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제 3 장

사랑의 감정은 어디서부터 흐르는가

8

 

천호가 호동에 들어선것은 그로부터 얼마 안되여서였다. 호동이 별로 조용했다. 늘 보이던 태인이가 없고 휴계실 상우엔 눈에 익은 쟁개비가 댕글하게 놓여있을뿐이였다.

(아버지가 오셨댔구나.)

뚜껑을 열어보니 구수하면서도 군침이 도는 숭어탕이였다. 한걸음을 지체했더니 그만 아버지가 오신것을 못보았다. 아버지에게 죄스러웠지만 숭어탕을 보니 어지간히 마음이 떴다.

《어마나, 숭어탕이군요.》

따라들어오던 수려가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버지가 오셨던거요. 그런데 태인선생은 어디 갔을가?》

《우리를 찾으러 갔을지 몰라요. 찾아봐요. 난 그동안 숭어탕을 덥히겠어요.》

수려가 쟁개비를 들고일어나자 천호는 다시 태인을 부르며 밖으로 나갔다.

《천호, 나 여기 있네.》

호동뒤에서 태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웬일인지 맥풀린 어조였다. 이상했다.

《여기서 뭘합니까?》

《…》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태인이가 대답이 없자 천호는 깜짝 놀라 그의 팔을 흔들어댔다.

《아버지가 걱정되누만.》

《우리 아버지가요? 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천호는 펄쩍 뛰다싶이 놀라 태인의 어깨를 잡아흔들었다.

《천호, 하나 물어보자구. 아버님이 수려 아버지를 아시오?》

태인의 입김이 확 얼굴에 끼얹혀졌다.

《수려동무 아버지? 그가 누굽니까?》

천호는 오히려 얼떨떨해서 되물었다.

《강시연부장. 내가 말하던 그 부장 말이요.》

웬일인지 태인의 목소리가 떨리였다.

천호는 영문을 알수 없었다. 강시연이라는 이름도 처음 듣지만 그 이름이 아버지와 무슨 련관이 있는지는 더더구나 알수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어쨌게요? 좀 자세히 말하십시오.》

《자세히 말할것두 없네. 그저 강시연이라는 말을 듣자 얼굴색이 백지장처럼 되면서 그 자리에 푹 주저앉는게 아니겠나. 그리고는…》

천호는 눈앞이 아뜩했다. 백지장처럼 됐다구? 주저앉았다구?

《수려동무 아버지가 어디에 있었다구요?》

《내가 말하지 않았나, 부장이라구.》

태인이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리였다.

《그럼 혹시 아버지문제를 취급한…》

그 순간 천호는 어둠속에서 번쩍 번개가 일어나는것같은 환각을 느꼈다. 그 강시연이라는 사람과 아버지가 분명 무슨 관계가 있는것이 틀림없다. 옳다. 부장이라면 아버지의 책벌과 관련되는 사람일것이다.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는가.

천호는 홱 돌아섰다. 그 순간 호동안에서 《쨍그랑!》 쟁개비뚜껑이 나딩구는 소리가 났다. 그제야 수려의 존재를 느낀 천호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추측이 사실이라는것을 느꼈다.

그 순간 천호는 멈칫했다. 가슴속을 무딘 칼로 벅 긋는듯한 쩌릿한 아픔,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이였다. 아버지일이 더 걱정된 천호는 나는듯 어둠속을 헤가르며 앞으로 내달았다.

천호는 어떻게 구내를 벗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달리기경기에 나선것처럼 집으로 달음쳐갔다. 불이 켜있지 않았고 문도 꼭 닫기여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다는것을 의미했다.

천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어디에도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누구하고 한담하거나 한가하게 놀러다니지도 않아서 도대체 어디 갔는지 알수가 없었다. 유일한 취미는 오리를 기르는것인데 여기에 없다면 도대체 어디에 갔는가. 문득 생각되는게 있어 천호는 동네를 벗어나 바삐 동뚝으로 올리달리였다. 희끄무레한 달빛이 은은히 흐르는 동뚝의 버드나무밑에 누군가가 있는듯했다.

천호는 아버지라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혼자 있고싶을 때면 의례히 저 버드나무에 기대여 하염없이 그 어딘가를 보는 아버지였다.

외로이 앉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당장에 천호의 가슴속에서 눈물을 자아냈다. 한순간에 폴싹해진듯한 아버지의 모습은 말그대로 타다남은 고목이였다. 미동도 없이 까딱않는 아버지는 숨도 쉬지 않는듯했다.

《아버지!》

천호는 아버지의 훌쭉한 어깨를 감싸안았다.

《아버지, 말씀해주십시오. 그 강시연이라는 사람과 무슨 일이 있은게 아닙니까?》

아버지는 그 말에 대답할념을 않고 뻔히 천호를 바라보더니 제 할말만 했다.

《천호야, 난 가끔 여기 버드나무를 찾아와서 자기를 돌이켜보군 한다. 10대의 나이에 나는 큰죄를 짓고 이 고장을 떠났댔단다. 이 고장을 떠날 때 이 버드나무는 애어렸다. 하지만 나의 모든것의 목격자였지. 대학을 졸업하고 이 고장을 다시 밟았을 때도 난 이 나무부터 찾았다. 그리고 이앞에 서서 자신을 총화했구나. 그후에 흘러간 희로애락의 모든것도 이 버드나무는 지켜보았다. 다시는 나라에, 공장에, 그 누구에게도 죄를 짓지 말고 말년을 총화짓자고 결심했는데 이제 와선 너한테까지 죄를 짓게 되누나.》

눈물을 자아내는듯한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천호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 아버지의 문제를 취급한 사람이 그 강시연이라는 사람입니까?》

아버지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침묵하나만으로도 그것이 사실임을 충분히 알수 있었다.

천호는 괴롭게 가슴을 움켜잡았다. 귀안을 후벼내는것같은 쟁개비소리가 다시 들려오는듯했다.

《천호야, 제발 내 말을 들어라. 이번 처녀만은 놓치지 말아라.》

아버지는 더 말을 못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아버지, 저를 설복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천호야.》

아버지가 완강히 머리를 흔드는 바람에 천호는 더 말을 못했다.

어둠속에 망연히 서있을 수려의 모습이 련상되였다.

수려는 마음에 드는 처녀였다.

그와 같이 만경봉에 오른 다음부터는 온 세상을 얻은것처럼 가슴이 넓어졌다.

그런데 수려가 아버지에게 해를 준 강시연의 딸이라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또다시 가슴이 비틀리는듯 쓰려났다.

《천호야, 그 처녀가 강시연이라는 사람의 딸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돌아서서는 안된다. 난 나고 넌 너다.》

《아버지,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나와 아버지는 혈연관계를 뛰여넘는 관계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가를수 없습니다.》

천호는 펄쩍 튀여오를듯이 놀라 아버지의 어깨를 와락 부여잡으며 흔들었다.

《이 세상에 혈육보다 더 귀중하고 친밀한 관계는 없느니라.》

《그럼 아버지는 우리 할아버지인 <두단령감>과 친혈육관계입니까?》

천호는 당장이라도 육박하는듯한 자세로 다그쳐물었다.

아버지가 대답을 못하고 슬며시 눈길을 돌리자 천호는 불같이 내뱉았다.

《아버지는 나와 절대로 떨어질수 없습니다. 난 아버지가 무슨 마음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만일 아버지가 이 천호를 버린다면 그때는 이 천호도 없다는것을 알아두십시오.》

천호는 비장하다고 할 정도로 단호하게 선언하고는 홱 돌아서서 동뚝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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