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1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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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년도 철강재생산계획과 관련한 문건을 작성하다가 문의할것이 있어 황해제철련합기업소에 전화를 걸었던 주영호는 뜻밖에 오늘, 바로 지금 마지막시험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시계를 들여다보고나서 시간을 확인한 그는 문건철을 덮었다. 차를 빨리 달리면 출선전에 가닿을수 있을것이고 그러면 이번 시험결과를 눈으로 직접 볼수 있을것이였다. 많은것이 기대되는 이번 시험만은 꼭 가보고싶었다.

그는 서기를 불러 문건작성과 관련한 임무를 준 다음 황철에 갈수 있게 차를 준비하라고 일렀다.

승용차는 그야말로 나는듯이 달려 짧은 시간안에 황철에 도착하였다. 당위원회에 들렸다가 차를 돌려 투광등들을 켜놓아 사방 환한 주체철직장정문에 이른 주영호는 더 들어갈수가 없었다.

우선 한 100m근방에서부터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있는데다가 연신 경적을 울리며 겨우 헤치고들어가니 이번에는 환강을 땜하여 든든하게 만든 직장정문이 굳게 닫겨있었다. 그앞에는 키가 하나같이 끌밋한 스무나문명이나 되는 보위대원들이 담을 치고 서있었다.

차에서 급히 내린 주영호는 그들을 쭉 훑어보았다. 그들중에서 지휘관처럼 보이는 나이든 한 보위대원이 다가온다. 차번호를 유심히 일별한 그는 거수경례를 붙이였다.

용무를 말하자 대번에 안된다고 하는것이였다. 신분증을 꺼내여 그에게 내보이려 하였다.

《당중앙위원회에서 우리 기업소에 자주 내려오시는분이라는것을 압니다.》

신분증을 례절있게 밀막으며 그가 하는 말이였다. 하지만 뒤를 잇는 말은 처음과 같았다.

《그래도 안됩니다. 우린 련합당책임비서동지에게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한사람도 들여놓지 말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손전화기를 꺼내드는 주영호에게 보위대원이 튕겨준다.

《책임비서동지는 현장에 계시는데 손전화기를 일체 차단하고있습니다.》

주영호는 이런 방법을 써가지고는 안되겠다는 결심이 들어 엄격한 자세를 취하였다.

《나를 알고있다니 다행이구만. 내가 굳이 시험장에 들어가야 하는 리유 역시 알테니까 문을 여오. 난 들어가야 돼.》

《절대로 안됩니다.》

여전히 요지부동이였다. 그는 정문너머를 가리키였다.

《내겐 문을 열어줄 권리가 없기도 하거니와 열어준다 해도 직장안에 있는 우리 동무들이 막게 될겁니다.》

아닌게아니라 정문너머에는 밖의 인원들 머리수만한 보위대원들이 더러는 울타리를 치고 서있고 더러는 여기저기서 서성거리며 자기 임무를 수행하고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운전사에게 차를 뒤로 빼라는 뜻으로 손시늉을 하고나서 막연한 심정에 싸여 서있는데 주위에 운집한 군중들속에서 누군가가 알은체를 하며 다가오는것이였다. 련합기업소 후방부지배인이였다.

그는 언행이 점잖고 침착한 사람으로 알려져있었는데 오늘은 왜 그런지 감정심리가 상당히 떠있었다.

《제 짐작이 맞다면 저건 두번째 장입을 끝냈다는걸 의미합니다. 첫번째 출선은 이미전에 있었구요. 한데 어째서 용광로에선 감감무소식일가.》

후방부지배인은 정문너머로 주변정리를 하는 석대의 삽차와 멎어있는 스키프들, 자그마한 산을 방불케 하는 정광과 무연탄, 부원료무지를 깐깐히 여겨보는 주영호에게 또 알은체를 하는것이였다.

《그러니까 첫 출선이 벌써 있었고 제대로 되였다는거겠소?》

《예, 두시간전에 난 내 손으로 직접 쇠물을 끓여본적은 없습니다만 한생 황철의 쇠덩이냄새에 절어온 내가 아무렴 이런 낌새를 모를것같습니까.》

주영호가 찐덥지 않은 기색을 짓자 근거를 안받침하는 후방부지배인이였다. 그러던 그가 탄성을 올리며 용광로를 손짓하는것이였다.

《아! 두번째 출선을 하는 모양입니다. 저길 보십시오.》

그는 용광로에 눈길을 주었다. 부지배인의 주장이 바이 틀리지 않은것같았다. 투광등빛에 주위가 환한데도 강렬한 주홍색빛묶음들이 로정이며 용광로로 들어가는 입구, 뙤창들을 진하게 물들이며 련속적인 폭발을 일으키고있었다. 그것은 한동안 주기적인 강약운동을 하다가 차츰 정상으로 돌아가는것이였다.

얼마후.

로정에 흰 용해공옷을 입은 한사람이 나타나 계단을 내려 운집한 군중들앞으로 허둥지둥 달려오는것이였다. 함승일기사장이였다.

사람들앞에 와선 승일은 땀과 눈물에 얼룩지고 이지러진 얼굴로 누구인가 찾으려는듯이 사방을 두리번거리였다. 이내 방송선전차를 발견하고는 그리로 가 마이크를 달래드는것이였다.

《동지들!》

웅성거리던 군중이 일시에 언행을 멈추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였다.

《해냈습니다! 나옵니다!》

너무나 간략화된 외마디들에 목소리조차 첫 부름말보다 작아 사람들은 눈을 쪼프리며, 귀박죽에 손을 가져다대며 다음말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함승일은 주먹을 번쩍 쳐들며 웨치듯이 말을 이었다.

《동지들! 오늘 벌어진 결사전에서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마침내 주체쇠물을 성공시킴으로써 황철은 어버이장군님의 유훈을 관철하게 되였습니다. 우리의 손으로 뽑은 이 쇠물은…》

뒤말은 순간적으로 터져나온 만세의 환호성에 삼켜들어가고야말았다. 자연스러운 환호성은 곳곳에서 줄곧 터져나왔다. 방송원이 마이크를 들고 젖은 목소리로 《어버이장군님, 들으십니까, 황철은 드디여 장군님의 명령을 집행하였습니다.》라고 하며 즉흥방송을 시작하자 흐느낌소리가 흰 천필에 부은 색감처럼 군중들속으로 확 퍼져갔다. 두손에 얼굴을 묻고 어린아이처럼 왕왕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어버이장군님께서 그처럼 바라시던 조선의 붉은 쇠물을 생전에 보여드리지 못한 한스러움, 주체철성공을 위하여 온갖 로고를 기울이신 장군님의 생애의 마지막시기가 눈물겹게 떠올라 가슴을 못견디게 뒤흔들었기때문이였다.

방송선전차에서 울려나오는 노래를 누가 먼저 따라불렀는지 모른다. 하지만 노래가 품고있는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감정은 그대로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을 폭발시켜 삽시에 모두가 따라불렀다.

 

순결한 량심우에 뜨거운 손 얹으며

장군님뜻으로 온넋을 태우더라

 

《들었소? 시험은 끝났소. 들어가야겠소.》

주영호는 례의 그 보위대원에게 다짜고짜 요구했다. 그는 달음에 현장으로 달려올라갔다. 광재길로 뽑은 슬라크에 고속으로 뿜겨지는 랭각수소리, 뜻뜻한 열풍, 아직도 시뻘겋게 달아있는 쇠물길, 주런이 배치된 샤모트벽돌크기의 괴틀에 차있는 쇠물, 그너머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선철괴무지, 련달아 다가오는 고동색, 철색, 구리빛의 얼굴들…

누가 누군지 분간하지 못하였다. 하여튼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며 《수고했소.》라는 치사를 련발하였다. 괴무지에 당도한 주영호는 한참이나 주체철을 뚫어지도록 보고 또 보았다.

그는 한손으로 괴를 두드리는 형용을 해보이며 누구에게라없이 말하였다.

《여기에 쪼아새겨놔야 돼. 오늘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요. 꼭 새겨놔야 하오.》

응답이 들리지 않아 뒤돌아보니 곁에는 기사장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영호는 자기의 흥분과는 또 다른 감정이 현장에 존재하고있다는것을 목격하였다. 점토포가 있는 건너편, 음료수통옆에 의사들과 책임비서며 리원로장을 비롯하여 결사대원들이 몰켜서있었던것이다.

그리로 가보니 다들 점토며 무연탄가루에 얼룩진 용해공복차림의 김중건이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중건은 벽에 힘없이 기대여 입은 벌리고 눈은 감은채로 퍼더버리고앉아있었다.

《어찌된 일이요?》

중건이와 같은 옷차림을 한 책임비서가 웃으며 대답해준다.

《정신적과민이 풀렸으니 육체적허탈이 온겁니다.》

《대책을 세웠으니 피여날겁니다. 》

김중건이를 간호하던 중년의 녀의사가 허리를 펴며 알려준다.

중건은 이내 눈을 떴다. 주영호는 그앞에 무릎을 꺾으며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다른 손으로 직장정문밖을 가리켰다.

《저 노래가 들리오? 중건이.》

입을 벌린채 힘없이 머리만 끄덕인다. 그러다가 입을 우물거리였는데 거의나 함성처럼 들려오는 노래를 따라하는것같았다.

 

조국의 무거운 짐 두어깨에 떠메고

장군님 그리며 산악같이 나서더라

할일 많은 내 조국의 기발이 된 선구자

최첨단 높은 령에 그 모습이 있더라

선구자의 그 모습

 

눈가에는 눈물이 괴여오른다. 한가득 차오르던 눈물이 와르르 쏟아지며 볼편을 푹 적신다. 주영호며 결사대원들, 지어 의사들도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직장정문밖에서는 여전히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그리움과 승리자의 희열로 충만된 노래의 선풍이 불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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