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 회)
제 4 장
꽃은 꽃밭에서만 피는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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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려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그날로 공장과 사택마을에 쫙 퍼졌다. 더우기 그가 털단백시험연구를 하고있다는 소식으로 연구조에서는 활기가 나돌았다.
차학선은 공장에 나오기만 하면 그 처녀를 볼수 있지 않을가 하는 기대를 가지고 호동에도 가보고 실험실에도 기웃거렸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수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
처녀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만 들어도 학선은 만족했다.
공장 어디에서 필요한 연구사업을 하고있다면 되는것이다.
며칠전부터 진행하는 기술혁신창안품심사를 하는 속에서도 그의 마음은 늘 흥떵거렸다. 공장에서 맡겨준 짐이 커질수록 그는 자기에 대한 믿음을 느끼고 사는 보람을 느끼군 했다.
하루하루 날이 감에 따라 완연한 봄풍경속에서 파랗게 단장을 하는 봄날처럼 차학선의 가슴은 청춘이 다시 온듯 부풀어올랐다.
한창나이때처럼 늘 바쁘게 사는것이 정말 보람있었다.
그런데 비단우의 꽃이라고 좋은 일은 그것만이 아니였다. 오늘 그에게 얼기설기 얽힌 얼굴의 주름살이 쫙 펴이는 일이 또 생기였던것이다.
오늘따라 날씨는 잠풍했다. 바람결도 차학선의 마음을 알아주고 살뜰히 어루만져주는듯했다. 이길로 공장마을까지 가려면 두시간은 실히 걸린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걸어가는것은 지금 학선의 마음이 들놀이가는 기분이기때문이였다.
그랬다. 그는 오늘 새로 태여났다.
오늘 오전이였다. 학선은 당비서에게서 련락을 받은 길로 외출복을 갈아입고 마당에서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당비서가 탄차가 보이자 얼결에 앞으로 뛰여나갔다. 그는 당비서가 자세히 바라보는 바람에 어색해서 양복앞섶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다른 옷을 입고 올가요?》
《아니 아니, 이렇게 차려입으니 아주 좋습니다.》
학선은 그 말에 벌거우리해진 얼굴을 숙였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만날 때마다 사기를 올려주려는 그의 마음이 어려와서였다.
《자, 갑시다.》 당비서가 차문을 열어주고 그를 먼저 태우고는 다정히 물었다.
《오늘 아침 무엇을 해자셨습니까?》
《예? 그저 그럭저럭…》
학선은 면구해서 말끝을 맺지 못했다.
한가지, 한가지 꼽으면 아이들 같기도 했고 또 밥맛이 없다고 하면 걱정할것같아 우물우물 넘겨버렸다.
《나이들면 밥을 꽝꽝 자셔야 합니다. 밥이 보약이지요. 우리 집에도 늙으신 아버지가 계시지요.》
《참, 아버지 건강이 좋지 않다고들 하던데…》
《예, 병원에 입원했다가 오늘 퇴원합니다. 이길로 집에 들려보자고 합니다.》
웬일인지 당비서는 전에없이 사말사적인 말을 자꾸 꺼냈다. 분명 자기의 기분을 눙쳐주려는 의도였다. 너무 일감을 많이 주었다고 그러는건 아닌지.
《건강에 각별한 주의를 돌리십시오. 내 천호에게도 당부했지만 기본이야 본인이 아닙니까.》
《원, 이제야 고목인데 뭘 그리 오래 살겠다고 버둑거리겠습니까.》
학선은 눈굽이 달아올라 이렇게 웃어넘겼다.
《고목이라니요? 오늘 이렇게 차리니 10년은 젊어보이는데요. 차학선동지가 여전히 정력을 다해서 일을 잘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차학선동지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
학선은 그만 고개를 떨어뜨렸다. 당비서는 그전날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깍듯이 존경해준다. 그 누구의 경험을 들으러 가거나 본받을 단위에 갈 때면 꼭 불러주며 동행하군 하는 당비서였다. 오늘은 또 어디로 가려고 그럴가.
차가 어느새 동뚝길을 벗어나고 시내의 큰길에 들어섰다. 줄줄이 이어진 수양버들이 보이는 도로를 한참 달리다가 다리를 건넜다. 어디로 가는걸가. 그러다가 어느 청사로 들어가자 학선은 눈이 둥그래졌다. 여기야 시당이 아닌가. 아하, 당비서가 여기서 볼일이 있는게군.
《다 왔습니다. 내리십시오, 자.》
학선은 당비서가 자기의 팔을 잡아주며 이끄는대로 걸었다.
한순간 학선은 그만 몸을 휘친했다.
《왜 그러십니까? 건강은 일없지요?》 가슴을 조심히 어루쓸어주는듯한 사려깊은 그 말에 학선은 어린애처럼 그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 여긴 시당이 아닌가요?》
《맞습니다. 차학선동지, 기뻐하십시오. 우리 당은 언제나 차학선동지를 잊지 않고있었습니다. 차동진 당의 품속에 안겨있었단 말입니다.》
《예? 아…》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할지도 몰랐다. 그저 가슴이 뻐근했고 숨이 콱 막혔다.
당비서가 말없이 어느한 방으로 들어갔다가 인차 나와 그를 떠밀어주었다.
친절히 맞아주는 일군을 만났다. 그전에 한 일들을 하나하나 꼽아주자 학선은 저건 다 누구의 공로인가 하고 꿈결처럼 들었다. 그런데 이제껏 한 말이 바로 다 자기에 대한 말이고 공로라는것이다.
세상에, 이 늙은이의 일을 그렇게 하나하나 기억하고있었다니. 온몸이 둥실둥실 하늘을 나는것같았다.
《우리 시당에서도 공장당위원회의 의견대로 차학선동지가 공장의 기술고문으로 일하게 되는것을 찬성합니다.》
《예?!》
책임일군이 차학선을 이끌어서 의자에 앉혀주고는 두손에 물고뿌까지 쥐여주었다. 어떻게 받았던지, 무슨 말로 인사를 했던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늘은 기쁜일만 생기였다.
당비서의 집에서 나온 학선은 팔을 휘저으며 걸었다. 아아하게 비껴간 푸른 하늘도, 오가는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무슨 말이든 하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