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3 장

불길처럼 타오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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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장초급당비서를 만나본 진호는 맡겨두었던 짐들을 책임기사방에 옮겨놓은 다음에야 태수가 있는 기술과로 찾아갔다.

《아-니 이게 누군가, 응? 정말이군그래, 정말이야!》

기술과청사의 좁은 계단으로 막 굴러내려오다싶이한 태수는 다짜고짜 진호를 부둥켜안았다.

《하- 이거 모르겠는걸! 어떻게 된판인지 모르겠다니! 어디 보세, 진호가 맞나.》

《글쎄 내가 뭐랬어, 꼭 온다잖았는가 말야!》

사무실에 들어서서도 태수는 《자- 다들 보시오, 바로 이 친구가 진호요.》 하고는 마치 경기에서 이기고 퇴장하는 진호를 맞을 때처럼 허리를 안고 한바퀴 돌기까지 했다. 이런 부산스런 행동에도 부서사람들은 탓하는 기색이 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뭐라고 한마디 한 태수는 곧 진호의 팔을 끌었다.

《가자구.》

《어디루?》

《어디긴 어디야, 우리 집이지!》

《우리 집?》

그제야 진호는 그사이 태수가 결혼했다는것을 감감 잊고있은 사실에 놀랐다.

작년말, 결혼식에 꼭 와야 한다는 편지를 받고도 바쁜 출장이 제기되여 몸을 빼지 못했던 자기였다. 지방려관의 초라한 방안에서 어떤 축전을 보낼것인가를 궁리하다가 숱한 초안들을 다 찢어버리고 《행복의 꽃을 피우라》는 단마디로 된 전문을 날렸던것이다.

어떻게 생긴 녀잘가? 성격은 어떻고?

모르긴 해도 태수의 안해될 녀자라면 한두마디의 핀잔쯤에는 끄떡도 하지 않을 녀장부래야 된다고 믿는 진호였다. 그렇지 않다간 그 드센 성격에 몰리워 밤낮 애꿎은 눈물만 짜리라는것은 의심할 여지없었다.

편지에는 교원대학을 졸업한 꼬마선생님이라고 했었지?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도 태수가 어떤 녀자를 데려왔겠는지 가늠할수 없었다. 우선 그가 낯모를 녀성과 생활을 꾸리고있다는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다.

결혼생활, 특히 신혼생활이란 부부끼리 서로 귀속말로 속삭일줄도 알아야 하고 안해의 온정에 넘친 트집도 아량있게 대할줄 알며 특히는 각별한 매력이 숨어있는 생활의 갈피들을 묘리있게 들추어내는 재간도 있어야겠는데 덜퉁스럽기만 한, 수업시간 옆사람과 한다는 얘기가 강사의 목소리보다도 큰 그가 어떻게 그런 생활을 꾸려나가는지 자못 의심스럽기만 했다. 한마디로 색다른 생활을 능숙하게 대할 재치라고는 전혀 없는 그가 어떻게 살고있는지 몹시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 우습기도 했다.

사무실을 나서면서 진호는 소란을 피운데 대한 사과의 뜻에서 사람들에게 묵례를 했다.

문옆에 서있는 남달리 뚱뚱하고 혈색이 좋은 사람에게 시선이 미친 그는 분명 낮에 전화를 받던 그 과장이라고 생각하며 각별히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보였다.

《아깐 안됐습니다.》

《뭘요.》

아무 의미도 없는 미소를 띄운 그였으나 목소리만은 더없이 위엄이 있었다.

《어때? 경기장에선 내가 내내 동무의 뒤를 쫓았지만 이번엔 날 따르지 않을수 없었지?》

《정말 죽기내기로 따라왔네.》

《어물어물하다간 영 떨어지고말어!》

정말 자기뒤를 바싹 쫓아오는가 어떤가를 시험이라도 하듯이 태수는 두팔을 휘저으며 힘차게 걸었다.

《같이 배치된 친구들은 다 잘있나?》

《잘있지. 이젠 여기 귀신이 다 됐어. 정국이는 밤낮 새까매가지고 두더지처럼 굴뚝만 쑤시는데 뭐 연진에서 새로운 금속을 잡아낸다나? 그리고 용필이는.》

《용필이라니?》

《아, 왜 그 〈구강공학강좌장〉있잖아.》

《그래그래!》

너무도 능한 웅변가여서 일격에 《구강공학강좌장》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은 기계제작학부의 뚱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친군 무슨 프로그람선반에 달라붙었는데 도무지 만날 사이도 없어!》

《참! 내가 깜빡 잊었댔군! 축하하네. 그사이 굉장한걸 만들었더군. 투사기 말이야.》

《피-》

미간을 찌프린 태수는 곧 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언제나 자기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아무리 응당한것이여도 이러군 하는 그였다.

《내가 특별히 고맙게 여기는건 그게 대단한 기계라는데도 있지만 보다는 그걸 만든것으로 해서 동무가 내 빚을 갚아준거야.》

《빚이라니?》

《그런 일이 있지!》

《아직이야 알게 뭔가? 이제 부의 심사를 거쳐봐야지. 생각만 해도 난 벌써부터 가슴이 졸아드네. 그들이야 덮어놓고 흠만 잡자고 달려드는걸.》

《아니, 환성을 올릴거네. 용해공들이 격찬인데야 무슨 걱정인가. 표창급수에 상금은 맡아둔걸세.》

《제-길.》

기쁠 때마다 속으로는 더없이 흥이 나 하면서도 무슨 다른 화제를 꺼내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군 하는 그의 모습을 보느라니 진호는 자기들이 그동안 서로 떨어져있은것이 아니라 대학생활을 그대로 연장하고있으며 교정을 거닐며 하던 얘기를 계속하고있는듯싶었다.

태수를 만나는 첫 순간에 진호는 벌써 그가 이전과는 달라졌다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오래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던 사람의 얼굴을 오래간만에 볼 때면 처음에는 헤여져있었던 사이에 생긴 외모의 변화에 놀라게 되지만 차츰 그 얼굴은 이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면서 모든 변화들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그 사람에게 고유한 표정만이 나타나는 법이다.

진호도 그에게서 바로 그런 낯익은 점들을 찾아보게 되면서도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특징, 확신에 넘쳐 한곳을 향해 줄달음치는 사람에게만 특유한 열정과 신심을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본래의것을 억지로 다르게 바꾸어 나타내는것이 아니라 본래의것이 한껏 좋게 발전된, 말하자면 훌륭한 생활속에서만 얻을수 있는 자신심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아니 왜 이쪽으로 가나?》

인도를 벗어나 야산쪽에 있는 좁다란 비탈길로 접어드는 바람에 진호는 의아한 눈길로 태수를 쳐다보았다.

《아빠트에 들라는걸 떼를 써서 이 집을 얻었네. 낡은 유습이라고 욕할건 없어. 일이 일이니만치 조용한 곳에 있고싶더군. 또 일터가 가깝기도 하고. 그런데 왜 물어보지 않나? 어떤 처녀를 얻었는가구?》

《왜 겁이 나나? 과소평가할가봐?》

진호는 뒤에 선것으로 하여 태수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게 유감스러웠다.

《난 동무의 평가보다 자기의 인상을 기준으로 삼고픈거야. 내가 물어보면 동문 암암리에 정도이상으로 과장할게고 그럼 난 실지 부닥쳐서는 실망할수도 있지 않나.》

《원, 제-길! 보면 알겠지만 과대고 과소고 할 대상이 못돼!》

태수는 어처구니없다는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지막한 산비탈을 에돌자 열댓채됨직한 아담한 사택들이 서로 이마를 맞대고있었다. 그중 첫머리에 있는 집앞에 이른 태수는 익숙한 동작으로 울타리문을 열어제꼈다.

첫눈에도 주부의 알뜰한 손길이 느껴지는 정갈한 집이였다.

마당가에는 벌써 품들여 손질해놓은 꽃밭이 있고 그 주위로는 하얀 옥돌들이 보석처럼 다문다문 박혀있었다. 그 꽃밭으로부터 지붕까지는 포도넝쿨이 덮여있어 여름이면 아늑한 공원에 들어선듯한 느낌이 들게 할것이 틀림없었다. 처마끝에 매달아놓은 새장들에 눈길이 미친 진호는 더욱 어리둥절해지고말았다.

《아니! 이거야 분수가 없을따름이지 별장이 아니고 뭔가!》

모든것이 태수의 재간이 아닐것은 두말할것도 없고 오히려 이렇게 꾸리기까지 그가 안해의 속을 얼마나 태웠겠는가를 십분 짐작할수 있었다.

《엉큼하다니… 어느새 이런 알뜰한 처녀를 다 구슬려냈나? 그렇지만 뭐 1년만 지나면 저절로 달아나고말걸! 도대체 어떤 처녀가 동무같은 불도젤한테 견디겠나 말일세.》

이러면서 뒤돌아보던 진호는 주춤하지 않을수 없었다.

어느새 자기옆에 얼굴을 다소곳이 숙인 태수의 안해가 미소를 머금고 서있기때문이였다.

《안녕하십니까?》

《? !》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몰라 주밋주밋하는데 옆에 다가선 태수가 웃음을 터뜨리는것이였다.

《하하! 이젠 좀 헴이 들었군그래. 우물쭈물할 때가 다 있는걸 보니.》

《정은심이예요. 얘긴 많이 들었습니다.》

자그마한 키에 상냥한 눈빛도 다정스러웠지만 바로 그 유순한 눈에서 흘러나오는듯한 맑은 목소리가 더욱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한데 지내 아련해뵈는걸? 태수가 한마디만 해도 대꾸는커녕 눈물부터 떨구겠군. 그렇지만 저 귀여운 모습으로 해서 이 친구가 노상 입을 벌리고살겠어!)

《자, 이젠 올라오게. 우린 그저 이렇게 사네.》

퇴마루에 올라서서 방문을 열어젖히며 말하는 태수의 어조는 마치도 초라한 살림을 흉보지는 말라는듯 했으나 그 말이 진호에게는 되려 정반대의 의미, 즉 《자, 우리는 이렇게 행복하게 사네.》하고 강조하는것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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