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2 장
나는 증명할것이다
7
전기기관차공장의 오랜 조립기능공인 리무원은 현관에 들어서서 외투를 벗으려다 말고 한자리에 굳어지고말았다.
불도 켜지 않은 방안에 홀로 앉아 무슨 골똘한 생각에 젖어있는 아들의 모습이 문짬으로 엇비듬히 보였기때문이였다.
(흠- 정작 떠나자니 생각이 많은게지?)
입가에 미소를 띠운채 그는 잠시 한자리에 서있었다.
후리후리한 키에 량쪽으로 보기 좋게 벗어져올라간 이마, 그밑에서 빛을 뿜는 억실억실한 두눈은 젊은 시절 무척 호남아였다는 자취를 느끼게 했으나 칼자리처럼 깊숙이 패인 주름살과 뾰족한 턱은 그에게서 선량한 인상을 모두 압도해버리고 몹시 표독스런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패롭지 않았거니와 거칠지도 않았고 오히려 더없이 부드럽고 친절해서 그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람의 성격은 외양이 아니라 눈에서만 나타난다는것을 증명하는 산 실례로 되군 했다. 그의 눈빛은 그처럼 유순하고 부드러웠다.
직장로동자들이 까다로운 부속을 조립할 때마다 도면을 들고와 그의 방조를 청하듯이 이웃들에서도 어떤 사정이 생길 때면 꼭꼭 그를 찾아오군 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자기의 곡절많은 인생갈피를 뒤적이며 교훈이 될 조언을 차근차근 일러주는것이였다.
《그건 그냥 둬두는게 어떻소. 요새 젊은이들한테야 그런 간섭이 필요없지요. 그런 로파심이야 다 낡은 시대의 유물이 아니겠소.》
이러는가 하면 말을 듣지 않는 아들녀석때문에 속을 태우는 사람에겐 《아니, 그 잘못은 애한테 있는게 아니라 부모들한테 있는것같수다. 거짓이란 워낙 강제가 있는데서만 생기니까요.》 하고 말하군 했다.
확실히 그는 유능한 석공이 돌모양만 보고도 그 결을 알아내듯이 세상만사의 리치를 쉽게 찾아내는 비결을 터득하고있었다. 아마 그것은 소년광부로 일할 때부터 그의 어깨를 지리눌렀던 천근의 광석무게가, 또 청춘기에 그의 육신을 마구 찢어놓은 원쑤의 흉탄이 그리고 또 첫 기관차를 무을 때부터 들어온 둔중한 함마소리가 그를 그처럼 원숙한 사람으로 벼려냈는지 몰랐다.
심각해진 아들의 모습을 보자 비로소 그는 여태껏 아들을 너무 소격하게 대해왔다는 자책과 함께 얼마간의 고무라도 해주어야 하리라는 생각이 드는것이였다.
방안으로 들어선 그가 스위치를 켰을 때에야 진호는 뒤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막상 떠나자니 섭섭하냐?》
책상우에 널려있는 책들을 일별한 그는 진호가 앉았던 의자에 가앉았다.
《아닙니다, 그래서가 아닙니다.》
서둘러 아버지의 말을 부인한 진호였으나 자기를 쳐다보는 아버지의 시선에 부딪치자 얼른 고개를 숙이고말았다.
아버지앞에 마주서기만 하면 왜서인지 저절로 소심해지는 그였다.
남들에게는 더없이 지극한 아버지였으나 어쩐지 자긴 언제나 변함없이 깨끗한 량심을 지닌것으로 하여 아무리 엄격한 사람도 감히 획득하지 못하는 그런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기때문이라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아버지를 대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 이런 구속감은 어머니도 마찬가진것같았다. 그래도 어머닌 놀라우리만치 용감한 때도 있어서 자주 선불을 걸기도 했지만 그것도 아버지가 말없이 지그시 바라볼 그때까지뿐이였다. 그때면 어머닌 자기를 곁눈질하며 조용히 한숨을 내뿜었는데 그 모습이 어떤 땐 몹시 애처롭기까지 했다.
례외로 되는건 오직 누이동생 진희뿐이였다.
어머니와 자기한테 아끼는 정을 아버지는 몽땅 진희한테만 쏟아붓는듯싶었다. 그래서 진희는 봄뜰에 놓여난 망아지처럼 마구 까불어댔다. 무슨 잘못을 타이를 때조차 조금도 타내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건 봉건이예요, 아버지!》
《어째서 봉건이란 말이냐?》
《봉건이 아니라고 우기는건 주관이구요.》
《주관?》
언젠가 동무들과 함께 자기 방에서 떠들어댄적이 있었는데 다음날 아버지가 무슨 계집애가 사내들과 함께 밤늦게까지 소란을 피우느냐고 나무람했을 때도 진희는 새물새물 웃기만 했었다.
《우리가 어떤걸 생각해냈는지 아세요? 자동수예긴데 형타만 삽입하면 꽃도 나비도 새도 다 저절로 수놓아지는 그런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아버진 봉건만 아니라 주관주의에 보수주의까지…》
《어이구 됐다, 됐어. 꼭 투종공같은 계집애라니…》
《투종공이라니요?》
《조립된 설비에 감투를 해씌우는 사람들이지. 그렇지만 너처럼 마구 씌우지는 않아!》
《호-》
이럴 때마다 어머니는 사랑을 독차지하군 하는 딸을 꼬부장한 눈길로 쏘아보았고 진호도 괜히 코날개를 벌름거리며 아버지를 흘겨보군 했다.
진호는 방금전까지 낮에 있었던 일을 되새기고있었다. 되새겨볼수록 점점 더 의혹과 불만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물론 자기가 사고를 낸 책임은 져야 한다는것을 그도 알고있었다. 그러나 리해할수 없는것은 아무리 사고를 냈다 해도 어째서 진정한 의도와 지향까지 타개해마지않을 파렴치한짓으로 치부되는지 또 그렇게밖에는 달리 인정되지 않을수 없는지 그걸 알수 없는것이였다. 그것이야말로 자기가 가장 귀중히 여겨온 보물, 누구앞에서라도 당당히 자랑하던 보물에 더러운 오물을 끼얹어 이젠 사람들이 쳐다보기는커녕 도리여 미간을 찌프리고 피하게 된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만약 모두가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진정이 어디에 소용되는것이랴! 더우기 그런 삶이 정당하다는 진리가 어디에 있는것이랴!
우린 누구나 집단과 사회의 리익을 위해
그는 자기의 이런 번민을 아버지에게 털어놓으려고 맘먹고있었다. 이럴 때 가장 적절한 조언을 줄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였다.
《물론 저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수 있다는걸 모르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진실이야 인정돼야 할게 아닙니까. 인정되지 않는다 해도 곡해되고 비난받지야 말아야지요. 아버지도 늘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진실보다 강한것이 없고 그렇게 사는 사람보다 더 참된 사람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 저의 결심이 진정이 아니란 말입니까? 제가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이쯤하면 필경 아버지가 어느 정도의 반응을 보일줄 알았는데 방바닥을 내려다보는 덤덤한 눈길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아버지의 이 태연한 기색이 진호의 불만을 한층 더 가증시켰다.
《그래도 이런 모욕을 참고있어야만 합니까? 그저 기회가 나쁘다고 여겨야만 하나 말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너무도 억울한 일이 아닙니까. 전 그럴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전 나를 의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 희망이 어떤것인가를 똑똑히 알게 하고야말텝니다. 내려가도 그걸 알게 한 다음에야 가겠단 말입니다.》
《…》
침묵을 지키고있던 무원은 방바닥에 내려앉으며 진호에게도 앉으라고 손짓했다.
《모독이라…》
그는 아들의 말을 들으면서 무언가 고무가 될 말을 해주어야 하리라던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그 어떤 다른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아들이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있다는걸 알았으면 좀더 혼자 내버려둘걸 하고 아쉽게 여기고있었다. 사람이 바로살자면 필요한 고민은 거쳐야 하며 그 과정을 통해 더욱 굳세여진다고 믿는 그였다.
그는 어릴적부터 아들을 일시 불합리한 환경에 반발하다가도 곧 그 환경에 휩쓸리고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주장을 고집할줄 아는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 힘썼다. 그런데 그 아들이 벌써 이렇게까지 성장한것이 아닌가!
자기를 향해 뛰여오다가 넘어지면 배를 땅에 붙인채 눈알을 두룩두룩 굴리며 일으켜주길 바라던 아들, 그 아들이 지금은 남다른 고민을 안고도 현실로 서슴없이 뛰여들고있으니 이 얼마나 놀랍게 자란것인가!
그때 넘어진 아들을 바라보며 일어나라고, 스스로 일어나야 용타고 일러주면 그 말에 벌떡 일어나 달려오던 모습을 볼 때처럼 지금도 못내 대견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하지만 앞자락에 묻어있는 먼지만은 자기 손이 가야 했듯이 다 자란 자식이긴 하지만 아직도 자기의 충고가 필요함을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분하다는거냐?》
《분하지 않구요.》
《난 거기엔 분해하거나 억울해할 일이 아무것도 없을것같은데?》
《?》
진호는 눈이 둥그래졌으나 무원의 얼굴에는 빙그레 미소가 어렸다.
《난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건 뭐라고 할가? 한마디로 말해서 네 마음이 깨끗치 못한데서 오는게 아닌가싶다. 남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는 우월감이라고 할가.》
《우월감요?》
어떤 위로나 동정을 바랐던 아버지한테서 되려 충고를 듣는다고 생각하니 진호는 화가 치밀어오르면서 서글프기까지 했다.
《아버진 제가 뭐 자기 행동에 대한 평가를 바라는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그게 아니예요. 전 다만 모든것이 정당하게 사실그대로 인정돼야 한다는겁니다. 이게 진리가 아닙니까, 생활의 진리!》
자기도 철학을 론할 자격이 있다는것을 강조하려는듯이 그는 진리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럼 어디 네 말대로 따져보자. 그래 네가 기술안을 추진시키다가 실패한게 사실이 아니란 말이냐? 그 일로 하여 어떤 책벌을 받는다 해도 아무 말도 할수 없는 처지에 있는것도 사실이 아니구? 이런 형편에서 현장에 나가게 됐는데 어째서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거야 아주 자연스런 일이지, 가만! 가만히 있어.》
무원은 무슨 말인가 하려는 진호를 제지시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넌 지금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데 대해 불만을 품고있는데 그건 네가 순결해서나 순결을 바라서가 아니라
《과신이라니요?》
《과신 아니문? 그래, 설사 넌 자기의 행동을 수류탄 들고 적진으로 육박하는 영웅에 비기지야 않겠지? 너야말로 네 말대로 응당 가야 할 길을 가는게 아니냐! 열공학을 전문했으니 제철소에 가는거고 원유가 없으니 그걸 대신할 연료를 연구하는거고. 당에서 바로 그렇게 하라고 너를 공부시킨건데 그리로 가지 않으면 어데로 간단 말이냐. 이게 바로 진리지. 그래 지금 네가 이 진리대로 생각하고있니?》
《…》
《아니야! 넌 조금이라도 자기가 남다른 일,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고 여기고있지. 그런데 반대로 의심을 받았거던. 그래서 불만을 품는거야. 만약 네가 자기의 행동이 응당하고 평범한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절대로 그런 불만을 느낄수가 없어. 왜냐하면 자기 일에 대한 확신과 정당성을 느끼는 사람은 언제나 너그러운 법이니까.》
진호는 한숨을 쉬였다.
자기가
《그래, 내 말이 틀렸니?》
《…》
무원은 아들의 기색에서 대꾸할 말은 가득하나 그것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을뿐더러 표현한댔자 자기의 심정을 리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아예 단념해버리고있다는것을 알았다.
그도 맘같아서는 아들의 감정에 편승해주고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것이 지금은 곧잘 자기만이 정당하다고 확신하는 아들의 버릇을 조장시킬수 있다는것으로 하여 도리여 준절하게 대하는것이였다.
《진리라는것도 그렇지, 사람이란 많은 진리를 알아야 되는 법인데 너의 머리속에 있는 지식이란 아직 교과서나 남한테서 얻어들은 쥐꼬리만 한것뿐이지. 만약 그게 진리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넌 일생을 참봉으로 살기 마련이야. 그런 의미에서 볼 때도 너의 걸음은 이제 겨우 시작이 아니냐. 그런데도 첨부터 투정이거던.》
《그럼 그렇게 생각하는게 나쁘다는건가요, 그런 조소와 의심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단 말입니까?》
진호의 목소리에는 항변이라기보다 억울한 사람의 울분이 어려있었다.
《나쁘다기보다 졸렬하고 유치하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람들은 뒤에서 절 손가락질할게 아닙니까. 저놈은 일을 망치고 쫓겨난 놈이다, 기술안을 완성하러 간다는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고 말입니다.》
《그게 어쨌단 말이냐? 그렇지 않다는걸 증명하면 되는거지.》
《어떻게 말입니까?》
《행동으로!》
(행동으로?)
진호는 저도 모르게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왜,
순간 진호는 비상한 충격에 몸을 떨었다.
(사실 자기의 헌신을 인정받으려는것이야말로 어딘가 루추하고 비루한짓이 아닌가! 그것은 도리여 자기의 량심을 비속화하는것이 아닐수 없다. 그래 행동, 아버지말처럼 행동으로 보여주자. 나의 진정이 어떤것인가를 새 연료를 만들어내는것을 통해 보여주자!)
알지 못할 새로운 힘이 가슴속에서 불끈 용솟음치는것이였다.
《그러구보니 넌 아직 사내가 못돼. 사내가 아니라 졸장부야. 사내라는게 자기에 대한 신심이 그렇게 얇아가지고 무슨 일을 한단 말이냐. 남의 눈치나 보는 놈이 무슨 사내냐 말이다!》
진호는 갑자기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것같았다. 사내가 아니라는 아버지의 한마디 말이 백마디의 힐책보다 더 아프게 가슴을 찌르는것이였다.
(그래! 남의 눈치나 보는 내가 과연 무슨 사내란 말인가! 하찮은 고민에 시달리는 내가 무슨 대장부란 말인가!)
《물론 사람은 누구나 일생을 부끄럽게 살지 말아야지. 많은 일을 해서 말이다. 그러자면…》
벌써 진호에겐 아버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장 자기가 사내라는것을 보란듯이 증명해보이고싶을따름이였고 한시바삐 그걸 증명할수 있는 현장으로 달려가고만싶었다.
이들은 지금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있었지만 내심으로는 실상 서로 만족한 기분상태였다.
진호는 아버지가 자기의 심정을 다는 리해하지 않았지만 생활과 행동의 목표를 뚜렷이 정해준것으로 하여 기뻤고 무원은 무원이대로 아직은 많은것이 부족하지만 그런 열정과 투지로 일한다면 아들이 더욱 참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리라는 믿음이 들기때문이였다.
《그럼 이젠
자리에서 일어난 무원은 두툼한 손을 진호앞에 내밀었다.
《자-》
순간 진호는 아버지의 얼굴에 말보다 몇곱절 더한 기대가, 말로는 다 나타내지 않는 사랑이 물결치고있음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담배를 꺼내문 무원은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던졌다.
《한데 넌 나이가 그렇게 차두룩 처녀두 하나 사귀지 못했니?》
뜻밖의 질문에 어리둥절해진 진호였으나 곧 시틋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처녀는 사귀여서 뭘해요.》
늘 어떤 심각한 얘기를 한 다음에는 그와 대조되는 얘기를 꺼내군 하는 아버지였는데 그것은 주로 자기의 말이 어느 정도 효력을 나타냈다고 믿을 때였다.
《사실 그런 고민쯤은 옆에 살뜰한 처녀가 있으면 다 풀어지는 법이야.》
불시에 현옥이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자기에게도 그런 처녀가 있다는 말이 나가는것을 진호는 참았다.
누구보다 자기를 깊이 리해해주는 처녀, 그 처녀 하나의 마음이 지금은 백사람의 의심보다 자기에겐 더 큰 힘으로 된다는것을 소리높이 자랑하고싶기까지 했다.
사실 그에게 있어서 현옥이의 존재는 온갖 조소와 힐난의 바다속에서 자기를 지켜주는 유일한 의지의 섬이였을뿐만 아니라 믿음의 섬이기도 했다.
이미부터 현옥이와의 관계를 아버지에게 터놓고싶었던 그였으나 사귄지 얼마 되지 않는 처녀를 두고 얘기한다는것이 어쩐지 경솔하게 느껴질것같아 말 못했던 진호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을 듣고보니 이때까지 숨겨온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그래도 떠나기 전에는 말해야지. 아니, 같이 와서 인사를 해야지! 《저하고 같이 가는 동뭅니다.》 하고 말하면 아버진 얼마나 놀라실가?)
그때의 광경을 그려보느라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이, 추워!》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면서 빨간 목도리를 목에 두른 진희가 총알처럼 방안으로 뛰여들었다.
《어머, 아버지도 벌써 오셨네.》
무엇이 기쁜지 생글생글 웃는 눈길로 아버지와 오빠를 번갈아쳐다보던 그는 갑자기 캐드득하고 웃었다.
《자요, 오빠.》
진호앞으로 다가앉은 그는 손에 쥔 종이꾸레미를 내밀며 발쭉 웃었다.
《이게 뭐니?》
《뭐긴 뭐겠어요, 저의 선물이지. 근데 좀 좋은걸로 하려고 했는데 어디 돈이 있어야지요.》
입술을 빼죽해보인 진희는 옆에 있는 아버지를 할끔 쳐다보았다.
몇겹으로 싼 하얀 포장지안에서는 제도기가 나왔다.
《허, 진희가 제법인걸?》
제도기를 든 무원은 처음보는 물건처럼 신기하게 들여다보았다.
《아버진 뭘 준비하셨나요?》
《나?》
무원은 두눈을 슴벅거리기만 했다.
《아무것도 없지요? 그런데도 엄만 뭐 아버지도 좋은걸 준비하신다나? 엄만 오늘 백화점에 들리시겠다구 했어요.》
어찌도 입을 재게 놀리는지 말이 다 끝난 다음에야 그 뜻을 깨달을수 있었다.
《내가 왜 없어! 벌써 다 갖다놨는데.》
《어디요?》
방안을 둘러보던 진희의 눈길은 여전히 믿을수 없다는 눈치였다.
《부엌에 가서 랭동기를 열어보렴.》
《정말?》
손벽을 찰싹 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뽀르르 부엌으로 달아나갔다.
《어디요?》
랭동기를 연채 묻는 말이였다.
《거기 세워놓은것 뵈지 않니?》
《피- 맥주?》
《그래, 어서 가지고 들어오너라! 뭐니뭐니해도 네 오빤 그걸 제일 좋아할걸!》
그러면서 무원은 진호에게 한눈을 찌긋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