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회)
제 3 장
사랑의 감정은 어디서부터 흐르는가
5
(1)
요즘 공장에서는 모든 력량이 발효제생산에 달라붙어있었다. 누구의 입에서든 발효제라는 소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퀴퀴하던 구식건물인 단백먹이서식장이 헐어진지 얼마 안되여 공장적으로 달라붙으니 아담하면서도 산뜻한 건물이 완성되였다.
작업반건물이 완성되자 배양탕크제작이 본격화되였다. 세밀작업에 쓰일 중요부속은 큰 기계공장에 물려졌지만 대부분은 공무직장에서 만들어냈다. 공장에서 제관공들과 용접공들, 기술자들에 대한 후방사업을 비롯한 애로조건을 푸는것이 선차적인 사업으로 진행되자 공무직장에서는 열이 났다. 온 공장이 공무직장으로 쏠려졌다.
밤은 깊어가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현장에 나와있는듯했다.
숱한 사람이 우글우글했지만 누구나의 눈에 띄는 사람은 우덕진이였다. 전번 기술총화후부터 우덕진의 위신은 밤비를 흠뻑 맞고 자란 버섯처럼 높아졌다. 그는 작업공정마다 기웃거리면서 그 쉑쉑거리는 목소리로 연신 무엇인가 강조하고 다그어댔다.
기사장이 그렇게 현장에 있는건 좋은 일이지만 신형일은 그가 발효제연구조의 실험작업을 추진시키기를 바랐다.
《기사장동무, 여긴 나와 또 지배인동지랑 다 있으니 발효제연구조에 가서 천호동무네 균작업진행을 좀 보오. 설비제작이 끝나면 인차 생산에 달라붙게 말이요.》
《예, 걱정마십시오.》 기사장은 버릇처럼 히쭉 웃으며 넘겼다.
《글쎄 여기 일은 걱정말고 가보오.》
당비서의 곡진한 그 말에도 그는 늘어나는 고무줄마냥 질질 늘구며 인차 자리를 뜰념을 안하고 작업장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마치 자기가 없으면 일이 튀여나갈것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는듯.
그러다가 등을 밀다싶이 해서야 마지못해 현장을 빠져나갔다.
기사장이 나가자 신형일은 원걸이가 일하는 곳으로 다가갔다.
원걸이야말로 아침이나 저녁이나 변함이 없고 무슨 일을 시켜도 믿음이 갔다. 그는 지금 배전장치부분에서 이상이 없는가를 확인하느라 여러 개소들을 일일이 돌면서 자기 할 일을 했다. 언제 봐야 말은 없으면서도 쉬임없이 손을 놀렸다.
그가 일하는것을 지켜보던 신형일은 문득 생각나는것이 있어 물었다.
《원걸이, 동무 누이가 집에 꼭 오라고 하지 않았소?》
《무슨 특식을 했다고 오라는건데, 내가 여기서 매일 특식을 먹는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원걸이가 빙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글쎄 그것때문이라면 말을 안들어도 일없지.》
그의 곁을 떠나며 신형일은 넌지시 시계를 보았다.
10시가 지났다. 이젠 지배인을 들여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작업장을 일별하니 그가 공무직장장에게 무엇인가 과업을 주는것같았다.
지배인은 오리에 대한 기술만이 아니라 기계부문이건 전기분야이건 그 분야의 기술자들과 인차 소통이 되고 걸린 고리때마다 결함을 찾아내는것이 특징이였다.
신형일은 지배인에게 다가갔다.
《지배인동지, 그만 들어가십시오.》
《들어간다구요?》 그가 시계를 보더니 《벌써 이렇게 됐는가? 아니, 오늘은 탕크조립을 하는데 그것까지야 봐야지요.》라고 말했다.
지배인은 그러면서 뜰념을 안했다.
신형일은 이 탕크조립이 간단하게 끝나지 않기도 하겠지만 매일 밤 그렇게 현장에 오래 있으면 60이 다 되여가는 지배인이 견디지 못한다는 걱정이 더 앞섰다.
《우리가 다 현장에 오래 있으면 래일 새벽엔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제 먼저 들어가고 대신 지배인동지는 새벽에 먼저 나오십시오. 난 좀더 자기로 하구요.》
지배인은 그 말엔 더 우기지 못하고 작업장을 떴다.
신형일은 현장을 돌았다.
밤이 깊어가도 현장의 열기는 식을줄 몰랐다. 로력이 딸리지 않는건 두말할것도 없었다. 청년동맹원들과 비생산부문에서 오는 지원자들이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다. 자연히 그 인원들로 작업조직을 할수 있었다.
단지 원걸이를 비롯한 공무직장의 기술자들만은 대신할 사람이 없어 교대별로 꼭 휴식을 시키게 직장장에게 과업을 주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선들바람이 불어오고 공중에서 돌아가는 선풍기가 선선한 바람을 몰아왔지만 작업장은 무더웠다. 가만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로동자들은 런닝그나 스프링바람인데 잔등이 물에 적시기나 한것처럼 푹 젖어있었다.
식당에서 뚱뚱보주방장과 두연원의 황춘영이가 튀기와 랭국을 가지고 찾아왔다. 행동이 날렵한 황춘영은 직접 고뿌와 주전자를 가지고 용접공들과 제관공들사이를 누비며 권했다. 황춘영은 요즘 새로 꾸리는 두연원때문에 현장에 나올 형편이 못되는데 어떻게 시간을 냈는지 알수 없었다. 하얀 앞치마를 산뜻하게 차려입고 생글생글 웃는 그의 모습은 더위로 헉헉하는 현장에 금시 생신한 기운을 뿌려주었다.
그를 보니 언제인가 안해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황춘영을 찾아다니는 그 양어기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었던것이다. 그때 신형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것은 잊지 않았다는 표현이였다. 누가 소소한것을 제기해도 흘려보내는 일이 없는 신형일에게 있어서 안해의 말도 례외가 되지 않았다. 단지 오리공장에 양어기사가 들어갈 틈이 없어서 모색하고있는중이였다.
그러던 찰나 양어기사의 일을 생각할수 있는 맞춤한 일이 생겼다. 어느날 조현숙이가 찾아와 양어를 하자는 의견을 제기하는것이였다.
가공직장에서 오리를 도살할 때 나오는 부산물이 적지 않은데 이것으로 양어를 할수 있지 않느냐는것이였다. 양어장을 꾸리는 일은 우리 직장녀성들 힘으로 하겠는데 승인만 해달라는것이였다. 아주 좋은 제기였다. 버린 밥알로 잉어를 낚는다더니 버리는거나 다름없는 부산물로 메기 같은 물고기를 기른다면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셈이다. 그런 좋은 일은 승인만 하는것이 아니라 적극 밀어주고 장려해야 하는것이다. 양어기사까지 있으면 제격인데 마침 황춘영을 따라다니는 사람이 양어기사다. 그 양어기사를 공장에 데려오는것이 문제인데 아직도 춘영에 대한 사랑이 살아있는지. 그걸 어떻게 알아본다?
너무 몰두했던 나머지 황춘영이가 고뿌를 들고 앞으로 온것도 알지 못했다. 사양하지 않고 고뿌를 받아든 신형일은 《책임자동무, 두연원에서는 지원하지 않아도 되오. 대신 두연원운영을 만가동, 어떻소?》하고 물었다.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한 황춘영은 현장에 대고 소리쳤다.
《작업을 끝내고 아무때라도 오십시오. 우리 두연원은 언제나 준비되여있습니다.》
황춘영의 말은 모두의 절찬을 받았다.
한동안 서늘한 기운을 뿌려준 그들이 돌아간지 얼마 안되여 이번엔 가공직장에서 지원을 왔다.
직장장 조현숙이 환한 얼굴로 《수고들 합니다.》하고 청높은 목소리를 내며 들어서자 그뒤로 녀성들이 큰 버치와 바께쯔를 이고 들고 찾아왔다. 그들이 가지고온건 단고기장이였다.
이제까지 시원한 랭국만 찾았는데 단고기장이라니 땀을 뚝뚝 흘리며 곱배기를 하고싶게 목젖이 오르내렸다. 정말이지 더위와 피곤으로 몰려있는 작업장에 단고기장은 더할나위없이 어울렸다. 그 단고기가 바로 직장장네 망아지만한 검정개였다고 혀를 차는 사람들에게 조현숙은 헌헌히 말했다.
《공장에서 중요한 전투를 하는데 우리 집의 망아지가 한몫 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는가요. 빨리 완공만 하라요. 또 있습니다.》
정말 그는 통이 컸다. 기본적이며 중심이 무엇인가를 제때에 포착하고 어깨를 들이밀줄 알았다.
그를 보는 순간 신형일의 머리속으로는 됐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치듯 떠올랐다. 조현숙을 발동시키면 황춘영의 문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조현숙이와 황춘영이가 자매처럼 절친한 사이라 양어기사문제를 꺼내면 조현숙이 적극 추진시킬건 뻔했다.
조현숙은 무슨 일이든 팔을 걷고 제일처럼 나섰다. 그에게는 남이라는 관념이 없었다.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뛰여드니 그가 나서면 해결되지 않는 일이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