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3 장

불길처럼 타오르라

10

(1)

 

(여기가 지령실이던가?)

현장을 한바퀴 돌아본 진호는 5호로옆에 있는 산뜻한 2층건물, 용해장을 환히 내다볼수 있게 한면이 온통 유리로 되여있어 마치 1등선박의 조타실을 련상시키는 웃층을 쳐다보다가 그리로 올라갔다.

태엽에 감겨진 기계처럼 그는 한동작이 끝나면 서슴없이 다른 동작으로 넘어가군 했다.

초록색주단이 깔려있는 정갈한 방안, 문을 닫고 들어서자마자 외계의 소음은 들리지 않아 갑자기 물속에라도 잠긴듯한 정적을 느낄 때에야, 특히 벽을 따라 주런이 놓인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자기를 쳐다볼 때에야 그는 자기가 다소 덤비고있다는것을 느꼈다.

《저-》

무슨 말을 해야 하며 어떻게 처신해야 자연스러울것인가를 미처 생각할 사이도 없었던 그는 자기의 마음속에서 일고있는 흥분으로 하여 그만 미소를, 그것도 퍽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우고말았는데 이 헤식은 미소가 사람들을 더욱 아연케 만들었다는것을 통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건 어디서 굴러온 얼뜨기야!)

모두의 시선이 이러는것같아 창피했으나 그 부끄러움으로 하여 한결 대담해진 그는 지령탁을 향해 서슴없이 걸어갔다.

모르긴 해도 여러대의 전화기와 산업TV화면을 마주하고 앉아있는 머리가 멋있게 벗어져올라간 사람이 필경 직장장이 아니면 그쯤되는 사람이라고 확신해마지 않았던것이다.

《직장에 새로 배치돼왔습니다. 리진호라고 합니다. 앞으로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줄곧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마주 쳐다보던 그였으나 진호가 허리를 굽석하고 숙이자 갑자기 풍이라도 만난 사람처럼 두손을 황급히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내가 아닙니다.》

입을 싸쥐고 웃는 킥킥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에야 진호는 자기가 또 하나의 망측한 실수를 저질렀다는것을 알았다.

(넨장! 머리는 왜 벗어져가지고…)

그는 모든 원인이 상대의 벗어진 이마에 있기라도 한것처럼 그의 대머리를 힐끔 쏘아보았다.

《전 그저 지령원에 불과하지요. 예, 저기 저 동무가 바로 우리 책임기삽니다.》

그가 가리키는쪽으로 고개를 돌린 진호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의 행동은 마치 자기가 제때에 일어나지 않으면 진호가 또 실수를 하리라고 여겨 그 망신을 사전에 면하게 해주려는것같았다.

《제가 책임기삽니다.》

《?》

그에게 다가선 진호는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자기의 직속상관일 사람이 겨우 자기 나이와 비슷할 새파란 청년이였기때문이였다.

(이렇게도 젊은 친구가 책임기사라니? 보통이 아닌걸!)

유순한 눈빛과 부드러운 목소리, 시선이 마주칠 때면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은 마치 수태를 머금은 순박한 처녀같았으나 가끔씩 어덴지 모르게 나타나군 하는 긴장한 표정은 어떤 일도 허술히 하지 않는 영민한 사람의 자신심이 어려있었다. 분명 평시엔 얌전하다가도 일단 전투에 돌입하기만 하면 남다른 투지를 나타낼 그런 부류의 젊은이라는것이 알렸다.

《방금 간부과에 들렸다가 오는 길입니다.》

자기 소개를 하면서도 진호는 책임기사를 유심히 살폈다.

소금기가 내밴 뻣뻣한 작업복을 입고있는 모습이며 얼굴전체에 느껴지는 진지한 표정은 늘 무거운 부담을 이겨내려고 모든것을 다 바쳐 일하는 사람의 열정과 헌신과 피곤이 한데 어려있었다.

대뜸 그에게서 어떤 호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게 된 진호는 이런 책임기사와의 상면이 마치도 자기 연구사업에 대한 성과를 담보해주는 계시처럼 여겨져 흐뭇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괜찮아! 마음이 맞을것같애!)

왜서인지 그는 언제나 첫대면에서 받은 인상으로 상대방을 규정해버리군 했는데 그것이 무척 오래동안 지속되는것이였다. (영 말째겠는걸.) 하고 첨부터 머리를 젓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원시원한게 좋아!) 하고 느껴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도대체 어떤 짐작도 가지 않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은 적지 않게 자기가 느낀 첫인상과는 반대되는 결론을 내린다는것을 모르지 않는 그였으나 어째선지 아직도 첫인상만은 좋기만을 기대하게 되는것이였다.

《반갑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조금도 과장된 기쁨이라든가 책임기사라는 위치가 요구하는 지어낸 겸손성이라고는 없었다. 오히려 자기에 대한 내심을 짐작하기라도 한듯 (난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애숭이지요.) 하고 고백하는것같았는데 이 점이 진호에게는 더 믿음을 자아냈다.

《그래 어떤 과제를 안고왔습니까?》

《과제래야 아직 뭐…》

첨부터 자기의 의도를 밝히지 않는것이 온당치 못한 일이긴 했으나 진호는 터놓게 되지 않았다. 자기 기술안에 대비한 직장의 구체적인 실정을 검토도 해야겠지만 보다는 처음부터 자기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하고싶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리고 다른 또 하나의 리유는 자기 연구사업에 대한 의도를 알면 그가 내심 어떤 위구를 품을수도 있다고 생각되여서였다.

그는 자기 일에 대한 확신이 더없이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쉬이 납득하지 않으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방안에 있는 지령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 진호는 그를 따라 다시 현장으로 나왔다.

《나도 대학을 졸업한지 몇해 안됐습니다. 아는것은 물론 경험도 없구요. 더우기 지금은 직장장동무까지 학교에 가고 없어서 그 짐까지 맡자니 여간 베차지 않군요. 앞으로 많이 도와주시오.》

가식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이 한마디만 듣고도 그가 얼마나 소박한 사람인가 하는것을 다시금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배합이 얼마요. 아흔둘?》

《대차입환은 확인했소?》

그는 용해장에서 마주치는 매 사람들과 정련이 어떻고 대차가 어떻고 하고 한두마디씩 주고받았는데 진호로서는 한마디도 알아들을수 없었다. 확실히 여기서는 이들만이 통하는 언어가 따로 있는상싶었다.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품으로 보아 젊기는 하지만 한결같이 미더운 일군으로 여기고있는게 분명했다.

《부에 있었다지요?》

《예, 기술국에 있었습니다.》

《그럼 실장을 잘 알겠군요.》

《실장이라니요?》

《현명식실장 말입니다.》

진호는 흠칫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헤집지 말자고 굳게 닫아매두었던 추억의 고리를 그가 너무 불시에 잡아당기는것이여서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프리지 않을수 없었다.

명식이에 대한 생각이 미칠 때마다 그의 머리속에 떠오르는것은 그날 자기에게 현옥이를 도와주라고, 사랑이란 서로의 뜻을 소중히 여겨줘야 하는게 아닌가고 리면에 본심을 숨기고 하던 그의 말이였다. 그러면서 그 말에 항거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울분이, 또 그런 울분을 터뜨릴수 없게 하는 그에 대한 생리적인 불만이 동시에 솟구쳐오르는것이였다.

《잘 아는 사인가요?》

《새 기술이 제기될 때마다 련계를 가지기마련이니까요, 언젠가는 같이 공동론문을 제기한적도 있구요. 며칠전에는 이번에 새로 만든 투사기에 대한 심사를 의뢰했는데 어떻게 되겠는지…》

따져보면 그가 제철소와 밀접한 관계에 있을수밖에 없지만 여기에 와서까지 그의 이름을 듣고보니 어쩐지 이상한감이 들면서 불쾌하기까지 했다.

사실 그에게 있어서 명식이는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아무리 곰곰히 따져봐도 그의 말이, 그의 행동이 자기한테는 하나같이 부당한것이였지만 객관들에게는 지어는 사물에 대해 공정한 사색을 할줄 아는 사람까지도 그를 그르다기는커녕 오히려 정당한것으로 평가하고있는것이였다. 과연 그에게 어떤 힘이 있어서 자신을 그처럼 정당화하는지, 어째서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는것조차 그앞에서는 이렇다할 론거를 세우지 못하고 무력해지는지 그 리유를 알수 없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즉 그가 어떤 일을 하는 경우 주로 승산이 있는것만 골라할뿐 아니라 그것도 철저히 안전수치가 담보돼있는것만 수행한다는것인데 이 점만은 도저히 수긍할수 없었다. 수긍이 아니라 도리여 침을 뱉고싶도록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백가지 일을 한들 무슨 보람이 있단 말인가! 그런 일을 할바엔 차라리 삽자루를 쥐고 땅을 파는게 훨씬 낫지. 어째서 남들이 못한다고 하는 일을 해놓는것이 할수 있는 일의 천가지, 만가지보다 더 가치가 크다는걸 모른단 말인가!)

한데 문제는 진정한 일의 가치를 알고 거기에 모든것을 바치려는 자기는 걸음마다 암초요 시비지만 명식이처럼 아무 보람도 없는 길을 걷는 사람은 언제나 일 잘한다는 찬사를 받는다는데 있었다.

(모르겠다니, 정말 모를 일이야.)

부에서 떠나올 땐 그와 이젠 아무런 인연도 없으며 먼거리에 있는것이라고 여겼던것이나 생활은 또다시 자기들을 한고리에 이어놓는것이였다.

(그러니까 나의 새 연료안도 앞으로는 그의 심사를 거치지 않을수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자 방금전까지만 해도 그처럼 우람차고 광대한것으로 느껴지던 생활이 삽시에 외진 오솔길처럼 여겨지면서 서글픈 한숨이 터졌다. 그러나 그는 곧 저로서도 알수 없는 어떤 충동에 몸을 떨었다.

(좋다! 어디 겨뤄보자! 누가 옳고그른가 하는것은 이 엄혹한 생활이 심판을 설테니까.)

그는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얼음판에 나설 때면 그랬던것처럼 온 근육에 힘을 주면서 힘껏 심호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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