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 회)

제 4 장

꽃은 꽃밭에서만 피는것이 아니다

1

 

현대화를 시작한지 퍼그나 되였다. 이해는 참으로 중요한 해였다. 올해 계획했던 일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다음해에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100돐을 뜻깊게 맞이할수 있으며 또 현대화완성의 테프도 승리적으로 끊을수 있었다.

새해 첫아침부터 눈이 오더니 정월 한달은 이틀이 멀다하게 눈이 내렸다.

공장구내는 온통 하얀 솜이불속에 덮였다. 밤새 내린 숫눈우에 첫발자국을 내는 사람은 지배인이였다.

그는 곧장 축사에 가서 밤사이의 오리상태며 알낳이정형, 먹이소비를 비롯한 현장실태를 료해하군 했다. 특히 이런 겨울철에도 생산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면 관리공들의 책임성을 높이고 사양관리에 특별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

기르기에 무탈한것이 오리같지만 역시 오리는 사람의 손이 많이 갔다. 명절이나 휴식일에 상관없이 먹이를 주고 관리해야 하는것은 물론이기에 꼭 근무를 서야 했고 밤에도 오리를 관리하느라 공장구내는 불이 환했다.

오리관리를 어머니의 심정으로 하는데 따라 알낳이률도 살찌기도 달라진다. 새끼오리 경우에는 한밥에 살이 오르내렸다. 더우기 겨울에 이렇게 눈이 많이 온 날은 공장과 사택마을이 총동원되여 눈을 쓸러 나오군 했다. 오리를 기르지 않는 보장단위와 기타 직장들에서도 모두 종금이나 비육직장으로 몰려왔다. 이것은 오리공장에서만 있을수 있는 현상이였다. 물을 좋아하지만 습기를 싫어하는 오리의 특성으로 보아 눈을 빨리 쳐주어야 하는데 그런것을 잘 아는 사택마을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한마음이 되여 눈가래나 비자루를 가지고 공장으로 몰려오군 했다.

오늘도 공장정문에는 눈을 치러 나온 사택마을사람들과 학생들이 가득 몰켜있었다. 지금은 방학때라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온 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은 공장을 위한 좋은 일을 하러 왔지만 그렇다고 공장정문으로 쉽게 들어갈수 없었다. 정문에서는 까다롭게 한명한명 확인했을뿐 아니라 방역대처녀들은 또 그들대로 손소독을 철저히 할것을 요구했다. 손소독은 정문에 차려놓은 소독수에서 손을 씻는것이였다.

눈이 덮인 추운 겨울에 찬 소독수에 손을 담근다는것 자체가 소름끼치는 일이였으나 방역대처녀들은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렇게 할것을 요구했다.

정문에서는 싱갱이가 벌어졌다. 못씻겠다느니, 씻어야 한다느니. …

《아니, 그 소독수에 씻으면 정말 소독이 되긴 되는가?》 누군가의 시비에 《안씻겠으면 돌아가라요. 못들어갑니다.》하고 깔끔하게 요구하는 방역대처녀의 목소리가 모두의 귀청을 자극했다.

호동을 돌아보고 구내로 나오던 박순배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한 녀인이 뿌르르 앞으로 나갔다. 대충 소독수에 손을 담근 녀인이 먼저 나오자 뒤의 사람들이 할수없이 장갑을 벗고 대충 잠갔다꺼냈다.

또다시 싱갱이가 벌어졌다. 다시 하라느니, 난 했다느니.

박순배는 이런 광경을 보고 생각되는것이 많았다. 방역대처녀들의 요구는 맞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소독을 하던 때는 지나갔다. 또 현대화를 하는 공장에서 계속 이런 방법으로 손소독을 할수는 없었다.

어디에 가려는지 천호와 원걸이가 바쁜 걸음으로 정문을 나오는것이 보이자 박순배는 얼른 손짓으로 그들을 찾았다.

무엇인가 열이 나서 론쟁을 하며 나오던 두 청년이 그제야 지배인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박순배는 건숭 인사를 받으며 어디 가는가고 물었다.

《인민대학습당에 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간밤에도 잠을 못잤는지 그들의 눈이 뿌잇했다. 그들은 요즘 공장에서 낮은 물론 밤에도 들어가지 못하고있었다.

《동무들, 저기를 보오. 생각되는게 없소?》

박순배는 여전히 아웅다웅하고있는 정문을 가리켰다.

천호는 생각깊은 눈길을 떼지 못했고 원걸은 말없이 씩 웃어보였다.

알겠다는 뜻이였다.

《이 문젠 결정적으로 해결돼야 하오. 공장이 현대화를 하는데 공장정문에선 여전히 낡은 방법으로 소독을 하고있겠소?》

그들은 잠시 아무말도 못하고 싱갱이하는 정문에서 눈길을 돌리지 못했다.

박순배는 천호며 원걸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머리가 비상한 그들이 조금만 고심하면 일이 풀릴수 있었다. 어떻게든 그들이 이 문제까지 풀었으면 했다.

《동무네한테 공장의 무거운 짐이 실린걸 모르지 않소. 그렇지만 이렇게 요구하게 되오. 합심해서 소독기를 하나 제작해보라구. 이왕이면 이번에 기술혁신안으로 하면 더 좋지.》

《기술혁신안으로 말입니까?》 원걸이가 한발 나서며 인차 반응했다.

《잘 생각하고 시작해보오. 걸리는것이 있으면 내가 직접 풀어주겠소.》

박순배는 이렇게 그들에게 힘을 준 다음 종금오리사로 향했다.

지배인이 제일 관심하는것은 공장의 종금오리들이다.

그는 하루일과의 첫걸음을 종금호동을 돌아보는것으로 시작하였다.

말끔히 눈을 쳐낸 놀이장에선 벌써 종금오리들이 노닐고있었다. 갑자기 부산스런 소리가 났다. 수놈이 어느 암놈을 겨냥하고 달려가고있었다. 어쩔사이도 없이 암놈잔등에 오르려고 하지만 어느새 암놈은 무리속으로 도망쳤다. 그러는사이 그 수오리에게 달려드는 오리가 있었다. 그놈은 다른 수오리였다. 한마리의 암오리를 놓고 싸움이 벌어진듯 달아나고 쫓아가느라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박순배는 그러는 모양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오리라고 해서 아무 수놈한테 자기를 내맡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심정은 어쨌든 암수오리사이에 교미가 되고 알을 많이만 낳으면 그만이였다.

돌아서던 박순배는 저기 끝호동에서 나오는 당비서를 알아보았다.

또 집에 가지 못한거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면구스러웠다. 현대화가 마지막단계에서 본격화되고있는 공장실정에서 시내에 집이 있는 당비서가 집에 갈수 없다는것은 너무나 뻔했다. 밤에는 마감단계에 있는 발효제작업반을 비롯한 현장에 있고 새벽에는 이렇게 오리관리를 하는 관리공들속에 섞여있는것이 생활화되여있는사이 당비서의 현장경험이 하나하나 늘어났다. 깊은 밤에도 방에 들려보면 콤퓨터앞에 앉아있는 그를 자주 보군 했다.

당비서가 다가왔다. 앞에 다가서자마자 김일성종합대학과 리과대학에서 생산된 발효제를 보았는데 그 질이 아주 높다는 말을 했다. 그중에서 어느것이 제일 좋은가는 시간이 증명해줄것이였다.

《오늘 아침부터 그 생산물을 봐야겠군요.》

박순배는 반가운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앞섰다.

《우리 공장에서도 빨리 시제품이 나와야겠는데요.》

당비서의 기대어린 목소리였지만 박순배는 입을 열지 못했다. 기사장이 그사이 어느만큼 추진시켰는지, 그러나 왜서인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지령사업이 잘 안되는 문제를 놓고 왜 기사장동무가 바로잡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비서가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박순배를 바라보았다. 무슨 리유인지를 묻고있는것이다.

그 원인은 다른데 있는것이 아니다. 생산과의 한미순이가 이제껏 책임적으로 했는데 요즘 그가 시어머니의 병구완으로 자주 나오지 못했다. 박순배는 그 내용을 간추려 설명했다.

《그걸 기사장동무가 알고있겠지요?》

《예.》

이 순간 박순배는 기사장이 발효제생산뿐 아니라 지령사업을 비롯하여 기술사업의 기본을 놓치고있는데 대한 불안감을 덜지 못했다.

《좋은 기술혁신안을 생각하느라 놓치고있는게 아닐가요?》

당비서는 기사장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다시 물었다.

《글쎄요.》 박순배는 이렇게밖에 대답하지 못하는 자기가 민망스러울 정도이지만 기사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믿음이 가지 않았다.

《이번 공장적인 기술혁신경기에서 기사장동무가 본때를 보여야겠는데, 그전에 책임기사시절엔 창의고안명수로 그렇게 소문을 냈다지요?》

당비서는 이번에도 기사장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다시 물었다.

《예, 그전에는 그랬지요.》

박순배는 뜨뜨미지근한 소리로 대답했다. 그에게는 당비서가 어떻게 나오든 기사장에 대한 견해에서 변함이 없었다.

《아마 현대화를 다그치느라 틈을 못냈겠지요. 기사장동무에게 될수록 부담을 적게 주면서 기술혁신안을 내놓게 통시간을 주는게 어떻습니까?》

《그럼 내가 기사장이 맡은 기술자들과의 사업까지 떼맡지요.》

《그래주면야. 참 지배인동지, 식사를 했습니까?》

순간 박순배는 어색하여 눈길을 떨어뜨렸다. 집사람이 해주는 따끈한 아침밥을 벌써 먹은것이 죄의식처럼 머리를 눌렀다. 물론 공장식당에서 당비서의 식사를 소홀히 할리는 없지만 자기가 그런것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돌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뜨끈해졌다.

《참, 식당식사가 구미에 맞는지 관심을 돌리지 못해서… 같이 갑시다.》 박순배는 제잡담 앞장섰다.

《아니, 일없습니다. 내가 무슨 손님이라구 따라다니겠습니까. 어서 일과대로 하십시오.》

당비서가 팔목을 잡으며 멈춰세우는 바람에 박순배는 그 자리에 섰다.

빠른 걸음으로 식당으로 가는 당비서를 바라보던 박순배는 식당옆으로 빠진 구내길을 따라 비육오리호동으로 향했다.

놀이장에서 노닐던 오리들이 우르르 피하기도 몰려오기도 했다. 몇개의 호동을 더 돌아볼 생각으로 앞으로 나서던 박순배는 걸음을 멈추었다. 한미순의 남편이 곧바로 다가오며 당비서를 못봤는가고 묻는것이였다. 달리기라도 한듯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에서 눈동자를 초조하게 굴렸다.

《당비서?》 박순배는 의아해졌다. 무엇보다도 그 무슨 급한 일이라면 지배인이며 오랜지기인 자기와 하지 못할 얘기가 없을것이다. 무슨 일이게 저런 표정으로 당비서를 찾는걸가.

그가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당비서가 갔다는 식당쪽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박순배는 괜히 마음이 뒤숭숭해서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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