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2 장
나는 증명할것이다
8
깊은 적막에 휩싸인 밤거리에는 흰눈만 소리없이 내리고있었다.
미처 눈을 뜨기 바쁘게 무시로 쏟아져내리는 눈송이들은 하나하나의 잎이 얼마나 크고 소담스러운지 귀를 기울이면 그 정가로운 소리가 사분사분 들릴것만 같았다.
가끔씩 몇사람 안되는 승객들을 태운 무궤도전차만이 수북이 내려쌓인 눈을 말아올리며 부드러운 음향을 남긴채 사라질뿐 전차가 사라진 뒤에는 본래보다 더한 정적이 거리를 뒤덮었다.
여느때 같으면 깊은 사색이나 환상의 나래를 한껏 펼치게 할 이 화려한 은빛적막이 지금 진호에게는 어떤 악몽처럼, 시시각각으로 자기를 집어삼키는 절망의 무시무시한 심연처럼 여겨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아니야! 그럴수 없어! 현옥이가 어떻게 그런 말을!)
그는 발밑에 밟히는 눈소리로 하여 방금 한 현옥이의 말을 똑똑히 분간해듣지 못한것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가슴은 마냥 떨리기만 했다.
《제발 저한텐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솔직하게?)
바로 솔직하게 말해달라는 거기에 문제가 있었다. 방금전에도 그렇게 말했었다.
숨을 죽인 그는 다시금 온 신경을 귀에 모은채 다음말을 기다렸다. 애오라지 자기의 짐작이 틀리기만을 바라면서.
《동무의 현장탄원이 진심이예요? 아니면 부득이한 사정때문이예요? 혹시 남들이 말하는것처럼 자기의 처지를 모면하기 위해 그런 결심을 한게 아니예요?》
자기를 마주보는 현옥이의 의심스런 눈길에 부딪치는 순간 진호는 이제껏 애써 아니라고 부인해온 모든것이 일시에 무너져내리는것을 느꼈으나 은연중 자기가 어떤 착각을 하고있다는 기대에 매달렸다. 그만큼 그 말을 믿을수 없었고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무서웠던것이다.
《왜 말이 없어요? 그걸 대답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가요?》
진호는 더는
마치 불을 끄려고 필사의 힘을 다해 노력하던 사람이 옆에서 타오르는 더 세찬 불길을 보고는 도저히 자기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것을 느낄 때와 같은 심정이라고 할가. 자기가 끄려는 불길은 의식적으로 부정하려는 내심이였다면 보다 더 세차게 타번지는 불길은 부정할래야 할수 없이 살아나는 현옥이의 목소리였다.
(아니야! 아니야!)
아무리 부정해야 이젠 그것이 부질없는 미련에 불과하다는것을 가리지도 못하고 그는 여전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남들이 뭐라든 그만은 믿어줄줄 알았고 만사람이 다 의심을 해도 그 하나만은 자기의 진정을 리해해주리라고 여겼던것이 아닌가! 그래서 온갖 모욕과 조소도 참아왔고 또 참을수 있었던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마저…
가슴이 터질것같았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 아무것도 가려볼수 없었다.
미지의 황홀한 생활을 위해 온갖 모욕을 참아가며 이룩해놓은 모든것을 의심하는 현옥이의 가혹한 말, 본심을 속이지 말라는 현옥이의 비난은 그를 미치게 할것만 같았다.
당장 돌아서서 현옥이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고싶었고 그럴수만 있다면 서슴없이 가슴을 빠개보이며 《자- 봐라, 그렇게도 내 마음을 모르겠니?》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싶었다. 그러나 고함은커녕 한마디의 말조차 할수 없었다.
그는 오늘에야 비로소 격분한 심정을 입밖에 나타낼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그 분노가 아직 덜한것이라는것을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현옥이가 과연 이런 처녀였단 말인가!)
마치 자기의 인내성이라도 시험하고있는듯한 진호의 침묵에 견딜수 없어 현옥이는 고개를 들었다.
대답을 독촉해서라기보다 진호의 표정을 통해 그의 대답이 어떤것인가를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오빠의 말을 들을 때는 무작정 부인해나서던 그였으나 밤이 되여 오빠가 돌아가고 오빠를 은근히 편들던 어머니마저 잠든 뒤에는 여러가지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자기를 괴롭히는것이였다. 특히 구체적인 사실을 놓고 따지고들자 진호가 아무 대꾸도 못하더라는 오빠의 말은 그의 가슴을 서늘케 했다. 사소한 일에서조차 지나친 감정을 나타내군 하던 그가 한마디의 항변도 못했다는 사실은 그를 더없는 공포에 몰아넣었던것이다.
그러면서 새 연료안이 실패했을 때 《이거 아무래도 무사치 못하겠는걸?》 하고 음울한 기색을 짓던 일과 제철소로 가게 된것이 확정되였을 때 그처럼 기뻐하던 그의 모습도 떠올랐다.
아무리 바라던 일이 성취됐다고는 하지만 집을 떠나고 정든 사람과 헤여지게 되였는데 어떻게 저처럼 기뻐할수 있으랴 하는 의아한 생각이 없지 않았던것이다.
(그럼 그것이 모두 허위였단 말인가! 자기의 허물을 가리우기 위한 과장된 기쁨이였단 말인가!)
그럴 때면 그는 불시에 진호에 대해 무서운 생각이 들면서 자기라는 존재, 한 사내의 기만에 쉽사리 희롱당하고있는 미련하기짝이 없는 자기
그도 진호가 그런 의심을 받으면서도 자기에게 터놓지 않은데 대해서는 제나름의 리해가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어떤 체면이 작용했을수도 있었겠지만 보다는 자기가 어떻게 나올가 하는 우려, 즉 사랑하는 처녀와의 관계에 금이 가지나 않을가 하는 위구심때문이였으리라는 짐작에서였다.
자기와의 사랑을 소중히 여긴 나머지 그가 취한 행동이야 그 행동이 어떻든 자기에게도 책임이 있을뿐더러 또 자기가 리해해주지 않으면 누가 리해해주랴 하는 일종의 도의심이 작용했던것이다. 그러나 그가 현장으로 가게 된 리유만은 똑바로 알아야 했다.
아무리 현장생활이 황홀하고 매혹적인것이라 해도 그가 오빠의 말대로 사람들을 기만한 그런 인간이라면, 그래서 손가락질 받는 처지에 있다면 결코 자기가 바라던 그런 보람이 없으리라는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도리여 수치와 모멸밖에 차례질것이란 아무것도 없을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는 도리를 저었다.
(아니야! 그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를 만나기만 하면 내가 품고있는 의심에 대해 응당한 믿음으로 대답해줄거야.)
이렇게 믿어마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싶었다.
그런데 막상 자기를 증명하기는 고사하고 다소 나타낼상싶은 격분의 감정도 전혀 비치지 않는것이 아닌가. 더우기 리해할수 없는것은 자기에 대한 처사가 조금이라도 부당한것이라면 당장 소동을 일으키고야말 그가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앞에서까지 묵묵히 있는 그것이였다.
(너무도 엄연한 사실이여서 부인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걸가? 아니면 말한대야 뻔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으리라는것을 알기때문일가?)
진호의 침묵은 점점 더 그를 절망상태로 이끌어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기가 흔들리는 저울판우에 앉아있는듯한, 말하자면 자기가 힘을 주는데 따라 오빠나 진호 어느쪽으로나 기울어질 처지에 있는것같던것이 오늘은 벌써 자기가 바라는 반대쪽인 오빠편에 기울어지는것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에게는 바로 이것이 더 무서웠다.
(만약 모든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처지가 정말 그렇다면?)
공포에 질린 그는 다시금 이런 의문에 부딪쳤다.
(과연 그가 그런 사람이라는걸 알면서도 내가 그의 일을 도울수 있을가? 그런 굴욕적인 처지를 참아낼수 있을가? 온갖 모멸과 수치를 그에
대한 사랑으로 다 씻어버릴수 있을가? 아니, 그런 사랑이 도대체 사랑이기나 할가? 아니야! 그에 대한 사랑이 아무리 열렬하다 해도 그런 수치스런
처지에
《전 이렇게 생각해요. 만약 동무의 처지가 정말 그렇다면…》
그러나 현옥이는 차마 다음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을 바꾸어보려고 했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진호는 현옥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가를 대뜸 알아차렸다. 그러자 온몸의 피가 일시에 얼어드는것같았다.
(내 처지가 그렇다면 같이 못가겠다는거지? 나같은 놈은 믿지 못하겠다는거지? 그러니 이젠 관계를 끊자는거지?)
얼어붙었던 피가 대번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당장 한곳을 뚫고 무섭게 뿜어나올것만 같았다. 그러나 말은 한마디도 할수 없었다.
여느때는 그시그시의 격분을 폭발적인 행동으로 나타내던 그가 지금 침묵으로 대하는것은 너무나도 한계를 넘은 분노가 불시에 들이닥친데도 있지만 보다는 그처럼 몽매간에도 잊지 못하던 간절한 소원을 의심받고도 그것이 부당하다는것을 증명해보일 길이 없기때문이였고 또 증명해보이기도 싫었기때문이였다.
뭐라고 한단 말인가! 무슨 말로 그를 납득시킬수 있단 말인가! 아니, 이제 와서 무슨 말이 필요하고 설복이 필요하단 말인가!
현옥이
(좋다! 지금은 네 말이 옳다고 하자. 내가 그런 인간이라고 하자. 그러나 똑똑히 지켜봐라! 지금 너에게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한 그걸 행동으로 보여줄테니까, 백배의 실천으로 증명할테니까. 기어코 하고야말테니까.)
그는 오늘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길을 걷던 사람이 눈앞에 깊은 낭떠러지를 만났을 때처럼 자기들사이에 놓인 커다란 심연을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 처녀야말로 자기가 사랑해온 사람의 마음도 리해하지 못하는 그런 처녀가 아닌가! 이 처녀야말로 남의 말에 따라 자기 의사와 행동을 재여보는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처녀가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그처럼 진실하고 아름답게만 보였을가? 어째서? …
그 리유를 지금은 따질수도 없었고 따지기도 싫었다. 리유가 어쨌든간에 진호는 자기들사이에 더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수 없으리라는것만은 명백히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실수치가 어떤 계산법으로 얻어졌든 거기에는 상관없이 도저히 그 문제의 해답으로는 될수 없다는것을 확신하게 되는 경우와 같았다.
(할수 없지! 헤여지는수밖에!)
이런 생각에 미치자 갑자기 그는 가슴이 선뜩했다.
현옥이와 헤여지다니? 상상하기도 무서운 일이였다. 이제 와서 절교를 선언하는것이 어쩐지 그의 순정을 짓밟아놓고 돌아서는 무뢰하기 짝이 없는 소행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저도 모르게 그는 현옥이의 발가우리한 볼이며 곱게 다듬어진 턱이며 마구 퍼부어대는 눈송이들로 하여 거의 감기다싶이한 그래서 더욱 부채살같이 차분히 내리덮인 속눈섭을 얼핏 쳐다보았다.
그 긴 속눈섭끝에는 미세한 물방울이 보석처럼 매달려있는데 눈을 우로 뜨기만 하면 그것들이 금시 이슬처럼 부서질것같았다.
그 아름다운 얼굴의 섬세한 부분까지 알아보게 되자 그는 여태까지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그런 류다른 애정이 가슴을 태우는것이였다. 그의 용모의 모든 특징들, 그에게 속하는 일체가 새삼스레 그지없이 아름다운것으로 느껴지면서 자기의 생명을 새로이 자감시키는것이였다.
(과연 이렇게 곱게 생긴 처녀가 어디에 있으리란 말인가!)
삽시에 현옥이에 대한 사랑이, 표현 못할 애정의 물결이 가슴을 애타게 흔드는것이였다.
모든것을 털어놓고 그를 리해시키고싶었다. 서로 사랑하느라면 이런 오해가 있기마련이 아닌가! 그 역시 얼마나 고민이 많았으면 그런걸 물어보랴!
하나 이런 생각은 순간에 불과했다. 가슴속에 파도치는 그에 대한 애정의 물결은 곧 거대한 암초에 부딪쳐 산산쪼각이 났다.
(아니! 이 처녀는 나를 의심하고있다. 믿지조차 못하고있는것이다. 결코 일시적인 오해도 아니다. 나의 진정과 량심, 지어는 기술안까지도 다 무시하고있다. 그 역시 이제 와선 내가 쫓겨가는것으로만 생각하는것은 물론 자기를 어떤 교활한 방법으로 꼬여서 데리고가려는 파렴치한 인간으로밖에 치부하지 않는것이다!)
이 모든것을 상기하자 진호는 또다시 하등의 변화과정도 없이 대번에 분노와 절망, 굴욕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러면서 자칫 잘못하여 자기가 이 순간의 일시적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생활에는 허위와 기만밖에 없으리라는것을 똑똑히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그렇다! 그는 나에게 진정한 사랑을 품지 않았다. 일시적인 충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충동에 장애가 생겼다. 그러니 헤여져야 한다.)
확실히 자기들이 타고있는 사랑의 돛배에는 물이 새고있었다. 그 물은 점점 더 무서운 압으로 솟구쳐올라 어쩔수없이 침몰되지 않으면 안될 경각에 처해있었다. 더 깊이 들어가지 말아야 할것은 물론 자기를 믿지 못하는 현옥이는 부득불 내려놓아야만 했다.
이윽고 걸음을 멈춘 그는 현옥이를 향해 돌아섰다.
현옥이도 따라섰다.
벌써 진호의 기색을 통해 그가 어떤 중요한 말을 하리라는것을 현옥은 륙감으로 느꼈던것이다.
《사실은…》
진호는 이제부터 해야 할 말을 더듬느라니 저절로 목이 메여올라 잠시 얼굴을 찌프렸다.
《솔직히 말하면 동무 말이 옳소. 내가 제철소에 가는건… 그리로 가는건 희망이나 소원이래서가 아니요.》
속으로 미리 준비한 말이였지만 목이 잠겨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른 기침을 깇었다.
《사실 난 내
《…》
《난 이 사실을 누구한테도 숨겨왔소. 직장사람들은 물론 동무한테도…》
《?…》
현옥이의 두눈은 점점 더 휘둥그래졌다.
담배를 꺼내문 진호는 불을 붙이기 바쁘게 긴숨을 몰아쉬였다. 다시금 목구멍에 뜨거운것이 꽉 치밀어오르는것이였다.
본래부터 그는 실제의 자기보다 더 가혹하고 심술궂은 때가 가끔 있었다. 실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것도 정작 맞다들어선 괜히 상대를 괴롭히고 우울하게 만들 때가 있었으나 지금은 결코 그런 지꿎은 버릇에서가 아니였다. 그렇게 행동하는것만이 자기들 문제를 손쉽게 아퀴짓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기때문이였고 그외의 다른 방법이란 도저히 있을수 없다는것을 깨달았기때문이였다.
이제 와서 그에게 자기의 심정을 헤쳐보인다는것은 지금까지 그토록 열렬하게 사랑해왔으며 또 그처럼 믿어마지않았던 자기들의 관계가 죄다 거짓말이였으며 허망한것이였다는 구슬픈 사실을 부득불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의미했다. 지금에 와서 자기들사이에는 이미 아무런 말도 소용없게 되였다는것을 그는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 이젠 아무 말도, 그 어떤 진정도 다 무의미하다. 부질없는짓이다! …
불현듯 진호는 자기로서도 놀라울만치 이상스레 평온해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가 바라는것은 오직 현옥이
《아-》
갑자기 가느다란 비명을 톺으며 현옥이는 얼른 두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현옥이를 피해 진호는 얼른 거리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득히 뻗어있는 대통로, 그옆으로 아지를 드리운채 그림처럼 서있는 가로수들, 이 모든것은 벌써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오직 가로등만이 머리우에 흰눈을 뒤집어쓴채 외롭고 적막한 설경을 쓸쓸히 지키고있을뿐이였다.
문득 진호의 눈에는 멀리서부터 보도를 따라 촘촘히 찍혀온 자기들의 발자국이 유표하게 안겨왔다. 광장과 네거리를 지나 곧추 여기 궁륭식교각의 란간앞에까지 이른 자기들의 발자국이였다.
눈송이들은 마치 정성들여 입혀놓은 은비단우에 난 그 상처를 서둘러 가시려는듯 더욱 기세좋게 내리고있었다.
이젠 더 있어야 할말도 없을뿐더러 이 마당에서 헤여지는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진호는 현옥이에게 돌아서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잘있소!》
고개를 숙인채 어깨를 떨던 현옥이가 불시에 와락 달려들었다.
《아이 안돼요, 가면 안돼!》
《…》
현옥이를 떼여놓고 한걸음 물러선 진호는 잠시 그를 말없이 지켜보다가 서둘러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는지… 곧바로 뻗은 대통로에서 아빠트로 굽이도는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그는 뒤돌아보았다.
멀리 바라보이는 아치형교각, 그 교각의 란간옆에 아직도 얼굴을 두손에 묻은 현옥이가 표연히 서있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비껴온것은 홀로 서있는 현옥이의 모습과 함께 거기에서 찍혀진 발자국, 자기 한사람의 발자국이였다.
(이제부턴 나 혼자구나! 가자! 모든 미련을 털어버리고.)
이렇게 되뇌이는 그의 두눈에도 어느덧 뜨거운것이 고여오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