뒤집고 그쪽을 쏘아보았다. 제때에 현장정리를 하라는 소리였다.
이런 현실은 늘 꿈같은 하늘을 날고있는 그에게 참을수 없는 수치를 안겨주었다.
(빌어먹을! 당장 공구관리를 집어치우든가 해야지, 이거야 어디… 엥이!)
그는 자기의 위신을 저락시키고도 태평스레 누워있는 비자루를 구두발로 힘껏 걷어찼다. 밸이 난김에 또 한번 차려고 뿌르르 달려가던 그는 저쪽에서 줄을 지어 밀려드는 견학생들바람에 할수없이 그것을 집어들었다.
매일처럼 찾아드는 견학생들이여서 놀라울건 없지만 오늘은 하나같이 차림들이 요란해서 대번에 용해장이 환해진것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