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2 장

나는 증명할것이다

5

 

《이번 주내로 떠나겠다? 그러니 아무래도 난 동무가 떠나는걸 보지 못하겠군그래.》

기술국장 성문규는 나직이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환갑이 가까왔으나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게 반반히 옆으로 빗어넘긴 머리며 빠른 하관에 깊숙이 패인 눈확, 더우기 가냘프리만치 연약한 두어깨는 한눈에도 일생을 과학에만 바쳐온 사람이라는것이 유표했다. 움직임이 없는 몸가짐과 상대방이 무안을 느낄 정도로 뚫어지게 바라보군 하는 눈길은 무식과 허위를 질시해마지 않는 사람에게만 특유한 싸늘한 랭기가 풍기고있어 누구도 함부로 접근하기를 주저했다.

오직 실력만을 당자의 인격으로 치부하는 그를 어떤 사람들은 도면밖에 모르는 꼬장꼬장한 도감이라고 했지만 진호는 이 국장이야말로 자기 직무에 가장 충실한 사람이라고 믿는터였다.

그는 오늘 저녁차로 새로 건설된 북부지구 강철공장의 조업개시를 위한 기술일군으로 떠나야 했다. 그래서 미리 작별인사를 하려고 찾아온 진호였다.

《떠나기 두렵지 않소?》

언제나처럼 꼿꼿한 눈길로 바라보는것이여서 진호는 그가 어떤 뜻으로 묻는 말인지 가늠할수가 없었다.

《두렵다니요?》

《아니, 됐소. 내가 괜한 걱정을 했는가보오.》

진호는 그와 단둘이 마주앉고보니 배치돼서 첨 만나던 때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도 두서없는 질문을 마구 퍼붓고는 어찌도 지독스레 쏘아보던지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

《뭘 전공했소?》

《열공학입니다.》

《열공학? 그런데 어째 여기 왔소?》

《…》

《희망이요? 아니면 배치됐기때문에 왔소?》

《배치됐기때문에 왔습니다.》

《희망은 뭔데?》

《연료연구입니다.》

《연료연구?》

워낙 까근까근하게 파고드는 사람이 질색인 진호는 틀림없이 이 늙은 직속상관이야말로 일단 마주하면 시시콜콜한 질문을 끝없이 들이댈 검질긴 사람같아 앞으로 지낼 일이 은근히 걱정스럽기까지 했었다.

아닌게아니라 문규는 부서에 새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깊은 주의와 흥미를 가지고 살펴보군 했는데 그때의 눈길은 마치 새로 사온 금붕어를 어항속에 띄워놓고 지켜보는 사람의 유쾌하고도 진지한 시선이였다. 일정한 만족이 가는 경우엔 혼자 고개를 끄덕이였지만 불만을 느끼게 될 땐, 특히 맡겨진 일을 응당한 수준에서 처리하지 못할 땐 가차없이 발가벗기는것이였다.

《보아하니 동문 대학에서 5년동안 공밥을 먹었군그래. 여기선 동무가 할 일이 없는데 어떡허면 좋겠소?》

이럴 땐 옆사람까지도 소름이 끼쳤다.

진호도 그때면 등골이 다 오싹했으나 한편으로는 야릇한 호기심도 누를수 없었다. 이런 국장이 자기에게 어떤 평가를 내리겠는지 자못 궁금했던것이다. 자기 사업에 대한 확고한 자신심이 없는 일군이란 결코 이와 같은 과단성이 없다는것을 그리고 이런 무자비한 일군의 심판이야말로 정당하다는것을 그도 알고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진호는 처음으로 자기가 담당한 도면을 그앞에서 심사받게 되였다.

이때에야 그는 비로소 심사라는것이 재판과 비슷하다는것을, 담당자의 처지가 법관들앞에 나선 피고와 같다는것을 알았다.

자기를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빙 둘러앉은 심사원들은 마치 검사가 피고의 죄목을 라렬하듯이 서로마다 도면에서 료해한 부족점을 들춰내기 시작했다.

《내연성을 담보할수 없습니다.》

《안전계수의 허용한계가 정확치 못합니다.》

마치 한장의 도면에서 결함을 얼마나 들추어내는가 하는것이 자기능력을 평가받는 기준이기라도 한것처럼 그들은 하나같이 열을 올리며 따지고들었다.

이런 의견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것을 몰랐으며 또 이전의 관례가 어떠하다는것조차 알수 없었던 진호는 첨엔 당황했으나 점차 안정이 되면서 해당한 론거들을 가지고 반박하기 시작했다.

그 열자동조절기도면을 위해 숱한 밤을 밝힌 그였고 현지에도 몇차례 출장까지 다녀왔던것이다. 비록 자기의 창안품은 아니였지만 배치받아 처음 맡은 과제라는것으로 하여 자기것 이상으로 고심을 들였었다.

이렇게 되자 심사원들의 질문은 점점 까다로와졌고 진호 역시 그들의 의견에 대한 반박에 열을 올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눈을 게슴츠레 감고있던 몸집이 뚱뚱한 번대머리심사원이 진호를 참을수 없게 만들었던것이다. 그것은 이미 충분히 납득이 가게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을 들이대는데도 있었지만 보다는 그 엉터리없는 의견인즉 사실상 열자동조절기의 운명에 사형을 선고하는것과 같이 무지한것이기때문이였다.

그런데도 그는 줄곧 범잡은 포수처럼 비만한 표정에 숨길수 없는 우월감을 담고 어디 대답해보라는듯이 기세등등해있는것이였다.

《도대체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그 부분구조가 왜 그렇게 됐는가 하는건 도면을 따져보면 다 알수 있단 말입니다. 도면을 원리적으로 따져볼 능력만 있다면 말입니다.》

《아-니, 이 동무가?》

모두가 불손하기 짝이 없는 진호를 아연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제기된 의견을 창안자에게 전달하고 그대로 수정하도록 도와주는것이 담당자로서의 의무인데 이 풋내기는 사소한 의견에 대해서까지도 굳이 반박해나서는것이 아닌가!

《여보! 누가 동무의 살점을 뜯어내자오? 영 태도가 글렀거던!》

번대머리가 책상을 두드리며 로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심사원들도 이 겸손치 못한 초학도의 소행에 격분을 금할수 없다는듯이 또 처음부터 신발을 단단히 신겨야 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심사를 책임진 문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때에야 진호는 자기를 쏘아보고있는 국장을 보았고 자기의 행동이 지나쳤음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미안합니다. 전 사실…》

《뭐라구?》

칼날같은 목소리였다. 당장 쏟아져나올 그의 힐난을 기다리며 진호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의 말은 전혀 뜻밖이였다.

《어쨌단 말이요? 뭐가 잘못됐다는거요? 그래야 하오! 담당자의 태도는 백번 그래야 옳단 말이요! 이런 태도야말로 도면에 자기의 지혜와 정력을 다 바치고있다는게 아니겠소. 자기 과업을 책임적으로 수행한다는 증거가 아닌가 말이요.》

체소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주먹을 흔들어대는 국장의 흥분한 모습에 진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때까지 우리의 심사는 심사가 아니라 재판이였소, 엉터리없는 재판! 어째선가? 그건 담당자의 노력이 도면에 가해지지 않기때문에.

담당자까지도 〈예,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거긴 아직 그런 결함이 있습니다.〉(그는 입을 삐죽 내밀고 허리를 굽신거리며 비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고 꺼리낌없이 말하군 했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말이요.

이거야말로 얼마나 무책임하고 맹목적인 태도요. 그러니까 결국 허동무와 같은 한심한 질문을 한단 말이요. 허동무! 부끄럽지도 않소?

그러나 보오. 이 동무! 진호라고 했던가? 얼마나 깊이 연구했소.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도면에 쏟아부었는가 말이요. 진호동무, 앞으로도 절대로 그런 고집을 버리지 마시오. 알겠소?》

그때부터 진호는 그에게서 어떤 매력적인것을 가려볼수 있었고 그의 사고의 구체성에 대해 느끼지 않을수 없었으며 특히는 이 국장이 자기 사업을 완전히 도통하고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런 일군을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거야.)

진호는 국장에 대한 신뢰가 클수록 그와의 석별의 정 또한 금할길 없었다.

《내 얘길 하나 할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그는 티 하나없이 깨끗한 자주빛책상을 손바닥으로 쓸면서 빙그레 웃었다.

《언젠가 손자녀석을 데리고 문풍지를 바른 일이 있었는데 들어보오. 글쎄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말수가 적고 다소 답답한 사람이 그런것처럼 그도 단둘이 마주앉아있을 때에는 갑자기 수다스러워져서 대가리, 꽁지없는 이야기를 곧잘 꺼내놓군 했다.

《그 녀석이 풀칠을 해주면 난 의자우에서 그걸 받아붙였지. 한참 창문을 바르다보니 이놈이 제 손으로 아래문턱을 바르고있는게 아니겠소. 아마 풀칠한걸 들고있기가 지루했던게지. 그런데 발라놨다는게 이건 엉망이란 말이요. 하긴 연필도 제 손으로 깎지 못하는 녀석이 그걸 어떻게 제대로 붙이겠소. 한데도 난 꽥 하고 소리를 질렀소.

〈이놈아, 누가 너보고 바르라던?〉

별로 기분나쁜 일도 없었는데 난 괜히 큰소리를 쳤지. 동무도 알지만 내야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요. 이상하게도 우리 집 아이들은 내가 한마디만 해도 몹시 서러워하는게 아니겠소. 이붓자식들처럼 말이요.》

어째서 국장이 이런 얘기를 할가 하고 궁리해보았으나 진호는 좀처럼 료량할수가 없었다.

《그녀석은 입을 실룩거리더니 종내 눈물을 떨구더군. 그리고는 제가 방금 붙인걸 손톱으로 하나하나 긁어내더란 말이요. 그 모습을 보느라니 어쩐지 불쌍한 생각이 들면서 내가 몹시 고약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게 아니겠소. 무엇때문에 앨 욕했을가 하는 후회가 들더란 말이요.

사실 자기도 할아버지처럼 해보려는 마음, 할수도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얼마나 기특한것이요. 기특하다기보다 소중한것이지. 우리의 현실은 아이들조차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게 아니요. 그런데도 난 어린 마음속에 움트는 그 귀중한 싹을 억눌러버렸으니…

난 곧 자기를 뉘우치는 의미에서 앨 의자에 올려세우며 말했소.

〈자 실컷 발라봐라. 제대로 붙이지 못해도 좋아.〉 하고 말이요. 그런데 글쎄 이녀석이 붙일념을 해야 말이지. 슬슬 눈치만 보는게 아니겠소. 내참! 기가 막혀서… 별치 않은 일이였지만 난 그날 저녁 잠을 다 잘수가 없었소. 그때부터 난 아이들의 욕망, 그것이 비록 부질없고 하찮은것이라 해도 최대로 묵과하기로 결심했소. 그때문에 결코 그 귀중한 싹이 억제당해서야 안되는게 아니겠소. 안그렇소? 내가 이 말을 하는건 동무도 이담에 참작하라고 해서요. 아이가 생기면 말이요.》

그제야 진호는 그의 뜻을 리해할수 있었다. 왜 그가 이런 말을 하는지 짐작이 갔고 그럴수록 그에 대한 고마움이 가슴속에 꽉 차오르는것이였다.

이미의 실패를 두고 소침해질가봐 걱정해주는 그, 어떤 경우에 처해도 창조에 대한 열정을 잃지 말라고 고무해주는 그, 그것이 없이는 삶의 보람도, 생활의 재미도 있을수 없다고 당부하는 그가 아닌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백배의 정열로 일해야 하리라는 새로운 투지가 가슴속에 사품쳐오르는것이였다.

실상 문규는 지금 진호를 위해 뭔가 더 각근하게 대해주고싶은 심정에 휩싸여있었다. 그것은 그를 진정으로 도와주지 못했다는 후회가 이제 와서 더욱 가슴을 허비기때문이였다.

그는 진호의 실패가 많이는 자기때문이라고 여기고있었다. 물론 미흡한 점이 있는데다가 사전토론도 없이 도입시킨데서 온 후과이기도 했지만 보다는 자기가 첨부터 그의 기술안을 소격하게 대해온데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가책으로 하여 뒤늦게나마 그의 남다른 포부를 각별히 고무해주고싶은것이였다.

사실 그도 첨엔 현장으로 가려는 진호를 만류하고싶었지만 그 일에 대한 그의 각오와 열정을 리해하게 되면서부터는 자기의 생각이 한갖 로파심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대공에 깃을 활짝 펴야 할 뭇새를 조롱속에 잡아두려는 부질없는짓이라는것을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당비서에게 이런 권고를 했다. 《저런 사람이야말로 마땅히 창조의 1선에 서야지요. 여기선 한몫을 해도 바라는데 가서는 꼭 열배의 성과를 나타낼 사람입니다.

마치 태여날 때부터 그걸 위해 태여난 사람같단 말입니다!》

그러나 불안도 없지 않았다. 정작 떠나보내자니 이제껏 느끼던 근심이 배로 증대되는것이였다. 그것은 젊은 사람 일반에게 하게 되는 늙은이로서의 걱정만이 아니라 유독 진호에게만 해당되는것 즉 일단 옳다고 생각한것에 대해서는 신심 하나에만 충만된 나머지 아직은 그것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에 대해선 너무도 무관한 그것이였다.

그는 자기가 옳다고만 생각하면 누가 뭐라든, 가능성여부는 어쨌든간에 무작정 달라붙는데 특히 남들이 할수 없다고 결론지은것들이나 남들이 하다가 물러선것일수록 더 큰 흥미를 느끼는것이였다. 그야말로 수업시간에 강사가 《이건 아직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수 없는 문제입니다.》 하고 말하면 기를 쓰고 달라붙을 그런 류의 젊은이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하려는 일이 쉽사리 되기를 바라며 그 어떤 장애도 없이 빨리 성사되기를 바라는 법이지만 반대로 자기가 하는 일에 시련과 난관이 있기를 바라는 사람도 간혹 있는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위험과 위훈이 약속된 생활이라야 흥미를 느끼며 의의를 찾는다. 아무리 바라던것이라 해도 우여곡절이 없이 순탄하게 이루어지면 거기에서 그 어떤 보람도 느끼지 못하는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를 외롭고 고독하고 간고한 처지에 빠뜨리기가 일쑤인데 바로 이런 사람들중의 하나가 진호였다.

이번 경우에도 여느 사람같으면 자기의 현장진출을 놓고 주위사람들의 시비에 신경을 쓰며 고민에 빠져있기마련이련만 그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떠나기 무섭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던것이나 그런 내심조차 짐작하지 못하는상싶었다.

(하긴 그럴수밖에! 워낙 제철소로 가겠다는것이 소원이였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문규는 서류함을 열고 자기가 쓰던 고급계산기를 꺼냈다.

《이거라도 가져가오, 쓰던거라고 나무라진 말고.》

《계산기야 저한테도 있는데요.》

《그래도 가져가오. 이걸 주는건 아무리 훌륭한 시도도 결과가 명백할 때만 빛이 난다는걸 명심하고 두번, 세번 따져주길 바래서요. 알겠소? 결코 쉬운 일이 아닐거요. 그렇지만 절대로 의기소침해지진마오.

일이란 능력보다도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언제나 먼저 비밀을 찾는다는걸 꼭 명심하오. 그 필요성이란 뭐겠소? 그건 바로 우리 수령님께서 간절히 바라고계신다는것이 아니겠소.》

(수령님께서 바라시는 일!)

국장과 헤여진 그는 몇번이고 이 말을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어떤 책임감이 새삼스레 어깨를 내리누르는것이였다.

갑자기 복도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리면서 낯익은 얼굴들이 일시에 우르르 방안으로 밀려들었다.

강연회가 끝난 모양이였다.

모두들 진호를 보자 마치 오래간만에 만나는 사람처럼 반가와했다.

《다 돼가나?》

《다가 뭔가? 이제 겨우 시작일세. 무슨 수속이 그리도 복잡한지, 원.》

《그래 송별회는 언제쯤 하자나?》

《난 이제라도 준비됐으니 가자는 말만 기다릴뿐이네.》

《넨장! 신랑이라도 된 기분일세그려.》

《가만가만, 아까 그 할레혜성인지 뭔지 하는게 언제 들이닥친다구?》

방금 있은 과학강연에서 들은 인상을 지워버릴수 없었던지 한 친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은 천체에 대한 강연이 있은 모양이였다.

《언제라던가? 어쨌든 멀지는 않아! 혹시 이번엔 그놈이 궤도변화를 일으켜 지구를 정면으로 들이받는게 아니여?》

《설마? 그럼 우린 어떻게 되지?》

《제발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지도 말게!》

《걱정마십시오, 여러분!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아무 말이나 재치있게 둘러대는 기표라는 친구가 한걸음 나서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땐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인공위성을 타고 다른 행성에 옮겨앉게 될테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옆에 있는 진호의 어깨를 철썩 갈겼다.

《자-보십시오. 이 진호동물 보십시오. 벌써 우리 시대의 새로운 위성을 타고 들끓는 새 행성으로 가지 않나. 이게 바로 우리의 과학이고 우리의 미래란 말입니다. 우리모두 열렬한 박수로 이 우주비행사를 환영합시다, 단 딴따…》

그의 입나팔에 맞추어 요란한 박수가 터져올랐다.

《그런데 단독비행인가?》

이번엔 기표뒤에 있던 키꺽다리가 물었다.

《천만에요, 옆에는 꽃같은 춘향이가 앉아있지요.》

《어랍쇼, 그러니 혼성비행이군그래.》

또다시 《와》하는 웃음판이 터졌다.

이때 출입문으로 근식이라고 불리우는 친구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들어섰다.

떠들썩한 분위기와는 너무도 대조되는 그의 심각한 태도가 대번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무엇때문인지 그는 친구들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은채 제자리에 가앉는것이였다.

언제나 묘한 사건들과 남들이 모르는 비밀들을 용케 알아내가지고는 친구들을 놀래우군 하는 그여서 기술국에서는 청우계와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친구들은 그를 근식이라는 이름대신 《소식》이라고 불렀는데 한편으로는 무슨 불만이 그리도 많은지 자주 부르터있어서 그럴 땐 《근심》이라고도 했다. 그의 표정을 보고 소식이냐, 근심이냐를 판별하군 했던것이다. 그러고보면 지금은 분명 무슨 근심이였다.

《모를 일인걸! 아무래도 모를 일이야!》

아니나다를가 예보장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자기를 주시하고있다는것을 알자 그는 더욱 고개를 기웃거렸다.

《무슨 일이게?》

눈을 끔뻑해보인 기표가 그에게로 다가갔다.

《진호동무가 제철소에 가는거 말이야, 희망이라는건 거짓말이라면서?》

《뭐라구, 누가 그래?》

《누군 누구야, 심사실장이지. 심사원들앞에서 진호에 대해 얘기하면서 희망이요, 소원이요 하는건 한갖 쫓겨가게 된 처지를 타당화해보자는 궤변이라면서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라고 했다잖아. 따져보면 그런것같기도 하고…》

얼른 그에게로 다가선 기표가 아무 말 말라고 어깨를 꼬집어뜯으며 눈을 흘겨붙였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이쪽을 건너다보던 그는 그제야 친구들속에 있는 진호를 발견하고는 입을 딱 벌렸다.

《아-아니!》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두눈에 펄펄 이는 불을 담고있던 진호가 불시에 문을 차고 나갔기때문이였다. 어찌나 급작스런 행동인지 누구 하나 붙들념도 못했다.

《또 일을 쳤군! 그놈의 혀바닥을 땜질해치우든지 해야지 이거야 어디…》

《왜, 내가 거짓말을 했게?》

자신의 실책으로 빚어진 후과를 때늦게 감촉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는 제편에서 도리여 성을 냈다.

《우린 뭐 그런 말이 있다는걸 모르는줄 아나? 아는것도 입밖에 내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단 말이야.》

《흥! 그렇다고 그렇지 않는걸 참아야 해? 잠자코 있어야 하나 말야, 천만에! 사람이 제일 괴로운 일이 뭔지 알기나 해? 그건 바로 진심을 의심받는거란 말이야. 알겠어?》

《…》

근식이의 이 말에는 누구 하나 아무 대꾸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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