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 회)
제 4 장
꽃은 꽃밭에서만 피는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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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운동장같은 구내중심에는 둥그런 꽃밭이 있었다. 함박꽃을 비롯한 여러가지 꽃들이 키돋움하며 피여난 꽃밭은 볼만했다.
이 구내길을 처음 걷는건 아니지만 그는 오늘에야 여기에 꽃이 피여있다는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새로운 눈으로 한송이, 한송이 여겨보았다. 제라니움, 백일홍, 일일초…
이 순간 강시연은 자기도 한아름의 꽃을 안은것만 같은 희열감을 느꼈다. 이번에는 약간 앞선 신형일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가 안겨준 희열이였다.
구내에서 당비서를 보고 인사하는 종업원들이 많았다. 그럴 때면 답례하는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꼭 무엇인가를 묻군 했다. 오늘도 그랬다. 인사를 하는 작업복차림의 중년에게 《그 집 둘째가 여전히 공부를 잘하오?》하고 물었다.
《예, 늘 책을 보며 다닙니다. 》
《좋은 일이요, 박사감이거던.》
신형일은 자기 일처럼 기뻐서 웃었다. 그래서 누구나 다 당비서를 만나고싶어했다.
강시연은 이미전에 무슨 일이 제기되면 당비서를 만나야 등탈없이 해결된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종업원들은 당비서를 어려워하면서도 무슨 문제가 제기되면 서슴지 않고 당비서를 찾았다. 강시연은 새로운 눈으로 신형일을 보았다. 꼭 집안에서 아버지를 대하는 자식들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서 아버지는 엄엄해서 자식들은 은근히 어려워한다. 그러면서도 해결받을 일이 제기될 때면 아버지에게 털어놓군 한다. 아버지는 집안의 가장이고 아이들의 제일 큰 자랑이였다.
아버지는 아이들의 가슴속에 갖가지 꽃이 피여날수 있게 오가는 바람을 막아주고 묵묵히 거름이 되여준다. 그리고 빛합성이 잘되게 알게 모르게 가지를 쳐주고 북을 돋구어준다.
차학선의 구새먹은 가슴에도, 강대같은 자기의 가슴에도 오늘 저런 꽃이 피여났다.
누군가 지나치려던 사람이 당비서를 보자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신형일이가 그와 무슨 말인가를 나누며 소리내여 웃었다. 신형일이가 그렇게 크게 웃는건 아주 드문 일이였다.
《내 그 직장장한텐 손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정말 그 정열이란 여간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왔지요.》
다부진 그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고는 돌아섰다.
그와 헤여진 후 누군가고 물으니 그는 시내의 양어기사라고 했다. 여기야 오리를 기르는 공장인데 양어라니?!
의아해하는 강시연에게 신형일이 설명했다.
《이제 공장에서는 양어도 하자고 합니다.》
《양어를?》
《이 문젠 내가 미처 생각을 못한건데 가공직장장이 먼저 발기했습니다.》
《가공직장장? 아, 그 직장장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가 우리 온실에 왔댔으니까.》 강시연은 자기 종업원들을 위해 극성스러운 몸매다부진 녀성직장장을 상기했다.
《사실 우리 오리공장은 몇십년동안 운영해오는 과정에 나오는 부산물들을 효과적으로 리용할 생각은 하지 못했지요. 그러던걸 그가 그 부산물이면 얼마든지 양어를 할수 있다고 제기했습니다. 오리를 길러 부산물로 양어를 하고 그 찌끼로 농사를 짓고, 이것이 바로 실리적인 고리형순환생산체계가 아닌가요. 당장 양어장을 건설하자고 합니다.》
《그럼 물고기두 먹자구?》
《그럼요. 오리두 물고기두 남새두 다 먹자는겁니다. 더 중요한게 있습니다. 저 양어기사가 공장의 양어를 위해서도 그렇고 실은 자기 사랑을 위해서 공장에 오는겁니다.》
《사랑이라니, 그건 무슨 소립니까?》 자못 흥미가 있지만 영문을 알수 없어 강시연은 눈만 끔뻑거렸다.
《우리 공장에 있는 한 녀인을 사랑하고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두연원책임자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외짝사랑이지요. 그런걸 가공직장장동무가 열성껏 부채질을 하고있지요. 방금 그가 말한 그 정열가란 바로 그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가공직장장이 붙었으니 두연원책임자가 별수 있습니까.》
두연원의 책임자라구? 언제인가 리발사와 함께 농산직장에 나왔던 책임자라고 하는 몸매 자그마한 녀인을 본 생각이 났다. 그런 일이 있었군. 《양어기사가 끝내 공장에 왔습니다. 이들의 사랑이 어떻게 될지 흥미있습니다. 그러나 곁에서 서로 생활하느라면 더 가까워질건 뻔합니다. 이제 사랑두 피여나고 물고기두 자라게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이런게 바로 일거량득이 아니겠습니까?》
신형일은 사뭇 만족한듯 고개를 젖혔다.
강시연은 뒤를 돌아보았다. 가로 퍼진듯한 양어기사가 온몸을 흔들며 사기나서 걸어가고있었다. 그도 지금 가슴속에 사랑의 꽃을 피워가고있다.
그랬다. 꽃은 결코 봄에만 피여나는것이 아니다. 가을에도 겨울에도 피여날뿐만 아니라 꽃밭에서도 산에도 들에도,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도 피여난다.
강시연은 생각이 깊어졌다. 모두가 공장을 위해 뛰여다니는데 오직 자기만 갑속에 묻혀 살아왔다.
《이번에 석태인연구사가 큰 고리를 푼것으로 무인화호동은 완성되고 이제부터는 발효제생산공정에 총집중할수 있습니다. 어제도
《당비서동무.》 강시연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나를 그 발효반이라는데 보내주시오. 나도 기본전투장에 서고싶습니다.》
신형일이가 손을 덥석 잡으며 바싹 다가왔다. 그의 눈가에 핑 눈물이 어렸다. 그 무슨 말이든 한마디만 하면 눈물이 주르르 굴러떨어질것만 같은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강시연은 가슴이 뭉클했다.
얼마나 기뻤으면 말이 없는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그러랴. 내가 그렇게도 이 신형일한테 걸림돌이 되였단 말인가. 내가 그런 인간이였단 말인가.
가슴이 격해난 강시연은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정말 고맙습니다. 난 지금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현대화는 우리모두를 얼마나 거창하고 숭고한 세계로 이끌어주고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현대화는 단순히 설비를 개조하고 새로운 발효제만 만들어내는것만이 아닌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모두를 한사람한사람…》
《정말이지 나같은 사람들도 다 이 대렬에 새로운 사람으로 이끌어주는 더없이 숭고한 사업입니다. 이제 더는 내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일단 결심했으니 다시는 그렇게 되지 않을겁니다.》
《고맙습니다. 자, 어서 가십시다.》 신형일이가 먼저 돌아섰다.
강시연은 한껏 넓어지는 가슴을 안고 앞서가는 신형일을 바라보았다.
그의 뒤모습은 앞이나 다름없이 보통몸집이였고 평범하면서도 수수한 차림이였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는 떨어지고싶지 않는 그 무엇이 풍기고있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가슴을 뜨끈하게 덥혀주고 손잡아 이끌어주는 웅심때문인가?
오리는 자기의 무리를 형성하고 산다. 그 무리를 떠나지 않는것이 바로 오리의 특성이였다. 그렇지. 나도 떨어져서는 안되지. 이런 생각을 하며 강시연은 신형일에게 뒤떨어질세라 서둘러 따라갔다.
눈앞에 40호동이 보였다. 호동에 들어서니 제일먼저 보이는것이 유리칸막이 첫방이였다. 콤퓨터앞에 앉아있던 태인이가 문소리에 돌아보다가 당비서를 알아보고 얼른 일어났다.
그런 찰나 전화종소리가 났다. 전화를 받던 신형일의 놀란 목소리에 강시연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뭐라구요? … 그래 지금 어디 있소?…》
강직이나 온듯 신형일이가 굳어졌다. 그러나 인차 돌아선 그가 누구에게라없이 설명했다.
《지배인동지가 쓰러졌다누만. 제 좀…》
《어서.》
강시연은 바삐 나가는 신형일을 뻔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런 때 지배인이 쓰러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