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 회)
제 3 장
사랑의 감정은 어디서부터 흐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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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얼마나 바쁘면 오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보냈으랴 하는 생각을 하는 성심의 가슴은 알알해났다. 사실 처음보는 사람이라 내색을 안했지만 요즘 시아버지의 건강은 좋은편이 못되였다. 그렇다고 이런 좋지 못한 소식이 남편에게 일일이 그대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되였다.
차창밖으로 손자의 손목을 잡고 마주오는 로인이 눈에 띄였다. 불시에 산보도 나가지 못하고 종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시아버지 생각이 나면서 저도 모르게 나직이 한숨이 나갔다.
《참, 힘들겠습니다. 공장에도 나갈래, 혼자서 시아버지시중도 할래…》
《아이, 일없습니다. 아, 오른쪽으로 꺾어야 됩니다. 저기 보이는 아빠트앞으로 나가면 됩니다.》
성심은 황황히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며 앞을 가리켰다.
아빠트사이에 있는 목욕탕에 들어서니 오래간만에 만난 동무는 반가와하면서 어서 역삼탕을 하라고 성화였다. 그러나 잠시도 지체할수가 없었다. 선자리에서 돌아서야 했다.
성심은 서둘러 여기에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그다음부터는 헤덤비며 창고로 가는 동무를 따라 역삼을 꺼내 포장하여 싣고는 다시 차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공장에서 무엇때문에 역삼이 필요한지 자세히 알게 된 성심은 집앞에서 내린 후에도 멀리로 사라지는 차를 바래며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다. 공장에서 하는 일에 그 역삼이 은이 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뿐이였다.
집으로 돌아온 성심은 시아버지에게 공장소식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성심이 들여온 골숨하게 담긴 죽그릇을 말끔히 비우기까지 했다. 공장소식이 시아버지에게 기운을 준것이다. 얼마후엔 고르로운 숨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들었다.
밤이 퍼그나 깊어서야 집거둠을 끝낸 성심은 전화기앞에 앉았다. 집에 자주 오지 못하는 남편은 전화로 집안소식이며 아버지의 건강상태를 세세히 묻군 했다.
전화는 한시간이거나
전화로는 마주보면서 이야기하는 때보다 더 자연스러웠다. 남편앞에 있을 땐 주저되는 때도 있지만 전화로는 얼굴 붉어지는 일도 없이 그저 남편의 얼굴만 그려보면 하고싶은 말이 저절로 나오군 했다.
전화를 기다리는 그 시각 자연히 역삼 생각이 났다. 역삼으로 땜을 하고 진행했을 시운전이 어떻게 됐을가. 남편이 관심하는 공장일에 자기도 한몫 했다고 생각하니 오늘 전화가 더 기다려졌다. 한초, 한초…
벽에 걸린 시계소리가 유난히 귀가를 자극했다. 그런데도 앞에 놓인 전화기는 잠잠했다. 멍청해있는 시간이 있을세라 성심은 마늘 한톨을 가져다가 까기 시작했다. 큰 공장의 창고장일을 보는 성심은 공장에서 언제나 바쁘게 뱅뱅 돌아가군 했다. 로동현장에서 부닥치는 힘에 겨운 일들을 하루종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손가락을 움직일 힘도 없군 했다. 집에서는 집대로 시아버지를 돌보는 일이며 빨래하고 저녁을 짓는 등 숱한 일감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또 애들의 숙제를 검열하느라 시간을 바쳐야 했다. 참으로 집안일은 해도해도 끝이 없을상싶었다.
성심은 피곤해서 몸이 노그라들었지만 우정 방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식탁에 마주앉은채 마늘을 까며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시험작업은 어떻게 됐는지. 혹시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아서 전화를 못하는게 아닐가. 초조해서 시험작업을 눈여겨보고있을 남편 생각을 하니 가슴이 바싹바싹 조여들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시원해진 바람결이 창가림을 날리였지만 성심은 전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왜 전화가 안올가. 혹시 시험작업이 잘 안된게 아닐가?
《따르릉…》
전화종소리가 울리자 성심은 흠칫 놀래며 잠시 내려다보았다. 선뜻 송수화기를 잡을수가 없었다.
다시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성심은 꼴깍 단침을 삼키며 송수화기를 잡았다.
《당신이요? 여보, 성공이요, 성공!》
환희에 찬 남편의 목소리였다.
《아!…》
눈물이 핑 어리였다. 꽉 조여졌던 마음의 나사가 풀리기나 한듯 송수화기를 쥔 손이 떨려났다.
《당신이 가져온 역삼으로 말이요, 뼁끼로 이겨서 먼저 땜을 하고 시운전을 했더니 하나도 새지 않았소. 이건 우리의 조립이 성공했다는것을 의미하오. 이젠 완전조립해도 되오. 됐소. 이렇게 하나하나 해나가면 다 완성할수 있소. 여보, 듣소?》
갑자기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목이 꽉 메여왔다. 그저 소리없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여보!》
《듣고있어요.》
《당신 우는구만. 나도 눈물이 나올것같소. 여보, 이렇게 우린 또 한고비를 넘겼소.》
퍼그나 안정된듯한 남편의 목소리를 듣자 성심은 얼른 눈물을 닦았다.
《현아아버지, 축하해요. 저도 얼마나 기쁜지…》
한동안 전류가 흐르는 소리만 징 하고 울렸다.
송수화기를 쥔채 격해진 마음을 눌러잦히며 두눈을 슴벅거리고있을 남편의 모습이 보이는것만 같았다.
《여보, 지금 아버지가 뭘하시오?》
《단잠에 드셨어요.
《그렇소?!》 또다시 남편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공장일에 묻혀돌아가면서도 잊지 못하고있는건 아버지의 건강이였다.
성심은 한결 개운해진 목소리로 시아버지에게 역삼이야기를 한거며 아이들과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들려주기 시작했다.
《가만.》 갑자기 남편이 성심의 말을 막았다.
《후에 전화를 또 하지.》하고는 다른 말을 하지도 못한채 남편이 전화를 끊었다. 아마 사무실로 누가 들어온 모양이였다.
성심은 송수화기를 놓지 못한채 한동안 그대로 앉아있었다.
행복한 순간은 너무나 짧았다. 오늘 아이들이 학교에서 있었다는 이야기도 다할 생각이였는데.
하지만 성심은 기뻤다. 환희에 찼던 남편의 목소리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목소리엔 자기의 몫도 있는것이다. 남편은 분명 한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그렇게 한고비한고비 완성해가느라면 공장은 현대화를 끝낼것이다.
성심은 코노래라도 나올듯한 심정으로 가뿐 일어나서 베란다로 나가 저 멀리 공장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