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7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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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호가 현장을 돌아보며 석진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그날 오후 김중건은 이번 사고에 의해 희생된 강철의기사네 집으로 가고있었다.

그의 집은 시장근처의 석탑동 단층집에 위치하고있었는데 김중건이 나서서 마련해준 집이였다. 차가 멎자 중건은 앞걸음을 치려는 운전사를 밀막고 제가 쌀배낭을 메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선 중건은 몇걸음 옮기다말고 마당을 휘둘러보았다. 담을 따라 심은 감나무, 대추나무들, 마당 한가운데 있는 수도며 이것을 중심으로 량켠에 일구어놓은 열둬평방되는 밭뙈기. 10여년전에 와봤을 때와 변한것이 하나도 없는 기사네 집마당이였다.

중건은 한어깨에 메고있던 쌀배낭을 추슬러올리며 방문께로 다가가 주인을 찾았다.

문이 열리며 얼굴이 동글납작한 큰딸이 한손에 연필을 든채 나온다.

《누구시나요?》

《?!》

김중건은 게면쩍어서 턱언저리며 볼을 괜히 쓸었다. 내 얼굴이 이애가 알아 못볼 정도까지 변하였는가.

《이 할아버진 지배인이야.》

다행 방문을 연 언니의 옆구리에서 얼굴을 내밀고 내다보던 7살잡이 막내소녀애가 아는체를 한다.

김중건은 속으로 허거프게 웃었다. 내 나이 몇이게 벌써 할아버지소리를 듣다니. 하긴 그런 소리를 들을만도 하다.

사고직후 정신상의 이름할수 없는 고민으로 하여 중건의 모색은 실지로 말이 아니였다. 며칠사이 머리칼은 반백이 되였으며 볼이 형편없이 홀쭉하게 들어가 광대뼈가 두드러지게 솟아있었고 깎느라고 했지만 어설프게 손질하여 꺼실꺼실한 수염들이 턱이며 볼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붙어있었다. 옷차림 또한 기름때와 얼룩으로 단정치 못하니 늙은이취급을 받는것은 당연하였다.

《옳다. 지배인이다. 난 네 오빠를 만나러 왔다.》

《오빤 학교갔다 늦게 와요.》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지배인이라는 말에 경계하는듯한 기색을 지었던 맏딸이 용건을 말했으나 여전히 들여놓을념을 안한다.

《난 꼭 만나야 한다.》

《…》

《그럼 내 여기서라도 기다리겠다.》

약간 주춤거리던 맏딸은 그제서야 반쯤 열었던 방문을 터놓으며 몸을 안으로 들인다.

부엌을 거쳐 문을 열고 들어서니 랭기가 감도는 넓다란 방안에는 기물이 한점도 보이지 않았고 다만 배식구쪽 아래목에 책들을 펴놓은 둥글밥상이 하나 있을뿐이였다.

불이 잘 안드는게군.

배낭을 내려놓으며 방 어중간에 퍼더버리고앉은 김중건은 바닥을 쓸어보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중건은 펴놓은 책에 연필을 달리는 언니와는 달리 배식구벽에 등을 붙이고 이쪽만 말끄러미 주시하는 막내를 보자 생각난듯 배낭을 풀었다.

사탕이며 과자봉지, 단물병을 바닥에 꺼내놓은 김중건은 그중에서 사탕봉지를 골라들고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막내에게 내밀었다. 이마에 드리운 머리칼을 옆으로 추스르고는 얼른 두손을 내미는 소녀애였다.

순간 맏딸이 연필을 놓고 동생을 쏘아보며 내민 두손바닥에 찰싹 매를 안기는것이였다.

무안을 당한 김중건은 내민 손을 내리며 바로앉았다. 방안에는 어성버성한 공기가 오래동안 흘렀다.

중건은 품속에서 라이터와 담배곽을 꺼내놓고 이번에는 맏딸에게 조심스럽게 청하였다.

《재털이를 주지 않으련?》

《우리 아버진 담배 안피웠어요.》

어떤 설분이 독스럽게 박혀있는 처녀애의 대답이였다. 김중건은 《오, 그렇구나.》 하고 얼결에 대답하고는 담배를 주머니에 걷어넣으려 했다. 헌데 담배곽과 라이터를 쥔 손이 주머니에 곧장 들어가지 못하고 자꾸만 옷섶에서 괜한 미끄럼질을 하는것이다. 그는 자기의 손이 어쩐지 말을 듣지 않는것같아 품을 들여서야 그것들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다잡으려고 우정 매몰차기 그지없는 처녀애에게 말을 걸었다.

《너 이름이 뭐니?》

《강철향이야요.》

《얘, 철향아.》

김중건은 그쪽으로 상반신을 숙이며 간절하게 청하였다.

《내 저 사진들이랑 집을 좀 보면 안되겠니?》

《…》

무언의 태도에서 힘을 얻은 김중건은 움쭉 허리를 폈다. 사진들이며 창의고안, 발명증서들이 걸려있는 벽앞에 다가선 김중건은 하나, 둘 주의깊게 들여다보았다.

록록치 않게 보이는 가는 눈에 얇은 입술, 빠른 하관과는 다르게 강철의기사는 속이 여리고 입이 무거웠다. 반면에 사업에 들어가서는 무서운 정열가, 막힘없는 재사였다. 이런 연고로 김중건이네들은 강기사를 몹시 아껴주었는데 특히 함승일이 그러했다. 아마 강철의기사와 머리를 맞대고 일하는 면에서는 중건이보다 많은 연고로 그의 인끔이나 실력을 잘 알고있어 그러할것이였다. 그래서인지 함승일은 그저 강기사, 강기사 하며 중건에게 그를 내세우지 못해하였는데 그 리유로는 앞으로 황철을 떠메고나갈 큰사람이 되게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것이였다.

중건은 서로 다정하게 몸을 의지하고 자기를 마주보며 웃고있는 그들부부의 결혼식사진을 보며 강철의기사의 안해에 대해서도 회상하였다.

해탄직장의 공정기사인 그의 안해는 청진내기였는데 그들부부의 연분은 인민대학습당에서 맺어졌다고 한다. 거센 함경도말씨를 고치지 못하여 이따금 사람들의 악의없는 웃음가마리에 들군 하지만 이애들의 어머니도 아버지 못지 않은 이악쟁이실력가, 정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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