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8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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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중건이 결심을 내리고 청년선제직장사무실이 있는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어느새 방송선전차가 곁에 와 멎어서는것이였다. 동시에 례의 은근한, 그러나 이제는 막 듣기만 해도 《증이 나》는 부비서의 목소리가 귀에 와닿는다.
《언제 오셨소? 지배인동무.》
《예, 방금.》
김중건은 시창마다에 얼굴을 붙이고 가벼운 목례 혹은 눈인사를 하는 기동예술선동대처녀들에게 일일이 눈길을 돌리며 웃어보이였다. 그러고나서 조수석에 앉아 시창밖에 넙적한 얼굴을 내밀고 느물능청스러운 인상을 짓고있는 부비서에게로 걸어갔다.
《그 화물자동차 말입니다. 출장길에서 내 좀 따져봤는데.》
대뜸 손을 홰홰 내젓는다.
《아아, 그건 걱정마시오. 지배인동무, 나두 그새 생각을 해봤지요. 부서가 머릴 맞대구 방도를 찾았소. 페차를 살려내자고 말이요.》
골치거리가 풀려 절로 웃음이 나온다. 부비서는 설명을 잇달았다.
《그렇지 않아 지배인동무가 떠나간 뒤에 열린 련합당집행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책임비서동무에게 그런 제길 재차 했다가 되게 견책을 받았소. 머리 큰 당일군이, 대중의 정신력을 총발동시키는데서 일선에 선 사상일군이 돌아앉아서는 지배인, 책임비서에게만 매달려 일을 하려든다고 말이요.
지배인동무가 여태 내 시달림을 받느라 욕많이 봤겠소.》
이번에는 감심이 되였다. 김중건은 언제 어물쩍해넘기려 했던가싶게 진심을 터놓았다.
《부비서아바이가 그렇게 이야기하니 고맙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금예비를 짜내보도록 하지요. 사상사업에 절박하게 필요한 운수기재라는데 지배인이 죽는 시늉을 내면 안되지요. 저도 련합당집행위원이 아닙니까.》
《일없소. 일없다니까. 그저 지배인동문 공무와 단조직장에 우리네 차수리를 잘 도와주라고 한마디 얘기만 해주오.
참 지배인동무, 적십자병원에서 소식이 왔는데 승일소장 수술이 잘되였다고 합데. 그래서 인차…》
《그래요? 일어나 다닌답니까?》
김중건은 귀가 번쩍 트이여 그의 말허리를 꺾었다.
《덤베북청 한가지구만. 수술을 금방 했는데 다닐게 뭐요. 그래서 래일쯤 해서 책임비서동무가 눈으로 확인할겸 면회를 간다나보오.》
김중건은 책임비서와 함께 가봐야겠다고 작정하였다. 부비서는 계속 이야기해준다.
《그담 유가족들중 강철의기사네 딸애들이 어제 마지막차루
《잘됐습니다. 준비랑 잘해주었는지.》
《그야 어련하겠소. 자, 철의기사네 맏딸이 지배인동무에게 편지를 남기고 떠났소.》
《철향이가요?》
김중건은 그가 내미는 편지를 받아들고 펼쳐보았다.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저번에 지배인큰아버지가 집에 왔을 때 차게 대해서 가슴이 아프다는것, 학원에 가 공부를 잘하겠다는것, 가서도 언제나 아버지네 기업소에서 주체철이 쏟아지는 날을 기다리겠다는것, 이것이 다였다.
《원참, 애두. 그러지 않은들…》
김중건은 편지를 접으며 속이 후더워나 중얼거리였다.
《한데 어딜 가시오?》
부비서가 그에게 물어본다.
《청년선제현장에 가는 길입니다.》
《그럼 타지. 우리도 거기 가는중인데.》
현장에 도착한 김중건은 내리자바람으로 직장장을 불러 생산정형과 설비가동실태를 알아보았다. 일을 보고 현장을 나서려는데 기동예술선동대처녀들이 그의 팔을 붙잡는것이였다. 노래도 좋고 시도 좋으니 로동자들을 위해 한마디 해달라는것이였다. 바빠 그러는데 초고전력전기로현장에서 만나자는것, 거기서 부르겠다고 말해주었으나 처녀들은 무가내였다. 거기서도 부르고 여기서도 불러야 한다는것이였다. 부비서까지 나서서 예술선동대처녀들의 요구에 합세한다. 중건은 댓편의 노래와 시를 읊고나서야 현장을 뜰수 있었다.
또다시 내리는 눈이였다. 굵은 눈발에 삽시에 주위가 시부옇게 보인다. 마지막대상인 전망설계연구소에 가 일을 보고난 김중건은 정문을 나섰다. 점심시간이 가까와서 그런지 길에는 나다니는 사람도, 차량도 거의나 없었다.
중건은 몇걸음 걷다가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찌르고는 두손바닥에 내리는 눈을 받았다. 련이어 내려앉는 눈송이들은 손바닥온기에 녹아버리는듯싶었으나 인차 소복이 쌓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줌에 쥘만한 량까지는 차오르지 못한다.
손에서 눈을 털어버리고 몇걸음 또 걷는데 어느 직장 장난꾸러기들이 만들어놓은 비록 눈이 얇게 깔려있으나 퍼리끄레한 미끄럼길이 한 대여섯m 누워있는것이 눈에 들어왔다. 동심에 싸인 그는 잦은걸음으로 구르다가 힘껏 지치였다. 그러나 중심을 잃는 바람에 끝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그만에야 엉덩방아를 찧고말았다. 자기의 꼴이 너무 우스워 소리내여 웃음을 터뜨렸다.
(허, 이래도 내가 웃을줄 몰라?)
갑자기 아까 강철직장현장에서 하던 부비서령감의 조언이 생각히운다.
《보우, 지배인동무가 노랠 하니까 로동자들이 얼마나 좋아하는가. 전에는 어땐줄 아오? 내가 본 견해를 말하면 주관적이라고 여길가봐 로동자들속에 돌아가는 객관적인 소릴 해주지. 그들이 뭐라구 말하는가, 우리 지배인인상이 시펄뚱하지 않으면 노상 이쏘기에 시달리는 사람같다는거요. 산소열법이랑 점결제가 해결 안되여 그러는것같은데 그래도 웃어야지, 지금처럼 노래도 부르구. 기업소의 제일 큰 어른이 아닌가. 힘들수록 아래사람들 지배인얼굴을 쳐다본다는걸 잊지 마우.》
(참, 산소열법이나 점결제문제뿐이라면 좀 좋게.)
김중건은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아닌게아니라 이즈음 김중건은 속이 탈대로 타서 돌아다니였다. 부비서가 례든것을 내놓고라도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이 성공할 때까지는 생산을 그냥 내밀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중유를 끊김없이 대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중유가 흔한가.
《그러게 황철에서두 빨리 새 기술을 도입해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비럭질을 하겠습니까. 김철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이제는 고자세입니다. 이전과는 달리 우릴 소 닭보듯 하지요.》
이것은 중유때문에 어느한 화학공장에 갔다가 그 공장의 자재일군에게서 들은 지청구였다.
그러나 일은 지금 모두 잘되고있다. 용광로해체를 하지 않아도 되였고 점결제도 해결되였으며 비록 힘들게는 받았지만 그 화학공장에서 들여온 중유량도 그만하면 고온공기연소기술이 성공할 때까지는 생산을 멈추지 않고 할수 있게 되였다.
저만치 나가떨어져 뒹구는 털모자를 머리에 쓴 김중건은 웃음을 지은채로 엉치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부지런히 걸어 북문정문이 보이는 큰길에 나선 그는 곧추 가려다가 참모부청사곁의 영양제식당주방에서 뿜기는 증기타래뭉치를 보자 무엇인가 언뜻 생각나는것이 있어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얼마전에 영양제식당을 돌아본 김중건은 후방부일군들을 현지에 불러놓고 된추궁을 하였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양제식사는 고정되여있었던것이다. 물론 후방부일군들이 애를 쓴 덕에 질이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결코 여기에 머물러있어서는 안되는것이다.
《부지배인동무는 만족합니까?》
《전보다야 대비약했지요. 이 아근에 우리 기업소영양제식당만큼 괜찮은 단위가 있습니까. 송림땅은 내놓구라두 말입니다. 뭐 요전에 후방사업을 잘한다고 소문난 어느 공장에 출장갔다가 거기 영양제식당에 들어가봤는데 눈이 감깁디다. 맨천 남새반찬에 두부, 닭알만 가지고 해보는데 우리처럼 훈제나 물고기반찬 그리고 중참이 없더란 말입니다.》
《그럼 황철보다 더 센 단위와 경쟁해야지요.》
《지배인동문 영양제식사를 잔치상처럼 차리자는겁니까?》
《잔치상이면 더욱 좋지요.》
《올해에는 송림항과 경쟁해서 앞서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무산광산이나 남흥청년화학과 견주어야 합니다. 할수 있습니까?》
《베찬데요.》
《그래요?》
《아아, 그 말 정정합니다. 못하겠다면 부지배인할 사람은 줄을 섰다며 당장 자릴 내놓으라구 하겠는데 딴 도리가 있소. 좌우간 알았수다.》
이것은 된추궁끝에 김중건이 후방부지배인에게 준 과업이였다. 달포전에 있은 일이여서 실천여부를 눈으로 확인하고싶었다. 건물뒤켠에 돌아가 주방출입문으로 다가가는데 마침 문이 열리며 책임자녀인이 나오는것이였다. 연신 땀을 씻으며 시계를 들여다보는품이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였다.
《오늘 점심엔 뭘 주오?》
인사를 하는 녀인에게 물었다.
《고기쟁반국수를 냅니다.》
(음, 달라지는군.)
《근데 어딜 바삐 가우?》
《12시에 중대방송이 있다는걸 깜박 잊고있어 그럽니다.》
《오오, 그래? 어서 가우, 빨리.》
중대방송? 무슨 내용일가?! 나도 빨리 가야 하지 않는가.
김중건은 솜옷주머니에 찔렀던 두손을 뽑으며 퍼붓는 눈발속으로 멀어져가는 책임자녀인을 따라 반사적으로 발길을 옮겼다. 북문정문이 눈바투 보이는 큰길까지 나온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정문접수실에 걸려있는 커다란 시계의 분바늘이 1분전을 가리키고있었던것이다.
참모부회의실에 가자면 이젠 늦었다. 차라리 여기 그냥 서서 방송을 듣는편이 나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