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 회)
제 4 장
꽃은 꽃밭에서만 피는것이 아니다
2
신형일은 차안에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승용차는 포장도로로 쏜살같이 내달렸지만 그의 마음은 울퉁불퉁한 자갈우로 달리는것처럼 편안치 못했다. 방금전에 만났던 한미순의 남편이 한 말이 귀가에서 떠나지 않은것이다.
그는 운수부원이라는 직책으로 해서 사업상련계가 잦았고 보다는 일을 잘하는 생산과 부원의 남편이라는 점으로 이미 친숙해진 사람이였다. 그러나 오늘 그를 만나고보니 그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침착하고 사리정연한 인상이 아니라 무섭게 격노하여 분별을 모르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당비서동지가 저를 어떻게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안할수가 없습니다.》
그가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내리엮는것은 기사장 우덕진에 대한 의견이였다.
안해인 미순이를 늦게까지 일시키고도 모자라 때없이 불러내는 일이 드문하다는것이였다.
그 리유는 무엇인가. 기사장은 공장의 기술사업전반을 바로 미순이를 통해서 장악하고 지령한다는것이다. 미순이가 없으면 기사장은 사실상 어느 하나도 독자적으로 자기 사업을 못한다는것이다. 그래서 늘 생산과로 갔고 거기 가서 미순이를 만나 기술적으로 제기된 일들을 알고서야 자기 사무실로 간다는것이다.
이제는 어머니의 로화가 심해서 운신을 못하기때문에 안해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공장에서 지체할수 없다며 당장 대책을 세워달라는 말을 하며 긴숨을 내쉬였다.
신형일은 입이 열리지 않았다. 지금 공장에서 중요하게 벌어지는 현대화의 골자인 발효반 배양탕크제작때문에 다른 공장에 가보려던 생각이 졸지에 사라졌다. 한참후에 차에 올랐지만 여전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요즘에 공장에서 세차게 불고있는 기술혁신바람이 다 기사장의 지휘하에 일어나는것으로 알고있는 신형일에게 있어서 그것은 너무나도 큰 뜻밖의 타격이였다. 방금전에도 기사장의 일감을 자기가 떠맡겠다고 한 지배인의 말을 들으며 안도의 숨을 내쉰 자기였다. 기사장이 시간이 딸려서 자기 일을 못하는줄 알았는데 이건 무슨 일인가.
그가 알고있기엔 지배인다음에 일찍 출근하는 사람은 기사장이다. 출근해서 현장도 안보고 자기 사업에 대한 연구도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한단 말인가. 미순의 남편이 뭐라고 했던가?
《사실 지배인 못지 않게 공장에 일찍 출근하는 사람은 기사장이 맞습니다. 그는 출근하자바람으로 사무실에서 콤퓨터를 켜고 자료들을 보기 시작하지요. 그가 보는 자료란 새로 나온 국제정세를 비롯한 특보감들입니다. 그는 이런 문제를 남보다 먼저 알고 언제나 열변을 토하는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기술적인 일도 원만히 처리하군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처와 원걸을 통하여 장악한 자료들을 재치있게 종합한 덕입니다. 다른 머리는 안쓰고 이런데는 잘 쓰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수재라고 합니다.》
문득 기사장을 옹호할 때 묵묵부답이던 박순배지배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고보면 차천호며 호동장, 관리공들한테 기사장의 말을 하면 그에 따르는 말이 없었던게 이제야 생각났다. 무슨 말을 할듯말듯 하면서도 끝내 입을 열지 않던 그들의 모습이 얼른거렸다.
방금전에 지배인도 기사장에 대해 애매하게 반응했었지. 그러니 나와 견해가 다르다는건데 이런 당비서를 놓고 종업원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것인가는 어렵지 않다.
신형일은 심각해졌다. 이번엔 한미순에게로 생각이 돌려졌다.
그가 알고있는데 의하면 농업대학 가금과를 졸업한 한미순은 여기 공장에서 3대혁명소조생활을 보냈다.
소조기간 연구사업을 위해 오리배설물을 주무르면서도 생활을 착실히 한 그를 누구나 칭찬했다.
재미난것은 미순이때문에 상사병에 걸린 남자가 생긴것이였다. 그는 누구에게도 속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속을 앓았다.
로총각소리를 털지 못하는 그였지만 상대가 아직은 소조생이니 서뿔리 말도 꺼낼수 없고 그렇다고 가만있자니 놓칠것같아 혼자서만 끙끙 앓았다. 마지막엔 가슴이 터질것만 같아 제일 미더워보이는 당시 직장장이던 박순배에게 털어놓았다. 친구의 사정을 모른다고 할수 없어 박순배는 한미순을 조용히 만나 사정을 했다. 비밀에 붙일테니 약속만 하라고, 그 말에 한미순은 제 문제를 걱정해주어 고맙습니다 하는 간단한 인사로 다소곳이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다른 소리를 안했다고 한다.
그후에도 처녀는 변함없이 착실히 자기 일을 해나갔다. 그렇게 소조생활을 끝내고 미순은 총총히 배치지로 떠나갔다. 그런데 한달후 그 로총각에게 이런 전보가 날아왔다나.
《2일 개성-평양행 도착. 미순》
전보를 받은 사람이 바로 지금의 한미순의 남편이다. 그후에 그들은 결혼을 했다. 온 공장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가정의 착실한 주부이며 책임성있는 생산과의 책임부원인것이다. 그의 가정에 서리를 안겨주는건 둘째치고 기사장이라는 사람이 남의 두뇌로 생산을 지휘한다니 이건 큰 사달이였다. 이 일을 과연 믿어야 하는가. 그러나 지어낸 말은 결코 아닐것이다.
신형일은 기사장에게 시간을 떼주었는데도 생산에서 혼란이 일어나고 지령사업이 잘 안되는 문제에 생각이 돌려졌다.
이것은 기사장의 능력에 관한 문제다. 아니, 그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였다. 그래서 기사장까지 된 사람이다.
그전에는 책임기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차가 대동강다리를 건넜다. 하얗게 얼어붙은 대동강을 보자 신형일은 강안도로에서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차주위를 돌며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 자리에 섰다. 기술혁신경기가 생각나서였다.
옳다. 중간총화를 하자. 다시한번 기술자들속에서의 열의를 분발시키자. 그러면 기사장의 수준을 알수 있을뿐 아니라 그를 계발시킬수 있다. 신형일은 부디 운수부원의 이 견해가 본인의 오해이기를 바랐다. 요전날 기술협의때처럼 기사장이 많은 사람들의 찬사속에 있기를 기대했다.
동시에 심사원들을 조직하는 문제가 아직 결속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차학선을 심사성원으로 망라시킬 계획을 했다. 지금 차학선은 집필조에 있지만 이 일감까지 맡기면 더 성수를 낼수 있었다.
심사성원은 아주 중요한 일이면서도 차학선에게 적합한 일이였다.
이번엔 수려한테로 생각이 잇달았다. 전번에 있었던 뻐스정류소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천호를 따라오지 않았다고 그를 그냥 둬두어서는 안되는것이였다.
일단 공장을 떠났으니 쉽게 돌아서지는 않을것이였다.
신형일은 오늘 공장에 나온
수려가 가있는 시험목장은 시외에 있지만 다른 사람을 생각할것없이 자기가 품을 들여 꼭 그를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마음이 가벼워난 신형일은 차가 서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